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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제동원 피해자 권리 없애려는 윤석열 정부 시도, 또 다시 법원에 막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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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강제동원 피해자 권리 없애려는 윤석열 정부 시도, 또 다시 법원에 막혀

광주지방법원, 공탁 불수리에 따른 재단 이의신청도 "이유없다"고 기각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피해자들이 대법원 판결을 통해 획득한 법적 권리를 소멸시키기 위해 변제공탁을 추진했다가 실패한 정부가 이의 신청을 통해 다시 공탁을 시도했으나 이 역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에 무리한 법해석에 따른 막무가내 식 행정 조치로 정부가 스스로 신뢰를 갉아먹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 4일 행정안전부 산하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이하 재단)의 강제동원 피해자 배상금 공탁을 수리하지 않은 광주지방법원은 이에 대한 재단의 이의신청에 대해 5일 "이유 없다"며 또 다시 수리를 거부했다.

공탁관은 이에 따라 5일 이내로 해당 이의신청서에 자신의 의견을 첨부하여 광주지방법원에 송부했고, 광주지방법원은 민사44단독에 이 사건을 배정해 이의신청에 대한 법리를 따져 수용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다.

앞서 지난 3일 외교부는 "재단은 정부 해법을 수용하지 않은 피해자 4명과 상속인 파악이 되지 않아 공탁 절차를 거치지 않고는 판결금 수령이 어려운 사례가 있어 이들에 대한 공탁 절차를 3일 개시했다"며 "대상자인 피해자 유가족 분들은 언제든지 판결금을 수령할 수 있다"며 변제공탁을 공식화했다.

이후 하루가 지난 4일 광주지방법원은 피해자인 원고 양금덕 할머니가 "변제를 허용하지 않는다"는 서류를 제출한 것을 두고 공탁 거부 의사를 분명히 밝힌 것으로 해석, 불수리를 결정했다. 이에 외교부는 이날 "강한 유감을 표명한다"며 이의신청을 했는데 5일 광주지방법원은 이 이의신청도 수용하지 않았다.

재단 공탁이 법원에서 연이어 수리되지 않은 이유를 두고 정부가 일부의 법해석을 절대적인 법칙인 것처럼 판단하고 미숙하게 업무를 처리한 결과라는 지적이 나온다.

외교부는 지난 4일 공탁에 대한 첫 불수리 결정이 나왔을 때 입장자료를 발표했는데, 여기서 공탁관의 권한에 대해 자신들의 주장을 뒷받침할 수 있는 판례만 붙여 마치 이것이 확립된 견해인 듯한 주장을 펼쳤다.

외교부는 "공탁 제도는 공탁 공무원의 형식적 심사권, 공탁 사무의 기계적 처리, 형식적인 처리를 전제로 하여 운영된다는 것이 확립된 대법원 판례(96다11747 전원합의체 판결)"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1997년 선고됐던 이 판례보다 더 최신 판례인 2009년 5월 공탁공무원의 처분에 대한 이의신청 사건에서 대법원은 공탁공무원의 불수리 권한을 인정했다. 대법원은 '이해관계 없는 제3자'가 변제공탁을 하려 하자 공탁관(공탁공무원)이 공탁을 수리하지 않은 것에 대해 정당한 조치라고 결정했다.

외교부가 해당 입장자료에서 "공탁 공무원이 형식상 요건을 완전히 갖춘 공탁 신청에 대해 '제3자 변제에 대한 법리'를 제시하며 불수리 결정을 한 것은 공탁 공무원의 권한 범위를 벗어난 것이자 헌법상 보장된 '법관으로부터 재판받을 권리'를 침해하는 것"이라고 주장한 데에도 문제가 있다.

대법원규칙인 '공탁규칙'의 제2조는 시‧군법원 공탁관의 직무범위를 규정하고 있는데 여기서 첫 번째 호에 나와 있는 직무가 '변제공탁'이다.

또 같은 규칙 제48조에는 '불수리 결정'에 대해 명시하고 있는데 "공탁관이 공탁신청이나 공탁물 출급‧회수청구를 불수리할 경우에는 이유를 적은 결정으로 하여야 한다"며 공탁공무원의 불수리 권한을 명확하게 규정하고 있다.

