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장동 비리 의혹과 관련, 아들의 퇴직금 등 명목으로 50억 원을 김만배 일당으로부터 받았지만 법원에서 무죄 판결을 받은 곽상도 전 국민의힘 의원 사례를 놓고 더불어민주당 안에서 미묘한 엇갈림이 감지된다.
당 지도부는 곽 전 의원이 무죄를 받은 것은 납득할 수 없다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지만, 당 일각에서는 곽 전 의원 재판부가 '정영학 녹취록'의 증거능력을 낮게 본 것은 이재명 대표 입장에서 보면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는 시각도 나온다. "그러면 이재명도 무죄"라는 얘기다.
우상호 "그러면 이재명도 무죄"…조응천 "대장동 수사, 체인 빠져"
민주당은 곽 전 의원 판결에 대해 연일 비판을 이어갔다. 박홍근 원내대표는 10일 최고위원회 회의에서 "선택적 검찰 수사로 공정이 무너져내리고 있다"며 "곽 전 의원 무죄 판결은 (검찰이) 유죄 입증을 못 했기 때문"이라고 비판했다.
박 원내대표는 "육성 파일에서 곽 전 의원이 김만배에게 아들을 통해 돈을 달라고 요구했고 (김만배 일당은) 법 위반을 걱정하며 보너스 지급 등 시나리오까지 논의한 생생한 증거가 공개됐다"며 "(이 녹취록은) 법정에서 증거로 채택됐으나 유죄 증거로는 인정되지 않았다. 검찰의 선택적 부실수사가 법원의 방탄 판결을 이끈 것"이라고 검찰·법원을 싸잡아 비난했다.
민주당은 전날도 박 원내대표의 원내대책회의 모두발언과 대변인 논평 등을 통해 곽 전 의원 판결을 비판하는 입장을 수차례 냈다.
다만 당 내에서는 법원이 '정영학 녹취록', 즉 대장동 개발비리 의혹의 당사자 중 하나인 정영학 회계사가 김만배 씨, 남욱 변호사 및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본부장 등과의 대화를 녹음해 검찰에 제출한 녹취록의 신빙성을 낮게 본 것에 대해 일면 안도하는 분위기도 감지된다.
민주당 '검찰독재 정치탄압 대책위원회' 위원장인 박범계 의원은 이날 문화방송(MBC) 라디오 인터뷰에서 "(언론의) 분석 기사 중에 '대장동 녹취록의 신빙성을 부정했다'고 보는 기사들이 있다"며 "그렇게 치면 이재명 대표는 대장동 녹취록으로 돌아가 보면 (나온 게) 더 없는 것 아니냐. 돈 얘기 없고, 심지어 김용·정진상 등에 대한 구체적 내용도 없다"고 말했다.
민주당 비대위원장·원내대표를 역임한 중진 우상호 의원도 같은날 기독교방송(CBS) 라디오 인터뷰에서 '법원은 곽 전 의원에게 무죄를 선고하면서 정영학 녹취록만으로는 유죄를 줄 수 없다고 판시했다'는 질문을 받자 "그러면 이재명 대표도 무죄"라고 했다.
우 의원은 "이 수사가 정영학·남욱 녹취록에서 나온 '돈을 줬다고 들었다'는 진술을 가지고 시작한 것 아니냐"면서 "그렇다면 '이재명 후보가 돈을 받았다', '이재명 후보에게 돈을 건넸다고 나는 들었다'고 말한 진술들도 신빙성이 없는 것이다. 같은 녹취록인데"라고 했다.
우 의원은 "결국은 검찰이 굉장히 곤혹스러울 것"이라며 "녹취록의 증거능력을 그 자체로는 인정하지 않고, 뒷받침할 수 있는 확실한 증거가 있어야 유죄 판결을 내릴 수 있다는 것을 분명히 판사 판결로 얘기해 줬다는 것, 이것이 주목할 만한 내용"이라고 짚었다.
안민석 의원도 불교방송(BBS) 인터뷰에서 "이재명 수사 혐의의 출발점, 시작과 끝이 정영학 녹취록이지 않느냐"며 "그런 정영학 녹취록이 이번 50억 무죄 판결을 통해서 제대로 참고되지 않고 거의 무시되다시피 한 것"이라고 언급했다.
