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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은 목숨을 잃었는데, 가해자인 군은 변한 게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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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은 목숨을 잃었는데, 가해자인 군은 변한 게 없다"

[인터뷰] 공군 성폭력·사망 사건 피해자 故 이예람 중사 아버지 이주완 씨

"법원에도 눈물이 있다고 합디다. 그런데 피의자의 눈물만 눈물이고 가해자의 명예만 명예입니까. 우리 예람이가 겪었을 고통과 괴로움과 은폐와 압박... 피해자의 그 쓰라린 눈물은 왜 보지 못합니까. 남은 엄마와 아빠의 이 창자를 끊는 고통은 대체 왜 몰라줍니까."

'단장의 고통'은 비유가 아니다. 고 이예람 중사의 아버지 이주완 씨는 지난달 18일 새벽 서울삼성병원 응급실에서 30센티미터(㎝)가량의 장기를 실제로 절단했다. 성폭력 피해자인 이 중사가 군의 방치와 2차 가해 속에 세상을 떠난 지 547일째 되는 날이었다.

이 씨는 그날도 식사를 걸러 가며 보도자료를 돌렸다. "피 끓는 마음으로 국방부장관께 간청합니다." 전익수 공군 법무실장에 대한 국방부의 징계를 요청하는 내용이었다. 전 실장은 이 중사에 대한 군의 조직적 2차 가해를 가능케 한 핵심 인물로 꼽힌다. 그런 그가 장군으로 명예 전역하는 것을 이 씨는 "아버지로서 두고 볼 수가 없었다."

일과를 마치고 겨우 밥 한술을 뜨니 배가 아파왔다. 얼마 안 돼 이 씨는 병원으로 이송됐다. 긴급수술이었다. 끊어낸 장기엔 스트레스성 염증이 가득했다. 수술 이후 한 달을 병원에서 보냈다. 11월 27일, 국방부가 전 실장에게 강등 징계를 내렸다는 소식도 병원에서 들었다.

▲고 이예람 중사의 빈소 사진. 영정 밑에 전익수 공군 법무실장에 대한 징계요구서가 놓여있다. ⓒ유가족 제공

"뒤늦게나마 합당한 징계가 이루어졌다고 생각합니다. 사필귀정입니다."

병상에서 낸 입장문은 그러나 한 달 만에 반전을 맞았다. 지난 26일, 서울행정법원 행정1부(강동혁 부장판사)는 전 실장에게 내려진 국방부 징계(강등)에 대한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을 인용했다. 징계가 판결 이후 30일까지 중단되면서 전 실장은 결국 장군으로서 28일 전역식에 참여한다. 이 씨가 퇴원한 지 열흘 만이다.

"가해자의 명예만 명예입니까? 그들(군)이 손상시킨 우리 예람이의 명예는 대체 누가 신경써줬나요?"

지난 27일 <프레시안>과 진행한 전화 인터뷰에서 이 씨는 재판부가 언급한 '명예'의 형평성에 대해 몇 번이고 물었다.

재판부는 면담강요 등 전 실장의 징계사유를 두고 "상당히 부적절한 행위"라 지적하면서도 "본안 소송 판결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되는데, 신청인이 손상된 지위와 명예, 신뢰를 회복하지 못한 채 전역하면 사후 지위를 회복하는 것이 불가능하고 금전 배상을 통해 명예를 회복하기도 용이하지 않다"고 언급했다.

이 씨는 "군이 조직적으로 예람이의 명예를 실추시킬 때, 그래서 우리 딸이 죽음으로 내몰릴 땐 누가 책임을 졌나" 되물었다. 이 중사에 대한 명예훼손은 실재한 사건이다. 성폭력 피해 이후 이 중사가 15특수임무비행단으로 전출될 당시, 이 중사의 직속상관인 김모 대위는 해당 부대에 '(이 중사가) 좀 이상하다', '20비(이 중사의 원 소속 부대) 관련 언급만 해도 신고할 것이다'라는 등의 허위사실을 유포한 바 있다.

현재 김모 대위 개인은 특검에 의해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된 상태다. 다만 이 씨는 광범위하게 가해진 군내 2차 가해의 총책에 대해 묻는다. 사건 당시의 미흡한 초동 수사와 부당 개입 등이 이 중사에 대한 지속적 2차 가해를 가능하게 했다는 지적이다. 이 씨는 전 실장을 이 중사 사건 초기 부실수사의 핵심으로 지목해왔다.

