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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대선, 포스트 코로나 체제의 성평등을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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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대선, 포스트 코로나 체제의 성평등을 묻는다  

[시민건강논평] "불평등 '젠더 레짐' 바꿔 일상의 성차별과 젠더 폭력을 줄이는 게 유일한 대안" 

유엔은 "지속가능한 내일을 위한 오늘의 성평등(Gender equality today for a sustainable tomorrow)"을 2022년 국제 여성의 날 구호로 정했다. 시대 정신에 부합하는 적실한 구호가 아닐 수 없다. 여성은 기후 위기와 팬데믹과 같은 재난에 더 큰 영향을 받지만, 이로 인한 사회경제환경 변화에도 더 책임감 있는 모습을 보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대선에 대한 지난 두 주의 논평에 이어 오늘은 포스트 코로나 체제의 성평등에 대한 비전을 톺아보려 한다.(☞ 관련 기사 : 1월 24일 자 '이재명·윤석열·안철수·심상정, 포스트 코로나 체제의 비전은?', 2월 1일 자 '2022년 대선, 다시 포스트 코로나 체제의 비전을 묻는다')

가장 눈에 띄는 공약은 젠더 폭력에 대한 것이다. 가해자 처벌과 피해자 보호를 강화하고, 디지털 성범죄와 데이트 폭력에 대응하겠다는 약속을 공통으로 확인할 수 있다. 과거 대선과 달리 젠더 폭력이 전면에 등장한 데는 이를 직접 요구하며 행동했던 여성들의 노력이 큰 역할을 했다(우리 연구소는 이들의 실천을 새로운 정의를 요구하는 '민란'으로 규정한 바 있다).(☞ 바로 가기 : 2018년 5월 21일 자 ''동일 범죄, 동일 처벌'이 되려면')

하지만 가정과 일터, 길거리와 온라인을 가리지 않고 만연한 젠더 폭력과 그 원인이 되는 젠더 권력관계를 바로잡자는 시대적 요구에 부응하는 대선 후보들의 대답은 빈곤하기 짝이 없다. 먼저, 대선 후보들이 젠더 폭력이 발생하는 원인에 대해 이해하고 있는지부터 물어야겠다. 아직도 남성은 생물학적으로 성적 욕망을 통제할 수 없고 여성은 남성이라는 잠재적 가해의 위험으로부터 보호받아야 한다는 관점에 머무르고 있는가?

젠더 (기반) 폭력은 여성에 대한 폭력이 생물학적 조건이 아니라 사회경제적으로 낮은 지위를 점하고 있는 여성의 위치, 즉 젠더 권력의 위계 때문에 발생한다는 사실을 드러내는 개념이다. 여성에 대한 폭력은 성폭력 사건들에 붙는 흔한 설명처럼 극소수의 악마가 저지르는 일탈 행동이 아니라 여성에 대한 만연한 차별과 불평등의 결과다. 젠더 폭력에 대한 후보들의 공약은 이런 구조적 불평등을 바꾸겠다는 의지를 포함하고 있는가?

형법에 규정하는 무고에 대한 처벌을 성범죄에 한정하여 강화하겠다는 황당한 공약이 아니더라도 후보들의 공약에 높은 점수를 주기는 어려워 보인다. 국가가 엄정한 아버지가 되어 감시하고 처벌하며 누가 보호받을 자격이 있는 피해자인지 결정하는 부권주의적 입장에서 벗어나, 불평등한 '젠더 레짐'을 바꿈으로써 일상의 성차별과 젠더 폭력을 줄여나가는 길이 유일한 대안이기 때문이다.

여성이 안심하는 세상에서는 다른 다양한 정체성의 사람들도 안심할 수 있을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불평등과 차별이 사라지지 않는다면 젠더 폭력 역시 사라지지 않는다. 기술로 성 착취를 예방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술 낙관주의 또한 경계해야 한다. 성 착취를 일상화하는 기존의 기술을 규제하고 젠더화된 기술 불평등을 줄이려 노력하는 것이 바른 길이다.

엄마가 아니라 여성을 권리의 주체로 놓는 여성 건강 공약이 있는지 살펴보는 것도 성 평등에 대한 비전을 확인하는 데 중요한 기준이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와 심상정 정의당 후보는 임신 중지와 피임에 대한 건강보험 급여화를 포함한 성과 재생산 건강과 권리 보장을 약속했고,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는 성년 여성에 대한 '자궁 및 유방 검진 건강보험 적용'을 내놓았다.

여전히 여성 건강을 '비키니 의학'의 영역으로 국한하는 진부함 외에도 아쉬운 점은 많다. 페미니스트들이 오랫동안 비판해왔던 여성 건강의 의료화와 상업화를 부추기는 정책을 '소확행'으로 포장해 두었지만, 정작 여성들이 처해있는 현실의 고통을 직면하겠다는 정치적 의지는 보이지 않는다.

▲ⓒ시민건강연구소

코로나19 유행은 전 세계적으로 여성들의 실업과 빈곤, 돌봄 위기를 초래했고 이는 한국에서도 마찬가지다. 국제사회는 코로나 팬데믹의 경제불황을 여성불황(She-cession)으로 규정하고 여성 노동과 돌봄 정의를 팬데믹 대응의 핵심 축으로 삼아야 한다는 논의를 진행하고 있다. 방역 일선에서 코로나 환자를 치료하고 돌보는 필수인력 중 절대 다수가 여성으로, 이들이 보상은 적게 받고 소진과 과로는 심각한 수준이라는 사실은 이미 널리 알려져 있다. 이에 대한 대책은 어디에 있는가?

사정이 이러하니 성과 재생산 건강 기본법을 제정하겠다는 약속 또한 공허하게 들릴 수밖에 없다. 과거 경험, 5년 전 문재인 후보가 약속한 '여성건강기본계획'이 비공개로 작성된 후 정부의 문서함 속에서 잠자고 있다는 사실을 떠올리면 더욱 그렇다. 불평등한 젠더 권력 구조를 바꾸겠다는 강한 의지와 구체적 전략 없이는 성적 권리와 재생산 건강을 보장할 수 없다.

지금 '성평등'이나 '페미니즘' 같은 단어를 입에 담을 수조차 없을 것 같은 퇴행의 정치는 실망스럽지만, 그저 낙담과 개탄으로 흘려보낼 여유가 없다. 대선 후보들이 내놓는 미래의 방향과 세부 사항을 검토해야 한다. 다양한 목소리를 내고 투표권을 행사하는 일은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정치이자 더 나은 세상, 즉 불평등의 억압이 사라지고 지속 가능한 지구를 요구하는 시민들의 책무이기도 하다.

"저들이 원하는 것은 우리의 무기력이다, 지지 않고 더욱 거세게" 행동하자고 말하며, 오는 12일 서울 보신각 앞에서 집회를 기획하는 '2022 페미니스트 주권자 행동'의 실천을 참고하자. 다른 무엇보다, '약한' 우리 각 개인이 협력하고 연대하며 강해지는 일의 모범이다.(☞ 바로 가기 : 2022 페미니스트 주권자행동: 차별과 혐오, 증오선동의 정치를 부수자)

ⓒ2022 페미니스트 주권자행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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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시민건강연구소는 "모두가 건강한 사회"를 지향하는 건강과 보건의료 분야의 싱크탱크이자, 진보적 연구자와 활동가를 배출하는 비영리독립연구기관입니다. <프레시안>은 시민건강연구소가 발표하는 '시민건강논평'과 '서리풀 연구通'을 동시 게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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