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건강보험은 진료비 할인제도라는 비판을 받았다. 지금으로부터 20여 년 전 의료보험 통합으로 명실상부하게 전국민 건강보험제도를 출범했지만, 여전히 건강보험의 보장률은 절반 수준에 불과했다. 특히 병원비가 많이 들어가는 암 질환과 같은 중증질환이 가족 내에 발생하게 되면 기둥 뿌리도 뽑히고 집을 팔거나 전세를 빼야 하는 일이 다반사였다. 2000년대 초반까지도 건강보험은 질병으로부터 국민을 지켜주는 역할엔 큰 한계가 있었다. 보편적 복지제도인 건강보험제도가 있음에도 가계파탄의 핵심 원인중 하나가 질병이었다. 그렇다 보니 2007년에 시작된 실손의료보험은 출시되자마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실손의료보험은 누구라도 하나씩은 갖고 있어야 할 든든한 안전망으로 여겨졌다. 여전히 실손의료보험은 선택이 아닌 필수라 여긴다.
건강보험 보장, 좋아지고 있는데도 지표상 변화 없다고?
현재도 우리나라 건강보험의 보장률은 그리 높지 않다. 얼마 전 발표한 [2021년 건강보험 환자 진료비실태조사 결과]에 의하면 건강보험 보장률은 64.5%에 불과하다. 10여 년 전인 2010년에도 63.6%에 불과했으니 미미한 수준의 증가인 셈이다. 지난 문재인 정부가 떠들썩하게 건강보험 보장 강화를 추진한 것을 기억한다면, 보장성 확대는 실패했고, 건강보험료만 높여놨다는 일각의 비판이 얼핏 그럴듯해 보인다.
그런데 주위에서는 실제로 건강보험으로 큰 혜택을 보았다는 얘기들을 흔히 들을 수 있다. 암에 걸린 부모님을 모시고 큰 병원에 갔는데도 병원비가 별로 나오지 않아 놀랐다는 얘기를 친척들로부터 들은 바 있다. 아이가 아파 입원했던 한 아이의 부모한테도 걱정보다 병원비가 많지 않더라는 얘길 들은 바 있다. 예상보다 건강보험의 역할이 상당한 것이다. 주위에선 건강보험의 혜택이 예상보다 커 놀랐다는 얘기들이 들리는데도 건강보험 보장률 지표로는 별로 달라진 게 없다. 이건 무슨 연유인가?
실제 우리의 건강보험은 20여 년 전 노무현 정부부터 박근혜, 문재인 정부를 거치면서 상당한 변화가 있었다. 노무현 정부는 처음으로 중증질환에 산정특례제도를 도입하였고, 우리가 흔히 4대 중증질환이라고 하는 제도의 출발이었다. 최근의 큰 변화는 박근혜와 문재인 정부하에서다. 박근혜 정부는 흔히 3대 비급여라 불리웠던 특진비, 상급병실료, 간병비를 해결하는 발판을 마련하였고, 4대 중증질환에는 선별급여제도를 도입하였으며, 문재인 정부는 모든 의학적 비급여의 급여화를 기치로 내걸었고, 그 일환으로 특진료를 완전히 없앴고, 1,2인실까지도 건강보험을 적용하였다. 15세 미만 아동의 입원 부담도 크게 낮추었다.
이렇듯 20여 년에 걸쳐 우리의 건강보험의 보장은 크게 강화되었다. 그런데, 단순한 지표에서는 이를 알기가 어렵다. 건강보험 보장률이라는 단순 지표가 이를 드러내지 못한다. 좀 더 구체적인 지표를 봐야 건강보험에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었는지를 확인할 수 있다.
종합병원, 입원진료, 고액 중증질환에서 건강보험 보장률 크게 개선돼
건강보험 보장률을 의료기관별, 입원/외래, 중증질환, 진료과별로 세분하여 살펴보면 매우 큰 격차가 발생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먼저 의료기관 종별로 보장률을 살펴보면 상급종합병원과 종합병원과 같은 종합병원의 보장률은 지속적으로 크게 증가하였다. 반면 동네의원급 보장률은 크게 하락하고 있다. 10여 년 전까지만 해도 종합병원은 동네의원보다 보장률이 낮았으나, 어느 순간 뒤집어졌다. 지금은 종합병원의 보장률이 훨씬 높다. 질병이 위중할수록, 병원비가 클수록 의료불안은 크기 마련이다. 따라서 경증질환이나 소액질환보다 중증, 고액질환 보장이 높아야 제대로 된 의료보장이라할 수 있다. 이제야 건강보험이 제 역할을 하는 것이다.
건강보험의 이런 바람직한 변화는 또 다른 세부 지표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입원 보장률과 외래보장률 추이는 아래와 같다. 입원보장률은 지속적으로 상승한 반면, 외래보장률은 하락했다. 같은 입원이라 하더라도 의료기관마다 격차는 크다. 특징적으로 상급종합병원(76.4%)일수록 입원보장률이 크고, 다음으로 종합병원(75.1%), 병원(56%), 의원(37.6%) 순이다.
