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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원 내던지고 불길 뛰어드는 '소방 오타쿠' 오영환, 그가 남긴 질문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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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의원 내던지고 불길 뛰어드는 '소방 오타쿠' 오영환, 그가 남긴 질문은?

[기자의 눈] 본질은 '불출마'가 아닌 '사명'이다

"빨간색 목장갑을 받고 불 끄러 가기도 했어요. 저희가 많이 버는 걸 바라고 이 일 하는 거 아니잖아요. 현장에서 사명감 가지고 일할 수만 있으면 되는데…."

지난 2014년, 인력과 장비 부족을 호소하는 소방 공무원들을 인터뷰한 적이 있다. 지자체마다 관련 예산이 들쭉날쭉한 탓에 지역 소방 공무원들은 아주 열악한 환경에 처해있는 경우가 많다며, 이를 해결하기 위해선 소방 공무원의 국가직 전환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소방대원들은 최소한의 안전장비만이라도 갖추고 일하고 싶다며 하나둘 눈물을 떨궜다. (☞관련기사 : "우린 '불나방', 만만하니 흔드나")

세상 듬직해 보이던 모습은 어디 가고 그들은 부모 잃은 아이마냥 엉엉 울었다. "사명감 가지고 일할 수만 있으면 된다"며 순수한 열정을 내뿜는 이들을 지켜주고 싶었다. '소방 출신 국회의원이 있다면 지켜줄 수 있지 않을까.' 다 헤져가는 방수 장갑과 시뻘게진 그들의 눈을 보며 남몰래 그런 생각을 했다.

그로부터 6년 후인 2020년, 실제 소방 공무원 출신 국회의원이 탄생했다. 32세의 청년 오영환이었다. 구조대원과 구급대원, 산악구조대원, 항공대원을 두루 거친 10년차 현장 소방 공무원으로, 내가 취재했던 소방 공무원 국가직 전환 시위에 참여한 이들 중 한 명이기도 했다.

더불어민주당에서 영입 제의를 받은 그는 홍보 영상을 통해 "현장에서도 느낀 것은 법과 제도가 갖춰지면 국민이 더 안전할 수 있겠구나(하는 것)"이라며 "미리 예측하고 법과 제도에 반영하는 흐름이 반드시 생겨나야 한다"며 정치 입문 포부를 밝혔다.

소방 현장의 어려움을 개선하겠다는 각오대로 오 의원은 지난 3년간 소방 안전 관련 법안을 다수 입안했다. 1호 법안이었던 '생명존중 안전한 일터 3법' 입안을 시작으로, 대형 화재 사건 예방을 위한 '건축법', '소방시설법', '산업안전법' 등을 개정하고, 소방 공무원들의 숙원사업인 '화재예방3법'도 국회에서 통과시켰다. 지난해 이태원 참사 국정조사에서는 참사 당일 현장에 급파된 소방관을 증인으로 불러 "타 기관의 지원이 없었다"는 답변을 끌어내기도 했다. 모두 현장의 경험을 살린 의정 활동이었다.

▲더불어민주당 오영환 의원이 10일 오전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22대 총선 불출마 선언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초선으로 이 정도면 그럭저럭 괜찮은 성과인 데다 원내대변인직까지 맡아 인지도도 쌓았으니 재선 전망은 나쁘지 않은 상황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런 그가 총선을 딱 1년 앞둔 지난 10일 돌연 22대 총선 불출마 선언을 했다.

"당선된 직후 제가 처음 찾았던 곳은 저의 동료들과 수많은 순직 소방관들이 묻힌 국립현충원이었습니다. 그 묘역 앞에서 저는 함께 하던 사명을 이어가지 못해 죄송하다고, 그러나 여러분과 함께 꿈꾸던 더 많은 사람을 구할 수 있는 세상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약속드렸습니다.

사회와 역사를 바꾸어 가는 시간, 많은 비극과 절망도 뒤따랐습니다. 영결식이 끝난 뒤, 많은 노력과 변화에도 불구하고 한발 늦어버린 현실의 한계 앞에 절망했습니다. 하지만 한 달 전 3월 9일. 주택화재 현장에서 '사람이 있다'는 말에 뛰어들어 순직한 만 29세, 또 한 명의 젊은 소방관의 유골을 현충원에 묻어야 했습니다. 그 자리에서 저는 더 이상 버텨낼 여력이 없는 저의 한계를 받아들였습니다.

저는 이제 저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내려놓을 용기를 냅니다. 재난으로 인한 비극을 더욱 줄이기 위해서라도 정치에서 제가 계속 역할을 해야 한다는 오만함도 함께 내려놓습니다. 이제 저는 국민을 위해 헌신하던 저의 사명, 제가 있던 곳이자 있어야 할 곳, 국민의 곁을 지키는 소방관으로 저는 돌아가고자 합니다."

의원 특권 내던지고 불길 뛰어드는 '소방 오타쿠'

총선 D-365. 공천권 사수를 위해 바삐 움직이는 이들 사이에서 그는 유유히 "소방 현장으로 돌아가겠다"고 했다. 총선 불출마 선언은 국회의원으로서 누리던 특혜들을 모두 내던지겠다는 이야기나 다름없다. 3, 4선 중진이 불출마 선언을 해도 '용기 있는 선택'이라며 박수를 받는 게 여의도의 분위기다. 그만큼 국회의원이라는 신분은 버릴 수 없는 황금 갑옷과 같은 것이다. 그런데 중진도 아닌 초선이 의원직을 마다하겠다 하니 충격파가 클 수밖에 없다.

