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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산적 산업자본주의인가, 착취적 금융자본주의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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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산적 산업자본주의인가, 착취적 금융자본주의인가

[해외 시각] 마이클 허드슨의 '문명의 운명' ①

다음 글은 미국 경제학자 마이크 허드슨(미주리대 명예 교수)의 새 책 <문명의 운명 : 금융자본주의, 산업자본주의 또는 사회주의>에 관한 팟캐스트 멀티폴라리스타와의 인터뷰로, 4회에 걸쳐 연재한다. 원문은 허드슨 교수의 홈페이지(michael-hudson.com) 5월 12일 자에 '세습적 전사계급의 책임을 묻는다(Calling to Account the Hereditary Warrior Class)'라는 제목으로 실려 있다. 편집자.

☞ 관련 기사 : 마이클 허드슨을 한국 독자들에게 소개하며

벤자민 노튼 : 멀티폴라리스타 팟캐스트는 오늘날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경제학자인 마이클 허드슨 교수와 함께 미국이 러시아에 대해 벌이는 경제전쟁과 러시아/중국과 미국/유럽 간 경제적 디커플링에 대해 논의하고자 한다. 디커플링은 지난 수년간 허드슨 교수가 강조해온 주제로, 최근 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미국 등 서방이 러시아에 부과한 경제제재에 의해 더욱 가속화되고 있다.

우리는 또한 미국 달러 패권의 쇠락에 대해서도 토론할 것이다. 미국이 지배하는 국제통화기금(IMF)조차도 최근 보고서에서 각국 외환준비금에서 달러의 비율이 감소하고 있다고 밝혔다. 물론 달러 패권이 하루아침에 몰락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IMF도 인정한 것처럼 서방의 러시아 제재가 달러 패권의 쇠락에 일조하는 것은 사실이다.

현재 러시아는 중국과의 무역을 중국 위앤화로 결제하고 있으며, 인도와는 인도 루피화로 결제한다. (중국은 2008년 이후 대외 무역에서 달러화 결제를 줄여가고 있으며 현재 위앤화 비중이 45%인 반면 달러화 비율은 14%에 불과하다) 또한 러시아는 유럽에 대해 러시아의 석유와 천연가스를 구매하려면 루블화로 결제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우선 이번에 출간된 새 책 <문명의 운명 : 금융자본주의, 산업자본주의 또는 사회주의(The Destiny of Civilization : Finance Capitalism, Industrial Capitalism or Socialism)>에 대해 얘기했으면 한다. 이 책의 내용은 인터뷰 서두에 내가 말한 러시아와의 경제 전쟁이나 경제 재재, 디커플링과도 깊은 관련이 있다. 책을 미리 읽어본 결과 매우 중요한 내용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허드슨 교수는 이 책에서 금융자본주의, 산업자본주의, 그리고 사회주의라는 서로 다른 경제모델이 역사적으로, 그리고 국제적으로 근본적 균열을 일으킨 데 대해 논하고 있다. 특히 미 제국은 (1980년대 이후) 세계에 신자유주의를 강제한 근원적 힘이며, 금융자본주의의 한 형태로서, 비생산적(nonproductive) 체제라는 점을 강조했다. 금융자본이 지대(rent)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생산적 제조업을 파괴하는 것이 미국 금융자본주의의 특징이라는 것이다.

즉 미국의 금융자본주의는, 고전파 경제학자들이 자본주의란 생산적 시스템이라고 주장한 것과는 달리, (인간생활에 도움이 되는 재화와 용역을) 생산하기보다는 기본적으로 파괴와 부채에 기반을 둔 (약탈적) 경제체제라는 것이다. 나아가 미국의 대외정책은 바로 이러한 금융자본주의의 확대를 위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미국식 금융자본주의 모델을 세계에 적용함으로써 미국의 경제력을 확장하는 것이 미국 대외정책의 핵심이라는 것이다.

이 책을 쓰게 된 배경은 무엇인지, 즉 금융자본주의, 산업자본주의, 사회주의 간의 투쟁에 관해 좀 더 설명해줄 수 있나?

마이클 허드슨 : 이 책은 중국인들을 대상으로 한 10회 연속 강연을 묶은 것이다. 나는 베이징대학에서 2년간 경제학을 강의했고, 우한과 홍콩의 대학에서도 가르쳤다. 이 강연은 매번 6만 5천 명 정도의 꽤 많은 사람들이 수강했다. 강연의 목적은 중국인들에게 서방 경제 발전의 역사에 대한 나의 전반적 의견을 들려주는 것이었다.

오늘날의 금융자본주의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19세기 당시 유럽의 산업자본주의란 어떤 것인가에 대한 이해가 선행돼야 한다. 지금은 잊혔거나 과소평가되고 있지만, 산업자본주의는 원래 혁명적 현상이었다. 산업자본주의가 이루고자 했던 바는-18세기 후반 프랑스 중농주의자에서 아담 스미스, 존 스튜어트 밀, 칼 마르크스, 그리고 19세기 후반의 사회주의자에 이르기까지-고전적 가치 이론과 지대 이론을 철저히 구분하는 것이었다.

