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시간 한국에서 대마초(마리화나)는 악의 상징이었다. 박정희 군부 시절 연예인 대마초 파동을 시작으로 잊을 만하면 대마초와 관련한 대형 사건이 뉴스를 장식했다. 한국 록의 대부인 신중현은 대마초를 피웠다는 이유만으로 군부에 의해 정신병원에 감금되기까지 했다. 이는 과연 정당한가?
"담배? 기관지와 폐 기능을 악화시키는 것은 물론이고 신체에 온갖 질병과 암을 유발하거나 악화시키는 해로운 물질이다. 그러나 합법이다. 술? 취할 경우 본인에게 위험하고 사회적 해악(폭력, 음주운전 등 사고, 사회적 비용 소모 등)이 심각하다. 그러나 이 또한 합법이다.
그럼 대마초는? 담배나 술에 비해 금단현상을 초래하지 않으며 내성이나 의존성 그리고 중독성도 지극히 낮고 놀라운 약효까지 있는가 하면, 산업용으로 사용할 경우 수많은 제품을 만들 수 있는 이 기적의 식물은? 거의 불법이다." (<대마와 대마초>(노의현 지음, 소동), <대마에 대한 부정적 인식개선과 마약류관리에 관한 법률 개정을 위한 국회정책토론회 자료집>, 2021. 12. 6.>)
(☞大麻不死 1편 보기 : 1편을 읽고 이번 기사를 읽으시면 이해에 더 도움이 됩니다.)
그냥 마약? 대마의 쓰임새는 무궁무진
대마 합법화를 위한 움직임은 일찌감치 일어났다. 당장 생각나는 건 김부선 영화배우의 법적 투쟁이다. 2004년 대마초 흡연 혐의로 구속된 김부선 배우는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의 대마초 처벌 조항이 개인의 행복추구권을 침해한다고 주장하며 위헌법률심판을 신청했다. 사법부가 이를 기각하자 김부선 배우는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법이 대마초 흡연자를 처벌하면서 과잉 처벌 금지의 원칙, 행복추구권, 평등권 등 헌법이 한국 국민에게 부여한 권리를 심각하게 침해한다고 그는 주장했다. 하지만 결과는 합헌이었다.
이 시기 한국 사회에서 대마초 비범죄화를 위한 논의가 크게 일어났다. 김부선 배우가 법정 투쟁을 하던 당시인 2004년 12월 김 배우와 113명의 예술인들이 '대마초 합법화 및 사회적 금지 해제를 요구하는 문화예술인 선언'을 발표했다. 이어 2005년에도 연예계 인사와 학계 인사 681명이 모여 대마초 비범죄화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하지만 여전히 한국 사회는 강력하게 대마초를 경계하고 단속한다. 대마초 흡연을 막으려다 보니 산업적으로 쓰임새가 크고 사회에 가져다 줄 효용도 큰 대마의 이용 자체가 어렵다.
대마의 쓰임새는 무궁무진하다. 우선 생각할 수 있는 건 우리 전통 복장인 삼베옷이다. 지난달 28일 경북 안동시 헴프 규제자유특구에서 만난 노중균 대마산업협회 회장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삼베옷을 우리는 주로 여름에만 입는 걸로 아는데, 실은 겨울에도 입을 수 있어요. 삼베는 면섬유보다 기공이 수십 배 더 많아요. 그만큼 공기를 많이 저장하니 보온 효과가 탁월하죠. 겨울에는 면보다 더 따뜻하고 여름에는 더 시원해요. 더구나 자외선 차단 능력(95퍼센트)도 강해요. 한국에서 대량 생산만 가능하다면 아웃도어 의류의 기능성 소재로 사용하기 매우 좋죠.
대마 섬유는 흡습성이 아주 강력하고 항균성 99.99퍼센트를 자랑하는 직물이에요. 곰팡이 발생을 억제하고 탈취 효과도 탁월해요. 속옷, 생리대, 양말, 기저귀 용도로 상용화하기도 좋아요."
대마 씨앗은 <타임스>가 뽑은 슈퍼 푸드다. 완전식품이다. 국내 건강식품 시장에서도 이제 대마 씨앗은 인기 있는 음식으로 꼽힌다. 대마 씨에는 필수 아미노산 8종, 오메가3, 오메가6, 오메가9 등의 불포화 필수 지방산이 있고 섬유질도 풍부하다. 항산화 식품이며 염증 치료에 효과가 있다. 고혈압 환자, 당뇨병 환자에게도 좋다.
