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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와의 경제전쟁, 최대 피해자는 유럽 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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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러시아와의 경제전쟁, 최대 피해자는 유럽 경제"

[해외 시각] 마이클 허드슨의 '문명의 운명' ③

다음 글은 미국 경제학자 마이크 허드슨(미주리대 명예 교수)의 새 책 <문명의 운명 : 금융자본주의, 산업자본주의 또는 사회주의>에 관한 팟캐스트 멀티폴라리스타와의 인터뷰로, 4회에 걸쳐 연재한다. 원문은 허드슨 교수의 홈페이지(michael-hudson.com) 5월 12일 자에 '세습적 전사계급의 책임을 묻는다(Calling to Account the Hereditary Warrior Class)'라는 제목으로 실려 있다. 편집자.

☞ 관련 기사 : 마이클 허드슨을 한국 독자들에게 소개하며

벤자민 노튼 : 이제 미국 등 서방의 러시아에 대한 경제전쟁으로 주제를 옮겨보자.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해 서방은 금융적 충격과 공포(shock-and-awe) 전략으로 맞서고 있다. 2003년 미국의 이라크 침공이 군사적 충격과 공포 전략이었다면, 각종 수입 금지조치와 외환준비금 압류 등의 대대적 경제제재는 러시아에 대한 금융적 충격과 공포 전략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제 러시아는 역사상 최대 규모의 경제제재를 당한 국가라고 얘기되고 있다. 사실 최대의 경제제재를 받고 있는 나라는 북한이긴 하지만, 러시아 같은 강대국이 지금과 같은 경제제재를 받은 전례는 없다. 현재 서방이 러시아에 대해 시도하고 있는 경제제재는 중세시대의 공성전과 같은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지난 3월 폴란드를 방문한 조 바이든은 연설을 통해 워싱턴의 전쟁 목표가 러시아 정권 교체임을 분명히 밝혔다. 미국은 푸틴 정권을 무너뜨리고, 1991년 소련 붕괴 이후 그랬던 것처럼 보리스 옐친과 같은 술주정뱅이에 고분고분한 신자유주의적 꼭두각시를 러시아의 권좌에 앉히려 한다.

러시아에 대한 서방의 경제전쟁이 어떤 결과를 낳을까? 특히 교수께서 지난 수년간 강조해온 탈동조(decoupling), 즉 러시아와 중국에 대한 서방의 제재가 탈동조를 가속화시킬 것이란 전망과 관련해, 이번 경제전쟁의 미래를 어떻게 전망하나?

교수께서는 모든 것이 상호 연결된, 특히 자본의 흐름이 세계적으로 상호 연결된 신자유주의적 지구화의 세계에서 자급자족적 국민경제를 건설하기 위해서는 서방 중심의 경제체제로부터의 단절을 위한 일종의 경제적 철의 장막이 필요하다고 주장해 왔는데, 이번 러시아 경제제재가 (서방 경제와의 단절과 함께) 유라시아 경제의 통합을 더욱 가속화시키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또한 이번 경제전쟁이 유럽경제에는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까? 내 느낌으로는 유럽경제는 사실상 사망선고를 받았고 갈수록 미국에 의존하게 되는 반면, 인류의 대다수가 거주하는 러시아, 중국과 이란, 나아가 인도, 파키스탄, 방글라데시, 인도네시아 등 아시아 경제의 통합은 더욱 가속화될 것으로 보는데.

마이클 허드슨 : 충격과 공포는 적절한 표현이 아니다. 애당초 충격과 공포 따위는 없었다. 이는 서방의 패배를 자초하는 허튼소리일 뿐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미국과 서방은 러시아 외환준비금의 절반에 해당하는 무려 3000억 달러를 강탈하는 폭거를 자행했으나 러시아 경제를 붕괴시키는 데 실패했다. 서방의 러시아 외환준비금 압류는 어떤 나라든 미국에 반하는 정책을 택할 경우 같은 운명을 맞을 것이라는 강력한 신호였다.

