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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탄소중립 이행 원년'을 부스터 하라

[초록發光] 내년 선거판을 기후 이슈로 달구자

정부 관계부처 합동, 2022년을 탄소중립 이행원년으로 선포

전 지구적 기후위기는 갈수록 심화하고 있다. 앞으로는 과거의 변화보다 그 속도가 더 빨라지고, 결과는 돌이킬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생명의 그물에 엮여 함께 존재하는 인간과 비인간종, 그리고 그들이 터 잡고 있는 지구를 살리기 위해서는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국내 정치권력의 교체기를 목전에 두고 지구의 온도처럼 점점 뜨거워지는 선거판의 열기에서 잠시 비껴나, 묵은해를 보내고 새해맞이를 준비하면서 올해 일어난 일과 내년에 해야 할 일을 떠올려본다.

지난 11월 영국 글래스고에서 폐막한 제26차 UN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에서는 최초로 석탄발전에 관한 합의를 보긴 했지만, 초안에 명시되었던 '단계적 폐지'(phase-out)가 아니라, '단계적 감축'(phase-down)으로 수정되면서 퇴행되었다는 비판을 받았다. 또 각국이 제출한 2030년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NDC)를 종합해보면, '산업화 이전 대비 지구평균기온 상승폭을 1.5℃ 이내로 제한'이라는 기존의 약속한 목표와는 달리 '2.4℃ 상승할 것으로 전망'되어, 내년에 다시 각국의 온실가스감축목표를 점검하기로 했다.

앞에서 언급한 2015년 파리협약의 목표를 달성하려면 전 세계는 2030년까지 배출량을 45%까지 줄어야하고, 2050년에는 0%로 만들어 탄소제로를 만들어야 한다고 한다. 그러나 온실가스 최대배출국인 중국은 지난해 9월 탄소중립의 목표연도를 2060년으로 선언했고, 부랴부랴 우리나라는 한 달 뒤에 2050년으로 선언하였지만, 지난 10월 대통령직속2050탄소중립위원회에서는 ‘2030년까지 2018년 온실가스 배출량의 40% 감축’으로 정하여서 안타깝게도 지구를 살리기 위한 모두의 목표에는 미치지 못했다.

그럼에도 우리나라 정부가 노력한 성과를 꼽아보자면, 세계에서 14번째로 탄소중립을 법제화하였고('21년 9월, 탄소중립기본법 제정), 배출권거래제 강화 및 재생에너지 보급('20년 누적 25GW)과 함께 석탄발전 가동제한(노후 10기 폐지) 등 적극적인 온실가스 감축정책으로 지난 2018년 배출량 정점에 도달한 이후 2년에 걸쳐 약 10%를 감축했다고 한다.

그리고 이러한 성과를 바탕으로 정부는 내년을 '탄소중립 이행 원년'으로 선포하여 사회․경제구조의 탄소중립 전환과 탄소중립 이행기반 공고화를 추진하기로 했다(’21. 12. 28., 환경부 외 2022 정부 업무보고 보도자료).

탄소중립기본법 시행에 따른 지방정부의 역할

2050 탄소중립과 2030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 이행을 위해 내년 3월 25일,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탄소중립 녹색성장 기본법'(약칭 탄소중립기본법)이 본격 시행된다. 과거 이명박 정부에서 제정한 '저탄소 녹색성장 기본법'을 폐지하고 대체하여 신설된 법으로서, 현재 시행령을 제정하고 있으며, 중앙정부 뿐 아니라 지방정부의 책무도 대폭 확대하였다. 특히 기초 지방정부는 탄소중립 사회 실현을 위해 과거에는 없었던 새로운 역할이 부여되었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탄소중립 이행계획과 기후위기 적응대책의 수립 및 이행 점검결과보고서의 매년 작성․제출, 지방탄소중립위원회의 구성 및 운영, 탄소중립지원센터의 설치와 탄소중립이행책임관의 지정, 온실가스감축인지예산제도의 시행 등 지역사회를 관할하는 지방정부의 종합행정을 탄소중립이라는 목표달성을 위해 새롭게 구성해야 할지도 모른다.

무엇보다도 이러한 지방 탄소중립 사무를 시의 적절하게 추진하기 위해서는 상위법령에 위임된 사항을 두루 반영하면서도 지역적 특성을 고려한 '탄소중립 기본조례'부터 제정해야 한다.

