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우크라이나에 드론과 대전차 미사일 등 8억 달러 (한화 약 9800억 원) 규모의 무기를 추가로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우크라이나의 상공을 비행금지구역으로 설정해 달라는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의 요청에 무기 지원이라는 간접적인 방식으로 답한 셈이다.
16일(현지 시각)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대국민 연설에서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의 공격을 막아내도록 계속해서 도울 추가 안보 지원을 활성화한다"며 이같은 지원 내용을 밝혔다고 <미국의 소리> 방송이 보도했다.
미 정부는 우크라이나에 전술무인비행시스템(드론)과 '스팅어' 대공 미사일 시스템 800기, '재블린' 대전차 미사일 시스템 2000기, 경량 대전차무기, AT-4 대전차시스템, 보병용 소총과 권총, 기관총, 산탄총 등을 지원할 예정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번 조치가 "우크라이나 방어를 위해 최첨단 시스템을 보내겠다는 우리의 약속을 입증하는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이번 무기 공급을 포함해 미국은 지금까지 우크라이나에 약 20억 달러 (한화 약 2조 4000억 원) 규모의 지원을 실시했다.
바이든 대통령의 이러한 결정은 젤렌스키 대통령의 미 의회 연설이 있은 뒤에 이뤄졌다. 앞서 젤렌스키 대통령은 이날 화상으로 진행한 연설에서 미국이 겪었던 9.11 테러 및 진주만 공습 등을 언급하면서 "우리는 그런 공격을 매일 밤낮으로 3주째 받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우크라이나의 주요 도시들이 파괴되는 영상을 공개하면서 "러시아는 1000기에 가까운 미사일을 발사했고 폭탄 발사를 위해 드론을 날리고 있다"며 우크라이나 상공에 대한 비행금지구역 설정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전날인 15일 캐나다 의회를 상대로 가진 화상 연설에서도 "얼마나 더 많은 미사일이 우리 도시에 떨어져야 (비행금지구역)을 설정하겠나"라며 조속한 조치를 촉구했다.
하지만 미국을 비롯한 서구는 이같은 조치가 직접적 군사 개입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실제 실행이 어렵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비행금지구역을 설정하면 결국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NATO)의 전투기를 우크라이나 영공에 보내 이곳에 진입하는 러시아 전투기를 격추해야 하는데, 이는 결국 나토의 참전이 되기 때문이다. 대신 이들은 인플레이션이 가중되는 상황을 감수하고 러시아에 대한 전례 없는 제재 조치를 실시하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오늘 나는 솔직해지고자 한다. 길고 어려운 전쟁이 될 것"이라며 전쟁에 대한 직접적 개입보다는 간접적인 방식으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막아내기 위해 계속 제재를 이어갈 뜻을 밝혔다.
그는 "세계는 앞으로 며칠, 몇 주 동안 더 많은 일을 할 것"이라면서 "시간이 갈수록 (러시아 경제의) 고통은 커지기만 할 것"이라고 말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원 및 연설을 마치고 행사장을 떠나면서 푸틴 대통령에 대해 "전범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해 현 국면이 종료된 이후에도 러시아의 침공이 '전쟁범죄'에 해당하는지에 대한 책임도 물을 수 있다는 점을 시사했다.
한편 푸틴 대통령은 우크라이나를 점령할 계획이 없고 우크라이나와 협상에 대한 준비가 돼있다면서도 침공에 대한 정당성을 강조했다.
그는 서방의 제재로 인해 어려움을 겪고 있는 지방정부에 대한 지원방안을 논의하는 화상 회의에서 "키예프(키이우) 인근이나 다른 우크라이나 도시에서 러시아군이 등장한 것은 우크라이나를 점령하기 위한 것이 아니며 우리에게는 그러한 계획이 없다"고 밝혔다.
푸틴 대통령은 "우리는 우크라이나의 중립국 지위와 탈군사화 및 탈나치화 문제에 대해 협상 과정에서 논의할 준비가 돼 있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그는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해 "평화적으로 문제를 해결할 방법이 남아있지 않았다"며 "러시아군이 도네츠크인민공화국(DPR)과 루간스크인민공화국(LPR) 영토에서만 행동했다면 러시아에 대한 위협을 차단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협상은 일부 진전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부 장관은 이날 러시아 매체인<RBC>와 인터뷰에서 "안전보장 조치와 중립국 지위 문제가 진지하게 논의되고 있다"며 "합의에 근접한 매우 구체적인 문구들도 있다"고 전했다.
<텔레그래프>는 양측 협상 대표단이 15개 항으로 구성된 합의안을 준비 중이라고 보도하기도 했다. 여기에는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 금지 및 외국 군사기지 유치와 무기 배치 불가 등의 항목이 포함돼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협상안에는 우크라이나의 무장 수준을 제한하고,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침공을 중단하고 철군한다는 내용도 포함돼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우크라이나의 국제적 지위에 대해서는 스웨덴이나 오스트리아 등 무장한 중립국 형태를 구상하고 있다는 발언도 나왔다. 그런데 이에 대해서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측이 서로 상대국이 먼저 이 방안을 내놓았다고 밝혀 실제 이러한 구상이 추진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양측은 지난 14일부터 화상으로 4차 회담을 진행하고 있다. 회담의 구체적 결과는 아직 나오지 않은 가운데 이번 회담이 휴전 등 국면 변화의 계기가 될 수 있을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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