물론 목표는 러시아 경제를 침몰시키는 것이었다. 달러가 없으면 자국 경제에 필요한 물품을 해외 시장에서 조달하지 못할 것이고, 그 경우 불만에 가득 찬 국민들이 푸틴 축출에 나설 것이며, 그렇게 되면 미국은 달러를 제공하면서 새로운 옐친이 될 것을 다짐하는 나발니 등과 같은 우익 얼간이들을 권좌에 앉혀 러시아를 다시 한 번 서방의 입맛대로 요리하겠다는 계산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시나리오는 현실화되지 못했다. 물론 서방은 러시아의 외환준비금 3천억 달러를 압류했다. 이에 대해 러시아는 '그래, 우리는 루블화만으로도 충분히 경제를 꾸려나갈 수 있어'라고 대꾸했다. 나아가 '러시아의 풍부한 석유와 천연가스를 독일 등 유럽에 팔지 않아도 돼. 유럽이 에너지 부족으로 고생을 하든 말든 상관 안 해. 중국, 인도 등에 팔면 되지'라고 응답했다.

나아가 러시아는 (서방의 압류 조치로 더 이상 에너지 판매대금을 달러, 유로화로 받을 수 없게 됐으므로) 앞으로 석유 및 가스 대금을 루블화로 결제해 달라고 요구했다. 중국이 해외 수출품 대금을 위앤화로 받듯이 러시아도 자국의 루블화로 무역 결제를 하겠다는 얘기다.

그 결과는 루블화는 서방의 제재에도 불구하고 전쟁 이전보다 높은 가치를 유지하고 있다. 제재에 따른 충격 따위는 전혀 없었던 것이다. 오히려 충격을 느낀 쪽은 미국이었다. 미국이야말로 충격을 받았고 공포에 질려 있다. 러시아는 웃고 있으며, 모든 것이 그들의 의도대로 진행되고 있다.

예컨대 바이든 대통령이나 미 의회 지도자들이 러시아의 뇌물을 받은 하수인이라 치자. 만일 그렇다 하더라도 이보다 더 러시아에 유리한 일을 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러시아 스스로도 해내지 못한 보호주의 체제를 완성시켜 주었기 때문이다.

사실 푸틴이나 그 측근들도 최근까지는 신자유주의자들이었다. 즉 이들은 1990년대부터 신자유주의에 경도됐었다. 이들은 당초 독일을 비롯한 유럽과 상호 도움이 되는 경제관계를 맺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유럽의 투자와 기술 지원으로 러시아를 독일이나 미국 못지않은 효율적 경제로 발전시킬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마찬가지로 러시아 인들은 (19세기 후반~20세기 초의) 미국과 같이 (자국 유치산업 보호를 위한) 보호관세 부과를 생각조차 하지 못하고 있었다. 러시아는 자국의 농업을 보호하지 않았다. 그들은 발트 3국 등 외국에서 식량과 치즈 등 농산물을 수입했다.

미국이 농업 부문에 제재를 가한다면 러시아는 자국 식량을 스스로 생산해야만 하는 처지인 것이다. 실제로 미국은 이미 (러시아가 크림반도를 합병한) 2014년부터 러시아에 제재를 부과하기 시작했고, 이후 러시아는 자국 농업에 대한 대규모 투자를 통해 이제 세계 최대의 농산물 수출국이 됐다. 러시아는 더 이상 리투아니아 등 발트 3국에서 치즈를 수입하지 않는다. 러시아 자체에서 생산한다.

다시 말해 미국의 경제 제재는 러시아로 하여금 19세기 미국이나 독일 등이 실시했던 보호주의 무역을 하도록 만들었다. 저렴한 외국산 수입품에 대해 보호 관세를 매기는 한편 자국 산업에 대한 공공 투자를 통해 국내 산업의 경쟁력을 높이도록 한 것이다. 미국의 경제 재재가 이뤄낸 업적이다.

그리고 지난 3,4년간 나는 러시아, 중국 등 외국 정부와의 대화를 통해 탈달러화(de-dollarize)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자국 경제를 발전시키고 싶다면, 우선 미국으로부터 독립하고, 자국 국민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공공 투자를 통해 산업을 발전시키라는 것이다.

아마도 앞으로 10년 정도 지나면 중국, 러시아, 이란 등의 경제는 미국 경제로부터 독립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번 미국의 제재는 마치 '우리가 도와줄게, 미국으로부터의 독립을 더 빨리 할 수 있게 해줄게'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미국은 제재를 통해 이들 경제의 고립과 붕괴를 추구했겠지만, 실제 결과는 이들 경제가 미국에 대항해 함께 뭉치도록 만들었기 때문이다.

한편 중국은 미국의 러시아 경제제재를 주시하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이 미국의 주적은 러시아가 아니라 중국이라고 말한 사실을, 러시아를 끝장 낸 다음 중국을 손 볼 것이라고 말한 것도 중국은 너무도 잘 알고 있다.

