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쓰는 모든 에너지를 재생에너지로만 사용하는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 석탄과 석유, LNG 등 화석연료를 태워 발전소에서 내뿜던 온실가스가 사라지고, 방사성 폐기물을 쌓이게 했던 핵발전소가 모두 사라진 세상은 분명 지금보다 나을 것이다. 하지만 기후 위기를 극복하고 에너지 전환과 디지털 전환을 이룬 세계는 재생에너지와 첨단 기술이 더해져 깨끗하고 안전하고 정의로운 미래를 보장할 수 있을까.
<프로메테우스의 금속 – 희귀 금속은 어떻게 세계를 재편하는가>의 저자 기욤 피트롱은 "에너지 전환과 디지털 전환의 가장 첫 단계는 땅에서 지하자원을 캐내는 것에서 시작한다. 결국, 우리는 석유에 대한 의존을 희귀 금속에 대한 의존으로 대체해야 하는 셈이다"라고 말한다. 한국지질자원연구원은 "청정에너지 전환은 광물 집약적 에너지시스템으로의 전환"으로 정의한다.
태양광과 풍력 등 재생에너지와 전기차 배터리 같은 이른바 '녹색기술'에는 다양하고 많은 양의 금속이 필요하다. 리튬, 니켈, 코발트, 희토류 등 희귀 금속이 대표적이다. 희귀 금속은 지구상에 천연 부존량이 적거나, 많이 있더라도 고품질이 아니며 순수한 금속으로서는 얻을 수 없는 금속을 말한다.
리튬과 니켈, 코발트, 망간, 흑연은 배터리 성능과 수명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전력망을 연결하는 데에는 많은 양의 구리와 알루미늄이 필요하며, 특히 구리는 모든 전력 관련 기술의 핵심적인 자원이다. 희토류는 독특한 화학적, 전기적, 광학적 특성으로 인해 소량을 사용해도 소재의 기능을 향상하는 탁월한 효과가 있다. 이에 전기차, 풍력발전 등 친환경산업에 필수적인 영구자석의 핵심 원료로서 수요가 급증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반도체 연마제, 석유화학 촉매, LED 광원, 레이저, 전투기 등 첨단산업에 폭넓게 사용되고 있다.
에너지전환에 필요한 '핵심광물'
석탄발전소를 가동하거나 내연기관 자동차가 움직이기 위해서는 석탄·석유 등 화석연료가 필요하지만, 태양광·풍력 등 재생에너지와 전기차가 작동하는 데에는 연료가 필요하지 않다. 하지만 재생에너지와 전기차는 화석연료에 기반한 설비보다 금속자원이 더 많이 필요하다.
국제에너지기구(IEA)가 지난해 5월 발표한 보고서 '청정에너지 전환에서 핵심광물의 역할(The Role of Critical Minerals in Clean Energy Transitions)'에 따르면, 전기차는 내연기관 자동차보다 금속을 6.2배 더 사용한다. 가스화력발전과 비교할 때 태양광은 6배, 육상풍력은 8.95배, 해상풍력은 13.55배 더 많은 금속을 사용한다. 2010년 이후 재생에너지 신규 투자 비중이 증가하면서 신규 발전 설비용량 당 필요한 금속 투입량은 50% 이상 증가했다.
전 세계 주요 국가들은 필수적인 광물자원을 ‘'핵심광물'로 지정하고 있다. 유럽위원회(EC)는 2020년에 83개 광물종 중 경제적인 중요성과 공급 위험성이 높은 30종을 핵심광물로 지정했다. 핵심광물은 유럽연합(EU) 산업에 기반한 재생에너지, 전기차 등 이동장치, 국방 및 항공우주, 디지털 기술과 같은 전략 분야 개발에 필수적이다.
미국도 중요 광물을 안정적으로 확보하기 위해 핵심광물 35종을 지정했다. 한국은 2004년에 수입의존도가 높은 구리와 니켈, 아연, 우라늄, 유연탄, 철을 6대 '전략광종'으로 지정한 바 있고, 2010년에는 리튬과 희토류를 추가해 8대 전략광종으로 지정하고 자주공급률을 증가시키는 정책을 추진해왔다. 한국지질자원연구원은 탄소중립 실현과 에너지 전환 대비를 위한 6대 핵심광물을 니켈, 리튬, 백금족, 코발트, 흑연, 희토류로 지정한 바 있다.
