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만에 찾은 광주 화정동 화정아이파크 공사장 일대는 적막했다. 지난해 광주 붕괴 참사 당시 인근 거리를 메웠던 천막들이 모두 철거된 지 반년이다. 화정아이파크 피해대책위원회 상인들이 HDC현대산업개발 측의 책임회피를 주장하며 지난해 6월까지 천막을 지켰다. 지난 10일 현장엔 '붕괴피해 방치' 등이 적혀있는 현수막만 남아있었다.
지난해 1월 11일, HDC현대산업개발이 이곳에서 시공 중이던 화정아이파크 201동 아파트가 붕괴했다. 39층 아파트의 38층 상층부가 무너져 내리며 노동자 6명이 사망했다. 붕괴현장 반경 79m 내의 일대는 '재난지역'이 돼 원천 봉쇄됐다. 화정아이파크 피해대책위원회 상인들이 입주한 금호하이빌 문구완구종합도매상가도 그 중 일부였다.
당시 경찰 통제로 진입할 수 없었던 상가 건물을 찾았다. 부서진 입구 앞 계단이 눈에 들어왔다. "그 때 부서지고 나서는 계속 그래요." 지난해 1월 이후 1년 만에 <프레시안>과 다시 만난 피해상인 김남필 씨가 설명했다. (관련기사 ☞ 현산? "2년 6개월 동안 봐왔어요, 신뢰할 수가 없죠")
붕괴 당시 건물 잔해가 상가 쪽으로 떨어지면서, 상가 주변에선 "그야말로 폭발"이 일어났다. 남필 씨는 이후 "상가 건물에서 물이 새거나 지반이 움푹 들어가는 등" 건물과 주변이 급속도로 쇠약해졌다고 말했다. 상인들은 "붕괴 영향으로 건물 지반 자체가 약해진 것 같다"고 주장하지만, 현산은 건물 노후화를 주장 중이다. "보상 인과관계를 가리기가 쉽지 않은 상태"다.
남필 씨를 따라 지하상가로 들어섰다. 상가 정문 왼편으로 난 지하층 출입구, 1년 전 그가 묘사한 "유일한 탈출구"였다. 당시 전기가 나간 암흑 속에서 "빛이 보이는 유일한 통로"가 이곳이었다. 계단을 오르는 순간까지도 '이 선택이 맞을까' 가슴이 뛰었다고 그는 회상했다.
"상인들은 협의 대상조차 못 돼" … 답답함 토로하며 법률 직접 공부
1년 전의 대피로를 거꾸로 따라 내려가 남필 씨의 사무실을 찾았다. 책상 위로 서류더미가 가득했다. 대부분이 각종 법률을 정리해 놓은 것들이다. 산업안전보건법, 대기환경보전법, 공무원법, 형사소송법 등 각종 법조항 위에는 남필 씨가 남겨 논 밑줄과 메모가 빼곡했다. 참사 이후 이어진 피해상황을 두고 상인들은 "답답해서" 직접 공부를 시작했다.
서류더미 맨 위로 '대기환경보전법'이라는 글자가 눈에 띄었다. 상인들은 붕괴 이후 아파트 철거를 위한 현산 측 안정화 작업이 이어지면서 "발암물질로 알려진 콘크리트 가루가 눈처럼 쏟아지고 있다"고 주장한다. 공사장 인근엔 상인들이 붙여놓은, '먼지로 하얗게 뒤덮인' 차량 사진들이 군데군데 붙어있다.
참사 당시 만났던 남필 씨는 같은 문제로 "상인들은 사고 이전부터 2년 6개월간 민원 등 이의를 제기해왔다"고 밝힌 바 있다. 실제로 지난해 1월 당시 광주 서구는 아이파크 공사 현장과 관련하여 386건의 민원을 접수했다고 발표했다. 당시 현산 측이 진 '책임'은 민원 14건에 관해 납부한 2260만 원 상당의 과태료뿐이었다.
