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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방역의 그늘이 만든 질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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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방역의 그늘이 만든 질문들

[인권으로 읽는 세상] 코로나19 3년 차, 방역정책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코로나19라는 감염병 사태가 3년 차에 접어들었다. 2020년만 하더라도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전 세계적으로 확산하는 동안 한국 사회는 봉쇄조치 없이 방역에 성과를 보이며 이른바 'K-방역'은 성공적 방역정책으로 평가받았다. 2년이 지난 지금 K-방역에 대한 반응은 극단적으로 갈린다. 여전히 대단한 성과를 이룬 방역정책으로 평가받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정부가 망쳐놓은 방역정책의 모델로 비판을 넘어 비난까지 이어지기도 한다. 이 구도는 지금의 방역패스 정책을 두고 벌어지는 공방에서도 진행 중이다. 하지만 코로나19 대응이 방역정책만으로 성공할 수 있는 것일까? 지난 2년 한국사회의 코로나19 방역정책이 어떻게 작동했는지를 살펴보면 아니라는 점은 분명해진다.

추적과 검사 중심의 K-방역, 예고된 어려움

코로나19 확진자에 대한 추적과 검사에 힘쓰며 성공적인 방역의 모델로 평가받는 K-방역은 2015년 메르스 사태 대응의 실패 경험에서부터 출발한다. 메르스 대응 과정은 검사부터 확진 판정까지 오랜 시간 걸리는 검사 체계와 확진자에 대한 감염경로 파악 실패, 치료 과정에서 의료진의 업무 가중, 병상 부족으로 드러난 공공의료 시스템의 총체적인 과제까지 감염병 사태에 준비되지 않은 국가의 모습을 확인시켰다. 그렇게 한국 사회가 감염병 사태에 충분히 대비하고 있는지에 대한 질문이 제기됐다. K-방역은 여기서 출발했다. 메르스 사태 이후 감염병에 대응하기 위한 매뉴얼을 갖추고 진단 검사 기술과 감염병에 대한 역학 조사 노하우를 쌓기 시작한 결과가 K-방역인 것이다.

하지만 K-방역이 메르스 사태 당시에 던져졌던 모든 질문에 답하지는 않았다. 바로 치료와 회복의 과정은 어떻게 달성할 것인지에 대해서다. K-방역은 검사와 추적 중심의 방역정책으로 장기간 유지하기 어렵다. 코로나19가 의심되는 수많은 사람들에 대해 검사를 진행하는 동시에, 결과에 따라 확진자가 나타나면 일일이 동선을 파악해 선제적으로 추가 감염의 경로를 차단하는 과정은 노동집약적이다. 한정된 보건의료 인력으로 아무리 역량을 집중해도 전파력이 강한 코로나19가 일정 규모 이상 퍼지면 감염경로 추적에 실패하며 한계를 드러낼 수밖에 없다. 예고된 한계 속에서 정부가 해야 할 일은 대규모 감염을 대비하며, 확진자가 치료받고 회복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정부는 더 강력한 추적과 더 많은 검사를 통해 코로나를 막겠다는 답을 내놓았고 K-방역은 한계에 봉착했다.

또한, 검사와 추적 중심의 방역정책은 강력한 사회적 거리두기를 전제한다. 검사나 추적 그 자체는 바이러스의 전파를 막지 못한다. 확진자에 대한 역학조사를 통해 감염경로를 찾아내면 바이러스의 전파를 차단하는 것은 결국 격리와 거리두기다. 검사와 추적 과정에 방역을 위한 인력과 자원이 집중되는 동안 거리두기를 철저히 지켜 새로운 확진자가 발생하지 않을 때 K-방역도 성과를 거둘 수 있다. 문제는 거리두기를 유지하기 위한 조건의 편차가 크다는 점이다. 누군가는 주거의 조건이 열악하기도 하고, 누군가는 일터의 작업환경이 문제가 되기도 한다. 각기 다른 조건의 사람들이 거리두기를 적절하게 유지할 수 있도록 사회적 자원과 역량을 나누는 정책이 함께 필요했다. 하지만 지원 대책이라고는 정치공학적인 계산기만 두드린 지원금 살포 대책이 간헐적으로 등장했을 뿐이었다. 실질적으로 사회적 거리두기를 이어나갈 수 있도록 사회 구성원이 조건을 갖추고 역량을 키우는 과정은 부재했다.

검사와 추적대신 백신 접종?

2020년 12월, 최초로 일일 확진자가 1000명을 넘긴 3차 유행의 시기를 지나면서부터 추적과 검사 중심의 K-방역은 한계가 분명히 드러났다. 하지만 정부의 태도는 달라지지 않았다. 단지 '추적과 검사’의 자리에 '백신 보급과 접종률 제고’를 채워 넣었을 뿐이다. K-방역을 믿고 조금만 참아 달라던 정부는 백신을 공급하면서부터는 집단 면역 형성할 때까지만 견뎌달라고 말만 바꾸었다. 그렇게 빠른 속도로 백신 접종률을 끌어올렸지만 결국 2021년 여름 4차 유행과 겨울 5차 유행에서 드러난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사회적 거리두기를 유지하기 어려운 조건과 여전히 준비되지 않은 치료대책과 맞물려 다른 나라와 비교해 높은 백신 접종률을 달성했음에도 확진자가 늘어남은 물론 치명률과 사망자가 급증하는 결과까지 불러왔다.

