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은 누구의 이야기인가?"
작년 12월 한국에서 출간된 리베카 솔닛의 책 제목이다. 솔닛은 한국에서만 예닐곱 권의 책을 번역, 출간했을 정도로 세계적으로 인기있는 작가이자 진보적 활동가다. 페미니즘과 기후위기를 다룬 책의 내용과 별개로 이 질문을 다른 누구도 아닌, 현재 가장 심각한 고민을 하고 있을 이재명에게 던져보기로 한다. "그 많던 이재명의 이야기는 다 어디로 갔을까?"
요즘 대선 분석 기사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것이 '이재명 박스권'이다. 어제 나온 머니투데이-한국갤럽 여론조사 결과 윤석열이 6.9%를 끌어올린. 36.1%, 이재명이 2.7% 하락한 34.9%, 안철수가 소폭 상승한 13.5%, 심상정 3.9%를 기록했다.(17~18일 전국 유권자 1001명 대상 조사. 응답률 17.6%.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서 ±3.1%포인트. 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조사기관마다 다소의 차이는 있지만, 이재명은 윤석열이 무너질 때도, 안철수가 급상승할 때도 35% 박스권을 강하게 유지하고 있다. 쉽게 지지도 않을 스코어지만, 그렇다고 이기는 길도 잘 보이지 않는 지지율이다. '55 대 35' 룰을 유지하던 정권교체 구도도 잠시 옅어졌다가 다시 강화되는 추세다. 이대로 가면 승리 전망은 매우 어둡다. 같은 편끼리 정신승리를 계속한다면 아예 가망이 없을 수도 있다. 답답한 박스권을 찢고 마의 40%대로 치고 올라갈 길은 없을까? 지금 이재명 캠프는 윤석열-안철수 단일화를 걱정할 때가 아니다. '단일화는 없다'고 선언한 안철수의 말대로 지금 그대로 선거가 치러져도 승리를 장담하기 어려운 상황이기 때문이다. 현 단계에서 안철수와의 단일화가 필요한 후보는 윤석열이 아니라 이재명일 수도 있다.
이재명의 길은 무엇인가? 곧 이재명의 이야기는 무엇인가? 대선 카운트다운이 50일 안쪽으로 들어간 지금 이 순간이 이재명에겐 대선전략을 전면 재검토할 마지막 기회일 것이다. 한 번쯤 더 기회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설 연휴가 지나면 또 다른 구도 전쟁에 휘말리게 될 가능성이 크다.
전략은 이길 수 있는 최선의 길이다. 전략 없는 캠페인은 몸은 부산하지만 성과를 내기 어렵다. 대선은 그저 열심히 한다고 되는 게임이 아니다. 손무는 전략 없는 전술을 소음이라고 했다. 정치 컨설팅의 아버지라 불리는 조셉 나폴리탄은 전략의 중요성을 언급하며 "올바른 전략은 그저그런 캠페인을 구할 수 있지만, 아무리 훌륭한 캠페인도 전략이 잘못되면 실패할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전략은 문서화해서 공유해야 한다. 그저 말뿐인 전략은 전략이 아니다. 전략은 세우는 것도 어렵지만, 설득하는 것은 더 어렵고, 일관성을 유지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하지만 지금까지 아주 가혹하게 말하면 이재명과 민주당은 전략도 캠페인도 없는, 오직 이재명의 개인기에 의지한 선거운동을 하고 있다고 평가할 수 있다.