남필 씨는 지난해 5월부터 안정화 작업이 시작되면서도 "상인들은 수백 번의 민원을 넣었다"고 했다. 그러나 '재붕괴를 막기 위한 안정화'란 작업 명분은 강력했다. 민원이 쇄도하면 작업이 잠시 중단됐지만 얼마 있으면 비산먼지가 다시 쏟아졌다. "잠깐 멈추고 다시 날리고 잠깐 멈추고 다시 날리는 날들이 계속됐다."
철거작업에 활용되는 다이아몬드 와이어 쏘(DWS) 공법이 다량의 비산먼지를 발생시킨다는 지적에, 작업 초기 현산과 서구청은 현장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코어드릴 공법을 적용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남필 씨에 따르면 구청은 "당사자인 상인들을 배제한 채 슬그머니" DWS 공법을 다시 승인했다. "발표도 듣지 못한 공법 변경"이었다.
남필 씨는 갑작스레 증가한 소음과 비산먼지를 의아하게 여긴 상인들이 직접 "옥상에 올라가 작업현장을 확인한 결과, 절단면이 지나치게 깔끔한 것을 확인"했다고 했다. DWS 공법의 특징이었다. 직접 찾은 증거를 들고 구청으로 가자 그제야 "(현산에서) DWS 공법 승인 요청이 들어왔고, 구청이 승인했다"라는 말을 들었다. "작업방식에 영향 받을 상인들이 작업방식 협의에 끼지 조차 못한 것이 말이 되느냐"며 그는 울분을 토로했다. 책상에 '공무원법'이 놓여있는 이유다.
"상인들은 보상보다 일상회복이 더 중요" … '현산의 울타리' 바깥에도 피해자가 있다
소음이나 먼지 등으로 인한 건설현장 주변의 민원은 흔하다면 흔한 일이다. 다만 남필 씨는 현재 상인들의 항의가 "그런 당연시되는 피해를 고려하고 제기하는 민원"이라고 말한다. "비산먼지는 항상 떨어지고 있는데, 그 중 유독 심한 부분들에 대해서라도 대책을 마련해달라는 것"이라는 주장이다.
특히 상인들은 "붕괴로 인한 피해자 중 하나인 인근 상인들을 위한 '공간' 자체가 없다"는 점을 가장 큰 문제로 꼽고 있다. 비유이기도 하고 있는 그대로의 말이기도 하다. 참사 수습 주체인 현산과 서구청은 물론 정치권과 언론 등의 이목이 모두 희생자 유가족 및 입주예정자들에게 몰리면서 "상인들은 모든 과정에서 배제되고 있다"는 것이 이들의 입장이다. 지난해 6월 대책위 천막이 철거되면서 물리적인 공간도 잃었다. 공사장 앞에서 시위를 하던 남필 씨는 업무방해 죄로 신고 당해 검찰에 송치된 상태다. 남필 씨에 따르면 현산 측은 그에게 "송치 없이 (사건을) 마감하려면 다시는 시위하지 마라"고 말하기도 했다.
앞서 지난해 2월 '광주 붕괴아파트 피해자 가족협의회(유가족협의회)'는 현산과의 피해 보상 합의를 마치고 "HDC현산을 용서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당시 정몽규 HDC 회장은 유족들 요구에 따라 직접 유족들을 만나 합의를 진행했다. 이후 지난해 10월엔 현산이 화정아이파크 입주예정자들에게 1억 원가량의 입주 지체보상금을 지급하기로 하면서 '화정아이파크 입주예정자 협의체'와 현산 사이 합의도 마무리됐다.
상인들은 달랐다. 피해대책위 홍석선 위원장은 "상인들에겐 피해보상보다도 '일상회복'이 시급하다"라며 다른 피해자들과 상인들 간에 '피해양상의 차이'가 있음을 시사했다. "제대로 된 장사를 할 수 없게 만드는" 비산먼지 문제가 상인들에겐 무엇보다 중요했다. 대책위는 안정화 작업이 시작된 지난해 5월부터 민원을 제기해 3회의 공사중지 처분을 받아냈다. 그러나 그 세 번 모두 상인들의 참여 없이 공사가 재개됐다.
