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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브, 르 세라핌…계속되는 케이팝 표절 논란, 특이성? 잠재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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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브, 르 세라핌…계속되는 케이팝 표절 논란, 특이성? 잠재력?

[케이팝 다이어리] 케이팝 미미크리(mimicry)의 양가성: 모방인가, 위협인가  

케이팝의 4세대 대표 아이돌 그룹 아이브(IVE)와 르 세라핌(LE SSSERAFIM)의 신곡이 발표되자마자 표절 시비에 휘말렸다. 케이팝의 창작 고유성에 대한 논란이 다시 일어났다. 2023년 4월 10일에 발매된 아이브의 '아이앰(I AM)'은 알바니아계 미국 싱어송라이터 아바 맥스(Ava Max)의 '소 앰 아이(So Am I)'를, 같은 해 5월 1일 발매된 르 세라핌의 '언포기븐(unforgiven)'은 스페인 카탈루냐 출신의 싱어송라이터 로살리아(Rosalia)의 '치킨 테리야키(Chicken Teriyaki)'를 표절했다는 주장이 네티즌들 사이에서 곧바로 제기되었다.

표절 시비는 단지 음악적인 부분에 그치지 않고, 뮤직비디오의 몇몇 장면들이나 패션 스타일 콘셉트에 이르기까지 전방위적이다. 특히 르 세라핌은 기존의 히트곡 '피어리스(Fearless)'와 '안티프래자일(Antifragile)'도 로살리아의 곡과 유사하다는 혐의를 받았다.

음악적인 부분만 한정해서 면밀하게 살펴보면 아이브와 르 세라핌의 곡이 아바 맥스와 로살리아 곡과 매우 유사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두 곡 모두 표절(plagiarism)이라고 확신할 만큼 똑같다고 보긴 어렵다. 표절은 다른 창작자의 작품을 사전에 동의 없이 도용한 것을 말하는데 이른바 도용의 범위와 근거가 명확하지 않기 때문이다. 음악적 유사성의 관점에서 볼 때 두 곡은 표절에 가깝지만, 음악적 동일성의 관점에서 보면 두 곡은 요즘 창작의 일반적 활용에 해당하는 레퍼런스(reference)에 가깝다. 이른바 디지털 음원 창작이 대세인 요즘, 음악을 참고했을 뿐 창작은 새롭게 했다는 주장을 단지 뻔뻔한 변명이라고 매도할 수 없는 근거가 있다. 요즘 유행곡들은 대체로 동시대 글로벌 음악적 트렌드를 따른다.

아이브-아바 맥스 표절 비교 영상

르 세라핌-로살리아 표절 비교 영상

표절의 기준과 근거는 장르마다 다르다. 문학은 언어로 창작하는 것이어서 문장의 도용, 혹은 등장인물과 이야기의 진행 과정에 따라 명확하게 표절을 판가름할 수 있다. 학술논문의 경우 상대방의 글을 인용하지 않고 문장을 그대로 사용할 때 표절임을 쉽게 가릴 수 있다. 심지어는 자기 글을 출처의 인용 없이 사용해도 자기표절로 비난받는다. 미술의 경우 위작이라는 이름으로 표절의 시비를 비교적 쉽게 가릴 수 있다.

그런데 음악에서 표절의 정의는 매우 어려운 문제이다. 음악 표절과 관련해 명확한 법적 정의가 없다. 어떤 경우는 4마디의 코드 진행이 유사하면 표절로 보고, 그 범위를 8마디로 확대 적용하기도 한다. 어떤 경우는 멜로디와 코드가 일치하지 않더라도 곡의 진행 과정이 사뭇 유사하면 표절로 본다.