대마 씨앗에서 추출하는 대마 기름은 페인트, 윤활유, 바이오디젤, 화장품 원료로 사용 가능하다. 기술 개발만 이뤄지면 자동차도 굴릴 수 있는 바이오디젤이 된다. 기후위기 시대 대응에 참고할 만하다.
대마 줄기를 보면 대나무처럼 속이 텅 비어 있다. 줄기 껍질은 섬유용으로 이용되고, 속대로는 고강도 바이오 플라스틱 제품을 생산할 수 있다. 석유로 만들어져 현대 문명의 골칫덩이가 된 일회용 플라스틱을 완전 대체할 수 있다. 대마 속대는 건축 자재로도 탁월한 성능을 보인다.
"대마 속대를 썰어서 모래 대신 석회와 빚으면 건축자재로 사용할 수 있어요. 이걸 헴프크리트(hempcrete)라고 불러요. 유럽에서 실제 대마를 이용한 건축물을 보면 지은 지 900년이 지나도 끄떡없다고 해요. 우리 선조들도 대마 줄기를 벽재로 사용했어요. 가벼운 데다 방청효과와 단열효과가 특출해요. 에너지 절약형 주택을 짓는데 대마를 이용한 단열벽재가 효과적으로 쓰일 수 있습니다. 아파트 층간 소음을 잡는데도 대마만한 건축자재가 없을 겁니다."
대마는 친환경 작물
대마로는 종이도 만들 수 있다. 중국의 4대 발명품 중 하나로 후한 시대 채륜이 만든 종이가 있다. 이 종이를 만드는 데 대마가 쓰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대마 종이는 고급 한지로 생산됩니다. 대마가 원래 펄프 이전에 인류가 사용하던 종이 원료입니다. 20~30년 정도를 키워야 하는 나무로 만드는 펄프보다 110일이면 다 자라는 대마를 활용하면 훨씬 더 친환경적입니다. 탄소 배출 문제를 앓는 인류가 펄프를 대신해 대마 종이를 고려할 필요가 있습니다. 대마는 최고급 종이 소재가 될 수 있습니다."
대마는 경쟁 작물에 비해 재배 과정에서도 친환경적이다. 재배에 필요한 물의 양이 면화의 3분의 1이다. 대마의 생장력이 워낙 좋아서 농약을 치지 않아도 재배에 큰 문제가 없다. 미국에서 불법 거래된 대마초에서 농약 성분이 검출되기도 했지만, 이 같은 문제는 대마초 비범죄화로 대마 유통업자와 재배자가 양지로 나옴에 따라 사라지고 있다. 당국의 관리가 되기 때문이다. 담뱃잎 재배에는 맹독성 농약이 사용된다. 환경과 인체에 끼치는 해악이 어느 것이 더 큰지는 명확해 보인다. 다만 노중균 회장은 대마 농사 방법이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요즘 세계적으로 스마트팜이 인기다 보니 대마도 스마트팜에서 주로 재배됩니다만, 노지 재배를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재작년에 <네이처>가 발행하는 학술지 <네이처 서스테이너빌리티(Nature Sustainability)>가 미국 전역의 대마 농가를 대상으로 연구한 결과를 하나 발표했어요. 대마 꽃 2온스(약 57그램)를 얻기 위해 들어가는 에너지가 얼마나 되는가 봤더니 휘발유 약 7~16갤런이었어요. 1킬로그램의 건조한 대마초 꽃송이를 얻을 때 발생하는 탄소배출량은 2.3~5.2톤CO2였어요. (☞논문 바로 보기)
편차가 아주 크죠? 휘발유 많이 소모하고 이산화탄소 많이 배출하는 건 스마트팜에서 생산했기 때문이에요. 요즘 유행처럼 세계적으로 스마트팜 이야기를 하는데, LED 전기를 계속 사용하고 실내 온도를 계속 조절해야 하니 탄소발자국이 길어질 수밖에 없죠. 미국으로 따지면 캘리포니아주 같은데서 대마를 재배하는 데는 탄소가 덜 발생하는 반면, 미네소타처럼 추운 곳에서는 에너지가 많이 소모되는 겁니다.
