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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나는 文 대통령에게 쓰는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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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나는 文 대통령에게 쓰는 편지

[기고] 안녕, '착한 우파 대통령'

문재인 대통령님, 내일이면 청와대를 떠나 고향 양산으로 가시는군요. "원래 있던 남쪽 시골에 내려가 노을처럼 잘 살아보겠다"는 마지막 인사처럼 여생을 평온하게 지내시길 기원합니다.

45%라는 임기 말 역대 최고 지지율 때문일까요? 문 대통령을 추앙하는 글들이 넘쳐납니다. 임종석 전 비서실장은 "대한민국이라는 운동장을 조금 더 공정하게, 조금 더 정의롭게 바꾸려고 노력했던 과정"이라고 했고, 박수현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은 "문재인 정부 5년간 공공사회지출이 대폭 증가해 소득 안전성을 확보하고 양극화 및 불평등을 해소했다"고 평가했습니다.

대통령 당신도 지난 5년이 자랑스러웠는지, 5월 1일 노동절에 "지난 5년간 정부가 노동기본권 보장에 온 힘을 기울였다"며 "최저임금 인상과 52시간제 시행으로 노동 분배를 크게 개선했고 일과 생활의 균형에 진전을 이뤘다"고 자평했습니다. 새 정부를 향해선 "우리 정부의 성과를 전면적으로 부정한다"고 비판했습니다.

당신이 어린이날 야구모자를 거꾸로 쓰고 눈높이는 맞추느라 쪼그려 앉은 사진, 식당에서 청와대 직원들과 격의 없이 밥을 먹는 소식이 SNS를 장식합니다. 탁현민 비서관은 대통령이 기념촬영을 하지 못한 경비대원에게 다가가 "불행을 행운으로 바꿔볼까요?"라며 단독샷을 찍었다고 올렸습니다. '사람 좋은 대통령' '친구 같은 대통령' 이야기가 꽃을 피웁니다.

▲ 문재인 대통령이 어린이날인 5일 오후 청와대 녹지원에서 열린 '어린이날 100주년 기념 청와대 어린이 초청행사'에서 어린이와 휴식 시간 대화하고 있다. 이날 행사에는 벽지 분교및 개교 100주년을 맞은 초등학교 학생들이 초청됐다. ⓒ연합뉴스

문 대통령을 추앙하는 사람들

제가 이 편지를 쓴 이유입니다. 보수언론에서는 당신을 친노동 정부, 좌파 대통령이라고 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당신은 친기업 정부, 우파 대통령입니다. 단서를 달자면, 사람 좋고 성품 좋은.

당신이 노동절에 쓴 자랑 1호 최저임금 인상은 경총을 비롯한 사용자단체의 반발로 어떻게 변질되었습니까? 상여금과 식대를 최저임금에 포함시켜 상여금이 800%인 대기업·공공기관과 설·추석에도 보너스 없고, 일 시키고 밥도 안 주는 중소기업으로 '양극화' 되었습니다. 또 영세 자영업자 지원을 외면해 노동자와 소상공인을 적으로 만들었습니다.

당신의 자랑 2호 52시간제는 탄력근로제와 포괄임금제로 대기업이 아닌 중소기업 노동자는 오늘도 '공짜야근'에 시달리는 '무늬만 52시간'이 된 지 오래입니다. 당신이 늘 자랑해왔던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화'는 대법원에서 정규직이라고 판결받은 사업장(한국도로공사)마저도 공사 직접고용이 아닌 자회사 소속으로 만들어, 언제라도 회사를 없앨 수 있는 '짝퉁 정규직화'였습니다.

당신이 자랑한 3대 노동정책 모두 사용자단체의 반발로 기업에 유리해지거나 누더기가 됐고, 이로 인해 대기업-중소기업, 정규직-비정규직 사이의 양극화와 불평등이 더욱 심화 됐는데, "양극화 및 불평등을 해소했다"는 건 대체 어느 나라 이야기입니까?

3대 노동정책 사용자 위한 정책으로 변질

현장의 노동운동가들은 당신이 한 가장 쓸모있는 정책으로 '빨간날'(법정공휴일) 유급휴일과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 임금명세서 지급 의무화를 꼽습니다. 하지만 그것마저 반쪽짜리입니다. '빨간날' 유급휴가와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은 5인 미만 사업장을 제외시켜 400만에 달하는 노동자들은 어린이날 출근해야 하고, 갑질을 당해도 신고조차 할 수 없습니다. 특수고용, 프리랜서 등 비임금노동자 700만 명도 마찬가지입니다.

