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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회를 '혐오의 도가니'로 만드는 이것

[노회찬의 나라 밖 인물 산책 ㉟] part 3 북유럽 복지모델을 만나다 : 에이나르 게르하르센 下

이번 노회찬의 기록이야기 제목은 <기록으로 찾아가는, 노회찬의 '나라 밖 인물' 산책: 칼 마르크스에서 브라질의 룰라까지>이다. 칼 마르크스부터 브라질의 룰라에 이르기까지 '나라 밖 인물' 20여 명과의 직·간접적인 만남과 인연을 주제로 노회찬의 여정과 활동을 재구성한 것이다.

<노회찬의 나라 밖 인물 산책>은 11월 1일부터 매주 월·수·금 3번 씩 연재된다. '평등하고 공정한나라 노회찬재단'(노회찬재단)과 <프레시안>이 함께한다. 편집자.

<노회찬의 나라 밖 인물 산책> (☞시리즈 모아보기https://www.pressian.com/pages/serials/11901003000000000016)

part 1 혁명 그리고 정치

part 2 유럽 사민당 리더와의 조우

part 3 스칸디나비아(북유럽) 복지모델을 만나다

㉙ 들어가는 글 북유럽식 사민주의, 인구 5000만 한국에도 가능하다면 (☞바로가기)

㉚ 올로프 팔메 上 "젊은 정치를 보고싶다…왜 한국정치를 '19금'에 묶어놓나"(☞바로가기)

㉛ 올로프 팔메 下 "넌 특별하지 않아"라고 말하는 스웨덴, "정치는 일상이다"(☞바로가기)

㉜ 타게 에를란데르 上 “그렇다면 진보정당이 집권하면 어떤 세상이 될까요?”(☞바로가기)

㉝ 타게 에를란데르 下 스웨덴의 노사정 대화는 오페라와 샴페인 얘기부터 시작했다(☞바로가기)

㉞ 에이나르 게르하르센 上 (☞바로가기)

한국의 '학벌주의'와 노르웨이의 '극단적 교육평준화 정책' : "게르하르센 총리도 대학을 나오진 않았다"

▲JTBC <비정상회담>(2015.7.6.) 화면 갈무리

"노르웨이에서는 인생에 대한 걱정을 할 필요가 없어요. 다 무료니까 돈에 대한 걱정이 필요 없고 학벌도 없어요."

6년 연속 '살기 좋은 나라' 1위로 꼽힌 노르웨이 출신의 니콜라이가 JTBC <비정상회담>에 나와 한 말이다. (2015.7.6.)

'학벌주의'란 개인의 능력과는 상관없이 출신 학교의 지위를 중요하게 여기는 사회현상으로, 초등, 중등 그리고 고등교육을 받은 기간을 의미하는 수직적 차원의 '학력주의'와 구별된다. 즉 동일선 상의 학력이더라도 학교의 종류, 학교이름, 학과 등의 사회적 위신에 따라 다른 가치가 부여되는 이른바 '수평적 학력주의'를 학벌주의라고 설명할 수 있다. 

학벌은 분명 계급은 아니지만 일종의 신분제처럼 작동하는 '학벌 의식'은 현대판 한국식 신분제도로 고착화되고 있다. (「학벌주의」,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2007년 노회찬 민주노동당 대선예비후보는 '제7공화국 평등교육혁명'(2007.7.30.)을 통해 학벌주의 해결책에 대해 밝힌 바 있다.

"교육양극화로 인한 부의 세습과 가난의 대물림, 기형적 입시경쟁, 학벌주의를 근본적으로 제거한다. 16개의 서울대 만들기 등 전면적인 대학평준화 정책을 전격 도입하고 입시제도를 폐지하며, 고교평준화를 강화한다. 질 높은 공교육체계를 구축하고 사교육 긴급처방을 통해 학생과 학부모를 입시 사교육에서 해방시킬 것이다."

노회찬의 길동무였던 박노자 노르웨이 오슬로대 한국학 교수는 "학벌 사회의 질서는 한국 사회 전체를 지배하면서 이 사회를 각종 차별, 배제, 혐오의 도가니로 만드는 데 일등 공신의 역할을 한다. 학벌 사회가 존재하는 이상 이 나라에서 주체성이 있는 개인으로 성장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울 것이다"라고 밝혔다. (「[박노자의 한국, 안과 밖] 학벌 사회에서 '주체적 개인'은 없다」, <한겨레>, 2019.9.25.)

