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녀는 희생자이기만 한 것은 아니었으며 빈곤과 사회적 배제에 저항한 사람이었다."
실비아 페데리치의 <우리는 당신들이 불태우지 못한 마녀들의 후손들이다>(갈무리, 2023)에 나온 문장이다. 책은 16, 17세기 유럽과 아프리카 등지에서 벌어진 마녀사냥을 분석했다. 당시 지배 권력은 인클로저 운동 과정에서 토지를 빼앗기 위한 목적과 여성들을 새로운 자본주의 체제에 순응시키려는 목적으로 마녀사냥으로 상징되는 여성혐오를 이용했다고 책은 말한다. 마녀는 그저 피해자이기만 한 사람들이 아니라 체제에 저항한 사람들이었다. 그래서 권력이 그들을 제거하려고 마녀사냥을 사용했다.
건설노조 공격을 비롯해 최근 정부 주도하에 벌어지는 노조 탄압은 마녀사냥과 흡사하다. 여성혐오를 기반으로 마녀사냥을 부추기는 세력이 자본과 국가권력이었듯이, 노조혐오를 이용해 노조를 탄압하는 것은 자본과 국가권력이라는 점에서 동일하다. 민주노총 등 노조에 힘이 있기에 정부는 이를 꺾으려 한다. 현 정부 잘못된 정책의 비판 세력의 힘을 약화시키는 것이다. 윤석열 정부가 의도하는 더 많은 노동을 착취하는 한국 자본주의 체제를 만드는 데 가장 큰 걸림돌은 노조이므로!
마녀사냥이 그랬듯이 노조혐오와 노조탄압의 영향력은 단지 노조에 속한 사람들에게만 국한되지 않는다. 노조에 가입되지 않은 사람에게도 공포와 위축감을 준다. 사람들이 노동자의 권리, 결사의 권리를 부정적인 것으로 바라보게 만든다. 그렇게 되면 노동자의 집단적 힘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인권의 역사에서 노동조합의 의의는 권력이 노동자의 권리를 인정함으로써 시민의 집단적 권리를 전면화했다는 데 있다. 인권이 개별 인간의 고유한 권리라는 인식에서 집단적 권리까지 인정하는 데 한발 나아간 것이다. 즉 인권은 개인적 권리인 동시에 집단적 권리이기도 하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고용과 노동조건의 결정권을 행사하는 자본가에 맞서기 위해서는 최소한 노조의 집단적 권리가 필요하다. 최소한의 균형점이 노조의 인정이다.
건설산업의 비리와 건설노조 탄압을 혼동시키는 방식
건설노조를 탄압하면서 정부는 노조 탄압이라는 비난을 피하고자 노조 혐오 정서를 이용한다. 노조를 이익집단, 또는 이기적 집단으로 몰기 위해 '불법'이니 '폭력'이니 하는 말을 애써 사용한다. 경찰과 검찰은 건설노조를 상대로 수차례의 압수수색 등을 벌였지만 특별한 혐의를 발견하지 못했다. 경찰이 발표한 '건설현장 폭력행위 단속 중간성과'에는 건설노조가 저지른 부패라고 할 만한 게 없다.
건설노조는 건설노동자들의 고용 형태 상, 초기업노조일 수밖에 없다. 특수고용노동자의 노동권을 보장하라는 것이 국내외 인권 기준이며, 한국은 이미 국제노동기구(ILO)의 핵심협약을 비준했다. 특고노동자의 노조인 건설노조를 불법화해서는 안 된다. 건설노조가 만들어지고 나서 건설산업의 비리가 조금이나마 개선됐고 노동 현장의 안전 관련 제도가 생겼다. 화장실도 없고 휴게시설도 없는 비인간적 노동현장을 바꿔온 것도 건설노조다. 건설노조 탄압으로 조금이나마 개선된 노동현장마저 과거로 퇴보할까 우려스럽다.
정부가 말하는 건설산업의 비리 척결은 노조도 바라는 바이다. 그런데 정부는 마치 건설산업 비리 주체가 건설노조인 듯 교묘하게 둘을 연동하는 꼼수를 사용하고 있다. 정말로 정부가 건설산업의 비리 척결 의지가 있다면 다단계하도급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계획을 세워야 마땅하다. 오히려 전문건설업체와 명확한 근로계약 체결이 자리 잡도록 하고 단체협약 준수를 요구하며 중간착취와 임금체불을 막아왔던 것이 건설노조의 역할이었다.
