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칼럼에서 우리의 건강보험의 보장률이 평균 수치는 개선효과가 미미했어도, 세부적으로 들여다보면 상당한 긍정적 변화가 있었다는 것을 확인 하였다. 특히 보장률은 종합병원급에서, 입원진료에서 그리고 고액 중증질환에서 크게 개선되었다. 반면, 동네의원급에서, 외래진료에서, 경증질환에서는 오히려 하락했다. 큰 병을 중심으로 건강보험보장이 좋아졌다는 점은 매우 바람직한 변화이며, 큰 병으로 인한 의료불안을 해결하는 데 큰 기여를 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그런데, 보장성 효과가 왜 일부에서만 나타나고 다른 측면에서는 효과가 나타나지 않았을까? 여기에서는 이를 중심으로 분석해보고자 한다.
비급여 비중, 종합병원은 크게 감소하고 의원급은 크게 늘어나
여기서 주로 분석해볼 것은 보장률이 아닌 비급여 비중이다. 그래야 건강보험에서 무슨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정확히 알 수 있다.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정책은 곧 비급여의 급여화를 의미하기도 하므로, 비급여 비중의 감소여부를 살펴보아야 한다. 고액 중증질환의 건강보험 보장이 크게 개선되었다는 것은 비급여 비중이 줄었다는 것이고, 외래 경증질환의 건강보험 보장이 하락했다는 것은 비급여 비중이 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제 비급여 변화를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아래 그림에서 보면, 종합병원급 이상 의료기관의 2021년 비급여 비중(23.9%)은 2010년(8.4%)에 비해 무려 1/3로 줄었다. 큰 폭의 감소다. 이런 비급여의 큰 감소는 4대 중증질환에서도, 고액 30개 질환에서도, 입원진료비에서도 나타난다. 반면, 의원급 의료기관의 비급여 비중은 2배 이상 크게 증가했다. 병원급도 증가했다.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정책의 핵심인 [비급여의 급여화]로 인한 비급여 감소 효과가 종합병원급에서, 고액질환, 중증질환 등에서는 나타났지만, 의원급에서는 나타나지 않았다. 오히려 반대로 비급여 비중이 늘어났다. 왜일까? 그런데 이런 현상은 모든 의원급 의료기관에서 나타나는 현상이 아니다. 의원급 의료기관 내에서도 차이가 크다. 아래 그림을 보자.
2013년부터 2021년까지 진료과에 따른 비급여 비중의 변화는 진료과에 따른 차이가 매우 크다. 내과나 정신과의 비급여 비중은 큰 변화가 없지만, 안과(16.1%→42.3%), 정형외과(11.2%→36%)의 비급여 비중은 크게 늘었다. 반면 비급여 비중이 줄어든 진료과도 있다. 바로 산부인과(33.2%→19.2%)다. 산부인과는 비급여였던 산전 초음파가 급여화가 되면서 비급여비중이 크게 줄었다. 특징적으로 비급여가 급증하는 진료과목은 정형외과, 안과 외에도 신경외과, 재활의학과 등이 있다. 주로 근골격계질환이나 특정 질환을 진료하는 의료기관들이다.
실손의료보험이 비급여를 팽창시키고 있다
그간 정부는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정책을 지속적으로 추진해왔다. 비급여의 급여화 정책으로 병원비 걱정없는 나라를 만들고자 했다. 그간 병원비 부담의 상당을 차지해왔던 비급여항목(예로 선택진료제 폐지, 상급병실료 급여화, 초음파, MRI 등)들이 급여로 전환되었다. 그런데, 왜 특정 의료기관과 특정 진료과에서는 비급여 비중이 줄어들기는커녕, 오히려 보장성 강화를 비웃기나 한 듯이 비급여가 증가한 걸까?
필자는 그 이유를 실손의료보험 때문으로 분석한다. 건강보험의 보장확대에도 실손의료보험은 특정 진료분야에서 비급여의 양과 가격을 급격히 팽창시키고 있는 것이다. 지난 문재인정부하의 건강보험 보장성 정책에도 보장률이 크게 개선되지 않은 이유도 실손의료보험을 규제하지 못한 데에 있다.
앞에서 비급여 비중이 높고 급격한 증가양상을 보인 진료 분야는 주로 정형외과, 신경외과, 재활의학과, 안과 등이었다. 이들 진료과의 주요 진료대상은 주로 근골격계 질환과 상해, 백내장이다. 이 질환들은 큰 병을 다루는 종합병원이 아니라, 주로 병원이나 의원급 의료기관이 담당한다. 이 질환들은 실손의료보험이 주되게 청구하는 질환과 정확히 일치한다. 보험연구원의 분석에 의하면 실손보험금 지급의 절반(45.5%)은 근골격계질환(31.2%), 상해(13.6%), 눈질환(8.7%)의 세 질환이었다(2022년). 실손보험의 지급을 비급여로만 한정하면 세 가지 질환의 비중은 무려 62.2%로 더 커진다. 실손의료보험이 보상해주는 비급여 항목 중 많은 순서가 도수치료, 백내장, 체외충격파치료, 근골격계 MRI 이다.