건강보험의 높은 보장은 중증질환과 고액질환에서 더욱 두드러진다. 4대 중증질환은 보장률이 84%(2021년)이며, 고액진료비가 발생하는 상위 30개 질환의 보장률도 80%를 넘는다. 평균 보장률보다 20%p 가까이 높다. 4대 중증질환은 암질환, 심장질환, 뇌혈관질환, 희귀난치성 질환을 의미한다. 주위에서 많은 암질환으로 치료를 받은 시민들은 예상외로 병원비가 적게 발생한 데 놀란다. 시민들은 건강보험이 좋아진 것을 피부로 느끼고 있는데도 정작 건강보험 보장률 지표에서는 드러나지 않았다. 시민들이 느끼는 변화는 건강보험의 평균 보장률 지표로는 확인할 수 없었지만, 이렇게 세부적인 지표를 들여다보면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우리의 건강보험은 크게 좋아졌다. 특히 중증질환일수록, 고액질환일수록, 입원치료에서, 아동들에서 확연하게 보장률이 좋아졌다. 이것은 과거 노무현, 박근혜, 문재인 정부를 거치면서 진행한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노력의 결과이다. 목표만큼 이뤄지지 않았을 뿐, 건강보험 보장강화는 효과가 있었고, 의료불안으로부터 시민들을 지켜주는 보호막은 이전보다 두터워졌다.
본인부담상한제 강화로 건강보험 보장 더욱 확대되어야
물론 현재 수준이 충분하다고 볼 순 없다. 고액 중증질환에서 건강보험의 보장이 높은 것은 당연하지만, 여전히 건강보장은 부족하다. 중증질환의 보장률이 84%라 할 때, 1억의 진료비가 발생하면 환자는 여전히 1,600만 원의 큰 병원비를 부담해야 한다. 고액 중증질환일수록 보장률은 높지만, 지금보다 훨씬 높아져야 한다. 경증의 소액질환에서는 보장률이 높지 않아도 괜찮다. 그것으로 의료불안이 발생하진 않기 때문이다. 지금보다 중증질환의 보장률을 더 높여야 한다. 90%를 넘어, 95%, 때로는 99%가 되어야 한다. 진료비가 클수록 보장률은 더 높아져야 한다. 이를 가능하게 하는 정책이 바로 본인부담상한제이다. 일정 이상의 부담은 건강보험이 부담하자는 것이다.
본인부담상한제는 소액질환의 보장률은 높이지 않고, 일정 이상의 고액진료비가 발생하는 질환을 중심으로 보장률을 높이는 효과가 있다. 경증질환이나 중증질환이나 모두 건강보험 보장을 높이는 정책보다, 일정 이상의 고액질환을 중심으로 보장률을 개선하는 방법이 더 적은 재원으로, 그 효과는 극대화할 수 있는 방법이다. 서구 유럽의 복지국가가 높은 의료보장을 누리는 배경에도 본인부담상한제가 있다. 독일은 소득이 1~2%이상은 건강보험이 모두 보장하고 있으며, 스웨덴은 연간 30~50만 원이 상의 부담은 하지 않는다. 물론 우리 건강보험에는 본인부담상한제가 있다. 하지만, 여전히 비급여가 광범위하게 존재하고 있고, 건강보험 급여 대상인데도 예비급여에 대해서는 본인부담한상제가 제외된다. 효과가 낮은 이유다. 의학적인 비급여는 건강보험 적용을 하고, 건강보험 적용하는 모든 항목에 대해 본인부담상한제를 시행한다면, 건강보험의 보장은 크게 개선될 것이다. 우리가 연간 병원비 본인부담 100만 원 상한제를 제안하고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런데 윤석열 정부에서는 건강보험 보장성 확대를 포퓰리즘으로, 건강보험재정을 악화시키는 주범으로 몰려 건강보험 보장성을 후퇴하는 정책을 제시하고 있다. 지금까지 건강보험보장은 개혁 진보 정부든, 보수 정부든, 정도의 차이와 방법의 차이는 있었지만, 모두가 건강보험 보장을 강화하는 정책을 제시해왔다. 그리고 실제로 추진해왔다. 지금까지 건강보험 보장 역사에서 박근혜 정부의 기여는 매우 컸다. 4대 중증질환 보장을 크게 개선했을 뿐 아니라, 특진료를 폐지하는데 크게 기여했다. 특진료는 문재인 정부에서 최종 폐지되었지만, 사실상 대부분은 박근혜 정부의 성과였고, 마지막 숟가락만을 올린 것이 문재인 정부였다. 그런 역사적 성과에도 윤석열 정부는 건강보험 보장성 확대에 매우 부정적인 인식을 드러내고 있다. 과거에 이런 보수 정부가 있었던가? 걱정이 크다.
지금까지는 필자가 주로 건강보험의 보장률이 평균 지표로는 개선이 미미했지만, 세부적으로는 고액 중증질환에서는 크게 개선되고 반면 소액 경증질환에서는 미미하거나 후퇴한 결과임을 설명했다. 그리고 고액중증질환의 보장성 확대는 그간 정부의 보장성 강화정책의 효과임을 언급했다. 그러나, 의아한 게 있을 것이다. 아니, 보장성 강화를 추진했는데도 왜 일부에서는 보장성 강화가 아닌 오히려 후퇴 현상이 발생한 것일까? 왜 의원급 의료기관의 보장률은, 외래진료의 보장률은 하락했을까? 도대체 건강보험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길래? 이는 다음 주 이어지는 칼럼에서 분석해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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