대중음악의 생태계는 뮤지션만으로 채워지지 않는다. 그 곳에는 제작사와 유통사가 있다. 곡을 녹음하고 다듬는 엔지니어, 뮤직비디오를 기획하고 연출하는 영상 전문가, 공연장을 운영하거나 콘서트를 만드는 담당자, 음원과 음반을 유통하고 판매하는 업체, 저작권을 관리하는 기관이 있다. 음악을 가르치는 학원과 학교는 무수히 많다. 라디오, TV, 인터넷에서 음악을 고르고 알리는 이도 생태계의 일원이다. 음악을 평가하는 비평가와 연구자의 존재도 빠트릴 수 없다.
그렇다면 케이팝 생태계에서 비평과 연구는 어떤 역할을 하고 있을까. 언론에서 케이팝의 주요 사건과 변화를 이야기 할 때, 대중음악평론가나 대중문화평론가, 칼럼리스트의 코멘트를 덧붙이는 방식은 비평가가 조력하고 개입하는 가장 흔한 방식이다. 기사의 분량을 많이 차지하지 않지만 평론가는 평론가의 권위를 바탕으로 왜 이런 결과가 발생했는지 원인을 분석하고 미래를 예측하는 핵심 역할을 도맡는다. 케이팝 기사에 코멘트를 내놓는 평론가들은 대개 10여명의 전문가들이다. 그들은 케이팝 뿐만 아니라 다른 장르의 비평을 병행하는 비평가들로 케이팝에 대한 문화적/산업적/음악적 분석을 제공해 독자의 이해를 돕는다. 평론가들은 온/오프라인 매체에 케이팝에 대한 칼럼과 리뷰를 쓰거나 유튜브와 팟캐스트 등에서 개인방송을 운영한다. 케이팝 아티스트에 대한 리뷰이거나, 최근의 인기곡과 경향, 사건에 대한 해설과 주장이다.
케이팝은 신문/잡지/방송/소셜미디어를 통틀어 한국 대중음악 가운데 가장 자주, 가장 많이 이야기 되는 소재이자 주제이다. 그만큼 많은 이들이 좋아하고 대중의 인기를 끌기 때문인데, 케이팝이 해외에서 인기를 끄는 추세와 무관하지 않다. 한국의 대중음악, 드라마, 영화, 패션을 비롯한 문화예술 작품이 전 세계에서 인기를 얻어 국가의 자긍심을 높이는 자산이 되면서 케이팝에 대한 보도는 더욱 늘어났다. 이제는 해외 시장 음반 판매량, 차트 순위, 수상, 콘서트 흥행 등의 소식을 실시간 보도하는 추세다.
케이팝 비평과 연구는 저널리즘 영역에 국한하지 않는다. 아이돌 음악을 집중 비평하는 음악웹진 <아이돌로지>https://idology.kr/ 가 있고, <이즘>http://www.izm.co.kr/ 을 비롯한 대중음악웹진에서 주요 음반 리뷰와 칼럼을 확인할 수 있다. 한국대중음악학회의 정기학술대회도 케이팝 관련 연구를 꾸준히 발표한다. 2018년 12월 8일 열린 제24회 정기학술대회는 "BTS 신드롬의 현재와 전망"이라는 주제로 진행했다. 김영대, 박희아, 이규탁, 이종임을 비롯한 비평가, 연구자, 칼럼니스트의 단행본도 계속 이어진다.
이 중 케이팝과 페미니즘을 연결하는 작업이 이채롭다. <퀴어돌로지>, <알페스X퀴어>와 같은 단행본뿐만이 아니다. 케이팝 아이돌의 노래, 안무, 의상을 비롯한 콘텐츠 영역에서 성역할이 어떻게 드러나고, 어떤 서사를 구현하며, 메시지가 어떻게 변화하는지 분석할 뿐 아니라, 팬덤에서 이를 어떻게 향유하고 전복하는지 분석하는 논문을 읽을 수 있다. 지역, 민족, 팬덤 등의 프레임으로 케이팝을 분석하는 연구도 이어진다.
이렇게 보면 다양한 매체와 필자를 통해 케이팝 비평과 연구가 폭넓게 이루어지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 그렇다고 보기는 어렵다. 뉴스 매체에서 원하는 코멘트는 케이팝의 성공요인에 대한 의견인 경우가 대부분이고, 그 분석은 일부 평론가들에게만 맡겨진다. 한국 사회는 인기 있는 케이팝 뮤지션과 음악에 일방적인 찬사를 보내는 경향이 강하다. 인기가 있으면, 특히 해외에서 인기를 얻으면 냉정한 평가를 하지 않고 과찬을 일삼는다. 인기가 논의를 압도해버리는 현상이다. 언론과 비평이 팬덤의 반발을 두려워해서일 수 있다. 결과적으로 현상에 대한 정확하거나 다양한 이해를 가로막는다.
평론가는 대중음악을 전문적으로 듣고 평가하는 역할을 하지만, 제작에는 참여하지 않기 때문에 케이팝 제작사가 어떠한 전략을 세우고 어떻게 움직이는지 실상을 완전히 파악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다보니 이들의 분석과 예측이 실제와 다른 경우가 적지 않다. 가령 BTS가 활동을 시작할 때 이들이 지금처럼 세계적인 인기를 얻을 것이라 예측한 평론가는 거의 없었다. 분석은 사후 해석일 때가 대부분이다. 이 과정에서 과찬을 늘어놓는 평론가들이 케이팝의 문법과 대중음악 언어를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해 동문서답하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 예전에는 케이팝에 관심이 없었는데, 언론에서 케이팝을 주목한 이후에 부정확한 지식과 시선으로 케이팝을 호평하는 역할을 도맡는 비평가의 발언은 케이팝을 오독하고, 비평의 근본을 흔드는 주례사 비평이나 마찬가지다.
극찬이 넘치는 것과 반대로 뮤지션이 아무리 인기가 있어도 음악적 완성도가 떨어진다는 평가, 대동소이하고 뻔한 음악이 많다는 문제제기, 음반 판매량을 올리기 위해 팬들의 마음을 악용하는 판매 전략 등에 대한 비판은 좀처럼 듣기 어렵다. 이따금 소속사가 아이돌을 혹사시킨다는 문제제기만 반복할 뿐이다. 케이팝의 문제는 아이돌의 과한 스케줄과 노예계약 뿐일까. 케이팝 뮤지션으로부터 주체적인 발언이 나오고, 제작 체계가 시대의 변화에 조응하는 것처럼 보인다고 해서 다른 문제를 다 덮을 수 있을까. 케이팝의 제작 시스템은 지속가능한 모델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하지만 이런 문제의식을 드러내는 비평가들에게는 마이크를 주지 않아서인지 마이크를 가진 이들은 대개 비판을 삼간다. 어쩌면 찬사와 권위를 맞바꾼 카르텔이 작동하고 있는지 모른다. 한국사회가 과정보다 성과를 훨씬 중요하게 여기기 때문일 수도 있다. 음악이 좋다고 생각하면 다른 문제 앞에서 진솔해지지 못하는 경향이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런 어중간한 동거가 계속 되어서는 곤란하다. 케이팝 비평과 연구는 더 전문화되고, 더 다양해지고, 더 냉정해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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