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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해자는 간데없고 피해자끼리 모여 서로 미안해하는 상황이 됐다"

[붕괴 참사 열흘 ①] 광주 화정 아이파크 2단지 인근에서 만난 시민들

지난 11일, 오후 3시 46분께 HDC현대산업개발이 시공하는 광주 '화정 아이파크' 신축 현장에서 201동 건물 23~38층, 총 16개층 구간 외벽이 무너졌다. 총 39층 규모 건물의 상층부에서 콘크리트 타설 작업 중 붕괴가 일어난 것이다. 현재까지는 콘크리트가 미처 마르기 전에 거푸집을 빼고 다음 공정을 진행하다가 이 같은 비극이 발생한 것으로 추측된다. 이 참사로 5명의 현장 노동자가 실종됐고, 한 명이 시신으로 발견됐다. 참사는 아직 진행 중인 셈이다. <프레시안>에서는 참사가 일어난 현장에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다. 

대기업 HDC현대산업개발이 짓고 있던 아파트 201동 건물 23층에서 38층까지 16개 층 외벽이 무너졌다. 광주 최고가 분양액(전용면적 84제곱미터 4억 8600만 원~ 5억6700만 원)을 기록한 화정 아이파크 2단지 공사현장에서 일어난 일이었다.

직접 가보면, 이곳이 광주 최고 분양가를 기록한 이유를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대기업이 지은 '브랜드 아파트'인데다 입지도 좋다. 바로 옆에는 버스터미널과 신세계백화점, 이마트가 줄지어 서있다. 신도심인 상무지구에 있는 광주시청까지는 차로 10분 거리다.

입지가 좋은 만큼 유동인구도 많다. 인근 도로에는 차량이 쉴 새 없이 오간다. 그만큼 많은 시민이 붕괴 현장을 보고 있다는 뜻이다. 참사 열흘째인 21일, 광주송정역에서 화정 아이파크 2단지로 가는 택시에서 만난 기사 용태우 씨도 그 중 한명이다.

"이건 있을 수가 없는 일이죠"

붕괴 소식을 듣고 어떤 생각을 했냐는 질문에 한참 말을 고르던 용 씨가 꺼낸 첫 마디다. 건축을 조금만 알면 콘크리트를 충분히 굳혀야 한다는 사실을 알 텐데, 대기업이라는 현대산업개발이, 그것도 불과 반년 전 학동 철거현장 참사를 일으켜놓고, 또 다시 기본도 지키지 않은 채 건물을 짓고 있었다는 것을 용 씨는 이해하기 어렵다.

이해하기 어려운 만큼 슬픔은 깊고, 분노도 크다. 용 씨는 "사람 목숨을 뭐로 아는지 모르겠다"며 "사람이 기계라 다시 만들 수 있는 것도 아니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정몽규 HDC현대산업개발 회장이 지난 17일, 별다른 피해자 지원 대책도 없이 도망치듯 회장 직만 내려놓은 데 대해서도 분노했다.

택시가 붕괴 현장 근처에 다다르자 높이 솟은 화정 아이파크 2단지가 보였다. 이 건물의 최고 높이는 136미터에 이른다. 붕괴 최하층인 23층까지만도 80미터 가량이다. 그 사이 어지러이 널린 잔해 사이에서 1명의 사망자가 발견됐다. 5명의 실종자도 그곳에 있을 확률이 높다.

▲ 건물 외벽이 무너지 광주 화정 아이파크 2단지. ⓒ프레시안(한예섭)

"가해자는 간데없이 피해자끼리 모여 서로 미안해하는 상황이 됐디"

붕괴 현장에 도착하자 가장 먼저 눈에 띈 것은 10동의 천막이었다. 붕괴 장소와 가장 가깝게 세워진 두 동의 천막에는 실종자 가족이 지내고 있었다. 그 옆에는 광주 서구청이 세운 중앙사고수습본부, 사고 이후 대피령이 내려진 하이빌상가 상인들이 만든 대책위원회(이하 상가대책위), 광주 서구자원봉사센터가 운영하는 현장봉사지원단(이하 봉사단), 심리상담버스와 급식소를 연 대한적십자사가 길가 면에 투명한 비닐을 둘러치고 각기 다른 천막을 세워뒀다.

천막과 주변을 오가며 시민들을 만났다. 그들은 하나같이 실종자 가족을 가장 우선으로 생각하며, 가해자는 간데없이 시민과 피해자가 모여 서로 미안해하고 있는 상황에 대한 답답함과 분노를 표했다.