대중음악, 특히 케이팝에서 곡의 창작과정은 매우 복잡하게 이루어진다. 특히 최근 케이팝에서 작곡은 한 명의 작곡가가 아닌 공동작업 형태로 이루어진다. 케이팝의 곡 자체가 한 곡에 매우 다양한 음악 스타일을 가미하고, 곡의 전개에 있어 전환과 변형이 매우 빠르게 진행되기 때문이다. 이번에 표절 시비가 붙었던 아이브의 '아이앰(I AM)' 공식 정보에 의하면 이 곡의 작곡가는 4명(Ryan S.Jhun, Kristin Marie, Audun Agnar Guldbrandsen, Eline Noelia Myreng)이나 된다. 르 세라핌의 '언포기븐(unforgiven)' 작곡가는 무려 10명이 넘는다. 그중에 영화음악의 거장 엔니오 모리꼬네(Ennio Morricone)의 이름이 등재된 것도 매우 신기하다. 한 곡에 이처럼 수많은 작곡가를 올린 것은 '언포기븐'을 만들 때 많은 작곡가의 곡을 참고했다는 뜻이다. 4명, 혹은 10명이 공모해서 특정한 한 곡을 표절했다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케이팝의 작곡과 음악제작 방식은 어떤 점에서 전통적인 표절의 정의로는 재단하기 어려운 특이성을 갖고 있어 보인다.

이 특이성은 마치 존재론적인 운명 같다. 비단 4세대 아이돌뿐 아니라 그간의 많은 아이돌 그룹들이 형성한 케이팝의 창작 방식과 제작 스타일은 전통적인 정의의 표절이란 혐의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 케이팝의 음악 스타일 자체가 글로벌 트렌드를 지향하고 있어 미국과 유럽 팝 음악의 자원을 자신의 음악적 참고체계로 활용한다. 특히 음악적 스타일의 주요 원천은 힙합, 알앤비, 일렉트로닉 팝에 근거한다.

4세대 아이돌 그룹 중의 하나인 뉴진스(New Jeans)도 최근 미국에서 유행하는 복고풍의 볼티모어 클럽 댄스 뮤직 스타일의 드럼 비트를 기초로 '디토(Ditto)'를 만들었다. 또 다른 히트곡 '하이프보이(Hype Boy)'도 테일러 스위프트(Taylor Swift), 원 리퍼블릭(One Republic) 등 동시대 팝 아티스트들이 즐겨 사용하는 아프리카 트로피컬 풍의 뭄바톤(Moombahton) 비트를 기반으로 만들어졌다. 뭄바톤은 박재범, 아이즈 원, 위너, 스트레이 키즈, 카드 등 국내 많은 아이돌 그룹의 곡에 핵심 비트로 사용된다.

뉴진스와 볼티모어 댄스 뮤직의 유사성

케이팝의 뭄바톤 스타일

케이팝은 애초부터 이렇게 서양 팝음악의 중요한 트렌드를 자기화하고, 현지화해서 다시 글로벌 시장으로 진출했다. 나오는 곡마다 표절 시비가 생기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케이팝의 거의 모든 곡은 기존 팝음악 혹은 유행하는 모든 음악적 소스를 샘플링하거나 특정 곡의 주요 멜로디나 리듬 패턴을 레퍼런스로 활용하여 만들어진다. 글로벌 최신 음악 트렌드를 반영해야 하고, 한 곡에 다양한 음악 장르가 공존하도록 제작해야 한다. 한 곡에 다수의 작곡가가 참여하는 집단 창작방식에 더해 그룹 멤버의 솔로 파트를 고려하고 역동적인 안무를 배려해야 한다. 이처럼 레퍼런스를 많이 사용하는 케이팝의 독특한 작업 방식은 표절의 혐의에서 자유로울 수 없으면서 동시에 표절의 혐의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양가성을 가지고 있다.

나는 이러한 케이팝의 음악적 양가성을 '미미크리(mimicry)'라는 말로 설명하고 싶다. 원래 미미크리는 '흉내내기', '모방'으로 번역할 수 있는 정신분석학 용어이다. 미미크리는 타자의 존재적 위치를 나타낸다. 동일자의 본체와 달리 타자의 위장술은 본체를 지워버리는 얼룩덜룩한 색채를 띤다. 정신분석학자 자크 라캉은 미미크리를 다음과 같이 말한다.