공탁공무원이 '법관으로부터 재판받을 권리'를 침해했다는 주장 역시 억지에 가깝다. 공탁관이 불수리할 경우 이에 따라 이의신청을 할 수 있고 이마저도 불수리가 될 경우 재판으로 유효성 여부를 따질 수 있다. 실제 이후 절차는 이렇게 진행되고 있다.

▲ 강제동원 피해자 이춘식 할아버지와 고 정창희 할아버지의 법률대리인인 법무법인 해마루의 김세은(왼쪽), 임재성 변호사가 외교부의 변제공탁 발표 이후 서울 도렴동 외교부 청사 후문에서 기자들과 만나 이에 대한 입장을 밝히고 있다. ⓒ연합뉴스

이렇듯 정부의 입맛에 맞는 일부의 법 해석을 확립된 견해인 것처럼 주장하는 정부의 태도는 채권자의 동의 없는 제3자가 변제를 해도 유효하다고 주장할 때부터 다소 억지스럽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제3자 변제의 일환인 '제3자 변제공탁'의 유효성은 피고인 일본 기업이 아닌 제3자인 재단이 원고인 피해자 및 유족에게 변제하는 것을 인정할 것인지 여부에 달렸는데, 일본제철과 미쓰비시 히로시마 소송의 대리인인 김세은 법무법인 해마루 변호사는 민법 제469조 '제삼자의 변제' 조문에 따라 재단의 변제가 위법하다고 보고 있다.

민법 제469조 1항에 따르면 "채무의 변제는 제삼자도 할 수 있다"고 명시돼 있으나 "채무의 성질 또는 당사자의 의사표시로 제삼자의 변제를 허용하지 아니하는 때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고 돼있다.

원고인 양금덕 할머니의 경우 이미 지난 3월 13일 "제3자 변제를 허용하지 않는다. 의뢰인 양금덕·김성주의 의사를 본 내용증명으로 명확히 밝히니, 수신인은 의뢰인의 의사에 반하여 변제하지 않도록 해달라"는 내용증명을 재단에 전달하며 의사표시를 명확히 한 바 있다.

김 변호사는 "피해자가 제3자의 변제를 허용하지 않겠다는 의사표시를 명확히 한 경우에는 재단의 변제가 유효하다고 보기 어렵다"며 이에 따라 공탁도 위법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리고 광주지방법원은 재단의 공탁을 두 번 불수리했다.

김 변호사는 "강제동원 피해자들이 피고 기업에 대하여 가지는 위자료청구권은 그 성질상 제3자의 변제를 허용하지 않는다고 볼 여지가 있다"며 채권의 성질상 제3자 변제가 어려운 측면도 있다고 말했다.

변제공탁을 하더라도 원고들이 공탁금을 수령하지 않는 한 채권이 소멸되지 않는다는 정부의 법 해석 역시 문제다.

김세은 법무법인 해마루 변호사는 3일 정부의 공탁 발표 이후 서울 도렴동 외교부 청사 후문에서 기자들과 만나 "변제공탁은 변제를 위해 공탁을 하는 것"이라며 "공탁이 유효하다는 전제 하에 공탁소에 공탁을 하게 되면 채권자가 채무자로부터 돈을 받은 것과 동일한 효력이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다른 법률대리인인 법무법인 해마루 임재성 변호사는 정부의 설명이 "아주 기만적"이라며 "채권이 소멸되는 첫 번째 방식이 변제다. 어떻게 변제가 되는데 채권이 소멸되지 않나?"라고 지적했다.

그는 공탁이 유효하다고 인정될 경우 "피고 기업인 일본제철이나 미쓰비시 중공업에 대해 (원고가) 가지고 있는 채권이 공탁금 출납 청구권으로 바뀐다. 그러니까 여기서 (일본 기업에 대해 가지고 있는) 채권이 없어지는 것이고 다른 채권이 생기는 것"이라고 말했다.

