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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한 가격'은 착하지 않았다…당신의 옷장이 지구를 살린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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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한 가격'은 착하지 않았다…당신의 옷장이 지구를 살린다면?

[인터뷰] <지구를 살리는 옷장> 저자 박진영,신하나 낫아워스(Not ours) 대표 인터뷰

"소비는 필연적으로 누군가에게 영향을 끼치고 누군가를 지원하는 일인 만큼 소비에도 공부가 필요하다."(<지구를 살리는 옷장> 48p)

소비는 하나의 실천이 될 수 있다. 선행이 알려진 가게는 '돈쭐'을 내주고, 갑질을 한 기업은 '불매'로 응징한다. 무엇을 살지 고르는 일뿐만 아니라, 어떤 것을 사지 않을지 결정하는 일도 실천으로서의 소비다.

비건(Vegan) 지향의 삶도 그렇다. 비거니즘은 단순히 고기를 먹지 않는 채식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내가 쓰는 화장품부터 입는 옷까지, 동물로부터 유래된 성분이 없는 제품을 고르는 일로 소비 실천은 확장된다. 물건이 넘쳐나는 사회이지만 비건 상품은 극히 드물다. 자연스레 고를 수 있는 제품이 적어진다.

"당장 이번 겨울부터 입을 옷이 없었어요. 그래서 '우리가 만들 수 있는 게 옷이니까 옷 한 벌 만들어서 팔아볼까?' 해서 시작하게 된 거죠."

동물 착취 없는 지속가능한 삶에 대한 고민을 담은 패션 브랜드. '낫아워스'(Not ours)는 그렇게 시작됐다. 패션 브랜드에서 동료로 지냈던 낫아워스 박진영(41), 신하나(40) 대표 모두 비건이다. 두 대표 비건 지향의 시작점이나 계기는 달랐을지라도 브랜드 운영 목표는 하나로 뭉쳐졌다. 동물성 소재를 사용하지 않고, 환경오염, 노동착취 없는 옷을 만들기로 했다. 브랜드의 이름도 '우리의 것이 아닌'이라는 뜻을 담았다. 

동물의 털을 사용하지 않은 '페이크 퍼 하프 코트'를 시작으로 선인장 가죽으로 만든 가방과 지갑, 유기농으로 재배된 면화 소재의 티셔츠 등을 만들었다. 최근에는 지속가능한 패션에 대한 고민을 담은 <지구를 살리는 옷장>(창비 펴냄)을 출간했다. 비건이라는 삶의 철학을 패션 브랜드 운영이라는 직업까지 확대했다.

"예전보다 지금이 훨씬 재밌어요. 내가 고기를 먹지 않는 것은 동물을 위해서인데 옷을 만들면서 가죽을 사용하면 스트레스를 받기도 했거든요. 삶과 일이 연결되면서 오히려 마음이 엄청 편하죠."

<프레시안>은 12일 서울시 마포구에 위치한 낫아워스 사무실에서 두 대표를 만났다. 조용한 골목에 위치한 사무실 창문으로 백퍼센트 재활용 나일론 원단으로 만든 가방이 보였다. 

▲서울시 마포구 합정역 인근 조용한 골목에 위치한 낫아워스 사무실 창문으로 100% 재활용 나일론 원단으로 만든 가방이 보였다. 낫아워스에서 생산하는 제품은 비동물성 소재다. ⓒ프레시안(이상현)

'착한 가격' 패스트 패션은 지구를 망치고 있다

"한 벌에 만 원도 안 하는 티셔츠, 3만 원 안팎밖에 안 되는 재킷, 5000원짜리 스카프...이렇게 옷이 저렴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35p)

옷 한 벌을 기워 입고 아껴 입던 시기는 지났다. 국내 SPA 브랜드 매장에 들어서면 저렴한 가격의 옷이 즐비하다. 트렌드에 맞는 '신상'이 끊임없이 쏟아져 나온다. 싼 가격의 패스트 패션 제품은 '착한 가격'이라고 불리며 소비자들의 옷장을 채웠다.

저렴한 가격은 '착취'로부터 왔다. 패션 업계는 인건비를 아끼기 위해 공장을 해외로 옮겼다. 공장은 어떻게든 공임을 낮춰 부르는 게 생존 방식이 되었다. 환경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고려 없이 저렴한 소재를 사용한다.