홍 위원장은 "마지막으로 공사가 재개된 게 지난해 12월 말인데, 당시 현산 측이 공사재개를 위한 (비산먼지 문제) '대책'으로 내놓은 게 현장에 천을 한 장 더 덧댄 것뿐"이라며 "그 이후 1주일 동안 상가엔 또 비산먼지가 가득했다"고 지적했다. 공사중지를 위한 민원을 위해 "상인들은 장사도 못하고 뛰어다니며 증거를 수집"하는데, 막상 공사재개 과정에선 "상인들이 전혀 참여하지 못했다." 그렇게 상황은 반복됐다.
남필 씨는 "현산의 울타리 안에 있는 피해자들은 거의 얘기가 끝나면서. 광주 붕괴참사 자체가 '끝난 얘기'가 되어가는 것 같다. 그런데 그 울타리 밖에도 아직 피해자들이 있다"라며 "상인들은 솔직히 소외감이 든다"고 털어놨다.
1년 전 <프레시안>과의 인터뷰에선 "무엇보다도 실종자 유가족의 아픔이 먼저"라며 말을 아끼던 그였다. 11일 '광주 화정아이파크 붕괴참사 1주기' 추모제를 위해 "유족 측에서 '현장정리'를 부탁했다"는 말이 돌면서는 "그분들의 마음, 이해하면서도 섭섭한 마음이 들었다." (관련기사 ☞ '참사 사각지대' 갇힌 상인들…"우릴 가해자로 바꾸려 해요")
특히 그는 "현산 측의 '현장정리' 작업이 시작된 이후 비산먼지가 증가했다"며 분노했다. 대체 무슨 일인가 물었더니 현산 측으로부터 "(추모제에) 정치인들도 오고 하니 깔끔하게 단도리 해야 했다"는 말을 들었다는 것이다. "높으신 정치인들이 온다고 깔끔하게 보이고 싶다는 말을 듣고 이곳이 무슨 군대인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며 "대체 당일에 누가 와서 그 ‘깔끔함’에 만족하는지 내가 똑똑히 지켜 볼 것"이라고도 했다.
"1년 동안 변한 것? 하나도 없다" … 상인들은 '끝없는 전쟁'을 말한다
1년 간 바뀐 게 없느냐는 질문에 남필 씨는 단호히 "바뀐 건 하나도 없다"고 대답했다. 다만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물으며 1년 전 내어놓던 부정적인 예상만은 적중했다.
참사 당시 남필 씨의 점포 안에는 1억 원가량의 재고들이 남아있었다. 꽃 도매상인 남필 씨의 재고들은 대부분이 생화였다. 지난해 "1~5월 대목시즌"은 결국 날려버렸다. 1년을 돌아 대목은 다시 왔지만 매출은 "이미 반 토막의 반 토막"이 났다. 당시 걱정했던 "거래처들과의 관계"도 대부분 끊어졌다. 많은 직원이 남필 씨의 점포를 떠났고, 입주한 동료 사장들도 몇몇 떠났다. 상가 곳곳엔 어느 순간부터 '임대' 공고가 늘어났다.
1년 전 그는 "막막한 생계를 말하기에도 민망한 상황"이라 말했지만, 지금 '생계'란 단어는 그와 동료들을 조롱하는 말로 돌아왔다. '상인들이 보상을 더 받기 위해 떼를 쓰면서, 유가족 추모제나 빠른 공사 진행을 방해하고 있다'라는 일부 여론 때문이다. "돈 때문에 떼를 쓰고 있다는 댓글을 많이 본다"라며 입을 뗀 남필 씨는 "정말 아무것도 안 받았다. 먼지가 너무 심해서 세차비용 한 번 받았다. 세차 한 번 한 게 다다"라며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다.
지난해 남필 씨는 "끝없는 전쟁 같다"라며 참사 10일째의 심경을 밝혔다. 참사 1년째인 이날도 그는 같은 말을 했다. 1년 전 그가 남긴 말과 이날의 말을 아래로 함께 전한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