무엇보다 정부의 태도가 비판받아야 할 지점은 방역 실패의 책임을 특정한 개인과 집단의 탓으로 돌려온 것이다. 감염병 사태를 대처하기 위해 백신 접종률을 제고하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정부는 백신 접종률이 제고되자 사회적 거리두기의 기준을 방역 패스의 방식으로 대체했다. 정부가 채택한 방식은 거리두기의 강도를 백신 접종 유무로 나누면서 백신 접종자와 미접종자 간의 권리를 대립시키는 방식이었다. 백신 접종자는 사회적 거리두기를 그만해도 되지만 미접종자로 인해 거리두기를 유지해야 하는 것처럼, 백신 접종으로 일상회복을 해나가려고 하는데 마치 미접종자가 이를 가로막는 존재로 위치 지은 것이다. 정작 사회적 거리두기를 유지하기 위해 방역정책만으로 해소하기 어려운 정부의 역할은 외면한 채 말이다. 이는 이미 추적, 검사 중심의 K-방역의 한계를 살피지 않고 성소수자, 이주민 등에게 방역의 책임을 떠넘겨온 방식과 다르지 않다.

방역정책만으로 코로나19에 대응할 수 없는 이유

애초에 방역정책은 코로나19 대응의 전부가 될 수 없다. 방역을 위해 영업을 제한하고, 출입을 통제하며, 이동을 막는 등의 조치는 시민의 삶을 보장하기 위함이다. 감염병 사태라는 재난을 대처하기 위해 바이러스의 전파를 막는 방역정책이 필요한 만큼 동시에 재난을 겪는 사회적 역량을 키워나가는 것 역시 필요하다. 코로나19 확산 초기부터 아프면 쉬고, 회복하면 다시 일터로, 학교로,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하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는 이야기와 다르지 않다. 이를 위해 방역정책과 동시에 불평등한 사회적 조건을 개선하고, 공공성을 확장해나가며 사회를 전환하는 로드맵을 논의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정부의 대책은 총체적인 로드맵 제시가 아니라 누군가의 생존과 생계는 제한하면서 파편화된 지원대책만 늘어놓는 방식이었다. 코로나19 사태가 드러낸 권리의 불평등과 취약한 공공성을 채워나가기 위한 대안 마련이 아니라 언제가 될지 모르는 코로나19의 종식까지만 버텨보겠다는 태도였다. 결국 자영업자 지원대책은 자영업자의 생계를 보장하지 못했고, 돌봄 지원 대책은 돌봄의 공백을 채우지 못했으며, 바이러스 유행시기마다 치료를 위한 공공병원과 시설은 턱없이 부족하다는 점이 드러났다. 결과적으로 방역정책에 손해/피해를 감수하는 사람들에게 정부의 정책에 대한 신뢰도 하락할 수밖에 없었다. 반면, 방역정책을 열심히 따르는 사람들에겐 방역정책으로 생계와 생존이 어려워진 사람들의 목소리를 생존에 대한 권리 요구라기보다는 온갖 지원에도 방역을 방해하는 이기적인 주장으로 해석되기에 십상이었다.

누구도 경험해본 적 없는 감염병 사태 속에서 국가라고 언제나 성공적인 정책만 내놓을 수는 없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코로나19라는 감염병 사태에 대응하기 위한 사회적 역량을 만드는 과정이다. 그리고 이 역량은 재난을 특정한 개인이나 집단의 탓으로 전가할 때가 아니라 사회 구성원 모두가 대응해야 할 문제로 위치 짓고 공동체의 성원으로 서로가 놓여 있는 조건을 살피는 질문을 던질 때 갖출 수 있다. 사회적 거리두기로 생존을 위협받는 사람은 누구인지부터 아파도 쉴 수 없는 사람은 누구이며 학교가 멈추면 돌봄 공백은 어떻게 메울 수 있는지와 같은 질문들 말이다. 하지만 정부의 방역정책은 서로를 살피는 질문들을 생략하도록 만들며 감염병이라는 사회적 재난에 대처하는 구성원의 역량을 축소시켜 온 것이다.

코로나19와 사회운동의 과제

코로나19 확산으로 포스트 코로나, 뉴노멀을 위한 전환이 필요하다는 말이 무성했다. 하지만 장기화된 비상사태는 바이러스의 확산에 따라 삶의 모양이 달라지는 순간과 방역정책과 같은 사회적 조건이 권리의 감각을 흔드는 것도 점차 구분하기 어렵게 느껴지도록 만들었다. 코로나19 방역정책으로 권리가 제한되는 것은 재난 상황의 어쩔 수 없는 조건처럼 여겨질 지경이다. 하지만 방역만을 과제로 설정하고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대안을 찾아 나서지 않고는 방역도 성공하지 못한다.

방역정책이 필요 없다거나 중요하지 않다는 말이 아니다. 지난 2년, 정부는 모두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방역정책을 만들어오기보다는 방역을 핑계 삼아 권리의 감각 자체를 무너뜨려 왔다. 하지만 사회운동 역시도 코로나19 방역대책의 집행 과정에서 인권의 원칙을 요구하고, 문제적인 방역정책을 규탄해왔지만, 변화를 요구하는 목소리를 모아내지 못했다. 권리의 언어가 중요한 이유는 상황과 조건에 따라 휘둘리지 않고 사회가 지켜야 하는 원칙을 세워내기 때문일 것이다. 이제 다시 감염병 사태에 맞서기 위한 권리의 감각을 세우고, 다른 사회로의 전환을 위한 급진적인 요구를 만들어내는 것은 사회운동의 과제로 남아있다.

인권운동사랑방이 발행하는 '인권으로 읽는 세상'은 <프레시안>과 <비마이너>에 공동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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