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신장 아파트 화재 참사로 촉발된 '제로 코로나' 반대 시위가 상하이를 비롯해 곳곳에서 주말 내내 이어지며 시진핑 국가주석 퇴진 요구 및 장기집권 반대, 표현의 자유 보장 등 폭넓은 반체제 구호로 번졌다. 이번 시위가 최근 3연임을 확정 지은 시 주석이 직면한 첫 번째 도전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27일(현지시각) 미국 CNN 방송, 영국 BBC 방송 등 외신을 종합하면 26일 밤 상하이 우루무치중루에서 신장 화재 참사를 추모하는 것으로 시작된 시위는 27일 새벽 경찰에 의해 일단 해산된 뒤 이날 오후 다시 시작됐다. CNN은 27일 새벽 3시께부터 경찰이 시위대를 밀어내기 시작했으며 시위 참가자 여러 명이 경찰차에 실려 연행되는 것이 목격됐다고 보도했다. 방송은 그러나 경찰이 시위 현장을 봉쇄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날 오후 수백 명의 시민들이 다시금 현장 근처에 모여 구금된 시위자를 "석방하라!"는 구호를 외치는 영상이 소셜미디어(SNS)에 공개됐다고 전했다. 오후 시위에선 경찰이 더 적극적으로 시위 해산을 시도하며 또 다시 시위대 체포가 이어졌지만 시위는 이날 밤까지 지속된 것으로 보인다.
주말 시위에서 당국의 무차별적 체포가 이뤄지며 언론인까지 구금됐다. BBC 방송은 27일 상하이에서 시위를 취재하던 자사 기자 에드 로렌스가 당국에 연행돼 구타당했다고 밝혔다. 방송은 로렌스 기자가 체포 당시 두들겨 맞고 발로 차였으며 몇 시간 동안 수갑을 찬 채 구금돼 있다 풀려났다고 설명했다. BBC 쪽은 "로렌스 기자가 공인된 언론인으로서 업무를 수행하던 중 공격 당했다는 점이 매우 우려스럽다"며 자사 기자 구금에 대해 중국 당국의 사과는 없었고 당국이 어떤 신뢰할만한 설명도 제공하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주말 동안 시위는 상하이 뿐만 아니라 수도 베이징, 남서부 쓰촨성 청두, 남부 광둥성 광저우, 남동부 후베이성 우한 등 중국 곳곳으로 번졌다. CNN은 27일 베이징 상업 중심지인 량마강 인근에 모인 수백 명 규모의 시민이 행진을 벌였다고 전했다. 시위는 28일 새벽까지 이어졌다. 27일 새벽 베이징대에서도 100명 가량의 학생들이 봉쇄 반대 문구가 적힌 대학 건물 벽 부근에 모이자 경비원이 검은 재킷으로 문구를 가리는 장면이 연출됐다. 학생들은 이후 문구가 검은색으로 덧칠돼 가려졌다고 전했다. 같은 날 시 주석의 출신 학교인 칭화대에서도 수백 명의 학생들이 모여 "민주주의! 법치! 표현의 자유!"를 외치는 영상이 온라인에 게재됐다.
27일 청두 번화가, 광저우 하이주구 광장에도 수백 명이 모여 시위를 벌였다. 동부 장쑤성 난징통신대에서도 적어도 수십 명의 학생들이 모여 시위를 벌였다.
