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인>은 1월 14일 기획기사, "기후·환경 정치 그 가능성이 보인다"에서 한국에서 기후위기 이슈를 중시하는 유권자 집단이 생겨나고 있음을 전했다. '나는 대선에서 나와 정치적 성향이 달라도 기후위기 해결에 앞장서는 후보가 있다면 지지하겠다'라는 질문에 응답자의 38.8%가, '나에게는 이번 대선에서 다른 어떤 공약보다 기후위기 공약이 중요하다'라는 질문에 36.8%가 '그렇다'라고 응답했다는 것이 한 증거다. 대략 전체 응답자의 3분의 1이 기후위기를 제대로 다루는 대선을 요구한다고 볼 수 있겠다.
그러나 20대 대선에 나선 이른바 주요 후보들 사이에서 적극적인 기후정책을 찾아보기는 어렵다. 정의당처럼 기후위기를 선거 제1의제로 표명한 경우도 있지만, 여론조사 3위 내의 후보들에게서 기후위기는 전혀 심각한 주제가 아니다. 내놓은 공약뿐 아니라 미디어에서의 발언을 봐도 기후위기 대응은 던져진 질문에 대한 답변 형태에 포함되는 정도가 대부분이다. 그리고 미약한 기후정책보다 몇십 배 많고 몇백 배 많은 돈이 들어가는 개발과 성장 공약들이 기후시민과 기후유권자들을 슬프게 한다. 그나마 지난 선거들보다 이번 대선에서 기후위기 이야기가 많아진 것이 다행일 수 있겠지만, 다분히 국제적 압력과 기후운동의 영향 덕분이지, 기후위기를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정치, 즉 기후정치의 토대와 핵심이 갖추어져서는 아니다. 주요 후보들은 스스로 초래한 짜증 대선, 혐오 대선 속에서도 살아남는 게 급선무이기에, 2050년 탄소중립 따위는 굳이 먼저 꺼낼 얘기가 못 되는 듯하다.
그럼에도 유일하게 뜨거운 쟁점이 있으니 탈원전 공방이다. 더욱 슬프게도 탄소중립과 결부되어 주장이 난무한다. 물론 심도있는 토론이 이루어진다는 의미는 아니다. 윤석열 후보는 처음부터 탈원전으로 탄소중립은 절대 불가능하다며 핵발전 증설을 주장했다. 안철수 후보의 핵에너지 사랑은 더욱 진심이다. 그는 혁신형 SMR(소형모듈원전)의 기술개발을 국책사업으로 추진하고, 2050년까지 원자력에너지 35% + 재생에너지 35% + 기타에너지 30%의 정교하고 실현 가능한 에너지믹스 로드맵을 이행하겠다고 한다. 심지어 한미원자력협정을 개정하여 사용후핵연료를 재활용하는 파이로 프로세싱을 추진하겠다고 한다.
특히 논쟁의 중심에 있는 것이 경북 울진에서 추진되다가 문재인 정부가 취소한 신한울 3, 4호기의 재개 문제다. 사업이 공식적으로 취소됐기 때문에 재개가 아니라 신규 추진이 맞지만, 어쨌든 부지 기초공사가 되어 있고 헤드 부품 일부가 만들어져있으니 하던 사업을 계속하자는 논리다. 윤 후보와 안 후보는 신한울 3, 4호기를 재개하고 수명이 다한 핵발전소 11기도 연장 가동하면 2030년까지 40%의 탄소 감축이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이 감축 예상 수치는 큰 의미가 없다. 국민의힘 의원이 국회입법조사처에 요청하여 받아낸 보고서라고 하는데, 연구라고 할 만한 무엇이 아니라 석탄화력발전소를 같은 설비용량의 핵발전으로 대체했을 경우 탄소배출이 없다는 가정으로 수치를 계산한 것일 뿐이다. 게다가 전체 배출량의 40%가 아니라 발전(전환) 부문만 계산한 것이라서, 핵발전량이 늘어나야만 2030년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NDC)가 달성 가능한 것처럼 착각을 불러 일으킨다. 물론 노후 핵발전소의 수명연장에 드는 비용이나 시간도 고려하지 않았고, 신한울 3, 4호기 이후에 계속 핵발전 증가가 가능하거나 타당한지도 따진 것이 아니다. 또 하나, 핵발전을 찬성하는 두 후보들도 SMR을 찬양하지만, SMR은 아직 연구 개발 대상이지 탄소중립 시나리오에 투입될 수준이 아니다. 결국 신한울 3, 4호기를 재개하자는 것과 재생에너지가 불안하다는 것 말고는 에너지전환과 탄소중립을 위한 구체적인 복안은 없는 셈이다.