제가 작년 국회 토론회 때 스마트팜을 규제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재생에너지를 사용해서 스마트팜 농법을 하는 건 괜찮죠. 여기 안동 규제 특구에서는 남동발전소 전기를 끌어오는데, 거긴 발전에 LNG를 사용합니다. 오염 물질은 적게 나오지만 이산화탄소 발생량은 재래 발전소와 다를 바 없다고 합니다."
필로폰보다, 코카인보다 위험한 약물?
본래 그 쓰임새가 다양한 만큼, 대마는 인류에게 친숙한 약물이었다. 알코올과 별 다를 바 없었다고 해도 될까. 그런 대마가 언제부터 '대마초'로 상징되는 위험한 마약이 됐을까. 금주법을 만들기도 한 미국이 역시(!) 주인공이다. 책 <대마와 대마초>를 보면, 대마초를 악마화하는 데 큰 기여를 한 집단으로 미국 마약단속국(DEA)과 함께 펄프와 플라스틱 재벌이 꼽힌다.
"1938년 <파퓰러메카닉스>는 대마가 '새로운 부를 창출하는 작물'이라는 기사를 실었다. 신기술이 적용된 대마 탈피기가 발명되어서 대마 가공이 아주 편해지고 비용도 적게 들게 되었다는 내용이다. (...) 듀퐁사는 1938년에 석탄을 기반으로 나일론을 생산할 수 있는 기술로 특허를 받은 바 있는데 대마로부터도 합성 나일론을 생산할 수 있다. 듀퐁사는 역시 석유 기반의 플라스틱 생산 기술을 개발했는데 대마를 옥수수, 콩 등과 합성해서도 식물성 플라스틱을 만들 수 있다. 듀퐁사의 모든 사업이 대마 산업과 경쟁 관계에 놓이게 되었다. (...)
듀퐁사가 발명한 화학 약품으로 나무 펄프를 이용하여 종이 원료를 생산하는 허스트사에도 대마 산업의 약진은 큰 타격이 될 수 있는 상황이었다. (...) 결정적으로 당시 재무부 장관이던 앤드류 멜론은 석유를 생산하는 걸프오일의 창업자였다. 그리고 마약국장인 앤슬링어는 멜론의 조카사위였다. 멜론은 앤슬링어를 마약국장으로 임명한 장본인인 동시에, 듀퐁사에 막대한 자금을 투자한 멜론은행의 주요 주주였다."
이 과정을 거쳐 대마초는 '악마의 풀'이 됐다. 1961년 미국 주도 하에 유엔(UN)에서 '마약에 관한 단일 협약'이 체결됐다. 이 협약에 한국을 비롯한 73개국이 서명했다. 이 조약은 마약을 총 4단계로 분류했다. 스케줄1이 가장 위험하고 이어 스케줄2, 스케줄3 순으로 위험도가 내려간다. 스케줄4에 등재된 마약은 스케줄1 중에서도 의료용으로 사용이 불가능한 최악의 마약이다. 대마초는 스케줄4에 분류됐다. (2020년 유엔 마약위원회는 대마초를 스케줄1으로 옮겼다. 의료용으로 재배할 수 있는 길이 이로써 열렸다.)
이를 기반으로 미국 마약단속국도 마약류를 총 5단계로 분류했다. 대마초는 가장 위험한 약물인 스케줄1으로 분류됐다. 대마초의 위험성이 헤로인, LSD에 맞먹는다는 것이다. 메스암페타민(필로폰)과 코카인은 대마초보다 덜 위험한 스케줄2에 등재됐다.
담배보다, 술보다 약한 중독성
대마초를 범죄화해 세계가 입은 손실은 헤아리기 어려운 규모다. 전 세계 마약 사범의 절대다수가 대마초 흡연자다(대마초를 엄격히 단속하는 한국과 일본이 예외적으로 필로폰 사범이 가장 많다.). 미국의 경우가 대표적이다. 비범죄화 전까지 미국 감옥에 수감된 마약사범 대부분이 대마초 흡연자였다.
