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1일, 법원이 동성부부의 사회보장권리를 최초로 인정했다. 2년간의 소송 끝에 국민건강보험공단을 상대로 제기한 보험료 부과처분 취소 소송에서 승소 판결을 받은 소성욱 씨와 그의 동성배우자 김용민 씨 얘기다. (관련기사 ☞ "결국은 사랑이 이겼다" … 동성부부 '건보 소송' 승소)
전향적 판결인 동시에 제도의 한계를 드러낸 판결이었다. 재판부는 동성생활공동체가 이성부부와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고, 동성부부 또한 "사회보장 차원에서 보호해야 할 생활공동체"라고 규정하면서도, '동성커플을 사실혼 관계로 인정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없음'을 명확히 했다.
"혼인의 천 가지 권리 중 하나일 뿐이다."
판결 직후, 김용민 씨는 당일 인정받은 동성부부 간 건강보험 피부양자 자격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동성부부 등 법적 가족의 테두리 밖에 있는 존재들이 보장받지 못하고 있는 사회보장권리는 여전히 많다. 국민연금, 공무원연금법 등에선 유족연금 수령 조건에 사실혼 관계를 명시하고 있다. 법적 혼인은 물론 사실혼 관계조차 인정받지 못하는 동성부부에겐 또 하나의 벽인 셈이다.
부부의 소송대리인단 박한희 변호사(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만드는법)는 바로 그래서 나가야 할 다음 단계가 "동성혼 합법화"이며, 이는 이 사회가 "절대 피해갈 수 없는 과제"라고 강조한다. <프레시안>은 지난 2일 박 변호사와 진행한 전화 인터뷰에서 '동성부부 건보 소송'의 의미와 남은 과제를 물었다.
아래는 그와의 주요 인터뷰 내용이다.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는 문장, 가장 중요하다
프레시안 : 2월 21일 서울고등법원이 내린 판결에서 '동성부부 간 건강보험 피부양자 자격'이 인정됐다. 역사적인 판결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어떤 의미가 있나.
박한희 : 한국에서 동성 배우자, 동성부부는 법적으로 어떤 권리도 보장받지 못한다. 지난 2016년 동성부부 김조광수 씨와 김승환 씨가 제기한 동성혼 소송이 있었지만 패소했다. 그보다 앞선 2004년엔 레즈비언 사실혼 관계 해소로 인한 재산분할 및 위자료 청구소송도 있었지만 기각된 바 있다.
그간 법원에선 '법률상 혼인은 이성 간에만 발생한다'는 원칙을 이유로 동성부부의 혼인 개념을 인정하지 않았고, 그래서 사회보장권리에 있어서 동성부부는 아무런 권리 보장을 받지 못했다. 이번 판결은 한국 역사상 최초로 '동성 배우자들도 법적인 지위를 인정받고, 그에 따른 권리를 보장받아야 한다'고 명시한 판결이다.
프레시안 : 소송을 직접 담당한 대리인단의 입장에서, 판결문의 가장 중요한 부분은 무엇이라 생각하는가.
박한희 :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이성간의) 사실혼 관계'와 '동성결합 생활공동체'를 명확히 구분했다. 그런데 용어상으로는 둘을 구분할지언정, 실질적인 관점에선 동성부부 또한 "혼인 의사가 있고 혼인의 실체를 갖추고 있다"고 명시했다. 재판부는 바로 그렇기 때문에 건보 피부양자 자격이라는 사회보장권리 또한 동성부부와 이성부부가 동등하게 받아야 한다고 언급했다.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 그러니 "차별대우가 있어선 안 된다"... 이 부분이 중요하다. 법원이든 국회든 항상 하던 얘기가 '동성과 이성은 다르다'는 것이었다. 자녀를 낳을 수 없으니까, 사회통념에 어긋나니까, 이런 식의 이유를 대면서 '어쨌거나 동성부부와 이성부부는 다르니까, 다르게 취급하는 것도 당연하다'는 식의 논리가 공고했다.
헌데 법원이 '다르지 않다'고 해 그 논리를 깼다. "건강보험 제도라는 제도의 목적에 맞추어서 봤을 때" 동성부부를 차별해서는 안 된다고 명시했다. 다른 제도적 차별에도 적용할 수 있는 '비빌 언덕'이 생긴 셈이다.
생활동반자법은 동성혼 대체 법안 아냐…동성혼 합법화는 '필수과제'
프레시안 : 실제로 사회 각계가 이번 판결의 파급력을 기대하고 있다. 다만 어디까지 가능할지는 우려가 남는다. 국민연금법의 경우 유족연금 수령 등의 요건으로 사실혼 관계를 요구하고 있다. 동성부부의 사실혼 관계는 이번 판결에서도 인정되지 않았다.
