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서울 서초구 소재 서이초등학교에서 교사가 스스로 극단적 선택을 하는 비극적 사건이이 발생했다. 현재 경찰이 해당 사건을 조사 중이지만, 서울교사노조 발표에 따르면 고인은 학부모로부터 과도한 요구를 받았고 이 때문에 극심한 스트레스로 힘들어했다고 한다. 학교는 이와 관련해 어떤 조치도 하지 않았다고 한다.
고인의 죽음 이후 나오는 동료 교사의 증언이 아니어도, 고인이 겪었을 어려움은 고인의 사회적 위치를 통해 유추가 가능하다. 먼저 강남이라는 지역의 특성이 있다. 강남에는 재력이 크고 사회적 지위가 높은 학부모들이 많아 민원이 심하다는 말이 돈다. 교사들이 강남, 서초지역에 있는 학교를 기피한 지도 오래다.
둘째로 2년차 저경력 교사였다는 점이 눈에 띈다. 경력과 나이가 적다는 이유로 발언력과 문제 제기가 통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 마지막으로 고인이 여성이라는, 사회적으로 차별받는 위치에 있었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성별 위계의 작동으로 교육현장엔 여성 교사에 대한 폭언이 특히 많다.
특히 언론보도에 따르면 최근 몇 년 동안 다른 지역에서 강남·서초로 근무지를 옮기는 교사보다 강남·서초에서 다른 자치구로 빠져나가는 교사가 더 많았다. 빈자리는 신입 교사들이 채우게 된다.
사정이 이렇게 되자 서울시교육청은 올해 3월 강남서초교육지원청의 경우 '5년 이상 근무(1개 학교 이상 근무) 후 전출' 규정을 '10년 이상 근무(2개 학교 이상 근무) 후 다른 교육지원청으로 전출'하는 것으로 변경했다. 그러나 이는 임시방편일 뿐이다. 민원이 많은 저학년 담임에 신규교사나 기간제교사가 배치되는 경우도 많다.
학교는 다양한 주체가 공존하고 여러 권력관계가 상존하는 곳이다. 흔히 학교의 3주체는 교사, 학생, 학부모라고 말한다. 그런데 이들의 관계가 어디서나 똑같지는 않다. 부유한 도심 학교에서 벌어지는 교사의 어려움과 가난한 지방 학교에서 벌어지는 교사의 어려움은 같을 수 없다.
각 주체들의 재력이나 학력, 성별, 성적순위, 장애 유무, 외모, 집안, 나이, 고용형태 등에 따라 그들이 겪는 어려움도 다르다. 남성 교사에 의한 여학생 성폭력 사건은 스쿨 미투를 통해 이미 많이 드러났다. 그에 못지않게 성별 위계로 인해 남학생에 의한 여교사에 대한 성희롱도 많다.
따라서 이번 사건을 제대로 풀려면 학교와 교육에 대한 '가치 지향'을 갖고 풀어야 한다. 즉, 학교 공간을 어떻게 민주적이고 평등하게 만들 것인가에 대한 고민 없이, 단순하게 "교사가 문제라거나 학생이 문제라거나 학부모가 문제"라는 식으로 접근할 경우, 문제가 풀리기보다 더 엉킬 수 있다.
학생인권 조례 폐지가 아니라 교사의 노동권 보장이 핵심
문제의 실마리는 '교사가 일을 하다 괴롭힘 등 부당한 일을 당할 때, 이를 구제받을 수 있는 학교환경과 제도가 마련되지 않았다'는 데에서 찾아야 한다. 교사들이 입을 모아 토로하는 어려움 중 하나가 모든 문제를 '나 혼자 해결'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모든 부담을 '독박 교실'에서 교사 개인이 감당하도록 전가하는 게 지금 현실이다. 학교폭력 사건에 대한 접근도 개별 교사에게 떠넘기는 현실에서, 과중한 행정업무까지 교사를 기다리고 있다. 교사들의 감정노동과 사생활 침해의 정도는 높아지고 있다. 교사나 학생에 대한 '체계적 지원'을 제대로 마련하지 않은 학교와 교육 당국 때문이다.
