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곡관리법 개정안은 과연 무엇을, 누구를 위한 것인가? 쌀 생산을 조절하고 농산물 생산 체계의 전환을 모색하자는 게 개정안의 취지다. 이는 궁극적으로 요동치는 곡물 수급 및 가격안정 불확실성 시대에 식량안보 차원에서 접근해야 할 문제다. 또한 그 속에는 생산자와 소비자 모두를 보호하는 내용이 담겨야 한다.
그런데 정부와 국회는 뭘 하고 있는지 묻고 싶다. '농민피해방치법'을 만들 셈인가? 더는 책임을 방기하지 말기 바란다. 법안의 중심에는 언제나 국민이 자리해야 한다.
양곡관리법 개정안을 두고 찬반양론의 쟁점이 뜨겁다. 찬성하는 쪽은 정부가 쌀값 안정을 유지하기 위한 노력과 정책을 제대로 시행해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재정당국의 재량권 남용을 방지하도록 양곡관리법에 '초과 생산 쌀의 시장격리 의무화'를 규정할 필요가 있다고 강력 주장한다. 개정안을 반대하는 쪽은 남아도는 쌀을 무조건 매입하면 막대한 세금이 들어가므로 시장에 맡겨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면밀하게 들여다보면, 양곡관리법 개정의 취지는 구조적인 쌀 과잉생산을 줄이기 위해 논 작부체계를 전환하여 현저히 자급률이 낮은 밀, 콩 등의 생산을 늘리자는 것이다.
'농민피해방치법'으로 전락할 우려
기준금리를 한 번에 1%포인트 올리면 시장은 대혼란에 빠질 수 있으므로, 일반적으로 중앙은행은 0.25%포인트 단위로 기준금리를 올린다. 하지만 3월 금리인상을 앞두고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 Fed)는 또다시 기준금리를 0.5%포인트 인상하는 빅 스텝 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다. 금리 1%포인트 인상은 시장에 엄청난 충격을 준다. 가히 심장마비급 충격이라 할 수 있다. 쌀도 마찬가지다. 쌀 생산량 1% 증가는 가격하락을 불러온다. 농민들은 충격에 빠진다. 생산량이 3% 이상 증가하면 농민은 쌀농사를 계속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른다. 그래서 정부는 초과 생산량을 시장에서 격리하는 적극 행정을 펼쳐왔다. 덕분에 식량안보에 중요한 쌀 자급률이 90% 이상 유지될 수 있었다.
국회 본회의에 직 회부된 양곡관리법 개정안에 따르면, 정부의 시장격리 조치 발동 기준은 초과 생산량이 3% 이상이거나 쌀값 하락이 평년보다 5% 이상일 때다. 3%, 5%라는 마지노선을 정한 이유가 있다. 농민의 생존권을 보장하고 사회적 혼란을 막기 위해서다. 그런데 김진표 국회의장은 농민이 견딜 수 있는 극한선을 무시하고 어처구니없는 행태를 보였다. 대통령 거부권이 전제되는 입법보다는 국회에서 의결하고 정부에 이송하는 것이 맞다며, 김 의장은 쌀 초과 생산량 3~5%, 가격하락 폭은 5~8%로 조정하고, 쌀 재배 면적이 증가하면 정부가 매입하지 않을 수 있도록 하는 예외 조항을 담아 수정안을 제시했다. '농민피해방치법'에 다름 아닌 안이다.
소비자 관점에서 바라본다면
양곡관리법은 정부가 약속을 이행하지 않아 불가피하게 개정하게 됐다. 책임이 온전히 정부에 있다는 얘기다. 개정 이유에 대한 고려도 처방도 오간 데 없이 여야가 '의무 매입'만 가지고 정치적으로 대립한다면, 반드시 국민으로부터 심판 받을 것이다. 싸울 거리가 없어서 식량안보, 국민식량, 먹는 것으로 정쟁을 벌이나. 대한민국 국회가 부끄러울 따름이다.
