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진보와 반동은 손을 잡고 온다"…김연수를 통해 서경식을 만나다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진보와 반동은 손을 잡고 온다"…김연수를 통해 서경식을 만나다

[프레시안 books] <서경식 다시 읽기> 연립서가

유독 자주 들춰보게 되는 작품이 있다. 소설가 김연수의 단편 <부넝쒀(不能說)>가 그렇다. 세월호 참사를 회고한 기사에서, 그리고 숱한 조작 간첩 사건들을 엮은 졸저에서, 나는 몇 번이고 이 작품을 인용한 바 있다. (☞304개의 고통, 304개의 역사…'부넝쒀' 세월호)

"역사라는 건 책이나 기념비에 기록되는 게 아니야. 인간의 역사는 인간의 몸에 기록되는 거야. 그것만이 진짜야. 떨리는 몸이, 흘러내리는 눈물이 말해주는 게 바로 역사야. 이 손, 오른손 검지와 중지가 잘려나간 이 손이 진짜 역사인 거야…."

이 세계에는 부넝쒀, '말로 다 하지 못하는(不能說)' 이야기가 헤아릴 수 없이 많다는 걸 이제 조금쯤은 안다. 그래서 이토록 탁월한 문장들은 대체 어떻게 나온 것일까 궁금했더랬다.

십수 년 만에야 힌트를 찾았다. 서경식 교수의 정년퇴임 기념 문집 <서경식 다시 읽기>(서경식 외 18명, 연립서가 펴냄) 저자 목록에서 '김연수'라는 이름을 발견하고 나는 혼자 웃었다. 부넝쒀 역사관의 젖줄기가 서경식이 아니었을까. 혹여 나의 짐작이 틀렸다 해도 크게 나무라지 마시길 바란다. 작품을 읽고 난 후의 감상과 상상은 오롯이 독자의 재미인 것이니.

저자 목록을 살펴보자니, 반가운 이름들이 몇몇 더 있다. 나는 그저 '서경식'이란 이름을 좇아왔을 뿐인데, 김연수와 조해진, 서동진, 권성우, 박혜진, 한승동이 줄줄이 튀어나온다. 소싯적에 적게는 한두 번, 많게는 수십 번은 밑줄 그었을 문장들을 선사한 이들.(지금 여기서 호명하지 못한 분들께는 내 수준이 미천한 탓이라 송구할 따름이다.)

본디 짝사랑하는 이는 짝사랑 상대와 발가락 모양 같은 작은 공통점 하나에도 설레는 법인지라, <서경식 다시 읽기>를 읽는 내내 무척 행복했다. 나 홀로 흠모했던 이들과의 공통분모가 서경식이기 때문이다.

▲서경식 다시읽기 ⓒ연립서가

서경식과 재일조선인, 디아스포라

서경식이란 이름을 처음 접한 건 대학생 때, 머리의 성장통을 세게 겪던 시기였다.

일본군'위안부'피해 여성 쉼터 나눔의집에서 진행한 한일 대학생 교류 프로그램에 참가한 적이 있다. 교과서에서만 보던 일본군'위안부'의 실재를 확인하고, 그들로부터 '증언의 힘'이 무엇인지를 뼈저리게 깨달았다. '타자화'의 개념을 배우고, '국가', '국민', '전쟁', '여성'에 관한 큼직한 테제들 사이에서 허우적거리고 있었다. 거기서 재일조선인 2세 학자 서경식을 알게 된 것은 필연에 가까웠다.

그렇게 처음 만난 서경식의 글은 <한겨레> 연재 칼럼 '디아스포라의 눈'이었다. 서경식이 증언한 디아스포라의 삶이란 감히 상상해본 적 없는 삶이었다. 한국과 일본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이들, '우리'라고 말할 대상이 애매모호한 이들. 식민 지배자의 언어를 모어로 삼고 자라 식민 지배자의 언어로 생각하고 표현할 수밖에 없는 '언어의 감옥'에 갇힌 이들, 그래서 매 순간 모순을 견디며 살아가는 이들이 재일조선인이었다.

서경식은 재일조선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에 대해 "식민지 지배와 민족 분단의 아픔이 계속되고 있다는 걸 잊지 말도록 상기시키는 과거의 망령"이라고 표현한다. 현재를 살면서도 끊임없이 과거에 속박되는 삶이란 어떤 것일까.

서경식의 형이자 재일교포 유학생 간첩단 사건으로 구속된 서준식의 옥중서한 속 한 대목이다.

"저에게는 고향이 없습니다. 어렸을 때 놀던 곳, 학교 다니던 길, 옛집, 무척이나 가고 싶습니다. 하지만 그곳은 고향이 아닙니다...(중략) 자기 자신 속에 깊이깊이 박혀 있는 '일본'을 모조리 알코올로 말끔히 씻어 내 버리고 싶어서 그리도 몸부림치던 저이기에 고향이 멀어져 가는 슬픔은 그대로 동시에 희열이기도 합니다...(중략) 그리워해서는 안 될 '고향'밖에 없는 저는 불행한 인간입니다."