그런데 정부는 엉뚱한 곳으로 화살을 돌렸다. 이주호 교육부장관은 현장 교원과의 간담회에서도 학생인권조례가 원인인 양 말했다. 그는 "지나치게 학생 인권만 강조했던 교실에서 교사의 권한과 역할이 법제화되도록 하겠다. 교권 확립을 위해 학생 생활지도 고시 등 제도를 개선하겠다"고 했다. 대통령실 관계자도 이번 사태를 두고 "학생인권조례가 빚은 교육 파탄의 단적인 예"라고 했다.
과연 학생인권조례가 이러한 비극을 낳았는가. 그렇지 않다. 교사들을 괴롭히는 과도한 행정업무는 학생인권조례 때문에 발생한 것이 아니다. 학생인권조례 제정 전에도 교사들은 학생들의 복장을 단속하느라 에너지를 써야 했다. 시험성적을 관리하느라 힘들어했다.
학생인권조례는 교사들이 학생들의 인권을 존중하면서 교육활동을 벌일 수 있도록 하는 제도일 뿐이다. 상호 평등과 인권 존중은 교육기관에서 마땅히 지켜져야 할 항목이다. 더구나 학부모에게 시달림을 당한 교사가 학생에게 체벌과 폭언을 한다고 교사의 인권이 보장되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
교사들이 겪는 심각한 괴롭힘을 근절하고 교사들을 보호하기 위한 정부의 포괄적인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2022년엔 '교원의 지위 향상 및 교육활동 보호를 위한 특별법(이하 교원지위법)'이 만들어졌다. 법은 교사의 교육활동에 대한 국가와 지자체, 공공단체의 존중, 교원의 신분보장, 징계 등에 대한 소청을 담당하는 교원소청심사위원회, 교육활동 침해 보호조치 등을 담고 있다. 그러나 이 법만으로는 교사의 일상적인 어려움을 해결하기는 어렵다.
교사로서 겪는 어려움은 단지 교실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교무실 등에서 이루어지기도 하고, 학부모의 무리한 요구는 수업 밖에서도 이루어진다. 이를 모두 교육활동이라고 표현하고 접근하고 해결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교권'이라는 표현도 경계해야 한다. 해당 표현은 '교권과 학생인권'을 대립하는 것으로 착각하게 만드는 용어이자, 교권을 교사의 인권이 아니라 교사의 권위로 해석하고 받아들이게 해 혼란을 가중시키기도 한다.
더 이상의 죽음을 막기 위해서는 우리 사회에 있는 교사에 대한 편견부터 깨야 한다. 그래야 교사가 노동자로서의 권리를 보장받고, 괴롭힘 없는 학교에서 일할 수 있다. 교사에 대한 편견 중 대표적인 하나가 바로 교사를 노동자로 보지 않는 시선이다. 이 같은 시선이 교사의 노동범위를 제한하지 않고 교사에게 무리한 감정노동과 돌봄노동을 요구한다.
다른 하나는 교사를 노동자로 바라보면 오히려 교사의 권위나 명예가 떨어진다고 생각하며 '교사에게는 노동권을 보장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는 뿌리 깊은 노동자에 대한 비하, 폄하가 반영된 편견이기도 하다. 교사도 가르치는 노동자다. 그러니 교사에게도 노동권이 보장되어야 교사들이 단결하여 교육 현장을 개선할 힘을 만들 수 있다.
교사 노동권에 대한 이 같은 부정은 그 뿌리가 깊다. 전교조 같은 특정 교사노조의 경우, 정부의 색깔론 공격까지 받으며 단체결사권을 침해당하기도 했다. 다행히 2020년 대법원의 판결로 전교조에 대한 법외노조는 취소되고 노조합법화가 이루어졌지만, 여전히 단체교섭권이 제한되어있고 단체행동권도 제대로 보장되고 있지 않다.