박노자는 '스칸디나비아와 한국교육'이라는 주제 강연(2007.4.20.)에서 노르웨이의 대학은 입시가 없으며 대학 간의 순위도 매겨지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노르웨이는 전문대 가운데 약간의 사립대학이 있을 뿐 국립종합대학과 전문대 등이 거의 국립이며 전체 학생들의 90%가 국립대학에 다닌다고 했다. 

또한 각 대학에 평준화된 국고지원과 대학 사이의 학점교류 장려 여러 대학 사이의 '공동 졸업장' 인정 등으로 대학 사이의 위계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이어 "유럽에서는 국가적으로도 대학평준화가 이루어지고 있는데 한국은 국내 대학끼리도 되고 있지 않다"며 "만일 한국에서 서울대 학생이 타 대학에서 과정을 이수해 학점을 받아 서울대 졸업장을 받을 수 있다면 국립대 통합으로 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박노자는 한국과 스칸디나비아 국가간 교육에 대해 '계급적 신분의 재생산'과 '계급적 신분의 타파'를 근본적인 차이로 꼽았다. 한국 교육은 고등교육의 목표가 학벌질서 안에서 자기자리 찾기를 위한 수단이 되어 있으며 명문대학 딱지를 얻기 위한 것이 근본적인 목적이 되어 있다는 것이다.

YTN 라디오 <이동형의 뉴스 정면승부>(2020.10.13.)에 출연한 박노자는 이야기 도중 "노르웨이에선 나올 수조차 없는 차별 발언"이라고 지적했다. 발언의 맥락은 이랬다.

이동형 : 본격적으로 오늘 할 이야기 나눠보죠. 학벌주의 얘기를 좀 해볼 텐데. 단국대 서민 교수가 '공부 못하는 학생의 전형이 문재인 대통령이다' 이런 글을 두고 교수님께서 '학벌 귀족의 전형이다' 이런 평가를 하셨습니다. 어떻게 이런 말씀이 나오셨나요?

박노자 : 그러니까 이런 발언에서는 아마 노르웨이 같은 나라에서는 나올 수조차 없는 발언이라고 생각합니다. 노르웨이에서는 그런 발언은 차별주의로 바로 문제시될 것입니다. 

공부 잘하고 못하는 거는 꼭 개인이 못해서 또는 개인의 소관만이 절대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사실은 부모의 학력이 높고 부모의 자본이 많으면 그럴수록 자녀의 공부도 잘 되는 부분도 있는 거죠. 물론 대물림 받는 부분이 큽니다. 그런 걸 가지고 차별주의적으로 발언을 하면 이거는 말 그대로 해서는 안 될 일이죠.

이어 박노자는 이렇게 이야기를 이어갔다.

"스티브 잡스같이 대학 안 나온 사람이 미국인의 선망을 가장 많이 받아온 사람 아니겠습니까. 노르웨이를 지금 같은 복지 국가로 만든 게르하르센 노동당 총리는 노르웨이에서는 전후 역사에서 가장 인기 많은 정치인이죠. 그 사람도 대학을 나오진 않았습니다. 그러니까 있을 수 없는 말들이에요. 

지금 보시면 대한민국 국회에는 고졸 출신은 한 명밖에 없습니다. 고졸이 이렇게 많은 나라에서 말이죠. 그게 다수를 대표하지 않는 국회가 된다는 겁니다. 

(…) 

스칸디나비아 같은 경우에는 대학의 위계 서열이 존재하지는 않습니다. 그 부분은 사민주의 정권 때 그래도 평등화 시켰습니다."

"그러니까 사실은 그래서 헬조선이니, 뭐니 이런 이야기 나오는 이유 중 하나는 학력이 나의 진로를 결정짓고 내 학력을 결정짓는 게 결국 부모의 재력이 상당한 몫을 차지하는 겁니다. 사교육 등이, 그래서 한국의 권력 기관에 있는 사람을 보면 50~70%는 스카이 출신들인데. 이건 사실은 나머지 국민에 대한 차별이고 있을 수 없는 일이죠."

