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광훈 : 헌법 정신에 5.18 정신을 넣겠다. (안돼요.) 그런다고 전라도 표가 나올 줄 압니까. 전라도는 영원히 십프로에요. 그 말을 들은 전라도의 우파 10프로들이 더 난리요. 김기현 저거 미쳤다는 거야, 도대체가. (맞아요) 우리도 원치 않는 것을 왜 저렇게 떠드냐는 거야. 어떻게 생각합니까.
김재원 : 그건 불가능합니다.
전광훈 : 불가능해요? 불가능하죠?
김재원 : 불가능합니다. 저도 반대입니다.
전광훈 : 전라도에 대해서 립서비스 한다고 한거지?
김재원 : 뭐, 표 될려면 조상 묘도 판다는 게 정치인들 아닙니까.
(웃음)
극 속에서 '우리는 연극을 하고 있다'는 고백이다. 관객들은 혼란에 빠졌다. 누구나 그것이 연극이라는 걸 모르지 않는다. 연극이란 걸 알면서도 카타르시스를 느끼려 관객은 몰입을 선택한다. 그런 선택이 다름아닌 극 중 배우에 의해 방해받을 것이라고 누가 알았겠는가.
위 대사들은 기만의 드러냄이다. 인간은 그것이 기만일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속에서도 믿음을 부여잡는다. 그것이 기만이 아니길 바라면서. 최소한 그것이 기만이라는 걸 드러내지만 않는다면, 인간은 믿음의 형식을 취하고 나아가 희망(그것이 헛된 것일지라도) 그 자체로 모종의 삶의 의지를 다지며 살아가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이다. 그런데 그 최소한의 조건이 사라질 때, 사람들은 배신감을 느낀다. 구름 위에서 찾은 편안함은 곧 땅바닥에 패대기 쳐 진다.
은폐됐을 때는 모두가 편안했다. 알지만 말하지 않았고, 말할 필요도 없었다. 인간은 대체로 디스토피아의 현실보다 유토피아의 비현실을 추구한다. 현실의 불합리성에 대한 실망보다, 미래의 합리성에 대한 희망이 더 클 때 인간은 살아갈 힘을 갖는 것이다. 그런데 은폐하기로 합의된 사실이 탈은폐됨으로서 그 존재 본질을 만천하게 드러낸 사건이 발생한다. 하이데거가 말한 탈은폐를 통한 존재는 이런 식으로 드러난다. 존재와 진실의 드러남은 그 자체로 의심의 베일이 걷어지는 게 아니고, 새로운 의심을 불타오르게 하는 것이다. 은폐된 것은 은폐됐을 때 가치가 있다. 드러나는 순간 그것은 진실의 불구덩이에 던져진다.
김재원 최고위원는 저 대사를 통해 은폐됐던 진리를 드러냈다. 은폐된 진실을 함부로 말하고 있지만, 그런 말을 하기 위한 최소한의 용기조차 필요 없는 듯 하다. 용기라는 건 이미 그것이 부당한 일이거나 부끄러운 일이거나 자신에게 돌아올 불이익이 도사리고 있다는 걸 전제한다. 그러나 그 자체로 용맹한 저 발언에서는 '그런 척' 조차도 사치스럽게 느껴진다. 그리고 당원 100% 투표로 지도부를 구성한 그들만의 갈라파고스적 영토 속에서 그들끼리 진화시켜오던 이상한 사유가 갑자기 온 세상에 강요되고 있다는 걸 보여준다. 이런 식의 '탈은폐'는 그 자체로 폭력이다. 폭력이란 걸 의심하지 않을 뿐.
김재원 최고위원의 말은 전당대회 이후 국민의힘이 그려나갈 항적일지에 대한 예언이자 어떤 징후 같은 것이다.
지난해 12월 18년만에 '당심 70, 민심 30' 룰을 폐기하고 '당심 100%' 룰을 도입한 후 윤석열 대통령의 전폭적인 지지 속에서 국민의힘은 김기현 체제를 만들어냈다. 윤석열 대통령은 국민의힘 지도부와 상견례를 했고 "전당대회가 '당원 100%'로 치러졌고 국민적 흥행으로 전당대회가 잘 치러졌다. 이를 만든 정진석 비상대책위원장과 비대위의 노고를 평가하는 자리"(김병민 최고위원)를 만들었다. 윤 대통령은 당원 투표 100%로 선출된 김기현 체제에 대해 흡족해 하는 것 같다.