박한희 : 소송으로 어디까지 (문제제기가) 가능할지는 실제 케이스별로 따져봐야 알겠다. 다만 지금 법원의 논리대로만 보면,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은' 동성부부를 국민연금법 등에선 배제하는 것 또한 정당한 차별이라고 볼 수 없다.
가령 국민연금 유적수령 제도 또한 남은 사람의 생계를 보호하기 위한 사회보장권리이지 않나. 함께 살던 연금 수급자가 사망했을 경우 남겨진 배우자가 생계 능력이 없으니 이를 부양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건강보험 피부양자 제도와 거의 비슷하다.
관련 소송 중 동성부부가 제기한 소송은 아직 없지만, 형부와 처제 관계인 이들이 대법원에서 연금수령 자격을 따낸 적이 있다. 민법상 혼인(또는 사실혼)이 성립되지 않는 관계였지만 '연금의 제도적 취지를 봤을 때 인정할 수 있다'는 판결이 나왔다.
결국 중요한 건 민법상 법률에 한정되지 않고, 제도의 취지에 따라 보호관계를 넓혀나갈 수 있다는 점이다.
프레시안 :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성혼 합법화'라는 입법 과제는 분명하지 않나.
박한희 : 그렇다. 개별 판례를 하나하나 쌓는 것도 의미가 있지만, 모든 권리보장 케이스 하나하나에 대해서 매번 소송을 할 수는 없지 않나. 소송을 통해야만 권리를 보장받을 수 있는 것도 차별이다. 일단은 명백한 동성혼 합법화 입법 조치가 필요하다.
가령 개별 판례에서 '건보 피부양자, 연금까지는 해줄게, 그런데 상속권은 인정 못하겠어' 이런 식의 판결이 나온다면 어떤가. 그것도 차별이다. 상속까지 됐다고 치자, 그런데 재산분할 청구권은 인정 안 되면? 이 또한 차별이다. 결국 본질적인 차별을 해소하기 위해선, 법원이 말한대로 '공법 관계 내의 차별을 해소'하기 위해선 이성 간의 법률혼과 동등한 권리를 동성부부에게도 부여하는 게 맞다.
프레시안 : 정치권에선 동성혼 합법화 이야기보다 '생활동반자법'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동반자법 도입이 동성혼 합법화의 대안이 될 수 있을까.
박한희 : 보통 이 대목에서 오해가 조금 있다. 동성혼 합법화, 생활동반자법, 그리고 포괄적 차별금지법 등은 함께 이루어져야 하고 서로를 보완할 수 있는 관계지, 서로가 서로의 대체제가 되는 관계가 아니다.
구체적으로 보면 서로의 핵심 목표부터가 조금씩 다르다. 생활동반자법의 경우 주로 사회보장이나 조세, 주택 등 재산적 관계에 있어서 '성애적 부부관계가 아니어도, 친밀하게 살아가는 모든 사람을 넓게 보호해야 한다'는 것이 핵심이다.
즉 범위를 넓힌 다양한 가족들에게 중간 수준의 보호를 보장하자는 게 동반자법이라면, 동성혼의 경우 동성커플에게 이성커플과 완전히 동등한 수준의 권리보호를 보장하라는 게 핵심이다.
다시 말해 '생활동반자법이 있으니까 동성혼은 없어도 된다'라고 말할 수는 없다. 둘 다 있어야 한다.
프레시안 : 동성혼 합법화라는 근본적 과제가 함께 해결되지 않는다면 구체적으로 어떤 한계를 마주할 수 있나.
박한희 : 독일의 경우, 처음에 동성혼 법제화를 이루지 못하자 동반자등록법이란 걸 만들었다. 동성부부는 동반자 등록을 할 수 있고, 이성부부는 결혼을 할 수 있도록 한 거다. 그러나 실제 권리보장에 있어서의 차이가 생겼고, 결국 헌법재판소를 통해 계속 조항을 수정해 나중에는 거의 똑같은 수준의 권리보호를 이뤄냈다.
그런데 그러면 다 해결된 걸까. 아니었다. 이성부부는 '결혼'이고 동성부부는 '파트너'였다. 이 용어의 차이도 결국은 차별이었다. '권리는 똑같으니까 된 거 아닌가?' 할 게 아니라, '권리가 똑같은 데도 왜 다르게 불러야 하는가' 질문해야 했다. 실제로 독일사회는 그 질문을 수행했고, 결국 동성 결혼을 인정하기에 이른다.
