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2020년 국내총생산(GDP)은 1조 6309억 달러로 세계 경제 10위에 이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국민들은 모두 힘들다, 죽겠다는 아우성을 쏟아낸다.
1, 5, 13, 37은 각각이 우리나라에서 하루에 사망하는 사람의 평균 숫자를 의미한다. 1은 오늘 하루 타살로 인해 사망한 사람의 수다. 5는 오늘 하루 산업재해로 사망한 노동자의 수다. 13은 오늘 하루 교통사로로 사망한 사람의 수, 37은 오늘 하루 자살로 생을 마감하는 수이다. 2022년 세계 행복지수 보고서에 의하면, 2019∼2021년 3년 평균 우리나라의 행복지수는 146개국 중 59위였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개 회원국으로 한정하면 최하위권이다.
모든 국민의 행복한 삶을 보장하기 위한 보편적 복지가 절실함에도 불구하고, 2019년 기준 우리나라의 GDP 대비 공공사회복지 지출 비율은 OECD 평균 20.0%의 절반이 조금 넘는 12.2%에 불과하다. 38개 OECD 회원국 중 35위로 매우 낮은 실정이다.
'따로국밥'처럼 운영되는 지역사회 복지시설
우리나라의 복지에 투입하는 예산 비율도 선진국에 비해 턱없이 낮지만, 그 운영도 비효율적이다. 우리나라 복지전달체계는 공공과 민간의 두 체제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다. 공공은 사회보장 및 공공부조 중심으로, 민간은 정부로부터 시설을 수탁 받은 사업자의 서비스 제공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다. 복지 강화를 위해서는 전반적인 사회복지 예산 지출을 높여야 하지만, 특히 복지예산 증액에 대한 사회적 신뢰를 높이기 위해 관련 공공과 민간이 예산을 효율적으로 사용하고 공간 활용도를 극대화하여 시민에게 최상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현재 지역사회에서 주민들을 위한 대표적인 이용시설로는 사회복지관, 노인복지관, 장애인복지관, 경로당 등이 있다. 2020년 기준 사회복지관 475개, 노인복지관 398개, 장애인복지관 258개, 경로당 6만7316개가 전국적으로 운영되고 있다. 또한 청년 창업 문제, 신중년 문제, 노인 일자리 문제 등의 사회문제가 발생할 때마다 이에 대응하기 위한 시설들도 꾸준히 새롭게 건립된다. 이런 이용시설은 정부나 지자체가 건물을 신축하고, 민간에 위탁하여 보조금 지원을 통해 운영하지만 효율성 한계가 많이 나타나고 있다.
지역사회에 가장 많이 건립되어 있는 경로당 상당수는 소수 초고령 노인만의 쉼터로 운영될 정도로 시대 변화에 부합하지 못한 공간으로 전락했지만, 지금도 지속적으로 건립되고 있다. 기존 경로당 건물 노후화에 따른 리모델링 비용과 운영비 등도 매년 증가하고 있다.
지역복지 실천현장의 3대 기관인 사회복지관, 장애인복지관, 노인복지관 등도 위치와 규모 등의 문제를 안고 있다. 사회복지관은 저소득 주민들만이, 장애인복지관은 장애인만이, 노인복지관은 노인만이 이용하는 시설로 지역주민에게 인식돼 있다. 이들 시설은 다양한 지역주민의 소통과 이해를 통해 지역 공동체를 만들어가는 전초기지로써의 공공재 공간 역할을 못하고 있다.
이들 복지시설은 당초 위치 선정과 설계에서부터 지역주민을 위한 배려와 공간에 대한 고민 없이 건축되다 보니 지역주민 모두의 공간이 아닌, 일부 특정 계층만이 이용하는 시설로 전락한 게 현실이다. 건물을 수탁 받아 운영하는 비영리법인이나 단체 등이 현실적인 문제(인력, 비용, 관리 등)로 인해 복지시설을 지역주민이 접근 가능한 시간에 개방하지 못하고 주중(월~금) 일과시간(09:00~18:00)에만 운영하는 한계 역시 문제다.
지난 정부에서 커뮤니티케어가 사회복지의 화두로 등장했다. 급속한 저출산 고령화 사회를 대비해 지역사회를 중심으로 사회복지체계를 재구성해보자는 취지였지만, 여전히 지역사회를 중심으로 한 통합 돌봄은 갈 길이 멀다. 복지기관은 연대와 통합의 모색 없이 각자가 따로국밥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
지역복지기관, 지역사회 통합과 혁신을 위한 기관으로 거듭나야
지역사회에 위치한 이용시설은 단순한 하나의 건물이 아니다. 사람과 사람이 자연스럽게 만나 서로를 이해하고, 각자에게 공감하고, 모두가 통합된 지역공동체를 만들어 가는 중요한 역할을 하는 곳이어야 한다. 이용시설과 공간에 대한 새로운 모색과 혁신이 없으면 그 이용시설은 복지 재원 및 서비스 효율성이 아주 낮은 지역사회 내 고립된 섬으로 존재할 수밖에 없다.