전교조만이 아니라 교사노조연맹 등 다른 노조도 비슷한 처지다. 교사들의 노동조건 향상을 위한 교사 집단의 힘과 목소리를 내기 어려운 현실이다. 이는 무엇을 뜻하나. 학교 당국의 불합리한 지시나 지침에 대해, 교사들이 집단의 힘으로 학교나 교육청과 교섭하여 개선할 수 있는 여지가 적다는 뜻이다. 결국 평교사들은 그저 학교장이나 교육청의 눈치를 보는 위치에서 헤어나기 어렵다. 불이익을 교사 개인이 감당해야 한다.
교사들, 직장 내 괴롭힙 금지법도 적용되지 않아
그뿐만이 아니다. 교사들을 노동자로 보지 않는 현실은 교사들로 하여금 근로기준법에 보장된 권리조차 못 누리게 하고 있다.
2019년부터 직장 내 괴롭힘 금지 조항이 근로기준법에 포함됐지만, 교육공무원법에는 해당 조항이 없어 이번 사건처럼 학부모나 직장 상사 등에게 괴롭힘을 당해도 제도적으로 구제받기 어렵다. 교육공무원법엔 직장 내 괴롭힘 예방교육도 없다. 성폭력을 당해도 피해공무원을 보호할 조치 조항도 없다.
지난해엔 강민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직장 내 괴롭힘 금지 규정 및 피해공무원 보호조치 규정 등을 신설한 국가공무원법 개정안, 지방공무원법 개정안, 교육공무원법 개정안을 발의했지만 1년 반이 지나도록 법안은 국회에서 계류 중이다.
열악하고 복잡한 교육 현실을 바꾸려면 심도 있고 구조적인 개혁정책이 필요하다. 그런데 윤석열 정부의 교육정책은 그야말로 주먹구구다. 얼마 전 수능시험과 사교육 관련 대응에서 보여준 비합리적 모습을 서이초 초등교사의 죽음에 대해서도 비슷하게 취하고 있다. 답답하다.
그렇다면 정부가 교육환경 개선이나 교사의 노동권 보장방안에 힘을 싣기보다 학생인권조례를 타격으로 삼는 이유는 무엇일까. 하나는 현 정부의 교육정책 실패의 책임을 학생인권조례, 즉 소수자 인권 문제에 전가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혐오정치’다. 그동안 여러 혐오세력들이 학생인권조례를 문제 삼았던 만큼, 그 문제를 쟁점화하면 초등교사의 죽음에 대한 정부의 책임을 경감하는 동시에 지지를 확대할 수 있으리라 계산한 것이다.
다른 하나는 비참한 사건을 정쟁의 도구로 이용하려는 것이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윤석열 정부는 모든 이슈를 더불어민주당과의 대결 구도로만 해석하려 하고 있다. 필자와 같이 특정 정당을 지지하지 않는 사람이 봐도 심하다 싶은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대통령실 관계자가 언론인터뷰에서 밝혔듯이, 현 정부는 ‘학생인권조례는 진보교육감이 만들었고 대부분의 진보교육감은 민주당과 가깝다’는 논리를 펴고 있다. 그러나 이는 사실관계도 틀린 주장이다.
서울학생인권조례는 청소년인권단체들이 일일이 발품을 팔아 주민들의 동의를 받아 제정한 조례다. 유엔인권기구에 가서 관련 발표를 할 정도로 '청소년 당사자들의 힘으로 만든 조례'라는 점이 핵심인 조례다. 진보교육감이나 민주당과는 상관이 없다. 물론 진보교육감이 있는 곳에 학생인권조례가 있는 곳이 많은데, 그것은 그만큼 해당 지역이 인권조례를 만들 정도로 인권감수성이나 시민들의 지지가 높다는 반증이지, 진보교육감이 혼자 조례를 만든 것이 아니다. 사실 진보교육감이 학부모 눈치를 보면서 학생들과 교사의 인권을 짓밟은 사례 또한 종종 보도된다.
따라서 정부가 해야 할 조치는 학생인권조례 폐지가 아니라, 교사의 노동권을 보장하는 법제도를 마련하는 것이다. 그리고 학교 내 인권감수성을 높여 다양한 권력관계에서 취약한 교사나 학생이 차별받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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