하지만 따져보자. 김기현 대표는 52.93%로 '턱걸이 과반'을 겨우 달성했다. 당원 100%로 치러진 전당대회에 나선 네 명의 후보 중 두 후보가 '비윤'이고 한 후보는 '반윤'이었다. 그들에게 던진 47%의 표도 '당심'이었다. 그런데 왜 47%의 당원들은 '윤심'을 업었다는 김기현 대표에게 왜 압도적 지지를 보내지 않았을까. 합리적 의문은 '과반 득표 당선'이라는 헤드라인 문구에 묻혀버린다. 윤석열 대통령이 전국의 당원 100%를 향해 호소했으나, 그마저도 절반 가까운 당원들은 '범친윤'이 아니라 '비윤', '반윤' 후보들에게 표를 던졌다. 그리고 나서 끓이기 시작한 '연포탕'에 낙지는 없고 "양파, 호박(장성철 공론센터 소장)"만 둥둥 떠다닌다.
김기현 대표의 당직 인선은 노골적이다. '은폐'나 '기만'의 시도조차 없다. 당대표 비서실장에 친윤계 구자근 의원이 임명됐고, 친윤석열계 실세로 불리는 이철규 의원이 당 사무총장직에 앉았다. 당 대표가 '친윤계'에 포위된 모양새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당대표 비서실장과 당 사무총장이 누구의 뜻을 받들고 누구의 눈치를 더 보겠느냐"고 뼈 있는 말을 했다.
이제 '윤심극장'의 연극도 끝났다. 하지만 탈은폐는 의도치 않은 곳에서 의도치 않은 방식으로 드러내는 법이다. 은폐된 민심이 탈은폐될 때가 그러할 것이다.
저 위의 대화로 돌아가 보자. 정치와 정치인에 대한 천박한 '메타 비평'의 교과서와 같다. 여기에서 말하는 '조상 묘도 판 정치인'은 윤석열 대통령 본인의 의지와 전혀 별개로, 윤 대통령을 떠올리게 한다. 윤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 '5·18 정신의 헌법 전문 수록'을 공약했고 이를 뒤집은 적도 없지만, 김재원 최고위원의 해석대로라면 그 말은 '전라도에 대한 립서비스'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윤 대통령은 이제 자신이 '조상 묘도 판' 정치인이 아니라는 걸 증명해야 하는 과제를 덥석 맡아버렸다. "전라도는 영원히 10%"라는 말은 '호남 포기 전략'을 '포기'한 걸 '다시 포기'하라는 지지자의 노골적인 요구다. '지역차별 지양'과 같은 고루한 명제도 이들에겐 사치다. 이들의 대화 속에는 어떤 부끄러움도 없고, 어떤 필터링도 없으며, 해석의 여지마저 의미 없어진다. 더이상 눈치를 보지 않겠다고 하는 선언 같이 들린다.
김재원 최고위원은 그들식 정치의 본질을 탈은폐 하면서, 사람들에게 이것이 연극임을 깨닫게 했다. 정치라는 게 말로 하는 예술이 아니라 기만이 동원된 일종의 사기라는 사실을, 잊고 있었던, 잊었을 때 편했던, 그 어떤 불편함을 상기케 하며 '현실의 사막'(Desert of the Real)의 차디찬 땅바닥으로 우릴 내동댕이친다.
정치판에서 간혹 벌어지는 이런 존재사건들은 보통 '오만함'으로 흐르기 일쑤다. 오만함은 '내가 오만해지고자 하는 의지'로 발생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정치인과 유권자의 관계 속에서 발생한다. 자신이 처한 상황 속에서 자신을 객관하지 못하는 정치인들의 무의식적 행위들은 유권자들에게 불편하게 다가온다. 하지만 그들은 은폐하기조차 그만두기로 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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