이용시설을 지역공동체 공간으로 혁신하기 위해서는 스웨덴, 핀란드 등 북유럽 복지국가 사례를 배울 필요가 있다. 주택단지의 경우 우리나라는 청년주택, 노인주택, 임대주택 등이 따로 조성되어 세대 간, 계층 간 단절되어 있다. 하지만 핀란드 헬싱키의 제너레이션 블록 주택단지는 민간주택, 임대주택, 대학생 숙소가 함께 어우러져서 다양한 연령대와 계층이 자연스럽게 섞이도록 디자인되어 있다. 입주자들은 각 주택 1층에 마련된 공유 공간을 함께 이용하면서 서로에 대한 이해를 키우는 건전한 공동체를 만들어가고 있다. (<KBS명견만리> '명견만리 모두를 위한 공존의 시대를 말하다' 2019)
도서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2021년 현재 우리나라 공공도서관 1208개가 운영되고 있다. 최근 개관한 도서관은 기존 고유 업무인 도서 대출과 공부하는 곳이라는 기존의 도서관 개념에서 조금 변화했지만, 북유럽 도서관의 규모와 위치, 프로그램 등과 비교해 보면 여전한 한계를 가지고 있다.
북유럽 국가들은 '도서관의 나라'로 불릴 만큼 인구 대비 많은 공공도서관을 운영한다. 2014년 기준 스웨덴은 980만 인구 대비 공공도서관 1200개를, 핀란드는 520만 인구 대비 공공도서관 756개를 각각 운영한다. 해당 도서관은 주민들이 가장 많이 왕래하는 대중교통 요충지나 쇼핑센터에 위치해 있다. 접근성이 좋기에 많은 시민들이 자연스럽게 이용한다.
북유럽의 도서관은 단순히 책을 빌려주고 공부하는 공간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장소로의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설계돼 있다. 세대와 세대가 만나고 이웃과 이웃이 만날 수 있는 공간부터 무언가를 만들 수 있는 메이커스페이스 공간, 음악을 듣고 연주할 수 있는 공간, 게임을 할 수 있는 공간, 마음껏 뛰어 놀 수 있는 실내놀이터 공간 등이 운영되고 있다. (윤송현, <모든 것은 도서관에서 시작되었다>, 학교도서관저널. 2022)
북유럽의 사례에서 보듯이, 시설 공간을 인식하는 철학에 따라 공간의 위치와 구조, 형식은 큰 차이를 가진다. 우리 사회는 복지에 대한 양적 확대뿐만 아니라, 북유럽 도서관 사례와 같은 질적인 시선의 전환과 새로운 혁신을 필요로 한다.
저부담·저복지의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다. 복지 확대 정책을 통해 더 많은 복지 인프라가 제대로 갖춰져야 한다. 하지만 기본적인 복지권 요구도 '복지 포퓰리즘', '복지망국론' 프레임으로 바라보는 시각이 우리 사회에 강한 만큼, 당장은 복지시설의 정비에 힘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기존에 있는 지역사회 복지시설 공간은 리모델링을 통해 혁신하고, 신규 공간은 보다 거시적이고 창의적으로 건설할 필요가 있다. 발상의 전환과 혁신적인 접근을 통해 고비용의 단독 건물 신축이 아니라, 쇼핑센터나 주상복합공간 일부를 임대하는 등의 방법으로 지역주민 모두가 어울릴 수 있는 지역공동체를 마련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사회적 신뢰가 부족한 한국이 복지국가로 가는 길은 쉽지 않다. 정부는 창의적이고 효율적인 복지 정책 운영을 통해 시민이 복지 체제에 쉽게 참여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고, 시민은 참여를 통해 복지 정책과 복지국가에 대한 신뢰를 쌓아가야 한다. 전국 곳곳에서 복지관을 운영하고 복지사업을 진행하는 기관과 사회복지인들이 지역사회를 중심으로 다양한 혁신모델을 만들고, 소통과 협력을 통해 지역사회 내의 신뢰를 높이는 길을 제안해본다. 공자가 말했던 것처럼, '신뢰'가 없이는 한 발자국도 앞으로 나갈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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