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등하자고 13일째 밥을 굶는 사람이 있습니다."
지난 23일 서울 국회의사당 앞에서 열린 차별금지법 제정 촉구 문화제에서 장예정 차별금지법제정연대 공동집행위원장은 이종걸 공동대표와 미류 책임집행위원을 이렇게 소개했다. 이 대표와 미류 위원은 지난 11일 국회 앞에 천막집을 짓고 단식농성에 돌입했다. 농성의 이유는 분명했다. 차별금지법을 제정하라. 해당 법을 제정해야 하는 이유도 분명했다. 모든 시민의 평등을 보장하라. 차별금지법의 다른 이름은 그래서 '평등법'이다.
26일, "평등하자고" 시작한 둘의 단식농성이 16일째에 접어든 날 <프레시안>이 국회 앞 농성장 평등텐트촌을 찾았다. 이종걸 대표는 15년 간 이어진 차별금지법 논의 국면을 가리켜 "이제는 정말 '제정' 하나만 남았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지난해 화제가 된 국가인권위원회의 차별금지법 제정 관련 여론조사 수치(찬성 88.5%)에서 확인할 수 있듯, 단순 숫자로 따져도 대다수 국민이 차별금지법 제정 필요성에 공감하는 상태다.
한국사회는 지금 차별금지법 제정 국면에 서 있다. 어떤 논의를 통해 여기까지 왔는지, 그리고 차별금지법이 '있는' 세상은 어떤 모습일지 그에게 물었다.
시민들의 힘으로 만들어온 제정 국면 … "사회적 합의는 이미 이루어졌다"
이종걸 대표와 미류 위원, 둘은 지난해 11월에도 국회 앞에 섰다. 차별금지법 제정에 대한 각지 시민들의 요구와 공감을 한 데 모으며 부산에서 국회까지 30일 간 '평등길'을 걸었다. 같은 해 6월엔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을 요구하는 국회 국민동의청원이 심사기준인 10만 명을 넘어섰다. 한두 해의 일이 아니다. 평등법 제정을 요구하는 이 같은 시민행동은 2007년 법무부가 처음 법안을 발의한 이후 15년 동안이나 이어져왔다.
이 대표 또한 07년 당시부터 차별금지법 제정 투쟁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당시 법무부 발의안에서 '성적 지향'을 포함한 7개 차별금지 사유가 삭제되면서, 차별금지법의 발의가 오히려 "성소수자 등은 차별해도 된다는 식의 사회적 여론이 생성되는 계기"로 작용하고 말았다. 이 대표는 당시 조항 삭제 과정을 가리켜 "특별하게 사회적 의견을 수렴한 결과가 아니라, 기득권층이나 권력을 가진, 또는 자본이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준 결과"라 평했다.
실제로 당시 '성적 지향' 조항 삭제는 의회선교연합 등 국회 내 기독교 성향 의원들이 적극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한 결과였다. 재계 또한 '학력' 등 일부 조항에 반대하며 힘을 더했다. 정치권이 수용했다는 의견은 "그들 권력층의 의견"이었다. 당시부터 지금까지 이어진 '완전한' 차별금지법 제정 촉구 투쟁은, 결국 "(성소수자, 저학력자 등) 이러한 사람들은 차별해도 된다"고 용인한 정치권의 메시지에 대한 시민사회 일반의 "분노"인 셈이다.
지난 25일 윤호중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장은 "평등법 제정 논의를 힘차게 시작하겠다"며 검수완박 다음의 입법과제가 차별금지법임을 시사했다. 이 대표는 박수를 보내기보단 그간의 '책임'을 강조했다. 제정을 이뤄내지 못하고 "논의를 시작하겠다"는 말만 반복하는 것이 "지금까지 민주당이 계속 취해 왔던 포지션"이기 때문이다. 이 대표는 "시작을 하겠다고 했으면 어떤 계획으로 어떻게 제정하겠다 하는 플랜이 있어야 되는데, 그런 것조차 없다"며 "(민주당 내에선) 지금까지 논의조차 제대로 안 해온 것이 사실"이라고 지적했다.
"우리는 차별에 대해 잘 모른다" … 차별금지가 '법'이 돼야 하는 이유
이 대표는 "차별금지법이야말로 차별을 드러내고 가려냄으로써 차별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수행할 수 있게 하는 틀"이라고 말한다. 법을 제정하기 전에 '무엇이 차별인지 먼저 사회적으로 합의해야 한다'고 말하는 차별금지법 반대 세력의 주장은, 사실 "(법 제정에 대한) 신중론이 아니라 차별금지법 제정 자체를 막아 '누군가를 차별하게 해달라'는 주장"일 뿐이라고 이 대표는 강조했다.
우리 사회는 차별을 제대로 직시하고 있을까. 이 대표는 차별금지법 논의가 일부 사회적 소수자의 의제처럼 여겨지는 현상을 지적하며 "차별은 비단 사회적 소수자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 곳곳에 놓인 수많은 사람들의 문제"이며, 그 "많은 사람들이 일상에서 겪는 먹고 사는 문제와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다"고 이야기했다. 가령 "코로나19 상황에서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일자리를 잃게 된 가운데, 남성보다 여성이, 정규직보다 비정규직이, 일반 직종보다 단기 직종이 더 많이 일자리를 잃었다." 차별은 광범위하게 벌어지며, 누군가의 먹고 삶과 밀접하게 연결돼 있다는 대표적인 예다.
