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위가 채 가시지 않은 3일 오후 5시, 서울 용산구 전쟁기념관 앞에는 20여 명의 시민단체 활동가, 스님, 산재 피해자 유가족 등이 모였다. 목도리, 장갑 등 추위를 피하기 위한 방한용품을 가득 낀 시민들은 종이컵에 껴진 촛불과, '성역없는 진상규명, 책임자를 처벌하라'라는 피켓을 들고 차가운 바닥에 앉았다.
이태원 참사에 연대하는 시민단체들은 매주 토요일 희생자에 대한 애도의 마음과 유가족들을 위로하기 위해 참사 현장 인근에서 촛불시위를 이어 나가고 있다. 기존에 추모집회를 진행하던 녹사평역 인근 광장은 3일 보수단체 시위가 예정되어 있어 전쟁기념관 정문 앞에서 촛불시위가 진행됐다. 촛불이 밝혀진 거리 건너편으로는 대통령 집무실이 보였다.
2016년 10월26일, 열악한 방송환경 노동을 고발하며 세상을 떠난 고 이한빛 PD의 아버지 이용관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 이사장은 목소리를 높여 말했다.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다"는 이 이사장은 유가족 편에 서주는게 우선이라고 말했다. 정부가 나서지 않는다면 시민들이 먼저 나서야 한다고 그는 몇 번이나 강조했다.
유가족들이 모여 협의회 준비모임을 구성하고, 공식 요구사항을 말했음에도 정부와 여당은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다.
1일 유가족들은 이태원 참사 국정조사 특별위원회 간담회 참석을 위해 국회로 향했지만 국민의힘 소속 의원 7명은 간담회에 참석하지 않았다.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거취 논란, 예산안 통과 등 여야 간의 정쟁이 거세지자 국정조사 준비도 멈춘 것이다. 유가족은 '반쪽짜리' 국정조사에서 무릎을 꿇고 "진실을 밝혀달라"고 외쳤다.
유가족 협의회 준비모임을 지원하는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하주희 사무총장도 촛불집회에 찾아 "정부는 처음부터 유가족과 협의할 생각도 없었던 것 같다"라고 말했다.
하 사무총장은 "유가족들과 같이 마음을 계속 모아주시기를 바란다"라며 "참사를 해결하는 그때까지 함께 해주기를 바란다"라고 촛불을 든 시민들에게 부탁했다.
하 사무총장에 따르면 유가족 협의회 준비모임에는 현재 82명의 희생자 유가족들이 함께하고 있다. 매주 토요일 유가족들이 모여 스스로 목소리를 내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다고도 전했다. 촛불집회가 있었던 이날도 협의회 준비모임은 회의를 진행했다.
실천불교승가회 사무처장 여암스님은 "희생자와 유가족의 억울함을 부족하마마나 위로하겠다, 내일도, 모레도" 불경을 읊으며 희생자를 추모했다. 그는 "새벽의 축구와 아침의 하얀 눈이 내리면서 오늘은 웬만하면 모든 것이 다 용서가 될 것 같은 날이지만 이런 날조차에서도 용서를 할 수 없는 분들이 있다"며 "정부의 합당한 사과와 추모가 있을 때까지 기도하겠다"고 말했다.
정부의 대처와 미온적인 진상·책임규명을 비판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송경용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사회연대위원장은 정부와 책임자의 태도는 "무지, 무능, 무책임, 무례"하다며 "참사가 예견되었음에도 무능했고, 현장 일어난 후에는 너무도 무책임했고, 유족들에게는 무례했다"라며 비판했다.
송 위원장은 "유족을 위로하고, 진상규명하고, 책임자 처벌하는 일까지 아무 일도 하지 않았다"라며 시민들이 유가족 편에 서서 함께 해야한다고 강조했다.
추모와 애도의 마음을 담은 촛불을 든 시민들은 전쟁기념관 앞에서 출발해 이태원 참사 현장까지 침묵행진을 진행했다. 참사가 일어난 골목에서 촛불을 든 시민들은 벽에 빼곡히 적인 글귀들을 보며 눈물을 참기도 했다.
김양희 여성환경연대 사무처장은 "칼날 같은 말이 희생자를 찌를 때, 희생자와 유족을 위로해주는 건 이름도 모르는 시민의 말들"이라며 "'당신 잘못이 아니다' 촛불집회를 통해 서로가 서로의 방패가 되어주며 참혹한 시간을 버텨냈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이태원 참사 희생자를 애도하고 시민추모촛불은 다음주 토요일(10일)에도 전쟁기념관 앞에서 진행될 예정이다. 참여연대는 "유족분들도 집회 소식을 듣고 있다"라며 "많은 분들이 찾아와 함께 애도해줬으면 좋겠다"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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