대장동 폭풍 이후 이재명의 기조전환은 정말 탁월했다. '무조건 잘했다' 모드에서 반성과 성찰로 기조를 전환했고, 기본소득 같은 평소 소신에서도 유연성을 발휘했으며, 나아가 쉴새 없는 소확행 공약으로 실용주의 이미지를 쌓았다. 지금보다 '더 안 좋을 수도 있었던 상황'을 막은 것은 오직 이재명의 독보적 활약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박스를 돌파하지 못한 걸까? 윤석열 지지율이 폭락할 때 왜 치고 올라오지 못하고 안철수에게 그 길을 열어준 것일까? 참으로 어려운 문제다. 김영삼은 대단히 어려운 일을 아주 쉽게 생각하고, 김대중은 아주 쉬운 일을 대단히 어렵게 생각한다고 했지만, 이번 대선에서 이재명의 승리함수는 대단히 어려운 문제를 아주 어렵게 풀 수밖에 없는 난제다. 원래 기적이 필요했고 지금도 그러하다. 그만큼 정권교체 구도가 완강한 데다 기득권에 대한 저항 또한 강력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재명의 이야기는? 문득 사람들이 묻는다. 이재명이 유연해지면서 이재명다움도 흐릿해졌다. 이재명다움에 안개가 덮이자 네거티브가 주인행세를 한다. 반성과 성찰, 정책 유연성(혹은 후퇴), 소확행 등이 시대정신과 가치를 포함한 일관된 전략적 기조 아래 배치된 것이 아니라 임기응변으로 스스로를 중립화한 것이기 때문에 ‘이재명다움’을 현저하게 훼손하는 반대급부가 생긴 것이다. ‘나를 위해 이재명’이라는 정체불명의 슬로건은 전략 부재의 상징이다. 이 슬로건은 이재명의 도전적 실천력을 바탕으로 대전환의 위기를 도약의 기회로 만들 것이라 기대했던 국민들을 어리둥절하게 만들었다.
이재명의 이야기는 '나'와 '개인'의 이야기에 잘 부합하지 않는다. 그것보다는 공정, 정의, 평등 같은 가치와 결합될 때 확산성을 갖는다. 버락 오바마의 2008년 슬로건이 '변화 change'였고, 2012년 슬로건은 '전진 forward'이었다. 2017년 문재인의 슬로건이 ‘나라다운 나라’였고 2022년 이재명의 방향은 '위대한 대한민국' 같은 것이 맥락상 맞다. 이재명 정부 아래서 불평등이 완화되고, 기후위기 극복의 모범이 되며, 통합된 국민의 힘으로 위대한 나라를 만들겠다는 이야기가 원래 이재명의 에토스에 부합한다. 2012년 오바마는 재선 캠페인 때 포퓰리즘이라는 공격을 무릅쓰고 루스벨트의 '신국가론'을 차용했다. 한 세기 전 루즈벨트의 메시지는 이랬다. "경제 불평등이 미국을 분열시키고 있습니다. 부유층을 위한 공화당의 정책은 민주주의를 왜곡시키고 있습니다." 이것은 이재명의 이야기이기도 했다. 그런데 지금껏 국민이 알고 있던 이재명의 이야기는 어디론가 흩어졌고, 기본소득 없는 이재명, 불평등 극복 없는 이재명, 불의에 대한 즉각적인 투쟁 없는 이재명, 표가 되는 것은 뭐든 다하는 이재명의 실루엣이 맥락없이 산재하게 되었다.
민주당은 가끔 숨쉬는 소리를 확인해야 할 정도로 조용하다. 국회의원, 지방자치단체장, 지방의회 등을 거의 압도적으로 독점하고 있는 민주당이 조직력을 풀가동해 선거운동을 제대로 하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초접전 선거에서 조직력은 매우 중요한 승부처다. 2012년 미국 대선을 모두 빅데이터 선거라고 하지만, 사실상 빅데이터 기술로 '마이크로 타깃팅'을 감행한 풀뿌리조직의 승리였다. 민주당은 적어도 기득권 내로남불 이미지로 후보에게 큰 부담을 줘서는 안된다. 대선 때 정치혁신, 정당혁신은 당이 주도해야 한다. 지금껏 혁신을 하는 척이라도 하지 않았던 대선이 있었나? 그러나 서울, 부산 보궐선거 참패에도 불구하고 민주당은 이렇다할 혁신의 노력을 하지 않는다. 조국사태에 대해 후보가 나서서 반성을 하는데 당은 그저 지켜보고만 있는 꼴이다.
가장 안타까운 것은 국민의힘이 유사 이래 가장 반동적인 반여성주의 캠페인을 하고 있는데 이에 맞서 싸우기는커녕 부화뇌동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른바 '이대남 공략'이라는 허상에 사로잡혀 갈팡질팡하고 있다. 이준석발 '일곱 글자 포퓰리즘'에 이렇게까지 속수무책일 수 있을까?