그런데 일각에서는 아직 탄소중립기본법 시행령이 제정되지 않아 조례안을 구체화 할 수 없다는 의견도 있고, 내년 상반기에 치러지는 대통령 선거('22. 3. 9.)와 지방선거('22. 6. 1.)라는 바쁜 정치일정으로 인해 불요불급한 안건 처리 이외에 심도깊은 논의가 필요한 조례 제정이 사실상 불가능한 것 아니냐는 비관적 입장도 존재한다. 기후위기 대응을 위해 남은 시간은 점점 줄어들고 있는데 이러다가 내년은 조례 하나 만들고 지나가는 게 아니냐는 우려 섞인 시각이다.

그렇지만 지난 8월 31일, 탄소중립기본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자, 몇몇 기초 지방정부에서는 탄소중립 관련 조례를 선도적으로 제정하고 나섰다. 서울 도봉구('21. 9. 16. 제정․시행), 대전 대덕구('21. 9. 30. 제정․시행), 충남 논산시('21. 10. 12. 제정․시행), 충남 태안군('21. 11. 5. 제정․시행), 대전 서구('21. 12. 23. 제정, ’22. 3. 25. 시행), 경기 광명시('21. 12. 23. 제정, '22. 4. 1. 시행), 서울 서대문구('21. 12. 29. 제정, '22. 3. 25. 시행) 등이 바로 그 주역들이다.(자치법규정보시스템 www.elis.go.kr에서 원문 검색가능)

중앙과 광역 정부에 비해 비록 작은 규모이지만 현장에서 직접 주민을 대하는 기초 지방정부의 순발력과 민첩성은 우리 모두의 위기에 직면하여 무엇을 어떻게 해야할 지 선도적으로 대처하는 모범을 보여주었다. 따라서 위에서부터 아래로 주어진 법테두리 안에서만 고민하지 말고, 지금-여기의 문제를 시민과 함께 그 누구도 뒤처지지 않게 해결할 수 있도록 발 빠른 대응은 충분히 가능하고, 더 많이 필요한 시점이다.

기후위기의 최전선, 제주도의 상황은?

연말을 맞이하여, 2021년 12월 2차례 열린 제401회 제주특별자치도의회 임시회 본회의에서는 소관 상임위원회에서 심의한 무려 184개의 안건을 상정하여 처리하였다(12월 17일 1차 본회의 34건, 12월 23일 2차 본회의 150건). 해를 넘기기 전에 통과시켜야하는 예산(기금)안도 있었지만 5개에 불과했고, 조례 제․개정안은 88건, 동의안은 68건(그중 명예도민 47건)에 달했다.

앞서의 비관적 예견처럼 정말 내년 상반기에는 의회가 열리기 힘든 것인가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상당히 많은 안건이 순식간에 처리된 듯하다. 그래도 찬찬히 다시 살펴보니 184개의 안건 중 3개가 눈에 띄었다.

먼저 12월 17일 1차 본회의에서 '제주특별자치도 해양생물 보호 및 관리 조례안'이 통과되었다. 이 조례는 해양생물 서식 실태조사, 해양동물의 구조·치료 그리고 해양보호생물 지킴이 운영 등을 주요 내용으로 하고 있는데, 해양환경단체 핫핑크돌핀스는 "전국 지방의회에서는 제주도의회가 최초로 한 종을 넘어 해양생물 전체를 보호하는 조례를 제정한 것이라서 그 의미는 더욱 특별하다"고 평가했다.

그런데 6일후인 12월 23일 열린 2차 본회의에서는 '제주 한동·평대 해상풍력 조성사업 환경영향평가서 협의내용 동의안'이 통과되었다. 총사업비 6500억원을 투입해 제주시 구좌읍 한동리·평대리 일대 해상 5.63㎢에 5.5㎿풍력발전기 19기 등 총 104.5㎿의 해상풍력발전단지를 조성하는 사업이다.

이에 대해 해양환경단체 핫핑크돌핀스는 "제주도의회는 (해양생물 보호조례를 제정하면서도 다른 한편에서는) 중요 해양동물인 남방큰돌고래의 서식지를 파괴할 해상풍력에 대해서는 통과를 시키는 자기모순을 저지르고 있다"면서, "입지조건을 고려하지 않은 채 진행된 한동․평대 해상풍력발전사업은 누가 봐도 기업만 배불리는 난개발 사업일 뿐"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실제로 사업시행예정자인 제주에너지공사가 21억원을 투입하여 실시한 환경영향평가에서 용역업체는 사업예정지에서 제주 남방큰돌고래를 한 번도 보지 못했다고 보고서를 작성했다. 하지만 국립수산과학원 고래연구센터가 2015년부터 2020년까지 제주 남방큰돌고래를 조사한 자료를 보면 구좌읍 월정, 행원과 한동, 평대 일대가 돌고래들이 가장 많이 발견되고 있으며, 대정읍 일대와 더불어 구좌읍 일대가 남방큰돌고래들의 거의 유일한 서식지임이 확인되고 있다.