따라서 중국은 미국의 제재로부터 살아남기 위한 대응을, 미국경제로부터 충분히 독립하기 위한 준비를 서두르고 있다. 최근 시진핑 주석은 중국을 최대한 독립적으로 만들겠다고 여러 차례 다짐했다. 어떤 부문에서도 미국에 의존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전에도 말한 것처럼 금융은 단기 성과 위주다. 미국의 정책은 기본적으로 금융정책이며 따라서 단기 지향적이다. 무엇보다도 신속한 승리를 추구하며 그 후에 일어날 일에 대해서는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

오래 전 미 국무부 관리에게 들은 이야기인데, 미국이 이란, 이라크, 시리아 등에서 전쟁을 벌일 당시 아랍어를 말할 수 있는 아랍 전문가들이 모두 해고됐다고 한다. 미국의 고위 정책 담당자들은 '아랍어를 할 줄 안다고. 아랍을 편들기 위해 아랍어를 배웠군. 넌 해고야. 우리 부서에 아랍어를 할 줄 아는 놈은 필요 없어'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또한 지난 10년간 국무부와 CIA의 모든 러시아 전문가들이 해고됐다. '러시아어를 할 줄 안다고, 뭣 때문에 러시아어를 배웠지? 뭔가 러시아를 좋아하기 때문에 배웠겠지. 넌 해고야', 이런 식이다.

따라서 지금 미국 정부 내에는 러시아 내에서, 또는 미국 아닌 다른 나라들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아는 사람이 전혀 없다. 미국 관리들은 자신들의 이데올로기를 따르느라 현실에 완전히 눈 감고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어떤 나라가 자국 경제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공공 계획과 무상 교육을 추진한다면, 이는 반드시 미국의 반대에 부딪힌다. 기업의 수익을 우선시하는 미국의 이데올로기에 반하기 때문이다. 미국인들은 '국민을 믿지 마라, 국민은 사회주의를 원하기 때문이다'라고 배운다.

다시 말해 미국의 정책은 현실에 눈감은 채 작성되고 추진되며, 유럽은 이러한 미국의 정책을 맹종할 뿐이다. 유럽은 미국에 대한 충성심을 입증하기 위해 러시아의 저렴한 가스 수입을 포기하고 그보다 3-7배 비싼 미국산 액화천연가스 수입을 택했다. 게다가 이미 완공된 러시아-유럽간 노르트스트림2 가스관의 가동을 포기하는 대신 미국산 액화천연가스의 하역을 위한 항만시설 건설에 수십억 달러를 퍼부으려 한다. 유럽은 미국을 추종하느라 엄청난 희생을 치르고 있는 셈이다.

미국은 자국 경제를 보호하려는 나라, 국민들의 생활수준을 높이려는 나라, 토지개혁을 시도하는 나라들을 모두 적대국으로 상정한다. 이러한 시도들은 모두 신자유주의적 미국식 금융자본주의의 이익에 반하기 때문이다.

오직 미국만이 세계경제의 이익과 지대를 모두 독점하는 오늘날의 단극 세계(unipolar world)는 고대 로마제국이 지배하던 세계와 정확히 일치한다. 로마제국의 지배세력은 자국에서는 아무런 부도 창출하지 않고, 국내 서민들을 궁핍화시키면서, 군사력을 앞세워 주변지역을 약탈하고 착취해서 자신들의 배를 불렸다.

오늘날 유럽은 '러시아산 가스를 도입할 수 없으니 농작물 재배에 필요한 비료도 충분히 만들 수 없네. 이제 농업 생산성은 절반 이하로 떨어지겠네' 하면서도 이러한 현실을 묵묵히 받아들인다. 우크라이나를 돕기 위한 미국산 무기 구매도 순순히 받아들인다. 우크라이나전쟁이 초래한 식량 및 에너지 가격의 상승, 군사비의 추가 증액도 모두 감수하고 있다.

그 결과 유럽은 이제 산업 경쟁력에서 아시아, 유라시아의 적수가 되지 못한다. 중국의 일대일로 정책으로 지금 서아시아에는 수많은 공장들이 생겨나고 있다. 이제 유라시아 경제는 자급자족적일 뿐만 아니라 산업 경쟁력에서 미국과 유럽을 압도하고 있다. 서방은 스스로 세계시장에서 밀려나고 있다. 서방 경제는 더 이상 경쟁력을 갖고 있지 않다.