'이 정도 (권리)까지는 주자'라는 방식으로 접근해선 안 된다는 것이다. 생활동반자법을 통해 동성부부에 대한 '약하고 넓은 보호'가 이뤄진다 해도, 왜 이성결혼을 통한 '더 강한 보호'를 받을 수 없는 건가 의문이 남을 수밖에 없다. 결국 나아갈 방향은 동성혼 법제화가 맞다.
차별금지법이 필요한 이유? 권리가 '재판운'에 맡겨지면 안 되니까
프레시안 : 다시 소송으로 돌아와 보자. 1심 재판부는 이성혼과 동성혼의 차이를 명시하면서 동성부부의 권리를 불인정했다. 2심 재판부가 변한 이유는 무엇이라고 보는가.
박한희 : 사실 재판장에서 저희가 주장한 내용은 1심과 2심이 다르지 않았다. 사실혼 관계를 민법에 한정해선 안 된다, 사회보장 제도의 취지에 맞춰서 살펴야 한다. 1심 때도 똑같이 주장했다. 그걸 1심 재판부는 인정 안 했고, 2심 재판부는 인정했을 뿐이다.
프레시안 : 재판부의 차이였을 뿐일까.
박한희 : 어찌보면 일종의 '재판운'이 작용하기도 했다고 본다. 2심 재판부는 트랜스젠더의 난민 권리를 인정한 적이 있는 재판부다. 성소수자 사건에 어느 정도 지식이 있고, 열려 있는 재판부라는 뜻이다. 그런 배경이 있으니 우리 주장의 핵심을 파악하고 이해할 수 있었을 것이다.
프레시안 : 씁쓸한 기분이 들기도 한다. 어떤 재판부가 걸리느냐에 따라 권리 보장이 달라질 수 있는 것 아닌가.
박한희 : 모든 재판이 그렇지만, 차별의 문제의 경우 특히 그렇다. 한국사회에선 차별 판례 자체가 그렇게 많지 않다. 장애차별금지법에 따라 장애인 차별과 관련한 판례는 많은 편이지만 다른 차별, 특히 성소수자 차별 판례는 거의 없다. 판사들도 이런 사건에 익숙지 않다. 이 문제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굉장히 낯설어해 한다. 교육이나 제도적 뒷받침이 필요한 상황이다. 포괄적 차별금지법이 그래서 필요하다.
프레시안 : 일각에선 이번 판결로인해 성소수자 권리보장과 관련한 줄소송이 이어질 것이라고도 한다. 이번에 크게 이슈가 된 건강보험 피부양자 자격 이외에, 동성혼의 부재로 벌어지는 다른 권리보장 이슈들은 어떤 것이 있나.
박한희 : 수술해야 하는데 병원에서 (혈연이나 혼인 가족이 아니라고) 수술 동의를 받아주지 않는 경우가 대표적이다. 이건 의료법이 금지하는 것도 아니고, 병원의 관행이다. 병원 입장에선 가족관계가 일종의 보증이다. 혹시 모를 상황을 염려하니 아무리 '우리가 동성부부다'라고 얘기해도 들어주질 않는다.
비슷하게 상속이나 장례 문제에 있어서도 동성부부는 가족관계를 전혀 보장받지 못한다. 가족이 있으면 연락을 오래 끊고 지낸 사이여도 동성배우자가 아닌 혈연가족에게 권리가 돌아가고, 가족이 없으면 무연고 처리된다. 남은 배우자는 내 파트너의 장례조차 치르지 못한다. 결국 법적으로 확실한 지위 보장이 있어야 이러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프레시안 : 마지막으로 개인적인 소희를 묻고 싶다.
박한희 : 소송 당사자 소성욱 씨와 배우자 김용민 씨는 나의 개인적인 친구이기도 하다. 얼굴을 드러내고 소송을 진행한다는 게, 이들에겐 정말 쉽지 않은 도전이었다. 혐오의 타깃이 돼 힘들어하기도 했다.
이들이 용기를 내지 않았다면 소송은 시작도 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들의 용기 덕분에 지금의 변화가 있다고 생각한다. 고맙다.
2년, 소송하면서 힘든 점도 많았지만 함께 싸울 수 있었기 때문에 이겨냈다. 건강보험공단은 상고를 하겠다고 밝힌 상황이다. 상고심을 가더라도 끝까지 서로 지지하면서 좋은 결과 만들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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