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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 빨갱이'가 된 페미니스트 … "그래도 계속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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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 빨갱이'가 된 페미니스트 … "그래도 계속 갑니다!"

[노회찬정치학교를 가다] 지금 여기의 페미니즘, 연대의 결심

'평등하고 공정한 나라 노회찬 재단'은 지난 5월 2일부터 7월 2일까지 "노회찬의 뜻과 꿈을 이어가자"는 취지에서 노회찬 정치학교 기본과정 3기를 진행했다. 정치, 경제, 노동, 복지, 젠더, 평화, 생태 등 7개 분야 강의 중 '우리에게 필요한 페미니스트 정치'를 듣고, 수강생 이준호 씨가 강의 및 토론 내용을 바탕으로 작성한 칼럼을 기고했다. 해당 강의는 정인경 전남여성가족재단 연구위원이 지난 6월 11일 강연했다. 아래는 기고 칼럼 전문.편집자

페미니즘 리부트와 페미니즘의 대중화, 그 과정에서 일어난 일들

2016년 5월 17일 새벽, 강남역 인근 주점 종업원 34세 남성 김성민은 서초동의 한 노래방 화장실에 숨어들었다. 남녀공용화장실에서 30분간 기다리며 그는 남성 6명을 지나가게 두고, 그 뒤 들어온 23세 여성을 살해했다. 2010년대 후반 페미니즘 사회운동을 촉발한 '강남역 여성 살해 사건'이다.

해당 사건을 기점으로 폭발한 '페미니즘 리부트'는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넘나들며 그 외연을 넓혀왔다. 강남역 사건 이후 이어진 주요한 여성의제는 '여성이라는 이유로 죽지 않는 사회'에 대한 요구였다. 2016~2017년 촛불 항쟁의 현장에서도 "혐오 없이 안전한 광장"을 바라는 '페미존'이 함께 열렸다. 19세기 1세대(1st Wave) 페미니즘의 문제의식을 가져다 대기에도 민망한, 일말의 문명 회복 요구에 가까운 안전과 생존에 관한 요구였다.

그렇게 열린 광장에서, 혹은 온라인 타임라인에서, 사람들은 사회에 만연한 유무형의 폭력과 불안감을 공유하기 시작했다. 해시태그 운동 '#○○○_내_성폭력' 물결이 이어졌고, 사회 각계각층에서 '미투' 운동이 일어났다.

사람들은 누군가가 겪은 '그때 그 일'이 나 하나의 재수 없는 경험이 아니었음을 인식했다. 그것이 한때의 몹쓸 짓, 나쁜 짓 따위가 아님을 깨달았다. '그때 그 시절'이라 불리는 과거 시기부터 세상이 변해 대명천지가 되었다는 지금 여기까지, 계속해서 벌어져 온 '그때 그 일'은 결국 한국 사회 밑바닥에 깔린 여성혐오 '문화'이자 그 문화의 결과물임을 증언하고 공론화했다. 온라인을 중심으로 이어진 이 기나긴 이어 말하기는 가려져 있던 피해자들이 고위 공직자, 유력 인사의 성폭력 사실을 밝히고 나서게 하는 용기를 북돋기도 했다.

온라인에서 해시태그로, 혹은 거리에 모여서 직접 외쳤던 "무시무시하게 페미페미한" 메시지는 사실 특별히 무시무시한 메시지도 아니었다. "여성을 때리지 말라", "여성을 죽이지 말라", "화장실에 카메라 숨겨 놓지 말라"와 같은 기본적인 이야기들이었다.

기본의 기본이 되는 이러한 슬로건에, 차별주의자와 안티 페미니스트 혹은 혐오세력은 '극단적'이란 딱지를 붙이려고 안간힘을 썼다. 누군가는 광고 속 손가락 모양이 마음에 안 든다며 사이버 불링을 부추기고 다녔다. 일부 남성의 마음에 안 드는 문구가 적힌 티셔츠를 입었다고 괴롭힘에 시달리다 직장을 잃은 사람도 있었다. "왕자는 필요 없다"거나 "여자는 뭐든 할 수 있다"와 같은 문구였다.

상식적인 메시지를 극단적이고 무서운 것인 양 과잉 포장하다보니, 웃기도 힘들 만큼 이상한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가령 온라인 페미니즘 공론화의 흐름 속에서 등장한 "화장실 쓰고 나서는 손 좀 씻자", "양변기를 사용할 땐 남자도 앉아보라"는 식의 위생(혹은 공중도덕에 관한) 지적에, 이름만 대면 알만한 한 대학의 명예교수가 발끈해 칼럼을 게재한 일이다.

그는 역시 이름만 대면 알만한 한 일간지에 "용변본 뒤 손 씻지 않겠다", "꼭 앉아서 오줌 눠야 할까?"라는 칼럼을 기고하면서, 굳이 "여권의 신장인지, 아니면 페미니스트가 늘어서인지 알 수는 없으나 요즘 앉아서 오줌 누는 남자가 많아졌(단)다"라고 과한 반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강남역 여성 살인사건 4주기를 맞은 2020년 5월 17일 오후 서울 강남역 10번 출구 앞에서 시민들이 추모 메시지가 적힌 포스트잇을 붙이고 있다. ⓒ연합뉴스

페미니즘 이즈 뉴 '빨갱이' … 정치권 이대남 전략과 백레시의 시대

조금이라도 페미니즘적인 메시지에 대해 이렇게까지 화를 내는 이유가 무엇일까. 이는 지난 시대 혐오표현의 주류 소재였던 소위 '빨갱이' 프레임과 관련이 있다.