▲정유라 SNS 글(2014.12.3.) 갈무리

"헬조선…부모의 재력이 나의 학력을 결정짓고 나의 진로를 결정짓는다"는 박노자의 말은, 2017년 4월 9일 KBS 1TV <일요토론>에 출연해 노회찬이 던진 말과 일맥상통한다.

"최순실의 딸 정유라가 이렇게 얘기했습니다. '돈도 실력이다. 능력 없으면 니네 부모를 원망해.' 이래서 많은 국민들이 격분했는데 이 말이 허무맹랑한 소리여서 격분한 게 아니라 이 말이 진실이었기 때문에, 사실이었기 때문에, 대한민국의 모습이었기 때문에 격분했습니다."

"아침에 자기 집이 아닌 남의 집에서 눈을 뜨는 국민이 전체 국민의 절반입니다. 이 분들은 전세, 월세 살고 있는 분들이고 주택 가격 오를 때마다 월세 오를 때마다 전세 오를 때마다 걱정하는 분들입니다. 

지금 대학 졸업한 청년 10명 중 3명은 내일 아침 출근할 직장이 없습니다. 그리고 내일 지하철 타고, 버스 타고 출근하는, 자가용 몰고 출근하는 분들 중에 절반은 정규직이 아닌 비정규직으로 직장에 출근하고 있습니다. 같은 일 하고 임금 반밖에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아침이 기다려지지 않는 대한민국, 이게 오늘의 모습입니다."

노르웨이의 그리그와 뭉크, '문화인' 노회찬 : 그리그의 '솔베이지의 노래'와 노회찬

▲jtbc <뉴스룸>의 '앵커 브리핑'을 진행하며 노회찬을 추모하는 손석희 앵커(2018.7.26.) Ⓒjtbc 뉴스 화면 갈무리

"그 겨울이 지나 또 봄은 가고 또 봄은 가고 그 여름날이 가면 더 세월이 간다"

서울 연세대 대강당에서 '고 노회찬 국회의원 추도식'이 한창이던 2018년 7월 26일 저녁 JTBC <뉴스룸>의 '앵커브리핑'에서 손석희는 노르웨이의 작곡가 그리그(Edvard Grieg)의 <솔베이지의 노래>를 인용, 첼로를 연주하던 정치인 노회찬을 추모하고 있었다.

"노르웨이의 작곡가 그리그의 곡. <솔베이지의 노래>. 서글픈 멜로디와 애잔한 가사로 시대를 넘어선 사랑을 받고 있는 작품입니다. 

그도 이 곡을 좋아했던 것 같습니다. 첼로를 연주하던 정치인. 지난 2005년, 그가 대중의 앞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연주한 곡도 바로 이것이었으니까요."

손석희가 언급한 2005년의 마지막 연주에 대해 노회찬의 미공개 <난중일기>(2005.5.1.)는 이렇게 적고 있다.

"부산한 아침이었다. KBS1 <아침마당>팀, KBS2 <이홍렬 박주미의 여유만만>팀, SBS <임성훈의 세븐일레븐>팀이 한 시간 간격으로 집을 방문하여 좁은 방안을 휘젓고 돌아갔다. 

메이데이 집회 참석차 출발해야 할 시간인데 <임성훈의 세븐일레븐> 팀은 사전 예고도 전혀 없이 첼로를 들고 나타났다. 강제로 켜는 첼로. 아우슈비츠에서도 없던 일이다. 망설이다 활을 잡았다. 20년 만이다."

손석희 앵커의 말이 이어졌다.