"무의식적 편견이 또다시 대선에 출사표를 던졌다. 무의식적 편견은 언제나 대선 경쟁의 선두에 서 있었고 무의식적 편견의 어린 시절 친구이자 참모라 할 수 있는 구조적 차별은 그 옆에서 믿음직한 조력자 역할을 했다." (리베카 솔닛 <이것은 누구의 이야기인가>"
여성가족부 폐지에 대한 민주당의 무기력한 대응은 '구조적 차별'을 은폐하고 왜곡한 국민의힘의 막가파식 편견에 면죄부를 주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오바마가 말했던 것처럼 민주당과 이재명은 "국민들이 듣고싶어 하는 이야기를 하는 것만으로" 정권교체 구도를 깰 수 없다. 특히 지도자는 "국민들이 들어야만 하는 이야기를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왜 이대남에게 '당신들의 고통은 이해하지만 반여성적 태도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당신들 역시 구조적 차별의 피해자다. 남성과 여성의 공존과 평등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하지 않는가? 민주당이 국힘의 역사적 반동에 동참한다고 이대남의 표가 오겠는가? 표는 가고 비루함만 남게 될 것이다. 지지자들에게조차 '들어야만 하는 이야기'를 과감히 할줄 알아야 대통령다움을 더 생생하게 살려낼 수 있다. 거기에서 지지자들을 끌어안는 좋은 리더십을 넘어 중도층까지 품는 위대한 리더십이 시작된다.
게다가 혹평하자면, 민주당과 이재명 캠프는 캠페인다운 캠페인 하나 제대로 만들어내지 못했다. 가끔씩 '이재명 탄압론' 같은 아주 잘못된 전략에 기초한 맥락없는 잡음으로 문제를 일으키곤 했을 뿐이다. 불교계를 자극한 정청래 이슈도 더 커지는 모양새다. 지금 민주당은 기득권 먹구름이 진보의 햇빛을 송두리째 가둬버려서 원래 진보의 햇빛이 있었는지조차 의심하게 만든다. 앙시앵 레짐을 깨야 할 정당이 외려 앙시앵 레짐의 한 축이 돼버린 상황을 개선하지 않는다면, 이재명이 지지율의 날개를 달고 올라가기는 결코 쉽지 않을 것이다.
특히 이번 대선이 '유튜브 선거'가 될 것이 거의 확실했음에도 불구하고 여기에서도 주도권을 쥐지 못했다. 오히려 '59초 쇼츠' 동영상을 만든 윤석열 캠프가 유튜브 캠페인을 선점했다. 1996년 ‘이경규가 간다’ 코너에 김대중을 출연시킴으로써 빅히트를 기록한 '쌀집 아저씨'의 역량은 탁월했지만, 2022년 지금의 트렌드를 이해하기엔 역부족이라는 생각이 들게 만드는 대목이다. 역량을 폄훼하는 것이 아니라 공중파 방송의 스타 PD가 미디어 환경의 혁명적 변화에 적응하는 것은 원래 쉽지 않은 일이다. 조선일보가 네이버를 만들지 못한 것은 단지 능력이 없어서가 아니라 역량의 비대칭성 때문이다. 유튜브가 작동하는 원리는 방송이 작동하는 그것과 '차원'이 다르다. 왜 민주당은 20대 혹은 30대 동영상 책임자를 영입하지 않은 것일까? 심지어 상대는 30대 당대표를 갖고 있지 않은가? 2012년 역사적인 빅데이터 승리를 이끈 오바마 캠프의 디지털 캠페인 책임자 테디 코프도 20대였다. 연말의 크리스마스 영상도 낡았지만, ‘나도 가수다’ 같은 5060 세대 감성의 캠페인이 2030 세대의 마음에 전달되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
물론 이재명의 승리 가능성은 여전히 있다. 당선가능성을 묻는 여론조사에선 여전히 윤석열을 압도한다. 하지만 현실은 냉엄하다. 윤석열이 다시 제자리를 찾았고, 그에 따라 정권교체 구도도 다시 완강해지는 분위기다. 정권교체를 위한 단일화 국면도 우려할 대목이다. 만약 단일화 논의가 시작되면 정권교체 구도가 기정사실화될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이재명이 자력으로 승리하기 위해선 더 늦기 전에 엄밀한 몇 가지 전략적 결정들을 해야 한다. 그것은 구도를 깰 정도의 강인함을 가진 것이어야 한다. 간절해야 하고 간결해야 한다. 권력의 기득권자가 구도를 깨고 승리하려면 세상에 대한 도전자가 돼야 한다. 다시 써야 할 이재명 이야기의 핵심 키워드는 '도전자'다.
