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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 말하기를 억압하지 않는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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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 말하기를 억압하지 않는 정치

[시민건강논평] "'여가부 존속' 주장은 퇴행적·역진적 젠더정치 전환을 위한 실천이다"

여성들의 목소리를 듣지 않는 것을 넘어, 이제는 목소리를 내지 않도록 '말하기'를 막겠다는 어떤 의지의 표명인 것일까? 여성가족부 폐지를 비판한 여성단체를 대상으로 국세청이 현장조사를 통보했다는 소식이 들린다.(☞ 관련 기사 : <경향신문> 11월 11일 자 '국세청 '여가부 폐지' 비판한 여성단체 현장조사 통보') 국세청은 이것이 '정치적인 조사'가 아니라고 해명했지만 이와 같은 제재는 그 자체로 여성들의 말하기를 직간접적으로 억압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이미 정치적이다.

여성의 말하기를 막겠다는 정부의 의도는 국정 과정에서 반복적으로 드러난다. 여성가족부 폐지만을 두고 보더라도 그렇다. 정부는 여성가족부 폐지가 "여성, 가족, 아동,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보호를 더 강화하기 위한 것"이라고 주장해 왔다.(☞ 관련 기사 : <프레시안> 10월 17일 자 '尹대통령 "여성부 폐지는 여성 보호 강화하기 위해 하는 것"') 정부가 "집단적으로 단일한 목소리를 내기 어려워 잘 드러나지 않"는 이들을 '약자'라 정의하면서 복지 자격을 부여하는 것에서 그 의도는 더욱 명징해진다.(☞ 관련 기사 : <경향신문> 8월 23일 자 '윤 대통령, '수원 세 모녀' 말하며 "정치복지에서 약자복지"')

이와 같은 규정을 통해 정부는 함께 모여 말하기를 통해 고통과 존재를 드러내며 차별과 불평등에 저항하고, 대항하는 여성을 "약자인 척하는 강자"라 구분 짓는다. 이는 부정의에 복종하라는 암묵의 압력이다. 지금과 같이 구조적 성차별과 이로 인한 고통을 계속해서 반복하고 심화하는 현실에서 약자의 입장을 유지하라는 것, 집단 목소리를 내지 말라는 것 즉, 순응하고 침묵하라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나?

여성을 목소리 내지 않는 약자라 규정하며 주체로 인정하지 않는 것은 특히 자본주의 체제에서 여성의 권리 박탈로 이어진다. 자본주의에서 약자는 '일할 능력이 없기 때문에 경제적 가치가 없는 이'라 정의되어 왔다. 여성가족부 폐지를 이렇게 쉽게 결정한 데에는 여성의 삶을 돌보는 부처는 경제성장에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에 그 존립에 대한 책무를 다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일련의 믿음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경제성장만이 민생을 담보한다는 믿음에 근거해 '모든 부처를 산업부화하자'는 대통령의 주문을 보라.

우리 모두의 가치는 경제로 환원할 수 없으며, 따라서 어느 한 범주의 사람들만이 우월할 수도 없다. 그러나 여성의 삶을 가치절하 하며, 권리의 불평등을 자연스럽고 당연한 것으로 인정하는 지금의 젠더정치는 고통 '드러내지 않기'와 '개인화하기'를 통해 정당화된다.

우리는 여전히 여성들이 일상과 일터에서 경험하는 젠더폭력의 현황조차 알기 어렵다. 여성 노동자들의 건강과 안전, 그리고 그 위험은 정의조차 오리무중이다. 재생산의 고통은 '출산하는 몸'에 한정하는 한편, 그 고통조차 여성이 아닌 국가의 위기로 치환할 뿐이다. 성별 임금 자료나 자살률 통계와 같이 성인지 통계를 마련하더라도 '숫자의 차이'만 드러낼 뿐, 그 차이를 가져오는 불평등한 젠더 관계는 공개 대상이 아니다. 더군다나 그 차이를 여성 개인이 능력이 없어서, 불운해서, 조심하지 않아서, 원래 정신적으로 취약하기 때문이라 해석할 뿐이다.

드러내지 않기와 개인화하기를 목표로 하는 정치, 그리고 말하기를 억압하는 정치는 여성들의 삶을 돌보지 않는 결정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문제다. 효율적 운영을 이유로 중앙성별영향평가위원회를 비상설위원회로 전환한 것은 그 결정의 일환일 것이다.

한편으로 "페미니즘에 경도"됐다는 한 의원의 발언에 폐지된 여성가족부 '버터나이프크루' 사업, "남성 역차별"을 이유로 공격 받아 운영 중단된 서울시 '시스터즈 키퍼스' 게시판, 그리고 "성평등"을 위해서라는 여성가족부 폐지와 여성가족부 장관의 구조적 차별 '없는 척하기' 등의 사례에서 드러나듯 이와 같은 결정은 백래시와 공정담론을 통해 정당화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여성의 삶을 돌보는 책무를 방기하는 동안 여성들은 목소리 내어 말하기를 통해 실재하는 현실의 고통, 그리고 그 고통을 생산하는 불평등한 젠더 권력 관계와 그 관계에 기반한 구조적 차별과 억압을 구체적으로 드러내왔다. 이 말하기는 백래시가 아닌 여성들의 목소리를 두려워할 것, 그리고 사람들의 삶을 돌보는 국가의 책무를 다할 것을 요구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 지점에서 여성가족부 존속을 위한 우리의 주장은 퇴행적이고 역진적인 지금의 젠더정치에 맞서고 이를 전환하려는 실천이다.

지난한 시간 동안 이어져 온 여성들의 말하기는 모든 생명이 가치 있음을, 그 가치는 화폐로 환원될 수 없으며 온존을 중심에 둬야 함을, 온존은 돌봄을 매개한 관계 속에서 가능함을, 따라서 모든 생명이 함께 잘 살아갈 수 있는 조건이 평등해야 함을 감각하고 희망하는 변혁을 위한 과정이다. 동시에 젠더를 둘러싼 불평등한 권력 관계를 문제화하고, 관계의 평등을 요구하는 투쟁이며, 계급, 인종, 섹슈얼리티, 지역, 나이 등을 교차하며 구성되는 젠더 관계의 복잡성을 인정하고 불평등한 구조에 함께 맞서는 연대다.

따라서 우리는 오늘 하루도 겨우 살아내는 사회가 아니라 모두 함께 잘 살아가는 사회를 바란다. 경제가 아닌 사람이, 대립과 갈등이 아닌 연대와 공존이, 차별과 혐오가 아닌 인정이, 불평등이 아닌 평등이, 각자도생이 아닌 돌봄이 중심이 되는 사회를 바란다. 이러한 사회는 여성의 말하기를 억압하지 않는 것에서부터 시작될 것이다.

▲ 정부서울청사 여성가족부 모습.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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