검사 출신 조응천 의원도 전날 YTN 인터뷰에서 "정영학 녹취록의 증명력이 고스란히 다 부정이 됐지 않느냐"며 "앞으로 대장동 수사에도 계속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했다. 조 의원은 "(정영학 녹취록) 이것이 정말 중요한 고리인데 이게 빠져버리면 대장동 수사가 자전거에서 체인이 빠진 것처럼 헛돌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조 의원은 이 대표에 대한 수사에 미칠 영향을 묻는 질문에 대해 "정영학 녹취록을 근거로 해서 이때까지 되어 왔던 것들, 굉장히 문제가 많다"며 "또 '유동규네' 것, 김용에게 준 것은 이 대표를 보고 준 것이라는 논리로 지금까지 접근을 해왔는데, 아들(곽병채)에게 준 것도 아버지(곽상도)한테 준 게 아니라고 하는데 그러면 김용·정진상 등은 이 대표랑 어떻게 결부를 시키느냐"고 했다.
민주당 원로인 박지원 전 국정원장도 전날 CBS 인터뷰에서 "정영학 녹취록이 지금 증거가 인정이 안 된다는 것"이라고 짚으며 "정영학 회계사는 부동산 전문가로서 대장동 일당들의 (대화를) 10년간 녹음을 했다는 거 아니냐. 그게 무효가 되는 것이다. 거기에 이재명 대표 얘기도 나온다는데 그거 아무 문제가 없는 것"이라고 했다.
법원 판결문 보니…"녹음파일 조작 없지만 '전해들은 말'이라 증거능력 없다"
실제로 지난 8일 선고된 곽 전 의원에 대한 판결문을 보면, 법원은 이른바 '정영학 녹취록'이 인위적으로 조작된 등의 정황은 없어 기록 자체의 진실성은 있다고 봤지만 타인의 범죄 혐의를 입증할 증거로서의 가치인 '증명력'은 낮다고 봤다. 전문(傳聞), 즉 남에게 들은 것을 전하거나 옮긴 진술이라는 이유에서다.
문제는 '정영학 녹취록' 전체가 주로 대장동 사업을 주도한 김만배 씨의 말에 초점이 맞춰져 있고, 김 씨의 말이 전문이기는 곽 전 의원에 대한 부분이나 이재명 대표에 대한 부분이나 마찬가지라는 점이다.
법원은 판결문에서 녹음파일 자체를 신뢰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법원이 증거조사한 녹음파일은 이 사건 USB에 저장된 녹음파일 중 이 사건 공소사실과 관련성 있는 녹음파일들을 인위적 개작 없이 그대로 복사된 사본이라고 봄이 상당하다"(판결문 72쪽)라고 판단했다.
또 이 녹음파일이 법정에서 증거로 사용될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판결문 약 10여 쪽을 할애, 각 녹취록 속 진술을 발언자별·대상자별로 분류해 조목조목 짚은 끝에 대체로 "증거능력이 있다"고 봤다. 법원이 이런 차원에서의 "증거능력이 없다"고 본 부분은 2020년 10월 30일자 녹음파일 중 유 전 본부장의 진술 등 일부였고, 이는 유 전 본부장 본인의 내용 인정이 없다는 이유였다.
그러나 법원은 해당 진술들이 그 녹음파일에 위변조 흔적이 없고 진술이 기만·강박에 의해 행해졌다고 볼 수 없는 진실한 것이기는 하지만, 피고인 본인이 아닌 제3자의 범죄혐의에 대한 증거로 사용될 수는 없다고 봤다.
법원은 예컨대 2020년 4월 4일자 녹취록 중 "병채 아버지는 돈 달라 하지. 병채 통해서. 며칠 전에도 2000만 원 (중략) 그래서 '뭘? 아버지가 뭘 달라나?' 그러니까 '아버지한테 주기로 했던 돈 어떻게 하실 건지?' 그래서 '야 인마, 한꺼번에 주면 어떡해? 한 서너 차례 잘라서 너를 통해서 줘야지. 그렇게 주면 되나"라는 김 씨의 진술에 대한 증명력 여부에 대해 이렇게 판단했다.
"이 사건 공소사실 중 '피고인 김만배가 피고인 곽상도에게 금품을 공여하기로 약속했다', '피고인 곽상도가 2020년 3월경 곽병채를 통해 피고인 김만배에게 약속된 돈을 지급해 달라고 금품 요구를 했다'는 사실을 증명하기 위한 경우에는 '원 진술의 내용인 사실'이 요증(要證)사실이므로, 피고인 김만배의 위 진술 부분은 피고인 아닌 자인 곽병채의 진술을 내용으로 하는 진술로서 전문진술에 해당한다.