"이 폭염의 더위 속에서 끝없는 인파가 그의 빈소를 찾는 이유 역시 마찬가지 아니었을까. 누군가에게 한 번쯤 듣고 싶었던 위로의 말을 듣고 싶었던 그런 언어들. 그동안 우리가 보아온 것은 정치권 안에서 벌어지는 치밀한 모함과 놓으려 하지 않는 특권뿐이었기에… 

사람들은. 그의 언어 안에 담긴 온기와, 위로와 응원의 말을 되살려 기억하고… 그리워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 <솔베이지의 노래>(Solveig's Song)는 <페르 귄트 제2모음곡> 중 제4곡이다. 노르웨이 국민악파에 속하는 대표적인 작곡가 에드바르드 그리그(1843~1907)가 같은 나라의 극작가 헨리크 입센(1828~1906)의 극시 <페르 귄트>를 바탕으로 만들었다. 자신의 시를 무대에 올릴 수 있는 반주곡을 만들어 달라는 입센의 제안을 받아 작곡해 1876년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초연됐다.

<솔베이지의 노래>는 방랑의 길을 떠난 주인공 페르 귄트가 고향인 산골마을로 돌아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솔베이지의 영원한 사랑을 노래한 곡이다. 오랜 여정을 마치고 늙고 지친 몸으로 고향으로 돌아온 페르 귄트는 백발이 된 솔베이지를 만나 그의 무릎에 엎드려 평화로운 죽음을 맞게 된다.

노르웨이는 1814년까지 덴마크의 식민지였고, 그 뒤 1905년까지는 스웨덴의 지배를 받았다. 이 시기를 살았던 그리그는 민족의식을 가질 수밖에 없었고 노르웨이의 민요와 민속음악을 반영한 곡을 만들었다.

뭉크의 '절망'과 노회찬, 절망 속에서 희망을…

▲대표작 '절규'가 그려져 있는 뭉크 전시회 포스터(2014.7.3.-10.12) 갈무리

"희망이란 오늘을 힘겨워하는 사람들이 그 앞에 다가서는 창이다."

"'절망이 곧 희망의 기회'로 '길을 잃었을 때는 근본으로 돌아가라'" 신영복

"절망의 철벽도 희망의 행진을 막지는 못합니다." 노회찬

세월호 참사의 슬픔과 분노의 파장이 전국을 '절규'와 '절망'으로 들끓게 하는 가운데, 2014년 7월 3일부터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영혼의 시, 에드바르드 뭉크>라는 이름으로 표현주의의 선구자이자 노르웨이를 대표하는 화가 뭉크(Edvard Munch)의 국내 첫 전시가 열렸다. 5개 섹션('뭉크, 그 자신에 대하여', '새로운 세상으로', '삶', '생명력', '밤'), 19개 주제의 전시는 뭉크의 회화와 판화, 사진, 드로잉 등 99점의 작품으로 구성됐다.

뭉크미술관 관장은 "2년 전 뭉크 전을 제안받고 한국전을 추진해왔다"며 "1920년대 위상을 떨친 뭉크는 노르웨이의 아이덴티티이며 현대 미술계의 천재"라고 말했다. 뭉크 미술관 수석큐레이터는 "불안과 멜랑콜리로 대표되는 화가지만 뭉크는 인간의 근본적은 감정을 담고 싶어했고, 삶에 대한 긍정을 표현하고 싶었던 혁신적인 실험을 했던 예술가"라고 설명했다.

(※ 현재 확인되는 사료만으로 볼 때 노회찬이 뭉크 전을 관람했다는 기록은 없다. 아마도 관람하지 않았거나, 또는 못했던 것 같다. 만약 그렇다면, 여러 국내‧외 그림 전시회를 찾아가 감상해온 노회찬이 100일 동안 열린 이 전시를 왜 관람하지 않았는지 궁금하다.

노회찬재단이 소장하고 있는 노회찬의 노르웨이 방문 사진들 속에도 오슬로 '뭉크미술관' 관련 사진들은 아쉽게도 보이지 않는다.)

노회찬의 길동무였던 조현연은 진보정의연구소(진보정의당 부설) 소장 칼럼을 시작하는 첫 글에서 <절망>의 화가 뭉크를 언급하며 "절망 속에서 희망을…"을 강조했다. (「12월 12일, '오늘의 소사(小史)'를 시작하며」, 2013.12.12.)