▲ 제3자 변제를 골자로 한 정부의 강제동원 문제 해결방안이 발표된 3월 6일 광주 동구 5·18 민주광장에서 피해당사자 양금덕 할머니가 정부안을 규탄하는 발언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부는 정확한 사실관계를 파악하지 않고 입장자료를 발표하기도 했다. 외교부는 4일 불수리에 대한 입장 자료에서 "담당 공탁 공무원은 소속 다른 동료 공무원들에게 의견을 구한 후 '불수리 결정'을 하였는데 이는 공탁 공무원이 개별적으로 독립하여 판단하도록 한 '법원 실무 편람'에도 어긋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처음 불수리 결정을 한 공탁공무원이 다른 동료 공무원 누구한테 의견을 구했다는 것이냐는 질문에 4일 기자들과 만난 외교부 당국자는 "광주지방법원인지 다른 소속 공무원인지 확인은 못했다. 그 부분까지 좀 더 추가 확인하겠다"는 답을 내놨다.

불수리 결정을 내린 공무원이 다른 공무원에게 의견을 구했다는 것을 외교부가 어떻게 확인했냐는 질문에 이 당국자는 "그것도 확인해보겠다"며 제대로 답하지 못했다. 공탁을 불수리한 공탁공무원 결정의 신뢰성을 흠집내기 위해 사실관계가 명확하지 않은 내용을 입장으로 정리해서 발표한 셈이다.

이를 종합해보면 외교부의 주장과는 달리 광주지방법원 공탁공무원의 불수리 결정은 판례와 조문에 따른 적법한 결정이었다고 해석하는 것이 타당해 보인다.

해당 사안을 다루고 있는 정부의 무성의한 태도도 문제다. 피해자의 채권을 없애는 공탁 행위를 하면서도 피해자 한 분 한 분을 찾아뵈어 진정성 있는 설득 노력을 하겠다는 외교부 당국자의 발언이 무색하게도, 공탁 요건을 갖추지 못해 반려 및 불수리 되고 있는 사안도 있기 때문이다.

전주지방법원은 5일 재단이 고(故) 박해옥 할머니를 대상으로 한 공탁을 받아들이지 않기로 결정했는데, 법원이 재단에 상속인을 유족 등으로 보정하라고 권고한 뒤 기한을 지난 4일까지로 정했으나 소명자료가 제출되지 않았기 때문인 것으로 전해졌다. 민법상 고인인 박 할머니는 공탁의 상속인이 될 수 없다.

뿐만 아니라 4일 광주지방법원은 이춘식 할아버지에 대한 재단의 공탁을 반려했는데 이는 서류가 미비했기 때문이었다.

공탁규칙 제20조에는 공탁서를 제출하는 방법과 어떤 사항을 명시해야 하는지 자세하게 제시돼 있다. 규정만 살펴보면 바로 확인할 수 있음에도 이 정도의 검토도 없이 공탁서를 보내는 데만 급급했던 것이다.

심지어 정부는 공탁 당일에도 대상자들에게 공탁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하지 않았다. 3일 임재성 변호사는 정부가 피해 생존자의 아들에게 "날씨가 더운데 고생이 많으십니다. 저희가 판결금을 법원에 공탁해놨으니 언제든 필요하실 때 찾아가면 됩니다"라는 내용만 말했다고 전했다.

임 변호사는 "심지어 유족 분들 중 연락을 주고받았던 한 분에게는 (정부로부터) 부재중 전화만 와 있었고, 포털(사이트)에 기사가 뜬 걸 보고 나의 판결이, 우리 아버지가 했던 소송의 판결이 공탁되어 있는지 알았다는 이야기를 하셨다"면서 "일국 최고 법원 판결에 따른 채권을 당사자의 의사에 반하여 없애는 조치를 하면, 어떠한 조치를 했는지에 대해 충분히 설명해야 될 의무는 있는 거 아닌가"라고 따졌다.

이렇듯 정부가 서둘러서 채권을 소멸시키려는 것을 두고 일본과 약속한 시한이 있기 때문 아니냐는 추측도 나오고 있다. 하지만 3일 기자들과 만난 외교부 당국자는 일본과 시한을 정해둔 것이 있었냐는 질문에 "그건 아니다"라고 부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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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호

외교부·통일부를 출입하면서 주로 남북관계를 취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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