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에 대한 물음이 쏟아지는 나날이다. 인권보장을 외치는 사회적 약자들의 목소리가 커져가는 사이, 한편에선 그 목소리의 정당성을 두고 격론이 펼쳐진다. 갖은 물음에 답하기 위해 <프레시안>과 한국인권학회가 만났다. 인권은 사회적 화두인 동시에 연구와 학문의 대상이다. 학계가 쌓아온 '인권학' 연구를 사회적 화두로 다시 던진다. 사회학계 신진 김민성 박사가 글을 쓴다. 편집자 주.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의 "출근길 지하철 탑니다" 투쟁은 지난해 12월 3일로 1년을 맞이했다. 지난 4일까지 총 49번의 집회가 개최됐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이들의 주된 요구는 장애인 이동권 보장을 위한 교통약자이동편의증진법 개정, 장애인평생교육법, 장애인탈시설지원법, 장애인권리보장법의 재개정과 관련되어 있다.
장애인들의 지하철 투쟁을 향한 시선들
전장연의 투쟁 방식을 두고 다양한 의견이 존재한다. 적극 응원하는 사람, 왜 그러는지 이해는 한다는 사람, 하지만 타인을 불편하게 만들면 안 된다는 사람, 아예 용납하지 못하고 욕설을 내뱉는 사람.
인권에 대한 인식이 확대되면서 '모두가 인권의 주체'라는 인식도 확대됐지만, '나도 권리가 있기 때문에 침해받을 수 없다'는 생각은 사회적 약자의 투쟁에 대한 냉소적 태도의 근거가 되기도 한다. 정치권이나 언론에서도 '다수의 불편'이란 말이 언급되는 것을 종종 목격할 수 있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전장연의 투쟁이 권리를 중심으로 한 첨예한 이해관계, 특히 개인의 일상 속에 존재하는 '인권'을 눈으로 확인시켜준다는 점이다.
수도권 시민들의 발이 되어주는 지하철, 전장연이 이 장소에 등장해 자신들의 목소리를 낸다는 것은 특히 '이동권'과 관련된 상징적인 행위다. 국내에서 장애인들의 이동권 투쟁은 2001년 이른바 '오이도역 장애인 노부부 리프트 추락 참사'를 계기로 촉발됐다. 당시 전장연은 저상버스, 장애인콜택시 도입, 지하철 엘리베이터 설치를 위해 버스와 지하철 선로를 점거하며 싸웠다. 그 결과 2005년 '교통약자이동편의증진법(교통약자법)' 제정이라는 성과를 이뤄냈다.
비장애인이라면 다음과 같은 의문이 들 수 있다. '불편한 몸을 이끌고 이들이 이동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우리는 지하철 노인 전면 무임승차 정책을 놓고도 이런 생각을 한다)
장애인에게도 일상은 있다
비장애인과 장애인들의 일상은 사실 크게 다를 것이 없다. 장애인이 이동한다는 것도 그저 일상을 살아간다는 것을 의미한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일상을 영위하기 위해 필요한 시간과 노력이 다르다는 것이다.
생각해보면 일상 속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이 이동이다. 회사에 갈 땐 대중교통이나 차량을 통해 이동하고, 처음 가보는 곳이라면 스마트폰 지도를 보며 이동한다. 외부 일정이 아니더라도 눈을 뜨고 일어나서 씻을 때, 밥을 먹을 때도 모두 실내에서 '이동'한다. 자, 이제 처음 가보는 장소로 약속이 잡힌 척수장애인의 사례를 통해 장애인의 일상을 상상해보자.
장애인이 교육에 참여하고 노동과 사회활동을 하기 위해, 즉 일상을 살아가기 위해 가장 먼저 보장되어야 할 권리가 바로 접근권(Right to access)이다. 도시에서 살아가는 비장애인들에게 접근권은 너무나 기초적이고 당연한 것이어서 비교적 중대한 문제로 여겨지지 않는다.
일상 속 이동의 목적은 시설을 '이용'하기 위한 것
이제 두 번째 물음에 답할 차례다. 장애인이 이동한다는 것에는 어떤 의미가 있는가? 이는 장애인 접근권을 통해 보다 잘 알 수 있다. 장애인 접근권은 크게 세 가지 권리를 포함하고 있다. △건축물의 이용과 접근에 대한 권리 △이동 및 교통수단의 이용에 대한 권리 △전자 및 비전자 정보의 접근과 이용에 대한 권리가 그것이다. 이 중 두 가지를 살펴보자.
건축물의 이용과 접근에 대한 권리에서 '건축물 접근'이란, 장애인이 지하철역 같은 주요 교통시설에서 '가고자 하는 건축물의 주출입구로 이어진 접근로를 이용할 수 있는지'를 말한다. 이동 및 교통수단의 이용에 대한 권리에서 '이동'은 '주 출입구로 들어가서 건축물의 원하는 장소까지 가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건축물에 들어가기만 한다고 이동의 목적이 완수되는 것은 아니다. 건물에 들어가는 목적에 맞게 시설을 사용해야 비로소 '건축물을 이용했다'고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은행에 들어갈 수는 있지만, 은행에서 금융거래를 할 수 없다면 은행이라는 건축물에 대한 접근성은 낮다고 해야 한다.