하지만 세계적으로 희토류를 생산하는 광산은 10여 개에 불과해 주요 국가들이 자원확보에 열을 올리고 있다. 한국지질자원연구원에 따르면, 세계 희토류 매장량은 2021년 기준으로 1억 2,000만 톤으로 집계되며, 국가별 매장량 비율은 중국이 38%로 가장 많고, 베트남(19%), 브라질(18%), 러시아(10%), 인도(6%)의 순이다. 2020년 기준 희토류 생산량 비율은 중국이 58.3%로 가장 많고 미국(15.8%), 미얀마(12.5%), 호주(7.1%)의 순이었다.
세계 리튬 매장량 및 생산량도 몇 개 국가에 한정돼 있다. 세계 리튬 매장량은 2021년 리튬 금속 기준으로 2,100만 톤으로 집계되며, 국가별 매장량 비율은 칠레가 43.8%로 가장 많고, 호주 22.3%, 아르헨티나 9%, 중국 7.1%, 미국 3.1%, 캐나다 2.5%의 순이다. 생산량 비율은 2020년 기준 호주가 48.7%로 가장 많고, 칠레 21.9%, 중국 17.1%, 아르헨티나 7.6%의 순이다.
에너지경제연구원이 지난해 5월 발표한 '세계 에너지시장 인사이트'를 보면, 리튬과 코발트 및 희토류의 경우에는 생산 규모 상위 3개국이 전 세계 생산량의 4분의 3을 차지하고 있다. 특히 2019년에는 코발트와 희토류 생산량에서 콩고민주공화국과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이 각각 70%와 60%를 기록했다. 광물 가공 부문에서의 지역 집중도는 더욱 편중되어 있는데, 특히 중국이 적극적으로 산업 정책을 추진하면서 중국의 가공 점유율은 니켈이 35%, 리튬과 코발트는 50~70%, 희토류는 90%에 달한다.
IEA는 파리협정(SDS: Sustainable Development Scenario)과 탄소중립(NZE: Net Zero Emissions by 2050 Scenario) 이행에 필요한 두 가지 시나리오에 따른 금속 수요를 전망했다. IEA는 파리협정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2040년까지 핵심 광물이 2020년 대비 4배 더 필요하고, 탄소중립을 달성하려면 2040년에 2020년보다 6배나 더 많은 금속자원이 필요하다고 예상한다.
프랑스 국립과학연구원은 세계 금속 소비량이 해마다 3~5%씩 증가하고 있는데, 이러한 수요를 맞추기 위해 2050년까지 인류가 태초 이래 채굴해온 금속보다 더 많은 양의 금속을 캐내게 될 것으로 예측한다. 기욤 피트롱은 "우리는 다음 한 세대에, 선조들이 2,500세대를 거치며 7만 년 동안 소비한 광물보다 더 많은 광물을 소비할 예정인 것"이라고 설명한다.
핵심광물이 가져오는 환경 파괴와 인권 침해
그렇다면, 이러한 금속자원은 인류가 에너지 전환을 이루기에 충분할까? 다시 말해 '자원의 한계'는 없을까?
기욤 피트롱은 "지금과 같은 생산 속도라면 일반 금속과 희귀 금속 15개 정도는 50년 이내에 고갈될 것이고, 철을 포함해 매장량이 매우 풍부하다고 알려진 금속 5종 또한 이 세기가 막을 내리기 전에 바닥을 보일 것이다. 또한 중단기적 관점에서 볼 때 바나듐, 디스프로슘, 테르븀, 유로퓸, 네오디뮴, 티타늄, 인듐 역시 결핍 위기에 놓여 있다"고 말한다. 세계은행은 2017년 보고서에서 '앞으로 녹색 기술을 활용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원자재가 필요할 것이다. 자원을 적절히 관리하지 않는다면 지속 가능한 발전이라는 목표는 무너질 것이다'라고 지적했다.
또한 광물자원은 발견에서 최초 생산까지 평균 16.5년이 소요될 정도로 개발에 장기간이 필요하고, 호주와 중국, 아프리카 등 주요 광물 생산지가 기후위험에 노출되어 있다는 점 등이 안정적이고 지속 가능한 광물 공급을 보장하는 데에 한계로 지적된다. 아울러 구리와 리튬 생산에는 많은 물이 필요한데, 현재 생산량의 50% 이상이 물 부족 정도가 심각한 지역에 집중되어 있다.
핵심광물 채굴 과정에서 환경 파괴와 인권 침해 문제도 계속 제기되고 있다. 리튬 생산 2위 국가인 칠레 북부 지역에서는 지상으로 퍼 올린 지하수에서 리튬을 추출하면서 해당 지역의 물은 점점 고갈되고, 폐수는 자주 정화되지 않은 채 버려지는데, 생태계에 미치는 피해는 조사하지 않고 있다. 콩고에서는 코발트 채굴을 위해 아이들 최소 2만 2,000명과 성인들 20만 명이 소규모 광업에 종사하는 것으로 추정되면서 아동 착취 논란이 끊임없이 나오고 있다.