"싼 물건의 가격에는 언제나 그 가격이 가능하도록 만든 보이지 않는 외부 비용이 결여되어 있다. 오늘날 싼값으로 트렌디한 옷을 즐긴다는 것은 다른 사람이 제공한 값싼 노동의 혜택을 누리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 (36p)

낫아워스가 처음 시작될 때 대표들은 고민에 빠졌다. 동물의 털을 사용하지 않는 '퍼 프리', 환경에 미치는 영향, 원단 재단 작업 노동의 가치 등을 고려해 30만 원의 가격을 책정했다. 가격만 놓고 보면 저렴한 편이 아니었다. 당시 코트 판매를 진행한 크라우드펀딩 사이트에서도 30만 원이 넘는 가격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왜 비동물성 소재로 옷을 제작하려고 하는지 이유에 대해 자세하게 설명해주려고 했어요. 모피 코트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알리고, 쇼룸을 빌려서 사람들한테 페이크 퍼로 만든 옷이 충분히 좋은 옷이 될 수 있다는 걸 알려주고 그랬어요. 옷의 질에 비하면 전혀 비싼 가격이 아니라는 걸 알려드리고 싶었죠." (박진영)

다행히 펀딩은 성공했다. 많은 사람이 낫아워스가 내세운 가치에 공감했다. 프로젝트성으로 시작한 브랜드였지만 이제는 대표적인 비건 패션 브랜드가 되었다.

▲동물 착취 없는 지속가능한 삶에 대한 고민을 담은 패션 브랜드 낫아워스를 운영하는 박진영, 신하나 대표는 모두 비건이다. 낫아워스라는 브랜드 이름도 '우리의 털과 가죽이 아닌 동물의 털과 가죽'이라는 의미가 담겨있다. ⓒ낫아워스 홈페이지

재활용 안 되는 의류...재고 없는 패션 브랜드는 가능할까

낫아워스의 가치 중 하나는 '저렴한 가격의 옷을 여러 벌 구입하기 보다는 좋은 옷을 한 벌 사서 오래 입자'다. 저렴한 옷이 많이 팔려나가는 만큼, 버려지는 옷도 많았다.

"글로벌 패션 어젠다의 2017년 보고에 따르면 전 세계 의류 소비량은 연간 6200만 톤으로 증가했으며 2030년에는 1억 200만 톤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 패스트 패션의 옷은 판매된 후 1년 이내에 50퍼센트가 매립되거나 소각된다."(59p)

의류수거함에 들어가는 옷들은 재활용이 어렵다. 수거함 내 옷 대부분은 저개발 국가로 보내진다. 보내진 옷들이 새로운 주인을 만날지, 쓰레기가 되는지는 미지수다. 옷을 완전 해체해서 재활용하는 방법도 해체 작업의 어려움, 소재의 혼합 등으로 인해 쉽지 않다.

"국내외 대형 패션브랜드의 경우 옷 재고를 그냥 태워버리는 경우도 있거든요. 옷을 만들 때는 많은 물과 에너지가 들어가는데 재고가 되면 그냥 태워버리는 거죠.

또 재활용한다고 다른 나라에 옷을 보내는데 그 옷을 수입하는 나라에서는 옷 산업이 아예 사라질 정도로 문제가 된다고 해요. 옷이 너무 넘쳐나니까 옷을 만들 필요가 없어지는 거죠. 그래서 낫아워스에서는 옷이 그냥 버려지는 경우는 최대한 만들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어요."(신하나)

낫아워스는 재고를 남기지 않는다는 원칙을 고수하며 제품을 제작한다. 제품 한 달 전부터 미리 주문받아 수요를 예측한다. 과잉 생산을 막기 위함이다. 번거로운 과정이지만 낫아워스를 찾는 대부분의 소비자는 미리 주문하는 방식을 선택한다. 규모가 작은 낫아워스에도 재고를 만들지 않는 방식이 비용적으로 더 저렴했다.

재고를 남기지 않는 것만큼 중요한 것은 '같은 옷 오래 입기'다. 소비를 피할 수 없다면 애초에 물건을 적게 사고 쓰레기가 되지 않도록 오래 입는 것이다.