정부가 기껏 말하는 건설노조의 불법행위는 건설노조 조합원 고용 요구와 노조 전임비 수령 사례다. 건설노조가 회사와 맺은 조합원 우선고용 관련 협약을 채용비리로 모는 것은 심각한 왜곡이다. 건설산업은 다단계 하도급구조여서 단기간의 취업을 반복하는 건설노동자들이 많다. 그들은 상시적인 고용불안에 시달리기에 조합원의 고용안정을 위한 단체교섭을 필요로 한다. 현장에서 노사가 합의 하에 만든 단체교섭안을 불법행위로 몰아서는 안 된다.
정부가 건설노조의 조합원 채용 요구를 비리인 양 접근해 이를 막는다면 건설사가 이득을 본다. 다시 비리가 판치고 현장의 안전은 뒤로 밀려날 것이다. 건설사가 비용을 줄이겠다고 안전장치나 안전 인력을 감축해도 조합원이 적고 노조가 힘이 없으면 이를 막을 수 없다. 부실 공사가 되면 그 위험은 건설노동자만이 아니라 해당 건물을 이용하는 시민들까지 위험해진다.
정부가 불법인 양 말하는 건설노조 전임자 임금 지급도 협약에 의한 것이다. 단체협약에 따라 사용자가 근로시간면제자(타임오프)에게 급여(전임비)를 지급한다. 전문건설업체와 근로계약 체결 후 전임자로 활동하고 있어 불법의 여지도 없다. 노사 합의에 따라 지급되는 운영비(복지비 또는 발전기금) 원조를 금품 강요인 양 몰아가는 것도 억지다.
노조 회계는 이미 투명하다
윤석열 정부가 노조에 오명을 뒤집어씌우기 위해 사용하는 전략 중 하나가 노조 회계 투명성 논란이다. 명칭부터 마치 노조가 회계 장부를 불투명하게 기재한다는 뉘앙스를 준다. 그러나 노조는 대중조직으로 조합원이 조합비를 내서 운영되기에 때마다 회계 장부를 조합원들에게 공개한다. 단돈 100원이라도 영수증이 없다면 사용한 사람이 토해내야 하는 구조다.
정부의 노조 회계 장부 공개 요구는 결사의 권리 침해이기에 심각한 문제다. 자발적인 결사체가 자신의 재정을 어떻게 사용하느냐는 그 조합원이 판단할 일이다. 그에 대한 감사와 의견도 조합 자체가 필요로 해 실시된다. 그런데 이것을 정부가 감시하겠다고 하는 것은 노조가 어떤 사업을 하고 어떤 사업에 재정을 얼마나 쓰는지를 일일이 보겠다는 것으로 사실상 노조 활동 감시다. 국가가 노조의 자주성, 자율성을 침해하는 것이다. 만약 정부에서 지원받은 돈이 있다면 해당 부분만 공개하면 된다. 그리고 이미 대형 노조는 정부 지원 내역을 공개하고 있다.
정작 국가가 챙겨야 할 노동자 권리 보호는 나 몰라라 하고, 개입해서는 안 되는 부분에 개입하려 하니 정부는 헌법적 가치에도 반하려 하는 셈이다. 자칭 헌법주의자라는 윤석열 대통령은 노동3권을 명시한 헌법 33조를 다시 보기를 바란다.
현 정부의 이 같은 전략이 궁극적으로는 노조에 가입된 사람과 가입되지 않은 사람을 갈라 현재의 경기불황 어려움을 노조에 전가하려는 전략임을 안다. 우리 내부를 가르려는 날조 전략이다. 우리가 그 시도에 넘어가서는 안 된다. 이럴 때일수록 우리는 더 많이 노조에 가입하고 더 크게 노조를 응원해야 한다. 우리는 과거처럼 마녀사냥에 놀아나지 않음을 보여줘야 한다. 그것이 자본의 탐욕을 막고 인간적인 노동을 할 수 있는 우리의 힘을 기르는 기반이 될 것이다. 끝으로 실비아 페데리치의 책 제목을 패러디해서 한마디 하고자 한다.
"우리는 당신들이 불태울 수 없는 존엄한 인간이고, 체제에 순응하지 않는 노동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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