미국 내에서도 최근 니켈 등 광산 개발이 확대되면서 환경 파괴 문제가 드러나고 있다. 리튬 등 대규모 광물 채굴 과정에서 산림이 훼손되고 수질 및 토양이 오염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희토류 매장량이 세계 3위인 미국이 2000년대 초반 자국 내 채굴을 중단하고 해외 수입에 의존한 것도 이런 환경문제 때문이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에 미국 바이든 정부는 전기차 생산에 필요한 광물 생산을 늘리는 것과 환경 파괴 문제 사이에서 고심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기욤 피트롱은 "중국과 콩고, 카자흐스탄이 무책임한 광업으로 환경을 피폐화하는 동안 미국과 유럽 등 서양 국가들은 무얼 한 걸까? 미국과 유럽이 중국이나 콩고, 카자흐스탄을 비판할 자격이 있을까? 이들 국가가 열악한 환경에서 금속을 채굴하고, 환경을 파괴할 줄 뻔히 알면서도 그들 손에 일을 맡긴 것은 누구였을까?"라고 묻는다. 희귀 금속 문제에 당면한 이른바 선진국들은 리더십을 발휘하기보다는 희귀 금속의 생산과 그에 따르는 오염을 가난한 국가로 옮기는 쪽을 택했다는 것이다.
1991년 세계은행의 수석 경제학자였던 로렌스 서머스는 내부 문서에서 '경제 선진국은 공해를 일으키는 산업을 가난한 국가로, 특히 인구 밀도가 낮고 오염이 심각하지 않은 아프리카 국가로 수출할 것'을 제안했다. 그는 이것을 '흠잡을 데 없는 경제 논리'라고 설명했다.
20세기의 마지막 20년 동안 중국과 서양은 에너지 전환과 디지털 전환을 위해 그동안 맡아온 역할을 서로 바꾸었다. 중국인들은 녹색 기술에 필요한 부품을 생산하기 위해 기꺼이 손을 더럽혔고, 서양은 중국이 생산한 부품을 사들여 친환경을 실천할 수 있게 되었다. 로렌스 서머스가 말했듯 세계는 더러운 자들과 깨끗한 척하는 자들로 양분되어 재편성됐다.
기욤 피트롱은 자국인 프랑스가 광업을 재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대부분의 프랑스 사람들은 이 질문 자체를 불쾌하게 여길 것이며, 환경 운동가들은 반대할 것"인 이 주장의 가장 중요한 논거가 환경이라고 말한다. 광업을 재개하면 수천 개의 일자리가 창출되고 세수입이 증가할 것이며, 폐쇄된 광산을 다시 여는 게 어쩌면 가장 친환경적인 결정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선진국들이 먼저 '책임 있는 광산(광산 채굴이 생태계에 미치는 파급력을 최대한 감축하고, 재정적 이득의 공정한 분배를 우선시하는 광산업)'을 추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더 나아가 "직접 경험해보지 않고는 무엇도 깨닫지 못할 것이다. 프랑스에 책임 있는 광산을 여는 것은 다른 나라가 그들의 영토에 무책임한 광산을 열게 하는 것보다 더 낫다. 광업을 재개하는 건 친환경적이고 이타적이며 용기 있는 선택이다"라고 말한다. 서구 국가들로 광업을 다시 이전하면 그들이 현대적이며 친환경적이라고 주장하는 많은 것들을 위해 어떤 대가를 치러야 하는지 즉시 깨닫게 될 것이고, 어쩌면 사람들은 구매력이라는 신성불가침의 교리까지 버릴 수 있을지 모른다는 것이다. 오염의 심화를 막아야 한다는 절박함으로 막무가내식 소비를 줄이고, 괄목할 만한 발전을 만들어낼 수도 있다는 주장이다.
기욤 피트롱의 주장에 동의하든 안 하든, 녹색 기술이라 불리는 것들도 자원의 한계와 에너지 정의 문제가 똑같이 적용될 수밖에 없다는 점은 분명하다.
우리는 "재생에너지를 생산하기 위해서는 재생할 수 없는 자원을 소비해야 한다"는 점과 "깨끗한 세상을 만드는 데 필요한 금속이 생산 과정에서 어마어마한 환경오염을 동반한다"는 것, 그리고 "오염의 총량은 줄지 않고, 단순히 자리만 이동했을 뿐"이라는 진실을 기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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