헤아릴 수 없이 비극적인 이들의 운명에 암담함을 느꼈다. 여성학자 정희진의 "안다는 것은 상처받는 일이어야 한다"는 말대로라면, 위안부 할머니들과 서경식만큼 나에게 많은 상처를 남긴 이는 없을 것이다. 서경식과 그의 형제들의 증언을 읽을 때면 생채기 정도가 아니라 생살이 썰리는 느낌을 받았다. 지금껏 그들의 존재를 몰랐다는 게, 혹은 외면해왔던 게 그렇게 부끄러울 수 없었다.

그러나 알았다 해도 어떻게 할 것인가. 나는 디아스포라가 처한 현실을 '나의 문제'로 여기고 해결하겠노라 감히 천명할 수 있을까. 서경식과 재일조선인 문제, 디아스포라 문제를 마주하는 것은 바로 이런 물음에 직면하는 일이었다. 이것은 거대한 벽이었다. 나는 이런 한계에 부딪혀 어찌할 바를 몰랐다.

"기억의 투쟁에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어떻게 공헌할 수 있는가? 어떻게 참여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 저의 관심사였습니다. (중략) 여러분들도 타자의 고통이라든가 기억의 투쟁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 또 한 번 깊이 생각하셔서 지금껏 있어 온 표현 수단이라든가, 상투화된 문장을 넘어서 어떻게 해서든 우리가 이 싸움에서 이 투쟁에서 이겨 내야만 한다는 지혜로운 생각을 했으면 합니다." -<고통과 기억의 연대는 가능한가>, 235p

서경식이 던진 이 문장들은 20대. 아니 지금까지도 내 안에 가장 큰 화두로 남아있다.

▲서경식 교수. ⓒ프레시안 자료사진

타자와 나는 어떻게 만날 수 있는가

'기억의 투쟁에 어떻게 공헌할 수 있는가?', '고통과 기억의 연대는 가능한가' 이 질문들 앞에 선 지 십수 년째이지만 나는 여전히 우물쭈물하다. 그저 묵묵히 그의 물음들을 곱씹을 뿐이다.

그렇게 2008년 <디아스포라의 눈>에서 시작된 서경식 읽기는 <디아스포라 기행>, <나의 서양미술 순례>, <고통과 기억의 연대는 가능한가>, <만남>, <책임에 대하여> 등을 거치며 2022년 <서경식 다시 읽기>에 이르렀다.

<서경식 다시 읽기>는 2021년 서경식의 도쿄경제대학 퇴직을 계기로 기획한 기념 문집으로, 서경식의 글과 사유를 자양분 삼아 자신의 작품과 세계를 만들어간 이들의 글 모음집이다. 소설가와 예술가, 연구자, 평론가, 번역가, 기자, 편집자, 출판인 등 18명의 저자들이 서경식에 관해 써 내려 간 연대와 우정의 기록이다. 서경식에 대한 충실한 해설서인 동시에 서경식의 문제의식을 어떻게 체화했는지에 대한 자기 고백의 장이기도 하다.

서경식은 <고통과 기억의 연대는 가능한가> 서문에서 "존재하는 차이를 서로 인정하고 그 바탕 위에서 어떤 연대의 길이 가능한지 찾아보기"를 권했다. 그러나 나는 <서경식 다시 읽기>를 읽으면서 각 저자와 나의 차이를 확인하기보다 한 줄 한 줄 공감하기에 급급했다. 그래도 실패한 독서라 칭하고 싶지는 않다. 애초에 '서경석으로 이어져 있다'라는 내적 친밀감에 집어든 책이니 말이다. 그렇게 나는 <서경식 다시 읽기> 속에서 보물 찾기 하듯 저자들과 나의 공통된 무언가를 찾고, 또 한편으론 저자들이 기억의 투쟁에 어떻게 임하고 있는지를 찾아 헤맸다.

모든 글마다 고개를 끄덕이게 됐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애정 어린 시선으로 읽을 수밖에 없었던 글은 서경식의 제자 하마무의 자전적 에세이였다.

'여자아이지만 여자답지 않아' 억울한 감정이 그득했다던 하마무의 과거는 마치 어린 날의 나 같아 설핏 웃음이 났다. 서경식이라는 타자와 내가 어떻게 만날 수 있는지를 고민하고, 그러나 배울수록 희망이 사라지는 것 같아 절망하고, 또 한편으론 나 또한 누군가를 타자화하는 것 아닌지 끊임없이 나의 가해자성을 의심하던 모습 속에서도 나를 찾을 수 있었다.