다시 말해 자본가가 이윤 창출을 위해 노동자를 고용했을 때, 정당한 소득(earned)은 무엇이며 불로소득(unearned)은 무엇인가를 밝히는 것이다. 불로소득을 취하는 계층은 지주계급이다. 이들은 중세 시대 유럽의 왕국들을 정복했던 봉건 귀족, 즉 세습적 전사 계급(hereditary warrior class)이다. 이들 전사 계급의 착취에 대해 영국의 산업자본가들은 ‘저들 때문에 우리는 세계의 공장이 될 수 없다, 저들이 지대를 착취하는 한 우리 제품은 해외에서 경쟁력을 가질 수가 없다’고(지대 때문에 생산비가 올라 제품 가격이 올라가므로) 불평했다. 다시 말해 실제 자본 형성과 관련이 없는 고금리의 약탈적 금융이 존재하는 한, 산업자본은 발전할 수 없는 것이다.

19세기의 자본주의를 혁명적으로 만들었던 것은 영국의 산업자본가들과 산업 옹호자들, 심지어 은행가들조차도 영국의 상원과 유럽대륙의 상층 귀족 등 지주 계급을 타파하기 위해 민주적 개혁을 추진했다는 점에 있다. 민주적 개혁을 완수할 수 있다면, 그리하여 시민들에게 투표권을 부여할 수 있다면 그들은 지주 계급에 대항하여 투표할 것이고 그리하면 경제는 더욱 효율적이 될 것이다. 지주계급이나 약탈적 금융계급에 빼앗기는 몫이 크게 줄어들어 자본주의 생산품은 실제 생산비(와 이윤)만을 반영하게 될 것이며, 그리하여 국제경쟁력을 갖게 될 것이다.

프랑스혁명에서 1차 대전에 이르는 장기 19세기동안(1789-1914년) 이러한 혁명적 가치 이론은 토지 지대와 독점에 따른 지대, 그리고 금융 소득 등을 모두 불로소득(unearned)으로 치부하고 이것들을 경제체제에서 없애버리려 했다. 그리고 이러한 시도가 성공한다면 산업자본주의에서 사회주의로의 이행이 가능할 것처럼 보였다. 산업자본가들은 국민들의 생활 보장을 위한 정부의 공공재 제공을 선호했다. 예컨대 정부가 국민들에게 건강보험을 제공하지 않는다면, 국민 각자가 그 비용을 부담해야 하며 (고용자가 그 비용을 보조할 경우) 고용자의 생산 원가를 상승시키고, 이에 따라 산업 경쟁력이 약화된다. 지금 미국의 상황이 그러하다.

19세기에는 영국의 보수 정치인 벤자민 디스레일리 총리 같은 인물도 (정부가) 모든 국민에게 건강보험을 제공해야 한다고 말했다. 마찬가지로 독일의 보수 정치인 비스마르크는 모든 국민에게 연금 혜택을 제공했다. 만일 노동자가 스스로 노후 보장을 위한 연금을 저축해야 한다면, 독일 산업이 생산하는 재화와 용역을 구매할 소비자의 구매력이 부족해진다는 이유에서였다. 따라서 연금은 국가가 제공해야 했다.

이러한 사회주의로의 지향은 19세기 내내 국민들의 생활수준을 향상시켰을 뿐만 아니라 지주나 은행가 등 지대 추구 세력으로부터 경제를 해방시켰다. 고전파 경제학자에게 자유시장이란 지주와 은행가, 그리고 독점 추구 세력으로부터의 자유를 의미하는 것이었다.

당연히 지대 추구 세력은 반격을 시도했다. 2차 대전 이후, 위에 말한 자유시장에 관한 고전적 이론을 대체하기 위한 반(反)고전파 경제이론의 형성이 지속됐다. 그 결과 이제 어떤 계급, 어떤 방식이든 자신이 번 것은 모두 정당한 소득으로 간주됐다. 예컨대 골드만삭스의 임원이 남들보다 훨씬 많은 급여를 받는다면, 이는 그가 남들보다 그만큼 생산적이기 때문이라는 정당화가 완성된 것이다.

이에 따라 고전파 경제학의 자유시장 이론은 부정되었으며, 금융자본주의가 실제로 어떻게 작동하는가에 대해서는 일체 말하지 않는 쓰레기 경제학(junk economics)이 활개 치게 된 것이다. 그러나 실제 경제 현실에 드러나듯 금융자본주의의 사업 방식은 너무도 약탈적이어서 산업의 발전을 저해하고 있다.