<대마와 대마초>에 따르면 1996년 대마초 사범 수감 비율이 61퍼센트에 달했다. 대마초 단순 소지자로 체포된 이들의 87퍼센트는 과거 범죄 경력이 없는 사람이었다. 대마초를 피웠다는 이유만으로 경력에 큰 타격을 받은 이들이 그만큼 많았다. 대마초와의 전쟁은 암시장을 더 키웠다. 이 전쟁의 결과가 멕시코 마약 카르텔의 성장이다. 멕시코 마약 카르텔이 성장하는 초기 주로 유통한 마약이 대마초다.
대마초가 알려진 만큼 위험하지 않다는 의견은 오래 전부터 학계를 통해 나왔다. 1980년 미국 마약단속국의 프랜시스 영 수석법관은 대마초를 (가장 위험 약물인) 스케줄1에서 스케줄2로 분류 여부를 결정하기 위해 관련 조사를 진행한 결과 "대마초는 인간에게 알려진 가장 안전한 의학적 물질"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대마초의 위험도를 평가하는 가장 유명한 기준표 중 하나는 1994년 미 국립약물남용연구소의 잭 헤닝필드 박사가 발표한 주요 약물별 위험도표다. 해당 연구에 따르면 대마초는 니코틴(담배), 헤로인, 코카인, 알코올(술), 카페인(커피, 차) 등의 약물과 비교해 금단성, 내성, 의존성이 가장 낮았다. 강화성은 카페인 다음으로 약했고, 중독성은 카페인, 니코틴 다음으로 약했다.
주목할 만한 건 알코올이 금단성과 중독성에서 위 6개 약물 중 가장 강력한 위험 물질이었다는 점이다. 한국은 다른 나라와 비교해 알코올에는 지나칠 정도로 관대하고, 대마초에는 지나치게 엄격함을 알 수 있다.
데이비드 존 넛 영국 브리스틀대 교수가 2007년 세계적 권위의 주간의학저널 <란셋>에 발표한 주요 약물의 독성과 의존도표 또한 유명하다. 해당 분류표를 보면, 대마초는 담배, 알코올보다 중독성과 의존성 모두 약했다. 해당 표를 보면 헤로인이 압도적으로 위험한 마약이었고, 코카인이 그 다음이었다.
많은 이들이 대마초를 한 번 피운 사람은 더 강한 마약에 손을 댄다는 이른바 '관문이론'을 대마초 단속의 이유로 든다. 그렇다면 대마초보다 더 강력한 약물인 니코틴, 알코올을 단속하지 않는 게 더 큰 문제다. 관문이론에 과학적 근거가 없다는 연구 결과는 네덜란드 틸뷔르흐대학의 연구 결과를 비롯해 최근 들어 각국에서 구체적으로 나오고 있다.
세계는 대마초 비범죄화의 길로
각국이 서서히 대마초 비범죄화의 길로 가는 배경이다. 우루과이가 2013년 세계에서 가장 먼저 오락용 대마초까지 합법화했다. 18세 이상 성인은 대마초를 한 달 최대 40그램까지 구입할 수 있다. 가정에서도 1년에 여섯 그루의 대마초용 대마를 재배할 수 있다. 다만 관계당국에 이 사실을 등록해야 한다. 우루과이에서는 대마초 합법화 이후 마약 관련 범죄가 20퍼센트 줄어들었다. 다만 아직 불법거래가 활발한 편으로 알려졌다.
이어 캐나다가 2018년 세계에서 두 번째로 오락용 대마초를 합법화했다. 캐나다는 앞서 2001년 이미 의료용 대마초를 합법화했다.
대마초의 오락적 사용은 금지하지만 의료용 사용은 합법화한 나라가 많다. 벨기에, 이스라엘, 영국, 멕시코, 이탈리아, 태국 등 29개국이 이에 해당한다. 미국 시장조사기관 그랜드뷰리서치는 2025년 세계 의료용 대마초 시장 규모가 558억 달러에 이를 것으로 보고 있다.
최근 세계의 관심을 모으는 나라는 단연 미국이다. 세계 최대 마약 소비국인 미국에서 캘리포니아주 등 21개 주가 오락용 대마초를 합법화했다. 이에 따라 그간 음지에서 위험하게 거래되던 대마초가 안전하게 거래되는 계기가 마련됐다. 앞서 미국은 2018년 헴프농업법을 개정해 헴프 종(THC 0.3% 이하의 산업용 대마) 대마를 스케줄1에서 제외했다. 대마가 옥수수, 콩 등과 마찬가지로 자유롭게 재배 가능한 작물이 됐다는 뜻이다. 노중균 회장은 정기적으로 미국의 변화 추이를 확인하고 있다.