▲지난 11월 10일 오전 서울 용산구 국방부종합민원실 앞에서 '공군본부 법무실장 전익수 징계요청' 기자회견을 연 고 이예람 중사의 부모님 이주완 씨(가운데)와 박순정 씨(오른쪽). 고 최현진 일병의 어머니 송수현 씨(왼쪽)도 이날 현장에 참여했다. ⓒ프레시안(한예섭)

실제로 전 실장의 징계사유엔 이 중사가 겪은 성폭력 사건에 대한 '수리보고 형해화 방치' 등이 성실의무 위반(부작위) 사항으로 포함돼 있다. 법무실장이 "직접 또는 공군본부 고등검찰부장을 통해 보고지침 준수를 지시·강조하였어야 할 의무가 있었음에도, 조치를 취하지 아니"하여 사건에 대한 부실대응을 초래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재판부는 해당 징계사유가 실제 "사건에 대한 지휘·감독권 행사에 장애를 초래하였는지 여부는 추가 심리가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면담강요 등 부당개입 관련 특검 기소 사항에 대해서도 "신청인(전 실장)이 자신을 향한 수사를 중단시키려는 의도가 있었다고 추단하기는 어렵고 그 행위가 위력이나 강요에 이를 정도였는지는 추가 심리가 필요해 보인다"고 봤다.

이 씨는 납득하지 못했다. 이 중사가 피해를 신고하고도 "2차 피해로 고통 받다 사망하게 된 원흉은 공군 군사경찰과 군 검찰의 부실하고 태만한 수사"였다. 군 검찰을 책임지는 법무실장에겐 "이러한 과오를 사전에 감독하고 바로 잡아야 할 의무가 있다"고 생각했다. 법원의 판단은 "자신에겐 '그런 의무가 없다'고 말하는 전 실장의 변명을 받아들여준 것"과 같았다.

유가족을 지원하고 있는 김형남 군인권센터 사무국장 또한 "법원이 전 실장 측 주장을 (무분별하게) 받아준 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면담강요 혐의에 대해) 군 검사와 전 실장의 부대가 달라 위력관계가 명확치 않다거나, 통화에서 친절한 말투를 유지했다는 등의 전 실장 측 주장"을 법원이 유효하게 받아들였는데, 사실 "검사의 개인 번호를 알아내 전화를 건 것 자체가 '장성급 지위'로 인해 가능했던 일반적이지 않은 상황"이라는 것이다.

전 실장의 징계처분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으로 열린 이번 행정소송이 전 실장의 혐의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징계 정지와는 별개로 특정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위반(면담강요 등) 혐의에 대한 본안 판결이 남았다. 해당 판결에 따라 징계처분 또한 다시 적용될 수 있고, 그 경우 전 실장의 예비역 계급은 준장이 아닌 대령으로 조정된다.

다만 전 실장이 "장군으로 전역하는 명예를 누려선 안 된다"고 호소해온 이 씨는 "다시 한 번 창자가 끊어지는 고통을 느낀다"고 토로한다. "기쁜 마음으로 전역을 준비하고 있을 전익수 실장"을 보며 이 씨는 "책임 있는 이들에겐 관대하고, 피해자에겐 한없이 냉정한 법의 마음"을 다시 한 번 깨달았다고 말한다.

600일 가까이 이 씨는 "군의 구조 자체가 바뀌어야 한다"고 외쳐왔다. 전역식까지 변하지 않은 가해자의 계급은, 이 씨에게 "변하지 않는 군의 구조"처럼 보이기도 한다. 미처 회복되지 못한 몸을 이끌고 이 씨가 다시 싸움을 준비하는 이유다.

이 씨는 "남아있는 징계처분 취소소송을 비롯해 본안 판결 모두를 끝까지 지켜볼 것"이라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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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예섭

몰랐던 말들을 듣고 싶어 기자가 됐습니다. 조금이라도 덜 비겁하고, 조금이라도 더 늠름한 글을 써보고자 합니다. 현상을 넘어 맥락을 찾겠습니다. 자세히 보고 오래 생각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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