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서 성추행 사건으로 수사받을 위기에 처하자 목숨을 끊은 박원순 전 서울시장을 미화하는 다큐멘터리 영화가 다음달 개봉을 앞둔 가운데, 박지현 전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장이 해당 영화에 대해 "범죄 책임 회피를 담은 다큐"라며 "박 전 시장이 사망했다고 끝났다고 할 수 없다"고 정면 비판을 가했다. 박 전 위원장은 가해자에 대한 온정주의를 버리지 않는 한 정치권의 권력형 성범죄 근절, 피해자의 일상 회복은 불가능하다고 강조했다.
박 전 위원장은 5일 국회에서 민주당 이상민 의원과 민주당 청년조직 '넥스트민주당'이 공동 주최한 '권력형 성범죄 - 안전한 민주당으로 가는 길' 토론회에서 "성범죄가 발생하고 여론의 뭇매를 맞을 때면 납작 엎드려 사과했지만, 화살이 지나가면 근본적인 변화는 없다"며 "늘 그랬기 때문에 몇 번이고 성폭력은 발생할 수밖에 없었다"고 민주당의 권력형 성범죄 대응을 비판했다.
그는 "또한 권력형 성범죄 피해를 입은 피해자들은 여전히 일상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며 "박완주 의원처럼 여전히 가해자가 의원직을 유지하고 있거나, 유력 대선주자였던 안희정 전 지사의 힘이 정치권에서 여전히 유효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심지어 오는 8월에는 박원순 시장의 범죄 책임 회피를 담은 다큐를 공개하겠다는 세력도 등장했다"며 "이렇듯 가해자에 대한 온정주의를 버리지 못하고, 피해자에게 낙인을 찍는 지금의 정치는 권력형 성범죄를 해결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그는 "민주당은 피해자의 편에서 지속적인 문제해결 노력을 기울이지 않은 것에 대해 반성하고 약속한 대책들을 추진해 재발을 방지해야 한다"며 "박완주 의원을 제명했으니 모른다고 할 수 없다. 박원순 시장이 사망했다고 끝났다고 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안 전 지사 성폭력 사건 피해자인 김지은 씨와 박완주 의원 성폭력 사건 피해자 A씨도 이날 토론회에 메시지를 보냈다. 박 전 위원장이 대독한 입장문에서 김 씨는 "국회, 정치권은 권력형 성폭력에 가장 취약한 곳"이라며 "정치인의 권력은 절대적이고 고용된 직원들의 생사여탈권 또한 정치인이 갖고 있다. 지배구조의 가장 연약한 곳에서 일하고 있는 보좌진들은 쉽게 피해 사실을 말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김 씨는 안 전 지사와 충남도청, 일부 언론사를 대상으로 한 민사소송을 언급하며 "힘겹고 고통스러운 시간이지만 제가 제대로 종결지어야 제 뒤에 있을 많은 피해자분들께 작은 희망을 나눠드릴 수 있을 것 같아 싸움을 이어가고 있다"고 했다. 그는 "구호와 말뿐인 대책이 아니라 실질적이고 실효적인 대책이 논의돼 보다 나은 세상을 만드는 데 작지만 위대한 한 걸음이 내디뎌질 수 있기를 소망한다"고 당부했다.
A씨는 "오늘 토론회를 통해 민주당이 왜 성인지감수성 없는 성범죄당의 오명을 갖게 됐는지와, 사건 이후 당내 정치인의 침묵과 특정 세대 정치인들의 온정주의를 짚고 더 건강하고 안전한 정당으로 환골탈태할 수 있도록 부탁한다"며 "제가 하는 싸움이 우리가 일하는 일터에서 여성 당원과 보좌진이 안전하게 일할 수 있도록 선한 영향력을 조금이나마 미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민주당 이상민 의원은 토론회 축사에서 "민주당에 대해 심지어 '국민의힘하고 함께 없어졌으면 좋겠다'는 소리를 면전에서 듣는다"며 "권력형 성범죄와 관련된 안 전 지사, 박 전 시장뿐 아니라 이재명 대표의 사법적 의혹 수사 재판 문제, 돈봉투 사건, 코인 사건 등에 대응하는 민주당의 태도와 입장이 매우 애매모호하고 회피적이고 구차스러운 변명을 하고 또는 비호하고 그런 것들이 모여있는 것 아니겠나"라고 비판했다.
이 의원은 민주당이 권력형 성범죄, 비리 의혹 등에 대해 미온적으로 대응하는 이유에 대해 "우리 당 최고의 원리는 진영논리"라며 "같은 당에서도 이견이 있으면 박살낼 정도로 지속적인 폭력을 일삼고 있고, 상대를 무너뜨리는데 도움이 되면 선(善)이고 우리 쪽을 비판하면 악이라는 식의 상식에 반하고 정의롭지 않은 것들이 있다"고 짚었다.
이날 토론회에는 안 전 지사와 박 전 시장 사건 당시 피해자를 도왔던 당사자들이 발제자로 나와 정치권 권력형 성범죄 근절 대책을 제시했다. 김지은 씨를 도왔던 신용우 전 충남지사 수행비서는 "민주당은 가해자 주변에서 2차 가해에 동참한 이들을 모두 출당하고 공직에 나갈 수 없게 해야 한다"며 "쫓겨난 (피해자) 조력인도 모두 복귀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이 신상필벌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면 앞으로 어떤 사람도 권력에 대항해 진실을 이야기하고 약자를 도우려 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박원순 사건 피해자를 지원했던 이대호 전 서울시장 미디어비서관은 "조직의 최상급자인 지방자치단체장의 보좌진은 어디까지가 공적 업무이고 어디까지가 사적 보조인지 알기 어려운 환경에서 일하고 있다"며 △ 지자체장 비서실 업무 가이드라인 제정과 당무감사 반영 △ 단체장 대상 권력형 성범죄·직장 내 괴롭힘 예방교육 △ 당 윤리규범에 지도부 2차 피해 방지 의무 신설 △ 권력형 성범죄 보좌진 매뉴얼 제정 등을 제안했다.
토론회 뒤 참가자들은 민주당 혁신위원회에 제출할 '권력형 성폭력 예방을 위한 혁신안 제안서'를 발표했다. 내용은 △ 젠더폭력센터 기능과 위상 격상 △ 권력형 성범죄 피해자 일상회복 지원 제도 마련 △ 성폭력 관련 법률, 당규 및 윤리규범 개정 △ 사각지대 없는 성평등 교육 의무화 △ 성평등 의전 가이드라인 제정 및 보급 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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