하마무는 서경식의 격려 끝에 치열한 사유를 거듭하고 결국 자신만의 언어를 찾아간다. 시와 그림 등을 통해 그는 차별하지 않고 배제하지 않는 표현을 실천하고 있다. 감격스러우러우면서도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다. 내가 여태 다다르지 못한 실천의 단계에 접어들었다니.

모래에 파묻히는 개가 되자

▲서경식 교수의 저서들. ⓒ프레시안(서어리)

그렇다면 나는 어떤 실천을 할 것인가. 이를 생각할 무렵 김연수가 언급한 고야의 '모래에 묻히는 개'와 마주했다. 정확히는 다시 마주했다. 분명 처음은 아니었다. 이미 수 년 전 <나의 서양미술 순례>에서 보았을 테니. 그런데 왜 <서경식 다시 읽기>에 이르러서야 벼락을 맞은 듯한 충격에 휩싸인 것일까.

서경식은 스페인 마드리드 프라도 미술관에서 고야의 '모래에 묻히는 개'를 보며 "이 개는 고야 자신이다. 하지만 그 당시 나는, 이 개는 나라고 생각했다"라고 썼다. 이 문장 또한 다시 마주한 것이다. 그러나 그 당시는 와닿지 않았던 것이 왜 지금은 내게 가느다란 떨림으로 다가오는 것일까.

"진보는 반동을 부른다. 아니, 진보와 반동은 손을 잡고 온다. 역사의 흐름은 때로 분류가 되지만 대개는 맥 빠지게 완만하다. 그리하여, 갔다가 되돌아섰다가 하는 그 과정의 하나하나의 장면에서, 희생은 차곡차곡 쌓이게 마련이다. (중략) 하지만 헛수고처럼 보이기도 하는 그런 희생 없이는, 애당초 어떤 열매도 맺지 않는 것이다. 그것이 역사라고 하는 것이다. 단순하지도 직선적이지도 않다. 이 사실을 정말로 이해하는 일은 간단치 않다. (중략) 내 마음을 암담하게 만드는 것은, 이 간단치 않은 이해를 무조건 강요받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나의 서양미술 순례>, 108p

과거엔 이해할 수 없던 이 말들이, 나이를 먹어 지금은 구구절절 이해가 되는 까닭일까. 나는 고야가 그랬듯, 서경식이 그랬듯 '모래에 묻히는 개'에 나를 투영하고 있었다. 김연수는 여기에 약간의 주석을 덧붙였다.

"온몸으로 이 모래를 뒤집어쓰면서도 앞으로 나아가야만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혹은 앞으로 나아가면서도 어떤 의심을 떨칠 수 없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모래에 묻히는 개'가 아닐 수 없다" -<서경식 다시 읽기>, p39

그러고 보니, '모래에 묻히는 개'는 루쉰의 <고향>을 닮은 것 같았다. 내가 김연수의 <부넝쒀>를 자주 언급하듯, 서경식은 여러 저작에서 루쉰의 <고향> 마지막 부분을 곧잘 인용하곤 한다.

"희망이란 본래부터 있다고도 할 수 없고 없다고도 할 수 없는 것 아닌가. 그것은 마치 땅 위에 난 길과 같은 것이 아닐까. 길이란 본래부터 있은 것이 아니라 다니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차차 생긴 것이다."

서경식은 이를 두고 "'하면 된다'는 얘기가 아니다. 희망이 없다고도 할 수 없지만 거의 없다. 그래도 걸어갈 수밖에 없다는 것"이라고 해석한다. 그러니까 저 개는, 희망이 거의 없지만 그래도 걸어가는 것이다. 모래를 뒤집어쓰면서.

그렇다면 나 또한 모래에 묻히는 개가 되어야겠다, 라고 생각했다. 모래를 뒤집어쓰면서도 앞으로 나아가야지. 지금 내가 서 있는 이 자리에서 끊임없이 모래를 뒤집어쓰면서도 끊임없이 써야지. 서경식을 읽고 또 <서경식 다시 읽기>를 읽고 깨달은 것이다.

"써야 할 자는 더 쓰고, 그려야 할 자는 더 그리고, 노래해야 할 자는 더 노래해야만 하리라. 믿는 자의 운명이란 그런 것일 테니까" -<서경식 다시 읽기>, p45

언제나 탁월했던 김연수는 일찍이 모래에 묻혀 있는 듯하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서어리

매일 어리버리, 좌충우돌 성장기를 쓰는 씩씩한 기자입니다. 간첩 조작 사건의 유우성, 일본군 ‘위안부’ 여성, 외주 업체 PD, 소방 공무원, 세월호 유가족 등 다양한 취재원들과의 만남 속에서 저는 오늘도 좋은 기자, 좋은 어른이 되는 법을 배웁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