BBC는 상하이 기준 28일 아침엔 시위가 중단된 상태였고 시위 현장엔 파란색 가림막이 세워졌다고 전했다. 방송은 경찰이 시위 현장을 지키며 현장 사진을 찍는 시민들에게 사진 삭제를 요구하고 이에 응하지 않을 경우 체포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지난 24일 신장위구르자치구 우루무치 봉쇄 지역의 한 아파트에서 화재가 발생해 10명이 죽고 9명이 다쳤다. 봉쇄 탓에 진화가 늦어져 피해를 키웠다는 주장이 온라인에 공유되면서 23일 우루무치 지역을 시작으로 봉쇄 반대 시위가 시작됐다. 이달 초 정저우에선 방역 조치 탓에 치료가 지연되며 4개월 된 아이가 사망했다는 소식, 지난 9월 청두 지진 때 봉쇄 탓에 주민들이 탈출하지 못해 피해가 커졌다는 이야기 등이 온라인을 통해 퍼지며 대중의 분노를 키웠다는 분석이 나온다. 지난달 아이폰 생산기지인 정저우 폭스콘 공장에서 코로나19가 발생하자 노동자들이 공장 폐쇄에 맞서 집단 탈출을 감행하는 등 이번 시위 이전에도 봉쇄 정책에 항의하는 산발적 움직임은 곳곳에서 나타났다.
'빈 종이' 들고 검열 저항…"평생 집권 통치자 원하지 않는다" 시진핑 3연임 저격도
지난 24일 10명의 목숨을 앗아간 신장위구르자치구 우루무치 봉쇄 지역 아파트 화재 참사 희생자에 대한 추모와 제로 코로나 정책에 대한 반대로 시작된 시위는 주말 내내 진행되며 점차 검열 폐지와 표현의 자유 촉구, 시 주석 퇴진 및 공산당 퇴진을 요구하는 등 체제 자체에 대한 불만으로 번졌다. 상하이, 베이징, 칭화대, 난징통신대 등 곳곳의 시위 현장에선 아무 것도 적히지 않은 백지를 든 시위 참가자들이 눈에 띄었는데 이는 검열에 반대하고 표현의 자유를 요구하는 상징적 표현이다. <워싱턴포스트>(WP)에 백지 혹은 신장 화재 사망자 수인 숫자 '10'을 적은 종이를 든 시위 참여자들의 사진을 보낸 안전을 이유로 성만 공개할 것을 요구한 사진가 멩은 "모두가 그것(백지)을 들고 있었다. 누구도 말하지 않았지만 우리 모두 그 의미를 알고 있었다. '지울 테면 지워라. 말하지 않은 것을 검열할 수는 없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칭화대 등 여러 시위 현장에서 민주주의와 표현의 자유를 요구하는 구호가 등장했다.
최근 관행을 깨고 3연임을 확정지으며 장기집권의 문을 연 시 주석에 대한 항의도 직접적으로 표현됐다. CNN은 청두에서 열린 시위 현장에서 군중이 "독재 반대!", "우리는 평생 집권하는 통치자를 원하지 않는다! 황제를 원하지 않는다!"는 구호를 외쳤다고 보도했다. <워싱턴포스트>는 상하이 시위에 27일 새벽 2시쯤 도착했다고 밝힌 안전을 이유로 성만 공개할 것을 요구한 주민 첸(29)이 "처음엔 '신장의 봉쇄를 해제하라'로 시작된 외침이 점차 '시진핑 퇴진하라!', '공산당 물러나라!'는 외침으로 되어 갔다"고 말했다고 설명했다. <AP> 통신은 익명을 요구한 상하이 시위 참여자를 인용해 이날 시위에서 당국이 언급을 금기시 하는 1989년 톈안먼(천안문) 민주화 항쟁에 대한 발언도 장려됐다고 보도했다.