공장이나 생산설비, 또는 연구 개발 등에 투자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금융자본주의의 전략과 목표가 아니다. 금융공학에 의해 단기적으로 최대한의 이윤을 뽑아내는 것이 목표다. 금융자본주의가 약탈적이 되어갈수록 공공 부문에 대한 이념적 공격이 강화된다. 예컨대 하이에크는 <예종에의 길>에서 정부가 국가 건강보험을 제공하는 것은 “노예로 이르는 길”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금융자본주의에 의한 부채야말로 노예로 이르는 길이 아닐까.

이제 정부는 (비효율과 부패, 무능 등) 온갖 경멸의 대상이 됐다. 이는 초기 산업자본주의의 혁명적 추동력에 대한 반동세력의 반혁명이 이뤄낸 성과다.

물론 오늘날의 미국 대기업도 은행이나 헤지펀드와 마찬가지로 우익적인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는 미국의 제조업이 금융 부문에 포획됐기 때문이다. 거의 모든 제조업 기업의 최고경영자들이 회사의 주가를 얼마나 올렸느냐에 따라, 스톡옵션의 형태로 받는 급여의 규모가 크게 달라지기 때문이다. 경영자들은 투자를 늘린다든가, 노동자를 더 고용한다든가, 또는 생산성을 높이거나 판매량을 늘려서 주가를 올리는 것이 아니다. 어떤 수단으로든 긁어모은 자금으로 자사 주식을 사들이는 방식으로 주가를 올린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정치권에 대한 자금 제공을 통해 금융부문의 우위를 확고히 한다. 막강한 연준 이사장에 대한 임명권을 민주당과 공화당 등 정치세력이 갖고 있기 때문이다. 연준은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이른바 양적 완화라는 명목으로) 7-9조 달러를 풀어 이들 대기업이 자사 주식과 채권 등을 매입하도록 해 주가와 부동산 가격을 대폭 올린 반면 미국의 제조업 경쟁력은 약화시켰다. 한마디로 금융자본주의는 미국을 탈산업화시켰고, 중서부를 러스트벨트로 전락시킨 것이다.

물론 대안은 있다. 신자유주의적 금융자본주의를 거부하는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가장 성공적인 경제는 중국 경제이며, 내가 새 책에서 중국을 자세히 다룬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중국은 19세기 미국과 독일, 영국과 프랑스가 했던 것과 똑같은 경제정책을 취하고 있다. 국민 생활 유지에 필요한 기본적 제도와 시설, 예컨대 주택, 그리고 무엇보다도 금융과 은행을 공공의 통제 하에, 즉 공공재로 취급하는 것이다.

중국은 금융부문이 자신만의 이익을 위해 독자적으로 활동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으며, 중앙은행(Bank of China)이 신용창조 역할을 떠맡는다(서방에서 신용창조는 주로 민간은행이 담당한다). 중국 중앙은행은, 인민들에게 가장 저렴하게 주택을 공급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가, 산업을 어떻게 육성할 것인가, 효율적 교육제도를 어떻게 만들어낼 것인가, 국민건강을 보장할 방안은 무엇인가 등의 기준에 따라 대출을 결정한다.

사실 중앙계획은 효율적인 사회체제의 한 방식이다. 정부 관료가 모든 것을 일방적으로 결정하는 소련의 스탈린식 계획경제가 아니라, 정부의 체계적 계획과 민간의 자발성이 결합된 중국의 혼합경제를 말하는 것이다.

확실히 중요한 것은 부채 상환이나 높은 지대 지불 등으로 경제에 과중한 부담을 지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즉 고전파 경제학자들이 정당하지 않은 소득(unearned income), 착취적 소득(predatory income)이라고 불렀던 것들이 발생하지 않도록 최대한 노력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이런 것들을 경제에서 몰아내기는커녕 경제의 주인이 되게 만들었다. 미국의 은행과 월가, 영국 런던의 금융 중심지인 시티, 그리고 파리 주식거래소 등이 세계 자본주의 경제의 중앙계획 담당자가 된 것이다. 하지만 금융에 의한 경제계획이란 한마디로 단기성과주의다. 즉 먹튀, 먹고 튀는 것이다. 그 결과 오늘날 세계의 실물경제는 피폐화됐다.

▲ 조지프 케플러는 만화 <의회의 보스들>(1899)를 통해 19세기 말 대자본가들이 이미 미국 의회를 소유하고 있다고 풍자했다. ⓒgoogl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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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인규

서울대학교를 나와 경향신문에서 워싱턴 특파원, 국제부 차장을 지내다 2001년 프레시안을 창간했다. 편집국장을 거쳐 2003년부터 대표이사로 재직했고, 2013년 프레시안이 협동조합으로 전환하면서 이사장을 맡았다. 남북관계 및 국제정세에 대한 전문 지식을 바탕으로 연재를 계속하고 있다. 현재 프레시안 상임고문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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