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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봉 3억6천' 공고에도 지원하는 의사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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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봉 3억6천' 공고에도 지원하는 의사가 없다

[서리풀 연구通] "지역 의사 유출은 식민주의의 결과"

최근 경남 산청군 보건의료원의 내과 전문의 구인난이 언론의 관심을 받았다. 3억6000만 원의 연봉과 다섯 차례나 채용이 무산된 사정이 알려지면서 화제가 됐지만, 의사 인력 확보는 산청만의 고민이 아니다. 주로 광역자치단체가 운영하는 지방의료원은 대부분 도 지역에 분포하는데, 전체 35개 기관 중 정원을 충족하는 곳은 11곳뿐이다.

임금을 많이 준다고 해도 비수도권 농어촌 지역에서 일할 의사를 찾기 어려운 이유가 무엇일까? 지금까지 원인을 '개인 수준'에서 찾는 경우가 많았다. 젊은 의사들이 필수 진료과 전공을 기피해서, 의과대학생이 지역 출신이 아니라서, 자녀 교육 문제 때문에, 문화적 인프라를 포기할 수 없어서 등. 또는 지역 의료기관의 열악한 근무조건을 탓하기도 한다. 모두 일리 있는 말이다. 하지만 문제를 해결하려면 구조적 요인으로 한 걸음 더 들어가야 한다. 공통의 뿌리는 도시와 농어촌 간, 수도권과 비수도권 간 관계에 있다. 수도권에 대형병원 분원이 6000병상 넘게 증설되면 지역 인력난이 심화하리라 예측하는 일에 대단한 이론적 뒷받침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바로 가기 : <라포르시안> 2월 8일 자 '수도권 대형병원 몸집 키우기 경쟁...'지방 의료소멸' 가속화한다')

지역 간 관계라는 관점으로 생각해보기 위해 푸에르토리코의 의사 유출 문제를 지배와 종속관계, 곧 식민주의 관점에서 분석한 연구를 참고할만하다.(☞ 바로 가기 : 떠나는 의사들: 푸에르토리코의 식민성과 의사 유출) 푸에르토리코는 미국의 속령으로 400년간 스페인의 식민 지배를 받다가 1898년 미국-스페인 전쟁의 결과 미국에 양도된 인구 310만의 섬 지역이다. 20세기 초부터 푸에르토리코 주민들에게도 미국 시민권이 주어졌지만 완전한 정치적 권리가 허락되지는 않았고 문화‧경제적 식민화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보건의료 영역에서는 의사, 특히 전문의가 미국 본토로 유출되는 문제가 심각하다. 푸에르토리코에서 근무하는 의사는 2009년 1만4500명에서 2020년 9000명으로 빠르게 감소했고, 푸에르토리코 의사협회는 2022년 8월 기자회견을 열어 보건의료체계 붕괴를 경고했다. 소개한 논문의 연구진은 의사 유출의 원인을 분석하기 위해 미국으로 이주한 의사 26명과 온라인 심층면담을 진행하고 푸에르토리코 의료 현장을 관찰하는 방법으로 자료를 수집했다.

연구 결과는 세 가지 범주로 정리했다. 첫째, 이주한 의사들은 푸에르토리코가 사회 전반적인 위기 상황에 봉착한 지 오래라고 인식했다. 지역 경제는 본토 기업에 종속된 시장이 되어 막대한 대외 부채를 떠안았고, 빈곤율과 실업률이 치솟았다. 푸에르토리코의 물가는 본토보다 비쌌는데, 이는 모든 상품을 값비싼 미국 선박을 통해 수입해야 한다는 식민적 의무와 관련되어 있었다. 설상가상으로 2017년 불어닥친 허리케인이 이미 취약한 인프라를 파괴한 데다가 본토에서 오는 자원과 도움은 불충분했고 연방정부는 피해 규모를 축소했다.