"미국의 경우 알래스카, 캘리포니아 등 21개 주가 오락용 대마초를 합법화했고, 의료용 대마는 37개 주가 합법화했습니다. 전체주의 절반가량은 최소 대마초의 비범죄화 정책을 취하고 있습니다. 대마초 흡연은 여전히 불법이지만, 대마초 흡연을 적발하더라도 처벌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유럽의 경우 여러 나라가 대마초를 비범죄화했습니다. 유럽 여러 나라의 공공장소에서 대마초를 피워도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캐나다나 포르투갈처럼 대마 규제를 완화한 나라들은 대마초를 담배처럼 관리합니다. 우리가 음주운전하면 안 되듯, 대마초를 피우고 운전하면 안 됩니다. 이걸 청소년에게 판매해서도 안 돼요. 하지만 오락용으로 성인이 일정량 이하를 사용하는 건 괜찮습니다."
의료용 재배라도 Legalize it
노 회장이 당장 한국의 오락용 대마 합법화를 주장하는 건 아니다. 다만 일정 단계까지는 규제를 완화할 필요가 있다고 그는 말한다. 정확히는 의료용 대마 이용을 합법화하자는 얘기다.
"우리가 아는 정말 위험한 마약들이 있죠. 그런데 그런 약물들도 실은 제한적으로 의료용으로 쓰여요. 대표적인 중추신경계(CNS) 억제제로서 마취 효과와 동시에 진통 효과를 갖는 것이 모르핀이에요. 모르핀은 아편의 유도체 중 하나고요. 필로폰과 유사한 화학구조를 갖고 있는 약물은 암페타민이에요. 암페타민은 중추신경계를 자극하여 주의력 부족, 과다 활동, 감정적 변동, 폭식증 치료에 사용됩니다. 때때로 체중감량을 위한 약으로도 사용되지요. 암페타민은 중독성이 있으며 오용하면 심각한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어요. 그렇다면 도취 효과도 없는 대마초의 CBD(대마초의 마약 성분은 THC다. CBD는 진정 효과를 준다)만 활용하지 않을 이유가 없죠.
미국 식품의약국(FDA)이 천연 대마에서 추출한 항경련제 에피디올렉스(CBD 오일)를 의료용으로 사용 허가했어요. CBD는 다발성 경화증과 알츠하이머에 치료 효과가 있고, 특히 소아 뇌전증 환자 치료에 탁월한 효력이 있습니다. 소아 뇌전증 중 레녹스-가스토 증후군과 드라벳 증후군 환자 치료에는 국내에서도 건강보험이 적용됩니다. 이 에피디올렉스가 CBD 오일입니다. CBD 함유량이 3퍼센트이고 95퍼센트는 참기름입니다. 전문의의 처방 하에서 한국희귀필수의약품센터에 신청하여 해외로부터 수입이 가능합니다. 국내에서는 CBD가 마약으로 분류되기 때문에 7일치씩만 지역거점병원을 통해서 받을 수 있습니다.
나도 헴프씨드 오일을 팝니다. 우리 오일에는 CBD가 20ppm(0.002%) 이하로 들어 있습니다. 우리 식품의약품안전처 식품공전 상 CBD 20ppm 이하로만 먹고 팔 수 있습니다. THC는 10ppm 이하여야 먹고 파는 게 가능합니다. 인터넷에 보면 무슨 CBD 함량이 7퍼센트니 하는 광고들이 막 도는데 다 사기입니다. 실제 7퍼센트 함량 제품을 섭취하면 불법입니다(웃음). 해외에서 드셔도 처벌 대상입니다."
그렇다면 CBD만 합법화해 이를 수입하고 국내에서 가공하는 등의 대안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더 발전적 연구를 위해 의료용 대마를 합법화할 필요가 있다. 노중균 회장의 설명을 옮긴다.
