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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전히 개인에 맡겨진 송혜교의 복수는 통쾌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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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전히 개인에 맡겨진 송혜교의 복수는 통쾌하지 않다

[인권학의 프런티어] 폭력의 근본적 해결 방법은? <더 글로리>와 학생인권조례

인권에 대한 물음이 쏟아지는 나날이다. 인권보장을 외치는 사회적 약자들의 목소리가 커져가는 사이, 한편에선 그 목소리의 정당성을 두고 격론이 펼쳐진다. 갖은 물음에 답하기 위해 <프레시안>과 한국인권학회가 만났다. 인권은 사회적 화두인 동시에 연구와 학문의 대상이다. 학계가 쌓아온 '인권학' 연구를 사회적 화두로 다시 던진다. 사회학계 신진 김민성 박사가 글을 쓴다. 편집자주.

심각한 학교폭력에 노출되었던 고등학생 동은. 가정, 학교 어느 곳에서도 안전함을 찾을 수 없었던 그녀는 결국 자퇴를 한다. 그리고 자신의 모든 것을 망가뜨린 이들에게 복수하겠다는 일념으로 초등교사가 된다. 계획대로 가해자 딸의 담임선생이 된 그녀. 교실로 찾아온 가해자에게 말한다. "넌 지금부터 그냥 당하는 거야. 내가 그랬던 것처럼."

최근 OTT에서 방영되고 있는 인기드라마 <더 글로리>의 줄거리다. 세상에는 많은 스릴러 소재가 있다. 하지만 원수를 갚기 위해 열심히 공부하여 교사가 된다는 이야기는 다소 당황스럽게 느껴진다. 사회가 원하는 바람직한 교육자상에서 다소 벗어난 설정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 복수극이 인기를 얻은 이유는 무엇일까? 짜임새 있는 각본, 시선을 사로잡는 연기력 등도 답이 될 수 있겠지만, 무엇보다 복수의 계기가 지극히 현실적이기 때문이 아닐까.

학교폭력 피해자들의 폭로가 잇따르는 요즘이다. 가해자가 유명할수록 사회적 파장은 크다. 그러나 학폭사건 전체를 두고 볼 때 가해자가 유명한 경우는 적다. 학교라는 일상적 공간에서 발생하는 폭력인 만큼, 가해자는 우리 주변의 누군가로 살고 있을 것이다.

▲드라마 <더 글로리>. ⓒ넷플릭스

학폭 폭로는 성폭력 피해자들이 용기를 내어 자신을 드러내기 시작한 미투(#MeToo) 운동과도 연관성이 있다. 미투 운동의 본질이 폭력에 대한 저항, 사회 부조리에 대한 고발에 있기 때문이다.

제도 밖에서 개인의 용기에 기대어 시작된 이 운동이 본격적으로 제도화된 시점은 2018년 '여성폭력방지 기본법안' 발의를 통해서였다. 하지만 아직도 미투 운동의 핵심이 담긴 비동의강간죄 도입은 답보 상황에 놓여있다.

우리는 피해자 인권을 훼손한 사건들이 국회로까지 가는 모습을 여러 차례 목격해왔다. 법안은 국회의원 및 관련 전문가의 검토를 거쳐 마련되기도 하지만, 끔찍한 사건이 SNS나 언론을 통해 알려지면서 관련 법안이 신속하게 논의되는 경우도 많다.

이 경우, 대중적 관심이 줄면 법안이 묻히고, 동시에 피해자의 권리 회복도 묘연해진다. 인권문제가 발생할 때마다 입법 절차를 밟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렇다면 폭력 피해를 해결할 보다 근본적인 방법은 없는 것일까?

성폭력 해결에 대한 최근의 담론을 살펴보자. 형법에서 성폭력은 여전히 성기 삽입을 중심으로 다뤄지지만, 사회적으로는 강간뿐만 아니라 성적 자기결정권의 침해도 성폭력으로 여겨진다. 성폭력 피해자들도 사건 진술에 그치지 않고 자신이 경험하는 부당함과 차별적인 상황들에 대해 적극 논의한다. 미투 운동의 확산이 이러한 변화를 증명한다.

이제 성폭력은 개인 간 문제가 아닌 집단의 문제, 또는 사회적 위계와 같은 구조적 문제로 다뤄진다. 바로 이 지점에서 폭력 피해의 근본적 해결 방법에 대한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다.

▲'학폭' 이슈는 국가수사본부장에 임명됐다가 낙마한 정순신 변호사의 아들이 고등학생 시절 학폭 가해자였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최근 정치적 화두가 되기도 했다. 지난달 31일 국회 교육위원회에서 정순신 자녀 학교폭력 진상조사 및 학교폭력 대책 수립을 위한 청문회가 열리고 있다. ⓒ연합뉴스

'학교공동체' 없는 복수가 주는 찜찜함

<더 글로리>의 복수가 통쾌하지 않은 이유는 폭력 이후의 조치가 온전히 개인에게 맡겨진다는 데 있다. 학교폭력의 해결은 사건 대처와 예방에 공동체 구성원들의 참여가 보장될 때 가능하다. 그런데 실제 학생, 선생님, 교육감, 교육청이 함께 학교폭력에 대응하는 것이 가능할까? 이미 일부 지자체가 시행하고 있는 제도, 학생인권조례가 그 가능성을 보여준다.

학생인권조례는 '학생 인권과 관련된 모든 사람이 교내 인권 보장에 대한 책임과 의무가 있다'고 규정한다. 조례에 따라 학교는 학생이 스스로 인권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관련 제도를 운영해야 한다. 그런데 정말 학생인권조례 시행이 인권 증진 효과를 불러올까?