탄핵정국을 지나며 전통적인 빨갱이 딱지는 힘을 상당히 잃었다. 빨갱이 몰이(갈라치기)로 재미를 보아오던 세력에게 새 후보군이 필요한 상황, 리부트된 페미니즘은 이들에게 좋은 표적이 되었을 것이다.

일단 페미니스트는 "말이 많고, 뭔가 불온해 보이며, 분란을 조장한다"는 '빨갱이'의 전통적 선발 요건에 잘 들어맞았다. '새로운 빨갱이는 페미니스트'라고 좌표가 찍혔으므로, 차별주의자들은 "페미니즘의 P자"도 들여다볼 필요 없이 혐오를 발산하고 백레시를 퍼부어도 되었다. ("페미니즘의 P자" : 2017년 한 온라인 커뮤니티 유저가 페미니즘을 비판하며 "페미니스트의 P자만 들어도 거부감이 생겨서요"라고 말한 것이 알려지며, '페미니즘의 스펠링도 모른 채 이를 비판하는 역설적인 상황'을 뜻하는 온라인 밈이 생겨났다.편집자)

만연한 혐오정서는 지난 20대 대선 국면에서 절정에 이르렀다. 페미니즘에 대한 일부 남성계층의 강렬한 반감이 지지세 확장을 위한 갈라치기와 혐오조장, 선전·선동의 훌륭한 재료가 됐다. 이는 2022년 1월 7일, 윤석열 당시 대선후보가 페이스북 계정에 '여성가족부 폐지'라는 일곱 글자 게시물을 업로드하며 공식적인 선거 전략이 됐다.

윤 당시 후보는 앞서 1월 6일에도 '성범죄 처벌 강화, 무고죄 처벌 강화'라는 글을 페이스북에 올렸다. 여가부 폐지와 무고죄 강화라는 두 가지 공약은 모두 대표적인 반 페미니즘 어필 정책으로 평가됐다.

ⓒ지난 1월 윤석열 대통령 페이스북 갈무리.

연대를 결심하며 … "다시는 그전으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

"더 이상 구조적 성차별은 없다. 차별은 개인적 문제다"

-윤석열 대통령의 대선 후보 시절 인터뷰 중 일부

윤석열 대통령이 대선 기간 동안 인터뷰와 토론 등으로 여러 차례 밝힌 인식은 매우 상징적이었다. "구조적 성차별은 없다"는 말은 페미니즘 리부트 이후 여성들이 모아온 목소리와 노력을 전면 부정하는 말이었다. "차별은 개인적 문제다"란 말은 '너 하나가 별나서 문제'라는, 사회적 약자들의 문제제기를 막는 오랜 레퍼토리의 재탕이자, 구조적 차별의 피해자를 개인 단위로 조각조각 갈라 치겠다는 선언이었다.

그는 현직 대통령이다. 대통령이 보였던 이러한 인식은 대통령 개인의 생각을 넘어 국가 행정의 기조가 될 수 있다. 대선이 끝난 후, 우리는 그래서 본격적인 퇴행의 시대를 예감할 수밖에 없었다.

그때 느꼈던 불길한 예감은 윤 대통령 취임 50일도 지나기 전에 서서히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여가부 폐지를 확언하며 취임한 여가부 장관 아래에서, 성폭력 피해자 등을 지원하는 각종 여가부 산하·협력 기관의 위축이 감지되고 있다. 성폭력 상담·지원 현장에선 무고죄 처벌 강화 공약의 영향으로 "피해자에게 가해자를 처벌하자고 적극적으로 독려하지 못하는 상황"(이하영 성매매문제 해결을 위한 전국연대 대표, 2022년 <한겨레> 인터뷰)이 펼쳐지고 있다는 말이 나온다.

그러한 지금의 국면에서, 페미니스트인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누군가에게 '파이'를 구워 줄 수도 없고, '블링블링한 코인'이 되어줄 수도 없다. '화력'에 눈독 들이는, 여성을 갈라치기 정치에 활용해보려는 정치권의 수작에 놀아날 수도 없다.

다만, 페미니즘 리부트 당시부터 (혹은 그 이전부터) 지금껏 해왔듯이, 혐오와 갈라치기 위에 선 세상을 구하는 데 힘을 보태 볼 수는 있겠다. 더 많은 목소리를 모아서, 더 많은 마음을 모아서 파도가 되자. 해일이 되어서 혐오의 시대를 함께 넘어가 보자.

▲지난 3월 17일 서울 영등포구 여성미래센터에서 열린 성평등 정책 강화 요구 선언문 발표 기자회견에서 참석자들이 여성가족부 폐지 공약 철회를 촉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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