세계는 발전하고 있으며, 나토 국가들은 오직 군사력으로만 이에 대항할 수 있을 뿐이다. 이제 서방은 경제력이나 금융력으로는 비서방을 이길 수 없다. 서방은 러시아를 국제은행결제망(SWIFT)에서 퇴출시켜 고립시키려 했으나 러시아는 자신들만의 시스템으로 즉각 대응했다.

서방에는 이제 전략적 수단이 없다. 단 한 가지, 서방이 잘한 게 있다면 현란한 홍보 전략으로 러시아를 잔인무도한 침략자로 국제사회에 각인시켰다는 것 정도다. 우크라이나와 관련해 서방은 2014년 이후 끊임없이 러시아를 도발하면서(지난 8년간의 내전에서 우크라이나 동남부의 러시아계 주민 1만 5000명이 사망했다) 결국은 러시아의 무력개입을 이끌어냈다.

그리고 마침내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자 미국은 방어자 행세를 하고 있다. (미국은 2014년 이후 대규모 무기 지원과 군사훈련으로 우크라이나의 군사력을 키워왔다) 이는 2차 대전 당시 나치의 수법과 동일하다. 히틀러와 괴벨스는 이렇게 말했다. '국민들을 전쟁에 동원하는 것은 아주 쉽다. 방어전쟁으로 포장하면 된다' 지금 미국이 유럽에서 하는 행동이 이와 동일하다.

▲러시아의 공습으로 폐허가 된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 인근의 모습. ⓒ로이터=연합뉴스

벤자민 노튼 : 이번 전쟁을 계기로 독일이 군비 증강에 나섰고, 일본과의 관계 강화도 시도하고 있다고 한다. 어쩐지 2차 대전을 연상케 하는 섬뜩한 조짐이다.

이제 러시아 루블화의 강세에 대해 얘기해 봤으면 한다. 러시아에 대한 강력한 제재 직후인 지난 3월 바이든 대통령은 “러시아 루블이 쓰레기가 됐다(Russian ruble has become rubble)"고 말했다. 루블화가 폭락할 것이라는 예언이었지만 실제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전쟁 직전인 지난해 11-12월 루블화 가치는 달러당 75루블에서 침공 직후인 3월초에는 139루블까지 폭락했지만 4월 이후 안정을 되찾으면서 현재는 64-69루블로 오히려 가치가 상승했다. 심지어 서방 매체인 로이터 통신도 5월 4일자 보도에서 “유럽연합의 제재 강화에도 불구하고 루블화가 달러 및 유로 대비 지난 2년간 최고치를 기록”했다고 보도했다.

이는 러시아가 에너지 수출 대금을 루블화로 결제하도록 했기 때문이다. 그 메커니즘은 다음과 같다. 러시아 국영기업 가즈프롬으로부터 천연가스를 구입하려는 유럽 기업은 가즈프롬의 자회사인 가즈프롬뱅크의 특별 계좌에 가스 대금을 유로화로 송금한다. 가즈프롬뱅크는 이 유로화 대금을 모스크바 외환거래소에서 루블화로 환전한 다음, 유럽 기업의 또 다른 루블화 계좌인 K계좌에 입금한다. 러시아 입장에서는 K계좌에 루블화 대금이 입금돼 가즈프롬에 전달되는 순간 결제가 완료된 것으로 간주한다. 당초 대부분의 유럽 기업들은 이러한 루블화 대금 결제에 반대했으나 결국은 받아들였다. 이는 놀라운 사태 전개다.

이와 관련해 내가 묻고 싶은 것은, 루블화가 강세를 보이는 이유가 전쟁 이후에도 석유 등 에너지 수출이 계속되면서 외화를 벌어들이고 있기 때문만은 아니라는 점이다. 교수께서는 중앙은행의 정책에 관해 얘기한 바 있는데, 흥미로운 것은 러시아 중앙은행이 지난 4월부터 6월말까지 금을 (1그램에 5천 루블) 사들이고 있다는 점이다.

만일 7월 이후에도 금 매입을 계속하고 루블화 가치를 금값에 고정시킨다면 이는 1971년 이전, 미 달러화를 금 1온스 당 35달러에 고정시켰던 것과 같은 금본위제로 이행한다는 의미인가? 다시 말해 금본위제가 부활하고 있다고 봐도 되나?

마이클 허드슨 : 그렇지 않다. 러시아가 금본위제를 지향하는 것은 아니다. 단지 미국 등 서방 측이 러시아의 외환준비금을 강탈해 갈 수 없도록 하는 방편으로서 금에 투자하고 있을 뿐이다. 즉 금을 외환준비금의 일부로서 비축하고 있는 것이다. 루블화의 가치를 금값에 연동시키는 것은 아니다.

