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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주 바우배기 학술발굴] 되짚어 본 전주교구장 김선태 주교 특별담화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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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주 바우배기 학술발굴] 되짚어 본 전주교구장 김선태 주교 특별담화문

ⓒ천주교 전주교구


지난 2021년 3월 11일, 완주 초남이성지에서 바우배기 일대를 정비하다가 순교복자들로 추정되는 유해를 발견했습니다.

그때 함께 출토된 일부 유물(지석)에는 인적사항이 분명하게 표기되어 있어 그 유해가 순교복자들의 유해임을 거의 확신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교구는 사안의 중대성을 감안하여, 교회가 정한 절차에 따라 순교자 유해의 진정성을 확인하고 혹시 있을지 모를 불필요한 의혹이나 논란에 대비하기 위해 유물과 유해에 대한 정밀조사를 의뢰했습니다. 여러 방면에서 면밀하게 검사한 최종 결과, 두 분의 유해는 1791년 신해박해 때 순교하신 한국 최초의 순교자 복자 윤지충 바오로(32세)와 권상연 야고보(40세)로 판명되었고, 또 한 분의 유해는 1801년 신유박해 때 순교하신 복자 윤지헌 프란치스코(37세)로 밝혀졌습니다.

이 발견은 실로 놀라운 기념비적 사건입니다. 순교자들의 피를 밑거름 삼아언 그 순교역사에서 첫 자리를 차지하는 분들의 유해를 비로소 찾았기 때문입니다. 

코로나19의 대유행으로 모든 영역이 큰 어려움을 겪는 위기의 관점에 한정해 우선 두 가지 메시지를 묵상할 수 있습니다.

첫째, 신앙의 본질에 충실하라는 메시지입니다.

참수 9일 후에 사람들이 순교자들의 시신을 거둘 때 "그 시신이 조금도 썩은 흔적이 없고, 형구에 묻은 피가 방금 전에 흘린 것처럼 선명한 것을 보고 매우 놀랐다. 이후 교우들은 여러 장의 손수건을 순교자들의 피에 적셨으며(…) 당시 병으로 죽어 가던 사람들이 이 손수건을 만지고 나은 일도 있었다고 한다."

그렇습니다. 그분들의 순교에 감화를 받아 모진 박해로 신앙이 흔들렸던 교우들은 다시 마음을 바로잡았고, 적지 않은 외교인들이 입교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교우들은 윤지충이 옥에서 피와 눈물로 쓰신 『죄인 지충일기』를 필사하여 영적 독서로 읽으며 믿음을 깊이 다졌습니다. 아울러 그분들의 순교는 이후 교우들의 순교에도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따라서 윤지충과 권상연의 순교는 박해시대에 신앙이 더욱 자라고 열매를 맺는 씨앗이 되었습니다.

그러기에 조선의 첫 선교사인 주문모 신부님은 나중에 두 순교자의 무덤 위에 성당을 세워야 할 것이라고 칭송하셨고, 김대건 신부님도 윤지충의 거룩한 순교를 칭송하며 ‘조선의 첫 순교자’로 높이 공경하셨습니다.

이렇게 훌륭한 순교자들의 유해를 여러 방면에서 심각한 위기를 겪고 있는 이 시대에 드러내신 뜻은 너무 분명합니다. 그것은 '신앙의 본질에 충실하라'는 것입니다. 사실 위기는 본질적인 것과 비본질적인 것을 구분하지 못하는 혼동에서 비롯되기 때문에, 위기의 시대에는 특히 본질에 충실해야 합니다. 최초의 순교자들은 우리에게 하느님께 대한 철저한 신앙으로부터 우리의 삶을 다시 시작해야 한다고 웅변하고 계십니다. 참된 신앙은 우리 시대의 심각한 위기를 극복하도록 용기와 지혜와 힘을 줄 것입니다. 

둘째, 신앙으로 친교와 형제애를 다지라는 메시지입니다.

이번에 유해가 발견된 장소인 초남이성지 바우배기는 본래 유항검 소유의 땅이었습니다. 당시 유항검은 초남이 일대의 세력을 여전히 유지하고 있었고, 또 유항검은 윤지충과는 이종사촌이고 권상연과는 내외종간 사촌이었기 때문에, 유항검이 최초의 순교자들을 그곳에 모신 것은 확실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단지 혈연 차원의 일만이 아니었습니다. 윤지충과 권상연은 친지들 사이에서 삼강오륜을 저버린 죄인으로 크게 비난을 받았었고 또 실제로 그 죄목으로 참수되었기 때문에, 그 시신을 자신의 땅에 묻는 것은 큰 위험을 무릅써야 했습니다. 이번 발견에서 확인되었던 것처럼, 실제로 묘광을 일반적인 경우보다 현격하게 깊이 파 순교자들을 모셨고 또 묘지석을 땅속에 묻은 것을 보면, 그런 위험을 의식했던 것처럼 보입니다. 이러한 위험에도 불구하고 순교자들을 그곳에 모신 것은 무엇보다도 신앙 때문이었습니다. 실제로 유항검은 윤지충과 권상연보다 몇 년 일찍 세례를 받고 호남의 사도로서 신앙의 가르침을 열성적으로 몸소 실천하며 노비와 마름, 작인에 이르기까지 복음을 전하고 가난한 이웃과 재물을 나누었기 때문에, 신앙을 위해 목숨을 바친 순교자들을 충분히 모시고도 남습니다.

세 분 순교자의 유해가 발견된 바우배기 묘소에서 분명해진 점은 초남이를 기점으로 교우들이 신앙으로 서로 연대하고 깊은 친교와 형제애를 나누었다는 것입니다. 산 이들만이 아니라 순교하신 분들과도 친교가 이루어졌습니다. 모든 성인의 통공이 이미 실현되고 있었던 것입니다.

전주교구는 이번에 유해가 발견된 최초의 순교자 윤지충과 권상연을 위시하여 호남의 사도 유항검과 수많은 순교자들의 피가 스민 땅이며, 모진 고난과 박해 속에서도 수많은 교우촌 신앙공동체를 이루어 순교자들의 신앙을 지켜온 터전입니다. 순교자의 신앙을 유산으로 물려받은 우리 교구가 이번 유해 발견을 계기로 순교 영성을 더욱 되살리는 일은 교구의 미래만이 아니라 온 교회와 세상을 위한 중대한 영적 과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어둠속에 빠져들고 있습니다. 우리 사회는 이미 오래 전부터 하느님이 아니라 돈이나 건강을 최우선으로 여기고, 연대와 형제애보다는 개인을 우선으로 삼고 있습니다. 이러한 물질만능주의와 극심한 개인주의에서 우리 사회의 모든 병폐가 비롯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이러한 점에서 앞서 성찰한 두 메시지는 우리 자신과 이 시대를 쇄신할 수 있는 중요한 순교 영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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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종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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