"'한 번 추락하면 다시 오를 길이 없는, 패자부활전이 없는 사회', 생존의 공포와 퇴락의 두려움이 일상적으로 지배하는 사회에서 진보정당, 진보적 사회운동과 민주적 정치과정에 대중의 참여가 깊고 넓어지기를 기대하는 것은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자끄 아딸리(Jaque Atalie) 말처럼, '불확실한 세상이 주는 불안감과 같은 스트레스에서 벗어나고자 대중들은 갈수록 오락에 집착'하게 된다. 그리고 설득력 있는 대안이 부재하다면, 좌절과 실망, 절망의 감정만이 확산되기 십상이다."

▲뭉크의 <절망>(1893) 갈무리

"인간이 느끼는 절망의 감정은 문학, 음악, 미술, 노래 등 각 예술 분야에서 오래전부터 다양하게 다루어져 왔다. 미술에서는 절망을 대표하는 화가로, 죽음과 함께 호흡하며 살아간 에드바르드 뭉크를 꼽는다. 

뭉크는 삶과 죽음의 문제, 인간 존재의 근원에 존재하는 고독과 불안 등을 응시하는 인물을, 인물화를 통해 표현했다. 그의 대표작으로는 <절규>와 <죽음의 방>. 그리고 <절망>을 꼽을 수 있다. '질병과 죽음이 가득한 공기가 만들어 내는 불확실함, 어느 곳에도 자신 있게 발을 내딛을 수 없는 상황은 절망을 만든다. 그리고 절망은 사람을 한없이 깊은 바닥으로 침잠시킨다.'"

"절망은 불투명하고 불확실한 미래에서 온다. 힘들거나 어렵다는 것 자체가 곧 절망일 수는 없다. 하지만 헤어나올 수 없는 늪처럼 앞이 보이지 않을 때, 과연 '전망이 있는가'라는 물음 앞에 답이 없거나 또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확신이 없을 때, 절망은 소리 없이 찾아온다. 그럴 때 대부분의 사람들이 선택하는 것은 현실에서 도피하거나 숨는 것이다."

"민주노동당 초대 기획위원장으로 노회찬과 함께 활동한 <미술관 옆 인문학>의 작가 박홍순은 뭉크의 <절망>에 대해, "핏빛 하늘이 어지럽게 너울거리는 하늘 아래 두 눈을 감은 채, 하염없는 상념에 잠겨 있는 한 (외로운) 남자"라고 표현하면서, "원래 외로움은 사람들 속에서 오는 것이며, 불투명한 미래에서 오는 절망 앞에서 숨거나 도피하지 말고 오히려 절망 속에서 희망을 찾아야 한다"고 말한다.

희망은 피난처로의 도피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절망 속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 삶을 개척해나가는 가운데 불현듯 마주하게 되는 어떤 것이 아닐까 싶다. 어쩌면 그의 말은 지금 여기 한국사회 전체에 대해 던지는, 특히 여전히 진보의 길을 묵묵히 걷고 있는 사람들에게 던지는 강력한 메시지가 아닐까 싶다."

맺는말 : "편히 쉬세요. 남아 있는 세상은 우리가 어떻게든 해볼께요"

2011년 '진보교육의 미래를 묻다'를 주제로 한 '양평교육희망네트워크' 창립 1주년 기념특강(10.20.)에서 노회찬은 한국 사회의 교육현실에 대해 우려를 밝혔다.

"교육 분야에서 보수와 진보를 나누는 기준은 교육을 상품으로 보는가, 아니면 공공서비스의 일환으로 바라보느냐의 차이로 무상급식 문제도 여기서 비롯된 것입니다. 복지국가 등 많은 나라들이 교육의 공공성 강화에 힘을 기울이고 있는데 반해 우리나라는 다른 분야에 비해 특히 교육의 상품화가 가장 많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노회찬은 "교육의 기능과 역할 중 가장 중요한 기회균등이 실현되지 못하면 민주사회 또한 요원할 수밖에 없습니다. 국가 한 해 교육예산이 20조원인데 사교육 1년 예산이 평균 40조원에 이르는 현실이 기회균등이 실현되지 못하고 있음을 반영하고 있습니다"고 지적했다. 

이어 노회찬은 대학 등록금 문제를 예로 들면서 진보정당 집권과 노동조합 설립율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강연을 마무리했다.

