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희대학교는 지난 2011년 후마니타스칼리지를 설립하고, 3학점 교양 필수과목으로 '세계와 시민'을 운영하고 있다. '세계와 시민'은 매 학기 25명의 학생을 대상으로 100개의 강좌로 진행된다. 학생들은 오늘날 우리 사회의 중요한 이슈를 주제로 선정해 한 학기 동안 해당 주제를 토론하고 이를 연구해 동료에게 조사 결과를 소개하는 학생 주도의 공동 프로젝트(Global Citizen Project, GCP)를 수행한다. 수업에서 다뤄지는 주제는 성소수자 문제, 동물권, 플랫폼노동, 기후변화 등 오늘날 언론에서도 뜨겁게 다뤄지는 이슈들이다. 해당 주제들을 다루면서 학생들은 글로컬 차원에서 새롭게 구성되는 시민적 삶의 존재 조건을 이해하고, 세계시민으로서의 책임감 있는 삶의 자세를 다진다. 청년으로서 첫 걸음을 떼는 학생이 수업의 틀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순간을 기록하는 수업인 셈이다. <프레시안>은 지난해에 진행한 '세계와 시민' 수업 프로젝트 중 10개를 추려 수강생이 직접 작성한 원고를 소개한다. 편집자.
플랫폼 노동자를 위한 쉼터는?
'플랫폼 노동'은 4차 산업혁명을 통한 정보 통신 기술의 발달과 함께 빠르게 성장했으며 최근 코로나 19로 인하여 더욱 확산이 가속화되었다. 플랫폼 노동자 수는 점점 늘어간다. 우리에게 익숙한 배달 뿐만 아니라 대리기사, 소프트웨어 개발자 등 다양한 직종이 플랫폼 노동에 포함될 수 있다. 우리, 그리고 미래세대가 어떤 직업에 종사하든 플랫폼 노동자로서 살아갈 확률이 매우 크다. 학생으로서 플랫폼 노동에 대한 관심이 필수적이라고 생각했다. 이는 우리 프로젝트 진행의 가장 큰 동기이자 시작점이었다.
활동 초반 우리는 플랫폼 노동과 관련한 다양한 논문과 기사 자료 등을 찾아보며 플랫폼 노동 전반을 더욱 자세히 파악하고 문제의식을 심화했다. 전통적 노동 형태에 기초한 법과 제도들은 빠르게 변화하는 노동 시스템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했고 그로 인해 다양한 갈등 상황이 발생했다. 플랫폼 노동자들은 노동자성을 부인당하고 안정적인 임금, 안전, 사회적 보장 등을 제대로 누리지 못한 채 불안정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 이러한 현실은 세계시민으로서 살아갈 우리, 그리고 미래세대가 바람직한 노동 환경이 마련된 세상에서 살아가기 위해 반드시 해결해야 할 과제라고 생각했다.
먼저, 플랫폼 노동과 관련하여 시민들의 인식을 확인하기 위해 설문조사를 진행했다. 그 결과는 우리의 예상보다 더 심각했다. 플랫폼 노동자들이 그들의 권리를 보호받지 못한다는 사실에 관심이 있느냐는 질문에 "아니요"라는 답변이 절반 이상이었다. 그 이유로는 '플랫폼 노동 자체를 몰라서'가 약 80% 정도의 비율로 가장 컸다. 이러한 결과를 통해 사람들의 관심을 이끌고 인식을 바꾸려는 노력 없이는 궁극적인 변화를 일으키기 어려울 것이라고 느꼈다. 따라서 우리는 플랫폼 노동의 현실을 ‘알리는 것’에 초점을 맞춰 활동을 진행했다. 플랫폼 노동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우리에게 익숙한 배달 노동을 중점으로 문제 현실을 파악, 고발하며 노동 현실의 개선을 위해 기여하고자 했다.
우리는 배달 노동자 조합인 '라이더 유니온'의 박정훈 위원장과 진행한 인터뷰를 통해 현장의 목소리를 생생하게 들을 수 있었다. 조합 활동 내용 관련 질문에 박 위원장은 "배달 노동자들의 권익 보호를 위해 결성된 라이더 유니온은 라이더 보호법 제정을 위한 서명운동과 배달 플랫폼 기업인 쿠팡이츠와 교섭을 진행 중이다"라고 답했다. 또한 라이더가 겪고 있는 가장 큰 문제는 "배달료나 배차 방식이 투명하지 않은 것"이라며 "안전배달료 제도화가 필요하다"고 박 위원장은 응답했다. 아울러 "알고리즘 협상권과 정보 공개를 요구하고 있다"고도 말했다. 조합 활동을 통해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에 대한 질문에는 "산재 제도가 많이 개선되었고 사회적으로 기업과 협상의 구조를 만들어간 것이 가장 큰 변화"라고 답했다. 인터뷰를 마치며 박정훈 위원장은 우리에게 배달주문 시 조합 가입을 권해주길 부탁했다.
인터뷰 이후 조원들 각자 몇 차례 배달 기사님에게 라이더 유니온 가입을 권유했다. 배달 기사님에게 용기를 내서 말을 붙이는 것 자체가 쉽지 않았다. 우리가 처음 말문을 열었을 때 갑작스러운 질문에 당황스러운 기색을 보이는 분들이 많았다. 라이더 유니온 가입 권유가 계획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아쉬웠다. 이미 가입했다고 하시는 분들은 생각보다 많지 않았다. 라이더 유니온을 비롯하여 플랫폼 노동자 관련 법률과 권리 보호 제도 등에 대한 정보가 실제 플랫폼 노동자들에게 더욱 확대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차선책으로 라이더 유니온에서 진행하는 라이더 보호법 제정을 위한 서명운동에 조원 모두 참여했다. 학우들에게도 동참을 권유했다. 우리의 노력이 라이더분들의 안전한 노동 환경과 정당한 임금보장을 위한 움직임에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길 바란다.