반면 "차별에 저항하고 대항할 수 있는 창구는 너무나 부족하다"는 게 이 대표의 지적이다. 차별 시정을 위한 진정 창구조차 제대로 마련돼 있지 않다. "(지금도) 국가인권위를 통해 진정을 할 수 있긴 하지만, 그게 보편적으로 잘 알려지지도 않은 상황"이며 "일반 사회나 국가기관, 권력기관 등이 (인권위의) 차별시정권고를 잘 수용하지도 않는 게" 현실이다. "정부부처나 공공기관에서도 차별에 대한 문제제기가 받아들여지지 않는 경우가 많은" 지금, 차별 당하는 당사자들은 자신의 차별 경험을 이야기할 때 "(네가) 너무 예민하게 받아들이는 거 아니냐는 반응이 나오지 않을까 불안해한다. 사회가 이 문제의식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 불신에 시달리기도 한다." 이 대표는 이러한 상황을 가리켜 "우리 사회가 여전히 차별을 잘 모른다"고 평했다.
이 대표는 우리 사회에 "문제제기를 하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제도를 통해, 법적 근거를 가지고 "차별에 대해 문제제기하고, 어떤 차별행위가 (법적으로) 차별임이 판단되고, 그것이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과정을 겪어야 한다." 그것이 사회가 차별을 알아가는 과정이다. 이 대표는 차별금지법 제정의 가장 핵심적인 의의가 바로 그 "사회적 과정"에 있다고 봤다. "차별금지법이 제정된다고 당장 모든 개인에게 실질적인 변화가 일어날 순 없다. 다만 우리가 이 제도를 이용하는 만큼 변화도 만들어낼 수 있다." 즉 차별금지법이란 모든 차별을 일거에 없애는 법이 아니라 "차별과 혐오에 맞서 싸울 수 있는 민주주의적 토대"를 마련하는 법이다.
"혐오공화국"에 맞서 승리하기 위해 차별금지법이 필요하다
'성적 지향에 따른 차별을 금지하는 것은 안 된다', '학력에 따른 차별을 금지하는 것은 기업에 가혹한 처사다', '차별금지법은 역차별을 유발한다', 혹은 '포괄적 차별금지가 아닌 개별적 차별금지만으로 충분하다' 등등 차별금지법을 반대하는 측이 법 제정을 가로막으며 제시한 명분은 다양했다. 15년 간 이어진 차별금지법 제정 투쟁은 이러한 주장들에 대한 지난한 반박과 설명을 동반해 왔다.
이 대표는 이러한 반대 의견이 "특별히 새로운 게 07년도 당시부터 지속되어온 '차별을 용인해 달라'는 (일부 세력의) 의견"이라며 그 의견 하나하나를 조명하기 보단 "누군가를 차별하게 해달라는 의견이 더는 공론장에 설 수 없다고 이야기"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정계나 언론 등에 의한 차별·혐오 발언의 인용은 그 자체로 차별과 혐오를 재생산할 수 있다. 더구나 차별은 "하나의 속성이 아닌 다양한 속성들의 연결 속에서 발생"한다. '어떤 차별은 법에 포괄해선 안 된다'는 의견에 의해 논의가 지연되는 사이 "사회적인 비용이나 시간적인 비용이 발생하고, 그 사이 수많은 사람들에 대한 다양한 차별이 계속해서 발생한다."
최근엔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의 여성가족부 폐지 논란,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의 장애인 혐오 논란 등 정치권발 차별·혐오 이슈가 세간의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에 이종걸 대표는 지금껏 많은 정치인들이 "이주민이나 성소수자 차별과 혐오를 선도하는 세력에게 먼저 찾아가 차별금지법을 제정하지 않겠다고 약속"하거나 "차별금지법 제정이 오히려 선거에 걸림돌이 됐다고 이야기"하는 등 "차별과 혐오의 정치를 이용해왔다"고 지적했다. 그에 따르면, 그래서 "더욱 필요한 게 차별금지법이다."
이날(26일) 이 대표는 "시민들이 싸우면 우리 사회의 정치 지형을 바꿀 수 있다"고 강조하며 인터뷰를 마쳤다. 두 활동가의 단식과 이전까지의 모든 싸움에 21대 국회는 응답할까. 같은 날 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가 전체회의를 통해 '차별금지법(평등법) 공청회 계획서'를 채택했다. 여야합의를 통해 차별금지법 공청회가 열리는 건 2007년 이래로 이어져온 차별금지법 제정 투쟁의 역사에서 이번이 처음이다. "시민이 만들어 낸 싸움"이 결국 15년 만에 국회를 움직인 셈이다. "존엄으로서 승리"하기 까지 이젠 정말 한 발짝, 제정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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