한편 같은 날, ‘제주특별자치도 탄소 없는 섬 조성에 관한 조례안’도 통과되었다. 탄소중립 사회로의 전환을 지속적으로 추진하기 위한 신재생에너지 및 환경친화적 자동차 등을 기반으로 탄소 없는 섬으로 조성하는데 필요한 사항을 규정하기 위해 제주도의회가 불과 3주 전인 이달 초 12월 6일 발의하였다.

이에 대해 제주환경운동연합 등 제주도내 13개 단체․정당 등으로 이뤄진 탈핵·기후위기 제주행동은 12월 17일 논평을 내고 "이번 조례는 늦어도 너무 늦었다. 2012년 카본프리 아일랜드 2030 계획 발표 이후 10년이 지났으며, 법적 구속력을 갖추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제주도 에너지 기본 조례와도 중복되는 지점이 많다"면서, "화석연료와 화력발전에 대한 명확한 정의나 책무 없이 오로지 신재생에너지와 전기차를 확대 보급하는 선언적 내용으로 채워져 있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오히려 당장 필요한 것은 내년 3월 시행 예정인 탄소중립기본법과 관련된 조례"라고 지적했다. 앞서 여러 곳의 기초 지방정부가 탄소중립 조례를 앞다퉈 제정한 것에 견줘볼 일이다.

한꺼번에 180건의 안건을 심의하다보니 면밀한 검토가 부족했던 것인지, 또는 개별안건의 내적 일관성에만 집중을 하다 보니 전체적인 정합성을 따지지 못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2021년을 보내고 2022년을 맞이하는 우리들에게 펼쳐져 버린 희극도 비극도 아닌 당면한 생생한 현실이다.

15년 전, 4개의 기초 지방정부․의회가 폐지되어 거대한 단일행정구조인 특별자치도로 출범한 제주. 주민과 가까운 거리에서 그들의 눈을 마주보던 시장․군수와 시․군의원은 화석연료보다도 더 먼저 역사 속으로 사라져버린 채, 단 1명의 최고정책결정자만 존재하는 권력체제하에서 과연 지속가능한 미래사회를 위한 균형과 견제, 조정과 협의, 숙의와 대화가 존재하는 게 가능할까?(그 1명마저도 사퇴하여 지금은 공석이라, 직선대표자가 아닌 정부가 파견한 행정부지사의 도지사 권한대행체제이다.)

한쪽에서는 나름 기후위기 대응을 위해 제도도 만들고 해상풍력발전도 추진한다지만, 다른 한쪽에서는 매일 해양보호생물 상괭이가 죽어서 사체로 발견되고 있고, 제주 남방큰돌고래는 해양개발에 따른 급격한 서식지 감소와 늘어나는 선박운항과 해양쓰레기, 연안오염에 의해 갈수록 큰 피해를 입고 있다. 또한 가속화된 기상이변의 잦은 발생은 농어민과 관광객들에게도 익숙하지 않은 장기 비상상황을 각인시키고 있다.

기후위기의 최전선이라 불리는 제주에서 돌고래와 구상나무와 사람들이 오래도록 같이 살아 온 것처럼, 앞으로도 같이 살아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간 각종 정책과 제도의 시범지구이자 선도지역으로서 제주도는 훌륭히 그 역할을 수행해왔다. 2007년부터 시작된 기후변화대응시범도 조성과 2008년부터 언급한 카본프리 아일랜드 실현은 기후․에너지 분야의 대표적 우수 사례이다. 하지만 과거에만 얽매여서는 앞으로 단 한발자국도 나아갈 수 없다. 물로 뱅뱅돌아진 섬에만 갇혀있지 말고 지구적․시대적 흐름과 함께 해야 한다.

최근의 제주 사례는 기후위기 대응이 민주주의 및 권력 문제와 분리될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보여준다. 지구를 보다 차갑게 식히기 위해서는 다가오는 선거판을 기후이슈로 뜨겁게 만들어 볼 필요가 있다. 기후위기 시대의 연말연시 메시지로서 '무사안녕'은 더는 의례적인 수사가 아닌 절박한 요구이다. 저무는 올해를 평가하면서 다가올 내년의 목표는 간단하다. '탄소중립 이행 원년'을 부스터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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