한편, 우리는 이동노동자 쉼터를 방문하여 노동자들이 실제로 사용하는 곳을 직접 경험해보기도 했다. 방문을 위해 여러 지역의 이동노동자 쉼터를 찾아봤는데 대체로 서울과 경기권에 집중되어 있었다. 많은 노동인구에 비해 그 수가 턱없이 부족하다고 생각했다. 우리가 방문했던 쉼터 대부분 건물 2층 이상의 높이에 위치하여 접근성이 떨어져 보였고 이동노동자를 위한 공간이라고 하기에는 주차공간이 너무나도 협소했다. 이러한 점에서 우리는 큰 아쉬움을 느꼈다. 접근성이 좋은 위치 및 넓은 주차공간 확보가 쉼터 설치 과정에서 가장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할 요소라고 생각했다.
한편, 쉼터에 휴식을 취하는 이동노동자 분들은 몇 없었다. 심지어 텅 비어있는 곳도 있었다. 운영 시간이 한정적이었고 배달이 더욱 많은 주말에 오히려 운영하지 않는 곳도 있었다. 배달이라는 노동 특성상 시설 운영 시간을 24시간으로 늘리고 쉼터 홍보가 더욱 활발히 이루어질 필요가 있어 보였다. 특히, 주요 상권이 위치한 지역에 이동형 쉼터나 야외 쉼터 등을 확대 운영하여 접근성과 편의성을 높이고 이동노동자들이 쉽게 방문하고 이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노동자들의 휴식권과 건강권을 보장하기 위한 쉼터 설치가 실효성 없는 정책에 머물지 않도록 실질적인 변화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현실을 알리기 위해 플랫폼 노동의 개념, 유형, 관련법과 제도, 사건 사고 등의 내용이 담긴 카드뉴스와 영상을 제작하여 사람들에게 플랫폼 노동 관련 정보를 전달했다. 제작물을 홍보하는 과정에서 프로젝트 목적을 다시 한 번 설명하며 더욱 관심을 유도할 수 있었다. 특히 카드뉴스는 유학생 친구들을 고려하여 영어, 중국어 버전으로도 추가 제작하여 배포했다. 보통 카드뉴스를 한국어로만 제작하는 경우가 많은데 영어와 중국어 버전까지 제작한 것에 신선하다는 반응을 확인할 수 있었다. 유학생 친구들과의 소통을 통해 외국 사례를 듣고 한국의 플랫폼 노동 현실도 공유하며 플랫폼 노동자의 노동 환경 개선은 한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가 함께 노력해야 할 문제임을 깨달았다.
위의 활동들을 통해 시민의 플랫폼 노동 관련 인식을 심화하고 관심을 불러일으켜 플랫폼 노동에 대한 사회적 인식 변화에 기여했다고 자평한다.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접한 플랫폼 노동 관련 언론 보도는 대체로 제도의 단점을 지적하고 있었다. 많은 정치인들은 관련 정책을 내세우고, 이미 많은 법안이 발의되었으나 이동노동자 쉼터의 모습처럼 그 효력은 미비했다. 실질적으로는 플랫폼 노동자의 현실 개선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플랫폼 노동의 범위 설정 자체도 어려워 관련 종사자 모두를 위한 대책을 마련하는 것 자체가 쉽지 않다는 점도 깨달았다. 어떻게 하면 더 많은 노동자들이 그들의 권리를 보호받을 수 있을지 앞으로도 더욱 고민해 나가야겠다고 다짐했다.
다른 한편으로는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만난 분들을 통해 무작정 '보호받지 못하는 존재'라고만 단정했던 플랫폼 노동자들이 자신의 권리를 찾기 위해 생각보다 훨씬 활발히 움직인다고 느끼기도 했다. 프로젝트 진행 중에도 법은 변화하고, 개선되고 있었다. 그래서 플랫폼 노동과 관련된 전반적인 사회적 분위기는 앞으로 더욱 긍정적으로 변화할 것이라고 기대할 수 있었다. 그러기 위해선 무엇보다 플랫폼 노동자들이 자신들의 목소리를 더 크게 낼 수 있는 창구를 사회적으로 많이 마련해야 할 것이다.
그동안 우리는 편리함과 빠른 속도에 중독되어 배달 어플을 수없이 많이 사용했다. 그 이면에 존재한 플랫폼 노동자들의 고난에는 너무나 무관심했던 것이 아닌가를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반성하게 되었다. 뿌듯한 점을 꼽자면 그런 우리가 조금이나마 변화했다는 것이다. 뉴스, 라디오 등 다양한 매체는 물론 대학 수업 중에도 노동과 관련한 내용에 더욱 집중하게 되었다. 배달 물품을 받으며 "감사합니다"라는 말을 더 크게 하게 되었다. 가끔씩 택시를 탈 때, 기사님들이 털어놓는 고단함마저도 경청하며 듣게 되었다. 한 학기 동안 '보람 3조'라는 이름에 걸맞게 보람이 느껴지는 활동이었다. 사회 전반의 변화를 이끄는 것이 우리의 최종 목표이지만 그 과정에서 우리 스스로가 먼저 그리고 가장 많이 변화했다는 점이 무엇보다 큰 출발점이 될 것이라고 믿는다.
*보람3조: 경희대 학생 조은민, 임다예, 박지원, 유경민, 윤형빈, 조자현 / 기사 작성: 조은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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