좀 전에 "루블이 쓰레기로(from ruble to rubble)"라는 말을 했는데, 이에 대해 한마디 하고 싶다. 최근 뉴스에 우크라이나전쟁에서 폭탄에 맞아 쓰레기가 된 러시아 탱크의 모습이 여러 번 방영됐다. 그런데 알고 보니 이 쓰레기는 우크라이나 탱크였다. 우크라이나 탱크를 쓰레기로 만들어 놓고는 러시아 탱크라고 우기고 있는 것이다.

지금 이 미국이 시행하고 있는 러시아 제재가 꼭 이와 같은 모습이다. 스스로에 대한 파괴를 자초하면서 상대방을 파괴시켰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은 이렇게 말한다. '우리가 루블을 고립시켰지. 이제 러시아에는 어떤 물건도 수출하지 못할 거야. 이제 러시아는 미국이나 유럽 제품을 살 수 없을 걸.'

하지만 실제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나? 러시아는 독일과 유럽 등에 농산물과 석유와 가스를, 그것도 이전보다 높은 가격에 계속 판매하고 있으며 이에 따라 외화도 계속 벌어들이고 있다. 러시아의 경상수지는 흑자 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이제 러시아 등은 달러화와 IMF를 대체할 수 있는 새로운 국제 통화체제 구축을 꿈꾸고 있다. 새로운 통화체제에서는 상대국의 통화를 외환준비금으로 비축하게 될 것이다. 다시 말해 러시아는 중국 위앤화와 인도 루피화를, 중국은 루피화와 러시아 루블화를 비축하는 것이다.

새로운 국제통화체제에서는 케인스가 구상했던 방식의 특별인출권 같은 것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현재 IMF의 특별인출권 부여가 수혜국에게 재정 긴축이나 임금 삭감 등의 가혹한 조건을 요구하는 것과 달리 해당 국가의 경제 능력 향상에 기여하는 식으로.

하지만 외환준비금이 부족한 경상수지 적자 국가들 사이에서는 외환 결제를 마무리하기 위해 금이 사용될 수 있다. 금은 그 자체로 경제적 가치를 가진 순수 자산이기 때문이다. 자국의 외환을 서방 은행에 맡겨놓을 경우, 이번에 미국이 러시아 외환준비금을 강탈한 것과 같은 사태가 벌어질 수 있다. 자국에 보관된 금을 외환준비금으로 사용하면 이런 사태를 막을 수 있다.

그런데 베네수엘라는 자국의 금을 영국은행에 맡겼다가 강탈당하는 사태를 겪었다. 따라서 이제 각 나라들은 자국의 금을 다른 나라에(미국) 맡기려 하지 않는다. 심지어 독일조차 미국 연방준비은행에 맡겨 두었던 금을 회수하고 있는 실정이다. 독일이 미국의 뜻에 반하는 행동, 예컨대 러시아 에너지를 수입할 경우 미국이 자국의 금을 압류할 것을 우려한 때문이다.

따라서 미국이 아프간에 이어 러시아의 외환준비금을 압류한 행위는 세계 모든 나라들에 대해 앞으로는 달러화의 안전성을 절대 믿지 말라고, 달러화가 아닌 다른 형태로 외환준비금을 갖고 있으라고 선전하는 것과 같은 짓을 한 셈이다. 그렇다면 어떤 형태의 외환준비금이 안전한 것일까? 가장 안전한 외환준비금은 바로 금이다. 금이란 세계 누구나가 인정하듯이 국제정치의 변화와 무관하게 자체의 고유한 경제적 가치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러시아는 금본위제를 지향하는 것이 아니라 미국의 행동에 영향을 받지 않는 독립적 외환준비금의 일환으로 금을 비축하고 있는 것이다. 중국 위앤화나 인도 루피화와 마찬가지로 금도 러시아 외환준비금의 일부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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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인규

서울대학교를 나와 경향신문에서 워싱턴 특파원, 국제부 차장을 지내다 2001년 프레시안을 창간했다. 편집국장을 거쳐 2003년부터 대표이사로 재직했고, 2013년 프레시안이 협동조합으로 전환하면서 이사장을 맡았다. 남북관계 및 국제정세에 대한 전문 지식을 바탕으로 연재를 계속하고 있다. 현재 프레시안 상임고문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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