따라서 건축물의 접근성(accessibility)에 대한 권리는 건축물로 이동하고 접근하는 것, 건축물의 기능을 이용하는 것을 포괄한다. 즉 은행에서 장애인 건축물 접근성이 보장된다는 것은, 은행에 '장애인이 비장애인과 동등하게 금융거래를 할 수 있게 하는' 기능이 갖추어져 있는가 여부에 달렸다.
현재 한국에서 장애인 건축물 접근권은 얼마나 보장되고 있을까? 이 질문에 중요한 시사를 주는 배융호(2018)의 연구를 살펴보자. 그는 한국사회의 법과 제도가 장애인 건축물 접근권 보장을 장애인이 아닌 '시설물의 관점'으로 다뤄왔다고 분석한다.
1981년 '심신장애자복지법'을 제정하면서, 한국은 장애인의 건물 이용과 이동을 시설이나 설비의 설치를 통해 해결하려 했다. 장애인 편의시설이라는 용어도 이때 처음으로 사용했다. 이러한 정의는 편의시설을 장애인에게만 필요한 것이라는 인식으로 자리 잡게 만들었다. 그리고 장애인 접근성 보장을 시설 구축 정책에 매몰시켰다.
이후 1997년 제정된 장애인등편의법에 따라 장애인 시설이 대폭 늘어났는데, 엘리베이터보다도 휠체어리프트 등 실제 장애인이 이용하기에는 어려운 편의시설이 우후죽순 늘어나는 기현상이 발생했다. (휠체어리프트는 이동하는 장애인들의 안전을 위협하는 핵심요소로 꼽힌다. 2001년 오이도역 추락 참사부터 2017년 신길역 추락 참사까지 지하철 리프트를 이용하던 장애인의 추락사 사건은 5건에 이른다.편집자.)
동법에 따라 정부는 5년마다 장애인 편의시설 실태 전수조사를 실시한다. 2018년 조사에 따르면, 국내 조사 대상 건물 18만 5947개 중 장애인 편의시설 적정설치율은 93.3%다. 적정설치율이란 법의 기준에 맞게 설치된 편의시설 설치율을 말한다. 경사로가 설치되어 있다면 편의시설 설치율에는 포함되지만 기울기가 가파르다면 장애인이 이용할 수 없으므로 적정설치율에 포함되지 않는다.
주목하여 살펴볼 부분은 매개시설의 적정설치율이다. 매개시설은 도로에서 건축물까지 이르는 접근로, 주출입구 등 외부와 건축물을 연계하는 시설을 말한다. 2018년 자료에 의하면 매개시설의 적정 설치율은 74.8%에 불과하다. 이마저 2013년에 비해 6.2% 오른 수치다. 매개 시설의 적정설치율이 낮다는 것은 외부에서 건축물로 접근하는 과정 자체가 매우 어렵다는 것을 의미한다.
'장애물 없는 사회'를 통해 보장되는 장애인 접근권
편의시설의 이용자가 사회적 약자로까지 확대된 지금, 복지와 배려가 아닌 인권과 차별의 차원에서 접근권을 다시 바라볼 필요가 있다. 장애인 이동권을 보장한다는 것은 사회 구성원 대다수의 안전과 편리를 위한 사회적 인프라를 구축하는 것과 같다. 필요한 것은 장애인 이동권을 '얼마나' 보장해야 하냐는 물음이 아니다. 그것이 '어떻게' 보장되고 있는지를 고민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2022년 12월 9일, 서울시가 전장연 시위 지하철역 무정차 통과 결정을 내렸다. "어차피 비장애인 열차는 장애인권리를 무정차로 지나가지 않았는가" 부르짖는 장애인들과 장애인 인권옹호자들의 외침이 들린다. 사회적 약자에게 장애물 없는(barrier free) 시설과 사회를 위한 실질적인 지원 및 정책이 시급히 결정되어야 할 것이다. 사회적 약자의 안전과 접근성 보장은 우리 일상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본 연재에서는 한국인권학회·인권법학회에서 공동 발간하는 학술지 『인권연구』에 실린 시의성 높은 논문을 선정하여 소개합니다. 본문에 언급된 논문은 아래 링크에서 무료로 다운로드 받으실 수 있습니다.
<소개 논문>
배융호. 2018. "한국 장애인 건축물 접근권의 현황과 과제." 『인권연구』 1(2): 1-30.
<다운로드 방법>
링크 클릭 → (오른쪽) ‘PDF 다운로드’ 클릭
http://journal.kci.go.kr/jhrs/archive/articleView?artiId=ART002679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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