첫째, 이재명의 이야기를 엄밀하게 재구성하라.
'이재명은 합니다'가 대장동을 경유하면서 '나를 위해 이재명'으로 바뀌었다. 앞서 강조했듯이 하지만 이것은 이재명다운 이야기가 아니다. 반성과 성찰 기조를 유지하면서 '이재명다움'을 다시 살려내야 한다. 그것은 진보여야 하고, 변화여야 한다. 대전환이라는 단어가 맥락상 맞지만 대중이 듣기에 어렵다.
이재명다움은 무엇인가? 불평등과 맞서는 이재명, 공정한 성장을 만드는 이재명, 기후위기 대응 선도국가를 만드는 이재명, 사회적, 경제적 약자 곁을 지키는 이재명, 한반도 평화체제를 확고히하는 이재명이다. 코로나19 재난극복 현장 사령관 이재명이기도 하다. 선진국에 진입한 나라를 공정과 정의, 평화와 평등이 있는 위대한 나라로 만드는 것이 이재명의 이야기의 기둥이다. 기본소득에 대한 들쑥날쑥한 이야기들도 다시 정리해서 진심을 전달할 수 있어야 한다. 신국가, 위대한 대한민국을 위해 국민 모두가 함께하는 대통령이 되겠다는 메시지를 반복할 필요가 있다. 이재명의 통합은 용감하게 전진하는 통합이어야지 비겁하게 퇴보하는 통합이어서는 안된다. 다시 강조하지만 이대남의 반동적 가치에 영합한다고 이대남의 표가 오는 것이 아니다. 이재명의 이야기는 전진할 때 빛난다.
둘째, 도전자가 돼라.
지금과 같은 정권교체 구도를 깨는 방법은 스스로 도전자가 되는 길밖에 없다. '이재명이 돼도 정권교체'라는 레토릭은 정권교체 프레임만 강화한다. 진짜 도전자가 돼야 한다. 도전자는 리스크를 감수하는 사람이다. 시대적 흐름을 앞서가야 한다. 여러 차례 강조했지만, 우리나라가 경제선진국을 넘어 진짜 선진국으로 나아가려면 OECD 수준에 걸맞는 인권의식과 지구적 공헌을 해야 한다.
먼저 차별금지법을 전면에 걸고 국제사회에서 당당한 나라를 만들겠다는 선언을 해야 한다. 낡은 교회권력과 국민의힘을 기득권 집단으로 규정할 수 있는 전략이다. 이는 차별로 인해 고통받는 약자, 소수자의 문제를 더는 뒤로 미루지 않겠다는 헌법적 가치의 실현이며, 기득권자에서 도전자로 프레임을 전환하는 계기다. 물론 쉽지 않은 길이다. 민주당의 지역구 국회의원들은 교회 표를 의식해 반대할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이 장애물을 넘어 강력한 추진력과 리더십을 보여준다면, 이재명다움을 다시 생생하게 살려낼 수 있을 것이다. 선거 구도에 기적같은 변화가 일어날 수도 있다.
그리고 탄소중립, 에너지전환 등 기후위기 대응에서 가능한한 가장 급진적인 정책을 만들어야 한다. 정부, 기업, 환경단체 등이 참여하는 대한민국 기후위기 대응 TFT를 만들 필요가 있다. 탈원전 같은 이슈는 대만처럼 국민투표에 부쳐라. 이 분야에선 기존의 '마지못해 추격자' 관행을 깨고 능동적인 글로벌 선도국가를 목표로 삼아야 한다. 실제 공약대로 세계 5위 국가로 성장하려면 이 정도 기초체력은 반드시 닦아놓아야 한다.