"노르웨이, 핀란드 등 등록금이 아예 없는 나라들은 과거 100년 동안 진보정당들이 40년 이상 집권하고 있으며, 노조 설립 비율도 40% 이상으로 높습니다. 또 프랑스, 독일 등 등록금이 현저히 낮은 나라들도 최소 20년 이상 진보정당이 집권했고, 노조 설립 비율 역시 30% 이상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이에 비해 우리나라와 미국 등 등록금을 많이 받는 나라의 특징은 진보정당이 단 한 번도 집권하지 않았고, 노조 설립 또한 20%를 넘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노회찬과 하종강 Ⓒ노회찬재단

2018년 노회찬이 세상을 떠난 얼마 뒤 오랜 길동무였던 하종강 성공회대 노동아카데미 주임교수는 한겨레 칼럼(「[하종강 칼럼] 그이가 없는 하늘 아래에서…」, 2018.7.25.)에서 이런 언급을 했다.

"유럽 초등학교 철학 교과서에서는 '양질 전환의 법칙'이 현실에서 이루어진 대표적인 예로 '노동운동의 정치세력화'를 들기도 한다. 노동조합과 노동조합원 수가 점차 늘어나는 '양적 변화'를 계속하다가 일정한 역량을 갖추게 되면 정치세력화하면서 노동운동 중심의 진보정당이 탄생하고, 그 정당이 집권을 하게 되면 여러 사회제도를 바꾸어 지금까지와는 다른 새로운 사회를 건설하는 '질적 변화'가 가능해진다는 것이다.

유럽 등 선진국에서 지금 집권하고 있거나 과거 집권했던 정당들의 이름이 무엇인지 잠깐 생각해보자. 영국 '노동당', 프랑스 '사회당', 독일 '사민당', 스웨덴 '사민당', 노르웨이 '노동당', 덴마크 '사민당', 스페인 '사회당', 아이슬란드 '사민당', 오스트레일리아 '노동당', 뉴질랜드 '노동당' 등이다. 모두 노동운동에 뿌리를 둔 진보정당들이다. 

그러니까 '우물 안 개구리'를 벗어나 시야를 조금만 넓혀서 보면 진보정당이 여러 차례 집권한 것이 매우 보편적인 상황이고, 그런 경험이 전혀 없는 나라가 특별하고 예외적인 경우임을 알 수 있다."

하종강이 노회찬재단 소식지 <민들레> 21호(2021.1.28.) '후원회원 이야기'에 실은 「길을 걷다가도 문득 가슴이 미어진다」는 글을 소개하며, 오늘의 기록이야기 <게르하르센과 노회찬> 편을 닫는다.

"노동운동 하던 사람이 정치인으로 변신하는 것은 순수성을 잃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것이 본래 노동운동가의 올바른 선택인 것이다. 다만 나 같은 사람은 그것을 도저히 감당할 자신이 없어 노동운동 영역에 그냥 남아 있을 뿐이다. 

같은 지역에서 같은 시기에 노동운동에 참여했던 사람으로서 노동운동의 정치세력화라는 험난한 길을 포기했던 나는 노회찬 님에게 비견할 수조차 없을 정도로 부족한 사람이다. 그래서 감히 '노회찬 동지'라고 부르지 못한다. 

그런데도 노회찬 님은 나를 다른 사람에게 소개할 때마다 "제가 떠난 노동현장을 계속 지키고 있는 사람"이라고 설명하며 미안해했다. 그럴 필요가 전혀 없는데도 그는 항상 그랬다. 노회찬 님은 그런 사람이다."

"그가 우리 곁을 떠난 것이 얼마나 슬픈 일이었는지 내가 아는 말로는 감히 표현할 수가 없다. 차마 그의 빈소를 찾아갈 엄두가 나지 않아 망설이다가 마지막 날 겨우 조문했다. '이제 우리는 노회찬이 없는 하늘 아래에서 살아가는구나' 그런 생각을 하면 길을 걷다가도 목에 메인다."

"이소선 선생님께 했던 작별 인사를 노회찬 님에게도 똑같이 한다. '편히 쉬세요. 남아 있는 세상은 우리가 어떻게든 해볼게요.' 살아남은 우리는 모두 작은 노회찬들이다. 우리 모두 앞으로 그렇게 살아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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