상가대책위 천막에서 만난 김남필 씨는 "실종자 가족들이 제일 마음 아픈 상황인데도 대화해보면 다 같은 피해자라고 우리를 이해해주신다"며 "막상 가해자들은 아무 연락도 없는 상황에서 피해자끼리 사과하는 그런 상황이 됐다"고 안타까워했다.

붕괴 현장을 찾는 사람들에게 먹을 것과 쉴 곳을 제공하는 봉사단에서 활동하는 김영숙 씨(가명)는 "잔해물을 치우고 발굴작업을 하고 해야 하는데 우리는 그걸 지켜보고 있을 수밖에 없는 입장"이라며 "가족들도 이제나 저제가 기다리고 계시는 분들이어서 정말 안타깝다. 우리가 뭘 더 해드리고 싶은데 해줄 수 있는 게 없다는 게 너무 힘들다"고 말했다.

사고 이후 주로 주변 카페에서 지낸다는 화정 아이파크 2단지 건설현장 타워크레인 기사 박성호 씨(가명)는 "(사고를 당한 분들은) 그날 저녁에도 뵙고 그 다음날도 뵀던 분들"이라며 "실종자 중에는 원래 알던 사람의 가족도 있어 더욱더 마음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이어 "30년 동안 건설현장에서 일했지만 이런 사고는 경험한 적이 없다"며 "일대가 난장판이 되고 수습본부가 차려지고 대표(정몽규 HDC현대산업개발 회장)가 나와서 제대로 대책도 내지 않고 사과하는 모습을 보며 뭐라 말할 수 없이 참담했다"고 했다.

이번 사고로 마음에 상처를 입은 이는 천막과 인근에서 지내는 이들만은 아니다. 심리상담버스를 운영하는 대한적십자사의 직원 성주연 씨는 "현재까지 90여 건의 심리 상담이 접수됐다"며 "사건을 목격했거나 소리를 들은 주민도 심리상담버스를 많이 찾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심리상담센터를 찾는 이들의 증상에 대해 "큰 소리가 나면 깜짝 놀란다거나 저녁에 악몽을 꾼다거나 수면이 힘들다고 호소하는 분들이 많다"고 설명한 뒤 "재난의 직간접 피해자는 누구나 무료로 상담을 받을 수 있으니 많은 분이 찾아주시면 좋겠다"는 바람을 표했다.

▲ 광주 화정 아이파크 2단지 붕괴 현장 주변 천막. ⓒ프레시안(한예섭)

▲ 광주 화정 아이파크 2단지 붕괴 현장 인근에 달린 노란 리본. ⓒ프레시안(한예섭)

붕괴 현장 인근 노란리본에 담긴 실종자 가족과 시민들의 마음

취재를 마치고 나오는 길, 붕괴 현장 인근 펜스에 묶인 노란 리본에 적힌 문구를 들여다봤다. 가장 크게 마음을 울리는 건 실종자 가족이 남긴 듯한 문구들이었다.

"막둥아. 뭐하고 있냐. 가족들이 너가 빨리 오기를 기다리고 있는데. 보고 싶다. 동생아."

"저의 새해 소원은 작은 아빠가 어서 빨리 가족들의 따뜻한 품으로 돌아오는 거예요."

이들을 지켜주기라도 하듯 주변에는 화정 아이파크 2단지 붕괴 참사에 슬퍼하는 시민들의 마음이 담긴 훨씬 많은 수의 노란 리본이 달려있었다.

"무사히 돌아와 주세요.", "조금 더 버텨주세요.", "많이 추워도 많이 아파도 손을 놓지 말아요.", "기다리고 있어요,", "건설인의 한 사람으로서 미안합니다. "해줄 수 있는 게 없어서 미안합니다. 우리 곁으로 빨리 돌아오길 기도합니다."

한겨울 바람에 날리던 그 노란 리본들은 화정 아이파크 2단지 참사로 슬퍼하는 실종자 가족과 각자의 어려움을 안고도 이들 곁을 지키는 시민들을 닮아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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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용락

내 집은 아니어도 되니 이사 걱정 없이 살 수 있는 집, 잘릴 걱정하지 않아도 되고 충분한 문화생활을 할 수 있는 임금과 여가를 보장하는 직장, 아니라고 생각하는 일에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나, 모든 사람이 이 정도쯤이야 쉽게 이루고 사는 세상을 꿈꿉니다.

한예섭

몰랐던 말들을 듣고 싶어 기자가 됐습니다. 조금이라도 덜 비겁하고, 조금이라도 더 늠름한 글을 써보고자 합니다. 현상을 넘어 맥락을 찾겠습니다. 자세히 보고 오래 생각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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