"모방(mimicry)은 그 뒤에 숨겨져 있는 본체로 불리는 것과 구분되는 한에서 무언가를 드러낸다. 모방의 효과는……위장이다. 그것은 배경과 조화되는 문제가 아니라, 얼룩덜룩한 배경을 등지고 얼룩덜룩해지는 문제이다. - 그것은 인간의 전쟁에서 사용되는 위장의 기술과 아주 똑같다(자크 라캉, '선과 빛', <응시에 대해> 중에서)."

인도의 탈식민주의자인 호미 바바(Homi Bhabha)는 이러한 라캉의 미미크리를 식민지 모방의 양가성의 원리를 설명하는 데 사용한다. 식민지 모방은 식민주의자를 흉내 내지만 결코 같을 수 없는 양가성을 갖는다. 말하자면 '같지만 완전히 같지 않고, 다르지만 완전히 다르지 않은' 모방의 양가성이다. 양가성은 필연적으로 차이를 드러낼 수밖에 없는데, 호미 바바는 이러한 식민지 미미크리의 차이가 위협의 잠재성을 생산한다고 말한다. 같아 보이지만 결코 같지 않고, 그렇다고 다른 것 같지만 결코 다르지 않은 식민지 모방은 케이팝 미미크리의 양가적 위치를 알게 해준다.

호미 바바는 모방 담론은 양가성을 둘러싸고 구성되는데 그것이 효과적이게 되려면 모방, 즉 미미크리가 "끊임없이 그 미끄러짐, 초과, 차이를 생산해야 한다"고 말한다. 케이팝의 미미크리는 차이를 생산하면서 글로벌 팝 시장에 새로운 위협의 대상, 즉 새로운 대안적 팝으로 성장했다. 물론 케이팝의 노골적이고 공공연한 표절을 옹호하는 것은 아니다. 논문에도 인용하면 출처를 밝히듯이, 케이팝 역시 태생적인 미미크리의 위치를 은폐할 것이 아니라, 자신이 사용한 음악적 레퍼런스를 밝히는 창조적 위장술이 필요하다.

1960~70년대 서양 팝 음악을 그대로 번안하거나 1980~90년대 일본 팝 음악을 노골적으로 표절하여 부르던 시대와는 달리 동시대 케이팝은 매우 혼종적인 음악 스타일을 자기화하여 새로운 대안적 팝 음악을 생산하고 있다. 케이팝이 숱한 표절 시비에 휘말리면서도 해당 곡들이 글로벌 팬들로부터 여전한 호응을 얻고, 해당 원곡자나 아티스트에게 오히려 유사성 안에서 창작성을 인정받는 경우들은 케이팝 미미크리의 '차이와 위협의 특이성'이 아닐까 싶다. 표절이란 비윤리적, 비도덕적 행위가 정당화될 수 없다. 그러나 '케이팝의 미미크리'라는 독특한 문화적 위치는 케이팝 고유의 특이성이자 잠재력이 될 수 있다는 점도 이제는 한번 생각해 볼 때가 되었다.

▲ 뉴진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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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연

한국예술종합학교 한국예술학과에서 문화이론, 예술정책, 공연기획을 가르치고 있다. 현재 문화연대 공동대표, 예술마을프로젝트 총감독, 유네스코한국위원회 위원, 전주세계소리축제 부조직위원장 등을 역임하고 있다. 대표적인 저서로는 <예술@사회>, <예술과 삶>, <문화연구의 종말과 생성>, <문화자본의 시대>, <문화부족의 사회>, <게임의 문화코드>, <아시아문화연구를 상상하기>, <아이돌>(공저), <예술마을의 탄생>(공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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