"물건과 관계 맺는 과정이 중요한 것 같아요. 잠깐 입고 말 옷 말고, 내가 이 옷을 얼마나 좋아하고 잘 입고 다닐 수 있는지 생각하면서 구매하는 것도 중요하고요. 보통 같은 옷을 입는다는 부끄러움이 큰데 내가 그 옷을 좋아하는 마음으로 상쇄가 될 수 있는 것 같아요." (박진영 대표)

▲낫아워스는 선인장 가죽 등 친환경 소재를 활용해서 지갑, 가방을 만든다. 제품을 제작하기 한 달 전 부터 주문을 받아 재고 발생을 최소화한다. ⓒ프레시안(이상현)

지금 입고 있는 옷은 어디서 왔을까

옷을 만드는 소재 대부분은 환경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 면을 만드는 면화의 경우 재배 과정에서 상당수의 물을 사용한다. 면화 재배 농장에 사용되는 살충제도 환경 문제를 일으킨다. 폴리에스터, 나일론 등 합성섬유 소재는 제작하는 과정에서 탄소가 배출된다.

동물성 소재에는 환경 문제뿐만 아니라 윤리의 문제도 더해진다. 모피를 생산하기 위한 동물 사육의 잔인함은 이미 많이 알려졌다. 가죽도 마찬가지다. 책은 "가죽은 털을 제거한 모피"라며 동물성 소재 생산에서 오는 문제를 지적한다.

"가죽이 원래부터 소재가 아니라 살아있는 생명이었다는 명백한 사실과, 가죽을 만드는 과정이 환경과 사람에 끼치는 영향을 기억한다면 가죽 가방과 가죽 신발이 앞으로는 다르게 보이지 않을까?"(108p)

낫아워스는 패션에 동물성 소재가 꼭 필요하지 않다는 의견을 던지고 있다. 동물성 소재로 만든 옷을 흉내 내고, 따라가는 게 아니라 다른 소재 자체로도 충분히 좋은 옷을 만들려고 노력한다.

"동물성 소재 없이도 충분히 예쁘고 좋은 옷을 만들 수 있고, 낫아워스가 그걸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해요. 저희 브랜드를 모르지만 쇼룸 앞을 지나가다가 가끔 들어오시는 분들도 계시거든요. 동물성 소재를 전혀 사용하지 않고 있다고 말씀드리면 놀라시는 분들이 되게 많아요. 또 동물성 소재와 얼마나 비슷한지의 기준으로 대체 소재를 보는 게 아니라 소재 자체로 보는 시각도 필요한 것 같아요." (박진영)

패션 산업 또한 조금씩 변하고 있다. 2017년 명품 브랜드 구찌 CEO는 "퍼는 이제 모던하지 않다"라고 말했다. 샤넬 또한 모피와 이그조틱 가죽(악어,도마뱀 등 특수피혁) 사용 및 제작 중단을 선언했다. 2019년에는 150여 개 패션 브랜드가 지구 온난화 해결, 해양 보호, 생명 다양성 회복을 목표로 하는 '패션 협약'에 서명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여전히 문제는 반복된다. 재활용 소재로 만든 옷도 재고가 넘쳐날 정도로 쏟아져 나오고 PVC와 같은 플라스틱 소재를 사용한 인조 가죽 제품이 친환경이라는 이름으로 판매된다.

그런 점에서 낫아워스의 두 대표가 패션 산업에 던지는 질문은 여전히 유효하다. 옷을 덜 만들어내고, 동물을 비롯한 환경을 고려해야 한다. 지속가능한 패션은 우리가 입고 있는 옷이 어디에서 오고, 어디로 가는지를 아는 것에서 시작한다.

"패션 산업의 모든 문제는 연결되어 있어요. 좋은 걸 하자라는 생각보다는 나쁜 걸 덜 하자라는 생각으로 하다 보니 좋은 걸 하나씩 할 수밖에 없더라고요. 최대한 세상에 덜 해로운 걸 만들어내려는 마음으로 브랜드를 운영하고 있어요. 이런 활동을 담은 책을 패션업계에 종사하시는 분들도 많이 읽어주면서 같이 고민해나갔으면 좋겠어요."(신하나)

▲<지구를 살리는 옷장>(박진영,신하나) ⓒ창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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