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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권자들에게 한 번이라도 물어봤나? 어떤 의료가 필요한지…

[서리풀 연구通] 다른 의료를 요구할 수 있는 상상력

6.1 지방선거를 앞두고 공공의료 확충 공약이 단골처럼 등장하고 있다.(☞ 관련기사 : <청년의사> 5월 11일 자 '지방선거 앞두고 쏟아지는 '공공의료 공약'') 아마 다음 총선이 있는 2024년 전에 마지막으로 열릴 수 있는 정치적 창일지도 모른다. 공약을 내건 후보가 당선된다고 하더라도 어느 지역에 공공병원 하나 세우는 일이 결코 쉽지 않은 일이라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병원 하나가 지어지는 것으로 그 지역의 모든 의료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도. 공공의료 확충을 외친지도 너무 오래 되어 어떤 변화가 가능하긴 할까 하는 피로감이 누적된 듯도 하다. 가끔은 우리가 상상하고 기대할 수 있는 지역 의료의 변화가 너무 협소한 탓은 아닐까 싶기도 하다. 병상 확충과 의료 인력 확보가 아닌 다른 대안과 다른 체계에 대한 상상력의 빈곤.

약간의 도움을 줄 수 있을 것 같아, 국제학술지 <건강정책>에 실린 스페인의 지역분권형 보건의료체계에 관한 흥미로운 연구를 소개한다.(☞ 바로 가기 : 스페인 공공보건의료체계의 분권화는 개인의 건강 선호와도 잘 맞을까?) 스페인은 한국과 인구는 비슷하지만 면적은 5배 넓고 17개의 광역자치주(Autonomous Communities, AC)로 구성된 나라로서, 각 주는 상당한 정도의 독립적 입법, 행정권한을 지닌다. 스페인은 조세에 기초한 국영의료체계를 운영하며 광역자치주마다 상당한 수준의 보건의료 분권화가 이루어져 보건의료기관, 서비스, 지출 수준을 포함해 관할 지역 내 모든 보건의료 활동을 운영하고 관리한다. 중앙정부는 분권화된 체계 안에서 지역 간 조정, 소통, 협력을 지원함으로써 분권화를 통한 효율을 추구하는 동시에 지역 간 형평을 맞추는 역할을 한다.

연구진은 이와 같은 스페인의 분권적 보건의료체계가 보건의료 정책에 대한 개인들의 선호에도 적합한 체계인지 확인하고자 했다. 만일 지역에 따라 개인들의 선호가 다르지 않다면 일괄적인 정책적용에 문제가 없겠지만, 선호가 다르다면 지역마다 필요한 지출과 적합한 운영을 진행함으로써 효율을 극대화하는 전략을 선택하는 것이 적합하다는 논리다. 연구진은 보건의료정책에 대한 개인의 선호를 평가하기 위해 이산선택실험을 시행했다. 이 실험은 사람들이 중요하게 여기는 의료정책의 조합에 따라 '얼마만큼의 비용을 지불할 의사가 있는지'(Willingness to Pay, WTP)를 시나리오로 재구성하여 선택지를 보여주고 가장 선호하는 것을 고르게 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사람들이 중요하게 여기는 의료정책의 속성은 의사· 간호사·이용자로 구성된 초점집단 인터뷰를 통해 도출되었으며, '전문의 대기시간', '수술 대기시간', '병원의 편안함(예: 1인실, 병실 편의시설)', '의료진 관심도(예: 개개인에게 맞추어 집중하는 진료)', '치과 보장 범위', '비용' 이었다. 이 6가지의 요소를 조합한 모든 경우의 수 중에 컴퓨터 연산을 통해 산출된 12개의 최적 조합 시나리오 카드를 제작해 3개씩 배치하고 가장 선호하는 시나리오를 선택해나가도록 했다(표). 연구는 두 개의 광역자치주(바스크주, 카나리아 제도)에서 각각 235명, 255명의 주민에게 설문한 결과를 분석했다.

선호에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되는 개인의 교육 수준(상/하)과 소득 수준(상/하)을 각각 이분하여 네 개의 특성집단으로 층화한 후 '지불의사비용(WTP)'을 비교한 결과 두 광역자치주에서 나온 응답은 확연한 차이를 나타내어 연구 가설이 검증되었다. 교육 수준과 소득 수준이 모두 낮은 집단에서는 바스크주 주민들이 '병원의 편안함', '의료진 관심도', '치과보장' 개선에 더 많은 비용을 지불할 것이라 응답했고, 교육 수준과 소득 수준이 모두 높은 집단에서는 카나리아제도 주민들이 '병원의 편안함'과 '의료진의 관심도' 개선에 더 많은 비용을 지불할 용의가 있었다. 교육 수준이 높은 집단은 소득 수준과 관계 없이 바스크주의 주민이 '수술 대기' 시간 감소에 더 많은 비용을 지불할 수 있다고 응답했다.

한 지역 안에서 사회경제적 특성에 따른 차이도 나타났는데, 바스크주에서는 '병원의 편안함'과 '의료진 관심도' 개선을 위한 비용지불의사가 저소득 집단에서 더 많았으며, 카나리아제도에서는 '수술 대기시간', '병원의 편안함', '의료진 관심도' 개선을 위한 비용지불의사가 교육 수준이 높은 집단에서 더 많았다. 연구진은 바스크주에서 나타난 독특한 결과에 대해 이 지역의 민간보험 가입율이 높다는 점에 주목하여 민간보험을 가진 고소득층은 고급 의료를 이미 개인적으로 이용할 수 있기 때문에 공공의료 개선에 더 많은 돈을 쓰고 싶어 하지 않기 때문일 것으로 해석했다.

지역마다 주민들이 원하는 의료서비스와 그에 대해 지불하고자 하는 비용이 달랐다는 결과는 어쩌면 당연한 것일 수 있다. 하지만 지방정부가 지역의 보건의료체계를 지역의 필요와 선호에 맞추어 예산, 시설, 서비스까지 각자 재설계할 수 있고, 중앙정부가 지역 간 격차를 조정하고 지원하는 시스템이라니 한국의 의료현실에서는 전혀 상상해보지 않았던 것이기도 하다.

지역에 초점을 맞추어 전 국민을 대상으로 지역보건의료 정책을 뒷받침하기 위해 설계된 지역사회건강조사를 실시한지도 10년이 훌쩍 넘었다. 그러나 지금까지 지역별로 건강 수준이 다르고 의료 이용 정도가 다르다는 결과로서의 차이에만 주목해 온 것은 아닌지 새삼스럽게 생각해보게 된다. 지역특성에 맞춘 서비스 설계는 의료가 아닌 공중보건이나 건강증진사업에만 해당되었는데, 지방정부가 가지고 있는 권한의 범위와 국민건강보험을 중심으로 한 의료체계에서 비롯되는 현실적 한계 때문일 것이다. 심지어 지역 의료의 질에 대해서조차 사람들은 지방정부에게 감시나 조정의 책임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지방선거를 앞두고 한 번쯤 물어보는 것은 어떤가. 후보들에게 내가 사는 곳, 우리 지역에는 어떤 의료가 필요하고 어떻게 운영되는 것이 좋을지에 대해서 말이다.

*서지정보

- Sigüenza, W., & Artabe, A. (2022). Do individuals' health preferences validate the decentralisation of the public health system in Spain?. Health Polic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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