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아산병원에서 교수에 의해 벌어진 '병원 내 성폭력' 사실이 드러난 가운데, 근본적인 문제해결을 위해선 성범죄를 저지른 의료인의 면허를 취소할 수 있도록 의료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한국여성의전화는 지난 24일 낸 성명을 통해 "의료인이 업무 특성이나 지위 등을 이용해 저지르는 성범죄를 제대로 처벌하고 예방하기 위해서는 의료인의 자격을 박탈할 수 있는 조치가 포함된 의료법 개정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밝혔다.
앞서 지난 18일 서울아산병원은 '성추행 피해 신고로 호흡기내과 A 교수를 진료에서 배제했다'고 밝혔다. A 교수의 성폭력 가해 사실을 폭로한 피해자들은 전공의, 간호사 등 10여 명의 내부구성원으로 알려졌다.
당일 병원 측은 사실관계 조사가 마무리되는 대로 인사위원회를 열어 징계 수위를 결정할 예정이라고 발표했지만, 한여전 측은 "병원에서 가해자에게 중징계를 내린다고 하더라도 우려는 남아있다"라며 "의료인은 성범죄로 중징계를 받더라도 별다른 문제 없이 의료 현장에 복귀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현행 의료법은 성범죄를 의사면허 결격사유로 규정하고 있지 않다. 의료법 제8조의 면허 결격사유는 의사가 △정신질환자 △마약·대마·향정신성의약품 중독자 △피성년후견인·피한정후견인 혹은 △응급의료법 등 의료 관련 법령을 위반해 금고 이상의 형을 받은 자인 경우만을 명시하고 있다.
의사가 성범죄를 저질렀을 경우 그에 대한 자격정지는 가능하지만, 이 또한 최대 12개월로 한정된다. 자격정지 사유 또한 강간, 준강간, 강제추행 등으로만 한정되어 불법촬영 범죄 등은 사각지대로 남아있다.
결국 A 교수가 병원 측에서 중징계를 받고, 이후 형사처벌을 받는다고 하더라도 그는 최대 12개월의 자격정지 기한 끝엔 의료계에 문제없이 복귀할 수 있다. 서울아산병원에선 지난 2019년에도 산부인과 소속의 한 인턴이 마취 상태의 환자를 강제로 추행한 일이 벌어졌는데, 당시 해당 가해자는 3개월의 정직 처분을 받고도 다른 병원에 취직해 의료행위를 이어간 바 있다.
단체는 이번 A 교수와 지난 인턴 사건 등 지속적인 병원 내 성폭력의 원인이 "의료 업무의 특성이 성폭력 범죄에 악용된 경우"라며 "성범죄 의료인의 자격 제한은 반드시 고려되어야 할 조치"라고 강조했다.
"의료인에 의한 성폭력은 환자의 내밀한 신체 노출과 접촉이 잦은 업무의 특성, 마취 등으로 환자의 의식이 없거나 취약한 상태에 있는 진료 상황 등을 악용해 발생하는 경우가 많"으며 "A 교수와 같이 다른 의료인에게 성범죄를 가하는 경우 또한, 진료 과정 중 불가피한 신체 접촉을 빌미로 하거나, 의료 지시 및 교육 등을 받는 상대 의료인이 처하는 낮은 지위를 악용하는 방식으로 일어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의료 업무의 특성, 의료인이 현장에서 가지는 지위 등이 성범죄를 가능하게 하는 원인이라면, 성범죄 이력을 지닌 의료인이 업무에 복귀할 경우 "업무적 특성을 악용한 성범죄"가 지속될 가능성도 커진다.
지난 2021년 국회에선 성범죄 의료인의 면허를 취소하는 조항이 포함된 의료법 일부법률개정안이 발의됐지만, 해당 개정안은 2년여간 법제사법위원회의 문턱을 넘지 못한 채 계류돼 있는 상태다.
한편 의료법 개정에 반대하는 대한의사협회 등 의사단체들은 의료계 내 자율적인 규제를 통해서 면허취소 등을 진행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날 한여전 측은 "대한의사협회는 중앙윤리위원회의 심의 대상과 징계 결과를 비공개 처리하고 있다"라며 "밀실에서 이루어지는 '자율적인 규제'가 과연 효과가 있을지 의심스럽다"고 협회의 입장을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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