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이 19일 비상대책위원회에서 차기 당 대표 선출을 위한 전당대회 룰을 현행 '당원 투표 70%, 여론조사 30%'에서 '당원 투표 100%'로 바꾸고, 당 대표 선거에 결선투표제를 도입하는 작업을 추진하기로 의결했다. '윤심' 당권주자를 차기 당 대표로 만들기 위한 밑작업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는 관측이 나온다.
정진석 비대위원장은 이날 비대위 회의가 끝난 뒤 기자회견을 열어 "오늘 국민의힘 비대위 전체회의에서 당헌 개정안 및 당 대표·최고위원 선출 규정 개정안을 비대위원 만장일치로 의결해 상임전국위원회에 회부하기로 했다"며 "개정안의 핵심은 100% 당원 선거인단 투표로 당 지도부를 선출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정 위원장은 "또한 당원들의 총의를 확인하고 당 대표의 대표성을 제고하기 위해 결선투표제를 도입하는 안을 의결했다"며 "각종 당내 여론 경선조사는 국민의힘 지지자와 지지 정당이 없는 사람을 대상으로 실시하기로 했다. 이른바 역선택 방지 조항을 의무화한 것"이라고도 말했다.
'당원 100% 룰 개정'의 이유에 대해 정 위원장은 "비대위는 정당 민주주의의 원칙을 분명히 하는 게 중요하다는 결론에 이르렀다"며 "당 대표는 당원이 뽑는 것이다. 정당은 이념과 철학을 같이 하는 사람들이 정권 획득과 성공적 국정 운영을 하기 위해 모인 집합체이고, 이념·철학·목표가 같은 당원들이 당 대표를 뽑은 것은 당연하다"고 했다.
정 위원장은 이어 "여론조사는 투표를 대체할 수 없다. 투표는 자발적·적극적 행위인데 여론조사는 조사단의 질문에 응답하는 일시적·소극적 행위"라며 "우리 당 책임 당원이 80만 명이 됐다. 지역별 당원 구성 비율도 영남과 수도권이 비슷해졌다. 국민의힘은 이제 명실상부한 국민정당이다. 이런 변화와 시대정신에 부응하고 집권여당의 단결과 전진을 위해 결단을 내려야 할 때"라고 했다.
'당원 민주주의를 강조했는데 전당대회 룰도 전 당원의 의견을 물어 결정했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질문에 정 위원장은 "시간을 갖고 당원과 소속 의원의 의결을 경청하고 의견 수렴하는 과정을 충분히 거쳤다. 거기에서 압도적인 의견을 확인하고 결정한 것"이라고 답했다.
국민의힘은 당헌에 규정된 절차에 따라 오는 20일 상임전국위원회, 23일 전국위원회와 상임전국위원회를 소집해 전당대회 룰 개정 작업을 끝낼 계획이다. 이어 12월 마지막 주 전당대회선거관리위원회과 전당대회준비위원회가 발족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와 관련 박정하 수석대변인은 회견 뒤 기자들과 만나 "3월 초 전당대회를 가정하면 1월 초쯤에는 모든 준비가 끝나서 후보 등록이 시작돼야 한다"고 말했다.
정치권에서는 국민의힘 전당대회가 당원 투표 100%로 치러질 경우 '윤심' 당권주자의 당선 가능성이 높아질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당 대표 결선투표제 역시, 결과적으로 '친윤 대 비윤' 주자 간 1대1 대결이 치러질 경우 비윤계 주자를 최종 단계에서 걸러내는 장치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전당대회 룰을 놓고 당 내에서는 이견이 이어지고 있다. 비윤계 당권주자인 유승민 전 의원, 범친윤계 당권주자로 분류되지만 친윤계 핵심 그룹과는 거리가 있는 것으로 평가받는 안철수·윤상현 의원, 나경원 대통령 직속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부위원장은 '당원 100% 룰 개정'에 반대하고 있다. 반면 '윤핵관' 장제원 의원과의 연대설이 나오며 '윤심' 주자로 주목받고 있는 김기현 의원, 당 대표 출마 의사를 굳힌 것으로 알려진 '윤핵관 맏형' 권성동 의원은 '당원 100% 룰 개정'에 찬성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도 최근 사석에서 '당원 투표 100%로 전당대회를 치러야 한다'는 취지의 말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날 장예찬 청년재단 이사장은 각종 여론조사에서 앞서가고 있는 유 전 의원을 겨냥해 "당원 비율 늘어나는 게 무섭나"라고 SNS에 썼고, '당원 100% 룰 개정'의 선두에 선 정 위원장은 이 글에 "'당원 포비아'에 해당하는 분들은 당 대표가 될 수도 없고 돼서도 안 된다"고 댓글을 달기도 했다. 이에 대해 윤상현 의원은 전날 페이스북에 "비대위원장은 차기 전당대회의 심판이다. 심판이 룰을 변경하는 것만으로도 신중하고 또 신중해야 할 일인데 심지어 특정인을 겨냥해 룰 변경의 명분을 내세우는 것은 심판의 도리를 저버린 셈"이라고 정 위원장을 비판했다.
윤 의원은 이날 비대위 회의 후에도 페이스북에 "당원 투표 100%로 당 대표를 뽑아야 한다는 요구가 당내에 강하게 있다고 하더라도, 이렇듯 당원과 국민들의 의견 수렴 없이 속전속결로 밀어붙여야만 했는지 안타깝다"며 "아직 상임전국위와 전국위 절차가 남아있다. 다시 한 번 생각해주시기 바란다"고 이견을 굽히지 않았다.
안 의원 역시 이날 오 KBS 라디오 인터뷰에서 "총선 승리에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다"고 전당대회 룰 변경 추진을 비판했다. 안 의원은 "당 대표 뽑는 게 골목대장이나 친목회장을 뽑는 것은 아니지 않느냐"며 "국민 앞에서 정정당당한 모습을 보이는 것이 총선에 도움이 된다"고 했다.
유승민 전 의원도 이날 오전 "與(여), 골대 옮겨 골 넣으면 정정당당한가" 제하의 이날자 <조선일보> 사설을 SNS에 공유하며 불편한 심경을 드러냈다. <조선>은 이 사설에서 "전당대회 룰을 바꿀 수는 있지만 선거를 목전에 두고 특정 계파의 유불리에 따라 일방적으로 추진하는 것은 정도(正道)가 아니다"라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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