둘째, 푸에르토리코의 보건의료체계가 나쁜 정치와 민간보험사에게 휘둘리고 있다는 인식이 의사들의 이주를 부추겼다. 푸에르토리코 정부는 보건의료를 책임 있게 관리하지 않았고 보건부 장관은 정치적 셈법을 따라 임명되었다. 관리의 부재 속에 본토 민간보험사의 영향력이 점차 커졌는데, 이들은 푸에르토리코에 본토보다 적은 수가를 보상했다. 지불보상액을 과소책정한 것은 민간보험사뿐 아니라 연방정부의 메디케어도 마찬가지였다. 의사들은 보상액 격차를 분명히 인식하고 있었으며, 이런 상황은 정부의 인력 정책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졌다. 푸에르토리코 정부는 의사 유치를 위해 소득세를 감면하는 정책을 펼쳤지만, 이는 연방 의회가 지명한 재정관리위원회에 의해 중단되고 말았다. 재정관리위원장은 본토 민간보험사에서 일했던 사람이었다.

셋째, 신규 의사가 지역에서 전문의 훈련을 받고 싶어도 그러기 어려웠다. 푸에르토리코의 4개 의과대학 중 3곳이 학비가 비싼 민간 대학이었고, 고액의 학자금 대출을 떠안은 졸업생들은 높은 임금을 찾아 본토로 떠나야 했다. 정부는 대학에 대한 재정 지원을 감축했고, 대학병원은 수련 프로그램을 유지하기 버거워졌다. 푸에르토리코의 의과대학 졸업생 400명 중 195명만이 지역에서 전문의 훈련을 받을 수 있었다. 수련을 위해 본토로 떠난 의사가 다시 돌아오기도 쉽지 않았다. 민간보험사는 푸에르토리코의 신규 의사 진입을 막았고, 푸에르토리코 의사는 본토보다 더 번거로운 방식으로 보험료를 청구해야 했다.

보건의료체계 붕괴를 경고한 푸에르토리코 의사협회는 몇 가지 권고를 제시했다. 레지던트 수련을 위한 자리를 더 많이 만들어야 한다. 민간보험사는 신규 의사 진입을 허용해야 한다. 세금 감면으로 의사에게 경제적 인센티브를 제공해야 한다. 권고안은 논리적이지만, 연구진은 오랜 기간 고착되어 온 구조적 문제를 풀려면 규범적인 접근을 넘어서야 한다고 보았다. 즉 미국 본토와의 식민 관계를 고려하지 않고는 의사 유출을 막을 수 없다는 뜻이다. 푸에르토리코 의사들이 본토로 이주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연방정부가 지역의 사회 인프라 재건을 외면했기 때문이고, 본토 민간 기업이 지역 경제를 포획했기 때문이며, 불공평한 무역 정책으로 지역의 상품과 서비스가 더 비싸졌기 때문이고, 신자유주의 정책이 지역 내 교육‧훈련 여건을 나빠지게 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지역 의사들뿐 아니라 환자와 주민, 정치인, 사회과학자가 함께 모여 식민 관계를 극복하기 위한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는 것이 연구진의 제언이다.

21세기 한국에 공식적인 제국이나 식민지는 없다. 하지만 주로 수도권에서 사용할 전기를 공급하기 위해 해안 지역에 발전소를 만들어야 한다면, 도시 주민에게 공급하기 위해 농산물 가격을 낮게 억제해야 한다면, 농어촌 주민의 중증‧응급의료 필요는 대도시로 나가 해결해야 한다면, 그리고 이 모든 것이 당연하다고 여겨진다면 실질적인 식민 관계는 실재한다고 보아야 한다. 그렇다면 산청군 보건의료원의 의사 인력 문제는 산청의 문제이되 '산청 문제'가 아니다.(☞ 관련 기사 : <강원일보> 3월 17일 자 ''지방대 문제'는 없다') 보건의료를 넘어 사회, 경제, 문화, 정치를 수도권 중심주의로부터 탈식민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만 구조적 해법에 다다를 수 있다. 의사 인력 문제를 두고 공공의대를 어느 지역에 유치할지 경쟁하는 일보다 중요한 것은 지역의 요구를 한 데 모아 기존 권력관계에 균열을 낼 방법을 모색하는 일이 아닐까?

*서지 정보

- Varas-Díaz, N., Rodríguez-Mader, S., Padilla, M., Rivera-Bustelo, K., Mercado-Ríos, C., Rivera-Custodio, J., Matiz-Reyes, A., Santiago-Santiago, A., González-Font, Y., Vertovec, J., Ramos-Pibernus, A., & Grove, K. (2023). On leaving: Coloniality and physician migration in Puerto Rico. Social Science & Medicine, 1158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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