지난 3월 직장갑질119가 여론조사 전문기관에 의뢰해 직장인 2000명을 조사한 결과 직장인의 24%, 비정규직은 43.5%가 임금명세서를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는 실태조사나 처벌을 하지 않았습니다. 김용균을 비롯해 노동자들의 죽음과 투쟁으로 만들어진 중대재해처벌법도 시행령 과정에서 누더기가 되었고, 산재 사망사고는 줄어들지 않고 있습니다.

문재인 정부 공약을 팩트 체크하는 '문미터'(moonmeter.kr)에서 직장인 공약을 검색하면 비정규직 사용사유 제한, 불법파견 정규직화를 비롯해 파기된 공약이 수두룩합니다. 심지어 문재인 정부는 민주노총 위원장과 수석부위원장을 모두 구속했습니다. 당신이 '폭군 대통령' '이명박근혜'와 다른 점은 조용히 감옥에 가뒀다는 점뿐입니다.

유일한 성과 빨간날 유급휴일·임금명세서도 반쪽짜리

당신이 입에 침이 마르도록 자랑해마지않는 '코로나 방역'은 참 잘했습니다. 그러나 "한 개의 일자리라도 반드시 지키겠다"고 약속한 '코로나 일자리 방역'은 어떻습니까? 직장갑질119의 직장인 2000명 조사에서 코로나19 이후 실직경험이 비정규직 노동자는 31.4%로 정규직의 4배가 넘었습니다. 코로나19로 인한 소득감소도 비정규직은 57%로 정규직의 3.4배였습니다.

정규직 노동자들은 코로나19로 휴업했을 때 고용유지지원금으로 평균임금의 최대 90%까지 보존 받으며 코로나 시기를 버텼는데, 5인 미만, 프리랜서, 특수고용직, 플랫폼노동 등 근로기준법 밖 1100만 노동자는 일부만 '긴급고용안정지원금'(150만 원)을 받았을 뿐 문재인 정부에게 어떤 지원도 받지 못했습니다. 백신휴가도, 코로나 유급휴가도 비정규직에겐 그림의 떡이었습니다.

코로나 양극화와 불평등이 '역대급'이었는데, 어느 나라 운동장이 "조금 더 공정하고 정의롭게" 바뀌었다는 말인가요?

▲민주노총 조합원들이 1일 오후 서울 중구 숭례문 인근 세종대로에서 2022 세계노동절대회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코로나19 양극화 '역대급'

당신이 집권한 5년 동안 무엇이 달라졌습니까?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양극화는 더 극심해졌고, 아파트값 폭등으로 부동산 부자는 떼돈을 벌었습니다. 정부는 주식, 선물, 환율, 가상화폐까지 금융투기를 부추겼고, 투기로 벌어들인 소득의 세금은 조족지혈에 불과했습니다. 코로나 태풍에도 건물주는 조물주 위에 있었습니다. 문재인 5년, 불로소득자는 더 부유해졌습니다.

반면 중소기업, 비정규직, 특수고용직, 프리랜서, 플랫폼 노동자, 1인 자영업자 등 가난한 노동자 서민들의 삶은 더욱 비참해졌습니다. 집값과 물가는 폭등했는데, 제자리걸음인 월급 때문에 먹고 살기 힘들다는 탄성이 곳곳에서 쏟아지고 있습니다. 문재인 5년, 노동소득자는 더 가난해졌습니다.

그 결과 촛불로 끌어내린 정치세력이 5년 만에 다시 권력을 잡았습니다. 그런데도 반성할 줄 모르고 양극화와 불평등을 해소했다며 '자뻑'하고 있는 모습을 보니, 민주당의 앞날도 기약이 없어 보입니다.

애초 기대가 별로 없거니와 헛발질을 할 것이 뻔히 예상되는 새 대통령이 '이명박근혜'처럼 재벌과 부자들을 위한 '나쁜 우파 대통령'이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당신 팬들이 노무현 전 대통령처럼 당신을 그리워할 수도 있겠지요.

그런데 말입니다. 제2의 문재인, 제3의 '착한 우파 대통령'은 결코 국민들의 삶을 바꿀 수 없습니다. 세계 최악의 빈부격차를 만든 '불로소득 공화국'을 부수는 대통령이 나와야 우리 삶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청와대를 떠나는 '사람 좋은 우파 대통령'에게 권합니다. 남쪽 시골에 내려가 노을처럼 지내면서 당신이 집권한 5년 노동자 서민이 겪은 아픔에 대해 깊이 성찰하시길. 혹여 자서전을 쓴다면, 코로나19로 고통받은 이들에 대한 진심 어린 반성과 위로를 담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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