이처럼 실손의료보험과 비급여와 관련성을 제시하는 예는 얼마든지 들 수 있다. 비급여 비중을 연령대별로 확인해보면, 젊은층에서 높고, 노년층에서는 낮은데, 이는 노년층에서는 실손의료보험 가입률이 낮다는 것과 관련 있다. 정신과 질환은 비급여 비중이 매우 낮았는데, 정신질환은 실손보험이 보상해주지 않는 분야이기도 하다. 실손보험가입자의 진료비를 분석해보면 건강보험 평균보다 비급여 비중이 50% 정도 더 높았다(2012, 개인의료보험협의체 내부자료). 실손보험 가입이 비급여진료를 더 늘리는 것이다.
실손의료보험이 가계파탄 막아줄 거라는 기대는 틀렸다
2006년경에 실손의료보험 허용을 논의하던 시기 실손의료보험에 대한 기대는 있었다. 취약한 공적 보험의 보장을 사적 보험을 통해서라도 메우자는 것이었다. 실손의료보험 허용 여부가 논의되던 시절은 중병이라도 걸리면 가계가 파탄나는 일이 비일비재했던 시절이었다. 사보험으로라도 가계파탄을 막아야할 필요성은 있었다. 지금도 실손의료보험에 가입하는 이유는 가계파탄과 큰 병에 대한 병원비 부담 때문이다.
지금 실손의료보험은 큰 병에 대한 보장보다는 주로 근골격계나 특정 질환에 한정한 비필수 비급여에 대한 보장이 주된 기능이다. 실손의료보험금 지급이 가계파탄을 막는데 사용되는 비중은 크지 않은 것이다. 앞에서 보았듯이 고액 중증 질환에 대한 건강보험의 보장은 지속적으로 향상되었다. 4대 중증질환의 보장률은 80%가 넘는다. 가계파탄을 막는 역할은 실손의료보험이 아니라 건강보험이 하고 있다. 지금 실손보험은 종합병원급 이상 의료이용보다는 의원급 의료이용에서, 입원 진료비보다는 외래 진료비에서, 큰 병보다는 근골격계질환이나 경증질환에서 더 역할을 하고 있을 뿐이다.
반면 실손의료보험의 부작용은 매우 크다. 실손의료보험은 비급여를 팽창시켜 건강보험 보장 확대 노력을 반감시키고 있고, 실손보험 가입자의 보험료 부담만을 키우고 있는 실정이다. 매번 갱신 때마다 보험료 인상폭이 매우 크다. 실손의료보험료는 매년 10%내외 인상되고 있으며, 이는 건강보험료 평균 인상률보다 3~4배 높은 수준이다.
실손의료보험 규제해야 건강보험 보장확대 가능해
지난 문재인 정부에서 추진한 보장성 강화 정책은, 효과는 없이 건강보험료 인상만을 초래했다며 많은 비판을 받았다. 이는 사실이 아니다. 보장성 강화효과는 종합병원, 입원진료, 고액 중증진료에서 효과가 있었고, 병원과 의원급 의료기관, 외래진료, 근골격계질환에서 효과가 없었다. 실손의료보험이 비급여를 팽창시켰기 때문이다. 실손의료보험을 제대로 규제했다면, 평균 보장률 개선은 크게 나타났을 것이다. 문재인정부의 보장성 강화정책이 비판받아야할 지점은 보장효과가 없었다는 점이 아니라, 실손의료보험을 규제하지 못한 것에 있다.
실손의료보험 때문에 건강보험 보장률은 기대치 만큼 오르지 못했다. 필자의 추정으로는 실손의료보험이 팽창시키는 비급여는 건강보험 보장률을 약 3~5%p 정도를 떨어뜨렸을 것으로 보인다. 실손의료보험이 불필요하게 팽창시킨 비급여는 3~5조원 수준으로 추정된다. 실손의료보험이 주로 보상해주는 도수치료, 조절형 인공수정체, 체외충격파 등이 불필요한 진료항목이라서가 아니라, 불필요하게 가격을 폭등시켰기 때문이다. 실손의료보험이 없다면, 지금의 터무니없이 높은 가격은 책정조차 안 되었을 것이고, 그런 가격으론 제공조차 되지 않았을 것이다.
지금 윤정부는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에 매우 소극적이다. 오히려 지난정부의 정책을 비판하며 건강보험 보장을 후퇴시키려는 조짐마저 보인다. 걱정이다. 윤 정부가 조금이라도 국민의 건강과 병원비 부담을 걱정한다면,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는 지속적으로 추진해야 한다. 건강보험 보장은 작은 재정으로도 효과는 최대화할 수 있는 방안이 필요하다. 고액 중증질환에 대한 보장을 더욱 튼튼하게 해야 한다. 그게 본인부담상한제 정책이다. 필자가 연간병원비 백만원상한제 연대에서 활동하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동시에 불필요한 사회적 낭비를 초래하는 실손의료보험에 대한 규제는 강화해야 한다.
*내가만드는복지국가는 의제별 연대 활동을 통해 풀뿌리 시민의 복지 주체 형성을 도모하는 복지단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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