셋째, 민주당 기득권 혁신에 과감히 나서라.
민주당만 모르는 민주당의 진실은 그들이 '빼박캔트' 기득권이라는 사실이다. 여기에 내로남불 프레임까지 생겼다. 이재명 정부가 그저 기존 민주당 정부의 연장이라면 승리하기 어려울 것이다. 정치혁신과 정당혁신을 당장 공론화해야 한다. 모든 혁신에서 무엇을 하는가보다 무엇을 내려놓는가가 더 빨리 국민의 피부에 와 닿는다.
국회의원 및 고위공직자의 부동산과 자녀 입시비리, 취업비리 전수조사는 확고한 의지를 갖고 추진해야 한다. 기득권 내로남불의 상징이 돼버린 586 핵심들의 임명직 포기선언은 이재명 정부가 새롭고 능력있는 인재를 중용할 것이라는 의미를 갖는다.
2030 세대에게 보내는 변화의 분명한 신호이기도 하다. 586 당사자들은 억울할 수도 있지만, 억울함이 이해되기도 하지만, 자력으로 대선을 이기려면 피할 수 없는 길이다. 1997년 권노갑, 한화갑 등 DJ 핵심 7인방의 자발적인 임명직 포기선언이 중도층을 안심시키는데 크게 기여했다는 사실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이 밖에도 대통령 결선투표제, 4년 중임제 개헌, 위성정당 금지, 국민투표제 등 정책적 어젠다를 결합해서 패키징하는 것이 좋다.
넷째, 캠페인을 캠페인하라.
선거 막바지에 지지후보를 결정하는 정치 저관여 중도층을 향한 대대적인 유튜브 캠페인을 준비해야 한다. 대충 해선 아무 것도 할 수 없을 것이다. 사력을 다해야 국힘을 넘어 캠페인다운 캠페인을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다. 지금 캠프 역량만으로 공약을 꼼꼼히 읽는 중도층을 상대로 한 새롭고 세련된 콘텐츠를 만들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2030 플레이어 그룹을 조직하고 과감하게 아웃소싱할 필요가 있다. 슬로건, 핵심 메시지, 팩트 이외의 어떤 검열도 하지 말 것을 권고한다. 동영상뿐 아니라 인포그래픽, 웹툰을 비롯한 다양한 시각적 캠페인이 필요하다. 대선 공보물도 관행을 깨고 그것 자체가 캠페인이 될 수 있도록 모든 역량을 동원해야 한다. 세상에 단 하나뿐인 포스터와 공보물을 준비하는 것이 목표가 돼야 한다.
다섯째, 총력을 다해 메시지를 강화하라.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만 가장 노력을 안하는 분야가 메시지다. 코로나 시대에 치러지는 이번 대선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후보의 메시지다. 첫째도 메시지, 둘째도 메시지, 셋째도 메시지다. 메시지는 정책의 설명이 아니며, 이슈 파이팅도 아니며, 상대에 대한 조롱은 더더욱 아니며, 자신의 지루한 업적을 나열하는 것도 아니다. 가슴을 설레게 하는 비전에 가깝다. 진실과 공감에 기반해 상대가 아니라 나를 찍게 만드는 마법이다. 후보가 더 이상 반복하기 지겨워서 말하기조차 멀미나는 메시지를 갖고 있는가? 투표장에 갈 때 국민의 가슴에 아로새겨질 단 한마디의 메시지를 갖고 있는가? 이재명이 불리한 구도를 넘어 승리하려면 이재명의 이야기에 대통령다운 품격을 입혀야 한다. 혼이 살아 있으면서도 가치와 철학이 담긴 품격있는 언어가 필요하다. 변화와 통합의 메시지!
글이 쓸데없이 길어졌다. 마무리를 해야겠다. 시인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의 말로 초를 좀 쳐야겠다.
"최선의 무리는 신념을 잃었고, 최악의 인간들은 언제나 열정적이다."
누군가 다시 신념을 되찾을 때다. 약자들을 위한 이야기가 더 많아져야 불가능할 것 같았던 새로운 변화가 일어난다. 때론 기적도 일어난다. 정치는 불가능의 예술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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