그렇다면 앞서 본 녹음파일의 증거능력 인정요건인 형사소송법 313조1항에서 정한 요건뿐 아니라 형소법 316조 2항에서 정한 요건을 모두 충족해야 증거능력을 인정할 수 있다. 그런데 곽병채는 이 사건 제12·13회 공판기일에서 증언했으므로 '원 진술자가 사망, 질병, 외국거주, 소재불명, 그밖의 이에 준하는 사유로 인해 진술할 수 없는 경우'에 해당하지 않아 증거능력이 없다." (판결문 94~95쪽)
법원은 또 "피고인 김만배가 곽병채로부터 금품을 요구하는 말을 들었다는 간접사실 자체를 증명하기 위한 경우에는 원진술의 내용이 아니라 곽병채가 위와 같은 원진술을 했는지가 요증사실"이어서 이런 경우에는 "본래증거이지 전문증거가 아니어서 전문법칙이 적용되지 않고 (…) 증거능력이 있음"을 인정하면서도 "위 간접사실 자체에 대한 정황증거로 사용되는 것을 넘어 이를 원진술의 내용이나 그 진실성을 증명하는 간접사실로 사용하는 경우에는 전문증거에 해당하고, 그런 경우에는 앞서 본 바와 같은 이유로 증거능력이 없다"고 판시했다.
즉 녹취록 속 진술은 '김만배가 곽병채로부터 이런 말을 들었다'는 간접사실에 대해서는 증명력이 있지만, '곽병채가 말한 내용이 진실하다'는 점을 증명할 수는 없다는 게 법리에 따른 법원의 판단이란 얘기다. 또 진술자 본인에 대한 부분은 스스로에 대한 것이어서 증거능력이 있지만, 타인에 대해서는 그같은 효력이 없다고 판단했다.
법원은 '정영학 녹취록'에 대한 보강증거 차원인 정 회계사의 법정진술에 대해서도 "피고인 김만배로부터 '피고인 곽상도가 곽병채를 통해 약속한 돈을 달라고 했다'는 말을 들었다는 법정진술(은…) 곽병채의 진술을 내용으로 하는 김만배의 진술을 내용으로 하는 정영학의 진술로서 재(再)전문진술에 해당해 증거능력이 없다"고 물리쳤다.
이같은 진술들을 증거로서 배척하고 "법원이 적법하게 채택해 조사한 증거를 종합해 인정할 수 있는 사실 내지 사정을 종합"하면, 결국 "'곽병채를 통해 피고인 곽상도에게 50억을 지급할 것'이라는 취지의 피고인 김만배의 발언은 신빙성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는 게 법원이 내린 결론이고, 그 결과가 곽 전 의원에 대한 무죄 판결이다.
법조계 안팎에서는 이같은 판단이 이 대표에 대한 수사·기소, 나아가 기소가 이뤄질 경우 재판에 이르는 과정 전반에 미칠 영향을 눈여겨보고 있다. 특히 곽 전 의원 사건을 담당한 재판부와 이 대표 등의 대장동 비리 의혹 사건들 담당한 재판부는 동일하다는 점도 주목의 대상이다.
일단 검찰에서는 "재판부가 '정영학 녹취록' 자체에 대한 증거능력을 부정한 게 아니라 일부 내용에 대해 증거가 부족하다고 보는 것"(서울중앙지검 관계자)이라며 큰 의미가 없다는 반응이 나왔다.
법조인 출신 민주당 정치인들 가운데도 '법원이 녹취록 자체를 부정한 게 아니라 그 내용 안에서 곽 전 의원의 유죄를 입증할 내용이 부족했던 것뿐', '법원이 김만배 진술의 신빙성을 전부 부인한다는 취지가 아니어서 이 대표 사건과는 별개'라는 조심스러운 의견도 있다.
반면 민변 소속인 김남근 변호사는 이날 한국방송(KBS) 라디오 인터뷰에서 "(이 대표 사건에) 직접 영향이 있을 거라고 보이지는 않는다"면서도 "다만 법원이 '정영학 녹취록'에 대해서는 서로 이익분배 관계에서 나온 것이기 때문에 그것만 가지고는 신뢰하기 어렵다는 설시를 한 부분도 있어서, 그런 부분들은 이 대표가 만약 재판을 받게 된다면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했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