관련 연구에 따르면, 실제 학생인권조례 제정으로 학교의 인권침해 요소가 유의미하게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박환보, 2021) 학생인권조례와 학교폭력과의 관계는 어떨까? 연구 결과, 학교인권조례 시행 전후 연구 지역 내 중학교의 학교폭력 심의 건수에 유의미한 변화가 있었다는 결과가 나왔다.(정설미·정동욱, 2020) 그런데 일각에는 학생인권조례가 학생들의 전반적인 학교생활에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는 연구도 존재한다.(정희진 강창희, 2015)

공통된 주제에 대한 각기 다른 연구 결과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먼저 인권 변화를 양적으로 표현하는 게 매우 어려운 작업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위 연구들의 연구방법이다. 연구자들은 학생인권조례를 학생 인권 상황을 살펴보는 척도로 삼았다.

따라서 이렇게 이해할 수 있다. 만일 학생인권조례가 제정되었는데도 학생들의 인권이나 삶의 질이 나아지지 않았다면, 학생 인권 관련 제도의 점검 경고등이 켜진 것이다.

학폭 예방, 학생인권조례를 통해 가능하다

학생인권조례는 학생인권 정책을 수립하고 집행하는 확실한 체계를 정립했다. 이슈별로 학생 인권 관련 사안에 접근했던 기존 방침에서 벗어나, 조례 제정 지자체들은 좀 더 체계적인 계획에 따라 지속성 있는 인권 업무를 시행하고 있다. 장기적 관점에서 학생 인권 영향평가, 학교문화와 교육환경 개선을 위한 연도별 시행계획, 실태조사를 실시하여 학생 인권의 실질적 증진 방안을 모색한다.

학생인권조례 제정 전에는 국내 어떤 교육청에도 학생 인권 사무 전담 부서가 존재하지 않았다. 하지만 조례를 시행하는 지자체는 교육청 내에 반드시 학생 인권을 위한 기구를 설치해 두고 있다.

서울시는 학생인권정책을 자문하거나 사안에 대해 심의하는 학생인권위원회, 학생이 직접 참여해 의견을 내는 학생참여단, 학생인권 진정을 접수하고 구제하는 학생인권옹호관 등을 운영한다. 충남도는 학교학생인권위원회를 설치하여 인권침해 예방을 위한 활동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 법적 근거를 둔 학생 인권 사무 기구가 교육행정에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것이다.

교육청이나 학교 재량에 맡겨졌던 학생인권교육도 이제 조례에 따라 학생, 교직원, 보호자에게 의무적으로 실시된다. 학생인권조례를 통해 학교 구성원들이 참여하는 인권의 장이 마련된 것이다.

특히 우리가 주목하는 학생의 '폭력 및 위험으로부터의 자유'는 학생인권조례에서 보장하는 핵심 권리다. 학교폭력의 본질은 교내 구성원들의 평화적인 소통 여부이기에, 민주시민 양성을 뒷받침하는 학생인권조례는 학교 구성원 모두의 권리를 논의할 바탕이 된다.

실제 충남도는 학교장이 교내인권위원회를 조직해 구성원 스스로 학교 내 인권침해 문제를 발견해 시정할 수 있도록 정해두고 있다. 교육청에서도 학생인권 침해사안을 확인하고 권리구제를 할 때 조례에서 언급된 권리를 중요한 판단 기준으로 삼는다.

▲지난해 11월 청소년인권운동연대체 '2022 학생저항의 날 공동행동'이 경기도교육청 앞에서 진행한 '경기도교육청 및 학생인권 반대세력 규탄 집회' ⓒ정치하는엄마들 제공

2023년 2월, 서울시의회가 학생인권조례 폐지 주민 조례 청구를 수리했다. 3월에는 충남도 주민들이 조례 폐지를 위한 서명부를 의회에 전달했다.

"누가 됐든 뭐가 됐든 날 좀 도와줬다면 어땠을까" 외치는 또 다른 <더 글로리>의 주인공이 나오지 않도록 우리가 지켜야 하는 것은 무엇일까. 학생인권조례는 위기에 처한 학생의 인권을 보호할 수 있는 최소한의 원칙이자 기준이다. 성적지향 등 학생인권조례의 특정 조항에 대한 부분적 논란을 넘어 학생인권조례의 역할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다.

※ 본 연재에서는 한국인권학회·인권법학회에서 공동 발간하는 학술지 『인권연구』에 실린 시의성 높은 논문을 선정하여 소개합니다. 본문에 언급된 논문은 아래 링크에서 무료로 다운로드 받으실 수 있습니다.

<소개 논문> 

박종훈. 2021. “학생인권조례 10년, 그 성과와 한계: 소위 ‘학생인권법’ 제정 논의에 부쳐.” 『인권연구』 4(2): 125-175.

<다운로드 방법>

링크 클릭→(오른쪽) 'PDF 다운로드' 클릭

http://journal.kci.go.kr/jhrs/archive/articleView?artiId=ART002793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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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성

한국인권학회 이사. (현)환경사회학회 연구이사. (현)한국인권학회 편집간사. 사회학 박사로 유튜브 '눈맑은기린' 채널을 운영하고 있다. 2022년 성공회대에서 「환경문제의 인권적 전환: 충남 서북부 환경취약지역 주민을 중심으로」라는 연구로 사회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관심 연구분야는 인권사회학, 인권 및 환경문제의 해결방안, 시민운동과 민주주의 등이다. 주요 연구성과로는 '시민단체 활동가의 활동경험에 대한 연구: 대전지역 시민단체 사례를 중심으로(2018)', '은평구 노인인권실태조사 및 중점과제연구: 재가노인을 중심으로(2020)'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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