"CBD는 치료 효과가 있으니 좋은 건 알겠고, THC가 대마초 흡연자를 도취하게 만드는 주범이니 THC는 무조건 나쁘다, 이런 건 아닙니다. THC가 암세포를 죽인다는 의학적 주장도 전문 저널에 여러 차례 나온 바 있습니다. 그런데 대마를 의학적으로 쉽게 허가하기 어려운 이유가, 앞서 말씀드렸듯 칸나비노이드에 140여 약물이 있어요. 이 가운데 특정 약물을 우리 몸에 주입하면 어떤 기전을 통해 어떤 효과를 낸다, 라고 딱 잘라 밝히기가 어렵습니다.
THC와 CBD 간 측근효과(entourage effect)가 발생한다는 주장도 많습니다(☞관련 기사 보기). CBD와 THC를 같이 사용하면 치료 증폭 효과가 있다는 겁니다. 다만 그 기전을 명확히 밝히기 어렵습니다. 이런 효과 때문에 대마가 필요한 환자들은 CBD만 추출한 약보다 대마의 여러 성분이 들어간 약품(풀 스펙트럼, full spectrum)을 더 선호합니다.
최소 호스피스 병동에 들어가는 분들을 상대로는 대마초 사용을 좀 완화하자고 저는 주장해요. 하지만 식약처가 이런 문제에 완강하죠."
누군가에겐 절실한 대마 약제의 효용성
현재 한국에서 대마 성분을 포함한 약은 4종이 유통된다. 에피디올렉스, 사티벡스, 마리놀, 세사멧 네 가지다. 이 중 의료보험이 적용되는 건 에피디올렉스 하나다. 아동의 난치성 뇌전증 치료에 사용된다. 에피디올렉스는 천연대마로부터 성분을 추출한 약이고, 나머지는 합성대마로 생산한 약이다.
사티벡스(Sativex)는 CBD에 더해 THC도 함유된 약물이다. 다발성경화증 환자의 경련 완화용으로 사용된다. 마리놀은 항 구토제다. 암환자는 항암치료로 인해 음식을 먹지 못해서 죽어 간다. 마리놀이 효과가 있다. 세사멧 역시 항 구토제다. 그런데 이들 약이 국내에 잘 안 알려진 데다 의료보험 적용이 어렵다 보니 사용 실적이 좋지 못하다. 노 회장은 의료용 대마 합법화로 법·제도적 장벽을 해제하는 데 더해 우리 사회의 대마에 관한 인식을 바꾸면 대마 약제가 더 널리 사용될 수 있다고 힘줘 말했다.
"의료보험이 적용되는 에피디올렉스는 사용 실적이 제법 돼요. 남윤인순 의원(더불어민주당)실이 에피디올렉스 사용 실적을 봤더니 2019년 606건이었습니다. 보험이 적용되면서 사용 실적이 쭉 올라갔어요. 2021년 1968건이고 지난해는 4월까지만 796건이 처방됐습니다. 보험 적용되기 전에는 부모들이 뇌전증 앓는 아이를 보고 발만 동동 굴렀습니다. 에피디올렉스 한 병에 160만 원이었어요. 이제는 부담이 10분의 1로 줄어들었죠.
사티벡스는 2019년 2건, 2020년 1건이고 그 다음에는 사용 내역이 없어요. 사티벡스 한 팩에 373만 원입니다. 마리놀, 세사멧은 처방 건수가 없습니다. 의사들도 잘 몰라요. 이 약이 필요한 분들 다 난치병 환자들이거든요. 국가에서 좀 전향적으로 접근했으면 좋겠습니다. 대마초의 전면 합법화까지는 아니더라도, 대마 전체의 의료용 사용 허가까지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THC를 제거한 의료용 헴프는 사용할 수 있도록 관련법을 바꿔야 합니다."
대마초를 무조건 옹호하는 건 우리 정서상 어렵다. 기실 아직 세계도 대마초에는 조심스러운 입장이다. 비범죄화가 대세라고 하지만, 바꿔 말하면 오락용 대마초를 합법화한 나라는 지금도 많지 않다. 하지만 대마를 두고 많은 이들이 '신이 인류에게 주신 선물'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명확하다. 그만큼 쓰임새가 다양하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대마에 관한 선입견을 새 시대에 맞게 교정하는 것부터다. 그간 온 세계가 대마를 공부했다. 그 결과가 세계적인 비범죄화다. (끝)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