이들은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이 잘못된 정치적 신념 때문에 추진된 정책이고, 한국의 세계 일류급 원전 기술을 사장하고 원전산업 생태계를 망가뜨린다고 비난한다. 그러나 이들의 핵발전 사랑이야말로 종교적 믿음에 가깝다. 해외의 반핵운동 뿐 아니라 다수의 에너지 전문가들은 핵발전이 탄소 감축의 유효한 대안이 될 수 없다고 말한다. 이유는 위험하고(사고와 방사능) 더러운(핵폐기물 처분의 원초적 불가능성) 에너지일 뿐 아니라, 너무 비싸고 느린 에너지이기 때문이다. 핵발전이 재생에너지보다 저렴하다는 주장은 현실과 더욱 멀어지고 있다. 그리고 지구온난화의 티핑포인트에 도달할 때까지 남아 있는 탄소예산의 양이 7~8년 정도밖에 남지 않았음을 감안하면, 한 기를 건설하는 데에 최소 10년이 걸리는 핵발전은 탄소 감축에 실제 아무런 도움을 줄 수 없다. 설령 신한울 3, 4호기를 건설한다 하더라도 탄소예산이 소진된 후에야, 그리고 재생에너지 중심으로 세계 시장과 에너지망이 개편된 이후에 첫 핵연료봉을 분열시키게 될 것이다.
여기서 간단한 질문을 던져 보자. 지금 강원도 삼척시 맹방해변에서 기초 공사를 하고 있는 포스코의 블루파워 석탄화력발전소는 1.05GW 2기로 총 2.1GW 용량이다. 신한울 3, 4호기가 총 2.8GW 설비일 테니 발전량은 엇비슷하다. 그리고 신한울 핵발전소도 건설 기간에 온실가스 배출이 적지 않으니 2030년까지로 보면 블루파워에서 발생할 온실가스나 신한울 3, 4호기가 줄일 수 있는 온실가스나 비슷할 것이다. 그렇다면 전력 공급 예비력이 부족하지도 않은 지금, 탄소중립을 걱정한다면 블루파워 건설을 중단하는 게 상식적이지 않을까? 블루파워를 건설하지 않으면 신한울 3, 4호기도 필요 없는 것 아닌가?
그러나 윤석열, 안철수 후보, 그리고 이재명 후보까지도 블루파워 중단을 요구하는 시민사회의 목소리는 거부하고 있다. 민간의 사업이기 때문에 중단하려면 법적인 근거가 필요하다는 이유를 대지만 기후위기 앞에서 한가한 말이다. 그리고, 이들의 신한울 3, 4호기 재개 주장이 기후위기 걱정과는 별 상관이 없다는 반증이다.
또 하나 질문을 던져 보자. 핵발전이 온실가스 감축에 그렇게 도움이 되면 신한울 3, 4호기만 건설해서 될 것인가? 앞으로 10년간 전국에 10기 정도는 핵발전을 증설해야 의미있는 감축을 달성할 수 있지 않을까? 이에 대해 한국의 핵마피아들은 별다른 대답이 없다. 연구 개발에서 이익을 얻을 학계와 기관 말고는 사실 SMR에 크게 관심이 없다. SMR은 실용화 시점도 알 수 없는 데다가 규모가 작아서 건설이나 제작에서 큰 이익이 나기 어렵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핵마피아들이 실제로 원하는 것은 신한울 3, 4호기처럼 딱 2기 정도씩 10년마다 신규로 추진되는 것이다. 그게 그들의 핵산업 생태계와 먹거리를 유지하기에 적정한 규모와 속도이기 때문이다. 기후변화로 파괴되는 생태계의 규모와 온난화의 속도는 그들의 주된 관심이 아닌 것이다.
윤석열, 안철수 후보는 기후를 위한다는 착각 속에 핵발전 사랑에 빠져있고, 이재명 후보는 하던 대로 하자며 '감원전'이라는 이름의 낱말풀이에 만족하고 있다. 그러나 신한울 3, 4호기는 언제든 풀어볼 수 있는 비단주머니가 아니고, 삼척 블루파워는 탄소중립의 발목을 잡을 장애물의 상징이다. 이 네 기 발전소의 향방이 기후정치의 미래를 좌우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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