외신 "무자비한 진압" 예상하는 가운데 일부 '방역 완화' 움직임도
외신과 전문가들은 시위가 이어질 경우 "무자비한 탄압"이 이뤄질 것이라 보면서도 집권 3기 첫 발을 내디딘 시 주석이 직면한 "첫 시험대"임은 분명하다고 평가했다. 훙호펑 미 존스홉킨스대 사회학 교수는 이번 시위가 시 주석에게 "끔찍한 상황"이라며 시 주석의 "절대적 권위주의 통치에 대한 첫 번째 심각한 시험이 될 것"이라고 BBC에 말했다. 그는 엄격한 제로 코로나 정책이 시 주석을 "코너에 몰아 넣었다"며 이 정책이 노동자 계층부터 젊은 층, 중산층, 국가 엘리트 계층에 이르기까지 인내심을 상실하게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를 어떻게 해결하느냐가 향후 몇 년 간 지속적으로 중국 정치와 경제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전망했다. <가디언> 외교 편집자 패트릭 윈투어는 27일 분석 기사에서 "향후 어떤 일이 벌어질지와는 무관하게 시 주석은 그의 국제적 명성을 세계 무대에 복귀한 지 불과 몇 달 만에 날려 버렸다"고 평가했다.
시위가 지속돼 정부에 변화를 일으킬 것이라는 전망은 많지 않다. 전 홍콩이공대 교수로 재직한 정킴와 홍콩민의연구소(PORI) 행정부총재는 대중이 제로 코로나 정책에 인내심을 잃은 것은 맞지만 조직되지 않은 시위는 정부에 대항할만큼 강하지 않다고 <가디언>에 말했다. 윈투어는 27일 분석에서 이번 시위가 톈안먼 시위와는 달리 베이징 중심이 아니라 중국 곳곳에서 일어난 것은 대중이 제로 코로나에 대한 문제 의식을 그만큼 광범위하게 공유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독특한" 면모가 있지만 "시 주석이 반대 의견을 오래 용인할 것 같지 않다"고 전망했다. 그는 시 주석이 "시위를 코로나 정책에 대한 도전 뿐 아니라 공산주의 이념 및 그의 통치에 대한 반대로 볼 가능성이 높다"며 "홍콩에서 사용된 무자비한 방법이 본토에서도 사용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27일 편집위원회 의견을 통해 "시위가 게속될 경우 시 주석과 공산당이 무자비하게 진압할 것"으로 예측하면서도 "정권이 이것이 시위에 대한 반응임을 인정하지 않더라도 제로 코로나 정책이 완화되기 시작할지 지켜보는 것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중국 관영 <신화> 통신을 보면 베이징 방역 당국은 27일 봉쇄 주거지의 출입구를 폐쇄하는 관행을 개선하고 조건에 부합하면 적시에 봉쇄에서 해제할 것이라고 밝히는 등 봉쇄 조치에 지친 주민들의 불만을 다독이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이번 시위의 도화선이 된 신장 우루무치 지역의 방역도 다소 완화됐다.
많은 나라가 올들어 코로나 방역을 완화하고 있지만 중국은 엄격한 제로 코로나 정책을 고수해 왔다. 올 초 인구 2500만명 대도시 상하이에 대한 2달 여 간의 봉쇄를 단행해 경제 충격을 우려한 세계의 이목이 쏠리기도 했다. 중국은 이달 초 전면 봉쇄 대신 확진자 발생 구역 중심의 일부 폐쇄를 채택하는 등 다소 완화된 방역 조치를 시행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달 초 3천 명 미만이었던 일일 신규 확진자 수가 28일 발표에서 4만 명을 넘기며 폐쇄 구역이 점점 늘고 있는 실정이다. BBC는 중국이 효과에 의문이 있는 자체 개발 백신 사용을 고집하는 데다 80살 이상 고령자의 추가 접종률이 20%에 못 미치는 것을 포함해 고령층의 백신 추가 접종률이 낮은 점을 들어 사실상 제로 코로나를 벗어날 '출구'가 없음을 지적했다.
다만 중국 관영 <글로벌타임스>는 27일 서방 언론이 중국의 방역 정책을 "헐뜯고" 중국에 "대립과 혼란을 야기한다"고 비판했다. 매체는 "중국의 감염병 예방 및 통제 조치는 중국 스스로 모색할 것"이라며 "다른 이들이 뭐라고 판단하든 중국의 우선 순위는 자신의 것을 어떻게 잘 관리하느냐다"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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