양곡관리법 개정 쟁점이 뜨거워도 소비자는 도외시되고 있다. 현 쟁점은 완벽하다 할 만큼 소비자 관점에서 비켜 서 있다. 식량 생산정책에만 몰두한 정부가 소비자 지향적 판매정책을 간과한 결과, 구조적인 식량 과잉 및 과소 문제가 반복되었다. 2021년 기준 한국의 1인당 연간 쌀 소비량은 56.9킬로그램(㎏)이고 밀 소비량은 36.9㎏인데, 밀 자급률은 1.1%에 불과하다. 과잉과 과소, 극과 극인 쌀과 밀의 자급률은 소비정책 부재로부터 나타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생산 전환정책이 다가 아니다. 가치소비 시대에 맞게 소비자를 고려해야 한다. 소비자들이 국내산 밀을 활발하게 소비할 수 있도록 가공 및 소비지원 정책이 수반되어야 한다. 국내산 밀을 원료로 한 주정과 다양한 가공품의 지원 확대와 홍보를 통해 소비자들의 선택권을 늘려줘야 한다. 국내산 밀 소비 탄소발자국 인센티브 등의 소비 촉진 정책이 필요하다.
식량안보 차원에서 접근한다면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뿐만 아니라, 상시적인 기후위기로 인해 해외시장에서 곡물가가 치솟고 있다. 요동치는 곡물 수급 및 가격안정 불확실성 시대에 2021년 우리나라 식량자급률은 44.4%, 곡물자급률은 20.9%에 그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최하위를 기록했다.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는 국제적으로 식량난이 심각해지면 OECD 국가 중 우리나라가 가장 힘든 나라가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따라서 양곡관리법 개정은 생산자 및 소비자 관점과 함께, 국가를 지키고 국민을 보호하기 위한 식량안보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 최근 일본은 식량의 해외 의존이 국가 안보를 위협한다고 판단해 총리가 직접 나서서 식량자급 대책을 챙기고 있다. 주요 선진국들은 식량을 넘치도록 충분히 생산한다. 식량은 남아야 한다. 여유로운 식량은 쓸 데가 많다. 우리도 이제 선진국이다. 때에 따라 빈국에 원조도 해야 한다. 비상시에는 당연히 대처방안으로 활용한다. 국가안보의 초석인 식량안보를 위한 사회적 비용은 감내해야 한다.
헌법 수호할 국가 책임과 정부의 약속
정부는 쌀 가격 안정 장치였던 변동직불제(쌀 목표가격제)를 폐지하면서 농민들에게 쌀 자동시장격리제를 약속했었다. 그러나 지난해 시장격리 요건이 충족되었음에도 정부는 시장격리를 하지 않아 유례없는 쌀값 폭락 사태를 야기했다. 정부가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약속을 지킬 것을 요구하고 주문하는 것이 상식이다. 또한 제아무리 국책연구기관이라고 해도 오류가 있다면 바로 잡아야 한다. 양곡관리법 개정안의 효과 예측을 위한 연구 설계 및 방법론에 문제가 있었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의 <양곡관리법 개정안 효과 분석> 보고서는 쌀 재배면적 감소에도 쌀 생산량은 증가하는 것으로 전제했다. 상수(常數)가 될 수 없는 것을 전제했다. 올바른 예산 집행, 국민의 이익보호 및 알권리를 위해 바로잡아야 한다.
농지가 지속적으로 줄어드는 상황에서 일시적으로 과잉 생산된 쌀의 가격을 시장논리에 맡겨 폭락하도록 방치한다면, 이는 정부의 책임 방기다. 헌법 제123조 제4항은 "농수산물의 수급균형과 유통구조의 개선에 노력하여 가격안정을 도모"하도록 국가의 책임을 규정하고 있다. 그렇게 함으로써 정부는 "농・어민의 이익을 보호"해야 한다. 정부에는 헌법을 수호할 책임이 있다. 사적인 농지를 농업진흥구역으로 묶어 개발 등의 행위를 제한하여 국민을 위한 식량생산 기지로 삼고 있으므로 이에 상응하는 적극 행정을 해야 한다.
정부와 국회가 이제라도 당리당략에서 벗어나, 국민의 이익 보호 및 알권리를 위해 생산자-소비자 거버넌스 구축에 나서길 바란다. 이를 통해 사회적 협의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또한 식량안보 및 소비자 관점에서 양곡관리법을 바라봐야 한다. 정부와 국회가 식량 생산정책과 함께 소비자 지향적 판매정책을 동시에 수립하여 구조적인 식량 과잉 및 과소 문제 해결에 전력투구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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