그래서인지 그의 불출마 선언을 두고 여러 말이 나오는 모양이다. 지역구 경쟁자에 밀린 것 아니냐, 때마침 귀국한 이낙연 전 대표와 모종의 공감대가 있던 것 아니냐 등 여러 정치적 해석이 들린다. 그런 깊숙한 사정까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 다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그의 불출마 결정은 꽤 오래 숙성된 고민의 결과라는 것이다.

올해 초 사석에서 만난 그는 "요즘 고민이 있다"고 했다. 지역구 관리가 어렵나 싶었는데 그가 풀어놓은 고민의 정체는 다름 아닌 '진로 고민'이었다. 대학 졸업 앞둔 취업 준비생도 아니고 여의도에서 진로 고민이라니. "소방직으로 복귀할 생각이냐"고 물었다. 그는 "일단 수험생으로 돌아가야겠죠"라고 했다.

그러면서 대뜸 자신의 휴대전화를 내밀었다. 아이나 반려동물 사진이겠거니 했는데 이번 정답도 예상을 빗나가는 것이었다. 잠금 화면에 띄워진 사진은 파란 하늘 위로 소방 헬기가 물을 뿌리는 장면이었다. 배경 화면 사진은 검게 그을린 소방관들의 모습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는 "멋있지 않냐"면서 "제가 좀 소방 오타쿠예요" 하고 웃었다.

그때 파악했다. 오영환이라는 사람은 소방에 대한 소명의식, 사명감이 매우 투철한 사람이라는 것을. 의원직 유지를 위해 소방 경력을 활용하는 게 아니라, 소방을 위해 의원 신분을 활용하고 있을 뿐이라는 것을. 9년 전 사명감이 무엇인지를 보여준 소방 공무원들처럼, 활동 장소만 바뀌었을 뿐 여전히 소방 일에 대한 자기 확신이 분명하다는 것을 말이다.

소명의식의 발로가 아니라면, 불출마 선언의 이유를 설명하기 매우 어렵다. 단순히 하루 이벤트만을 영광으로 알고 살아가기에는 국회의원 임기 만료 후 그에게 펼쳐질 날들은 꽤 고될 예정이다. 국회의원 출마를 위해 의원면직 처리됐기 때문에 다시 소방공무원이 되려면 새로 시험을 치러야 한다. 시험에 합격하더라도 생과 사를 가로지르는 사고 현장에서 고군분투해야 한다. 그런데도 국회의원의 특권을 버리고 다시 소방 현장에 가겠다면, 그 이유는 딱 하나. '사명'이란 말 외에는 설명이 안 될 것이다.

미리 힌트를 알아서일까. 재선 도전을 포기하겠다는 그의 결정은 그래서 순순히 납득됐다. 굳이 다른 정치적 해석을 곁들이지 않고도 그의 선택은 충분히 명분이 있다고 판단했다. 분명 쉬운 결정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의원직은 목표가 아닌 수단이었기에 가능한 시나리오이기도 했을 것이다.

그렇다고 무조건 '의원직 내려놓기'가 정답이라고 할 순 없다. 이날 오 의원이 전한 감동은 내려놓음 그 자체에서 기인한 것도 크지만, 또 다른 이유가 있다. 오 의원은 자신이 누구를 대리하고 있는지를 명확하게 알고, 자신이 대리하는 이들로부터 부여받은 사명을 끈질기게 잡고 있었다. 그는 회견문에서도 '사명'이라는 단어를 여러 차례 언급하기도 했다. 그리고 자신에게 엄격한 잣대를 들이밀어 자신이 직분을 다하고 있는지 끊임없이 물었다.

그러니까 우리가 오영환의 불출마 선언에서 얻어야 할 교훈은 '불출마'가 아닌 사명과 소명의식이다. 지금 의원직을 수행하고 있는 이들, 의원직에 도전하려는 이들 모두에게 필요한 질문이다. 왜 국회의원이 되고자 했느냐(또는 하느냐)는 것.

기자회견이 진행된 국회 소통관 곳곳에선 기자들의 훌쩍이는 소리가 들렸다. 삭막한 국회라는 공간에서 좀처럼 보기 힘든 광경이었다. 정치부 기자는 국회의원이 만나는 거의 최초의 유권자이자 꽤 깐깐한 유권자다. 그런 기자들에게서 오 의원이 공감을 이끌어낸 것은 정치 싸움에 치여 그간 잊고 있던 정치의 본령을 새삼 일깨워줬기 때문이 아닐까. 그리고 나아가 기자로서의 '사명'은 무엇인지 아프게 자문할 계기를 주었기 때문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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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어리

매일 어리버리, 좌충우돌 성장기를 쓰는 씩씩한 기자입니다. 간첩 조작 사건의 유우성, 일본군 ‘위안부’ 여성, 외주 업체 PD, 소방 공무원, 세월호 유가족 등 다양한 취재원들과의 만남 속에서 저는 오늘도 좋은 기자, 좋은 어른이 되는 법을 배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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