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노회찬의 기록이야기 제목은 <기록으로 찾아가는, 노회찬의 '나라 밖 인물' 산책: 칼 마르크스에서 브라질의 룰라까지>이다. 칼 마르크스부터 브라질의 룰라에 이르기까지 '나라 밖 인물' 20여 명과의 직·간접적인 만남과 인연을 주제로 노회찬의 여정과 활동을 재구성한 것이다.
<노회찬의 나라 밖 인물 산책>은 11월 1일부터 매주 월·수·금 3번 씩 연재된다. '평등하고 공정한나라 노회찬재단'(노회찬재단)과 <프레시안>이 함께한다. 편집자.
<노회찬의 나라 밖 인물 산책> (☞시리즈 모아보기)
part 1 혁명 그리고 정치
part 2 유럽 사민당 리더와의 조우
part 3 스칸디나비아(북유럽) 복지모델을 만나다
㉙ 들어가는 글 북유럽식 사민주의, 인구 5000만 한국에도 가능하다면 (☞바로가기)
㉚ 올로프 팔메 上 "젊은 정치를 보고싶다…왜 한국정치를 '19금'에 묶어놓나"(☞바로가기)
㉛ 올로프 팔메 下 "넌 특별하지 않아"라고 말하는 스웨덴, "정치는 일상이다"(☞바로가기)
㉜ 타게 에를란데르 上
'소통'과 '공감'을 통한 '상생'의 정치인 : 에를란데르의 '만찬정치'와 노회찬의 '음식천국'
대화와 상생의 정치, 소통과 공감의 정치
그의 이름은 타게 에를란데르였다.
노회찬은 증오와 적대가 난무하는 대한민국 정치판에서 소통과 공감을 대표하는 정치인이었다. 진보·중도·보수 지식인 100명이 뽑은 '소통 잘하는 인물' 4위인 노회찬은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소통과 관련해 이렇게 밝혔다.
- 소통을 잘하는 인물 4위에 꼽혔다.
"일반적으로 정치인은 주장을 선명하게 하면 불리하다는 판단에서 터부시하는데, 저는 주의주장이 선명한 편이다. 저는 그보다 주장이 어떻게 잘 전달되게 만드느냐가 더 중요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래서 저는 정치를 '배달 증명'이라고 생각한다. 이야기하고, 발표하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고 어떻게 전달되느냐가 중요하다. 평소 주장할 때도 한편으로는 선명히 얘기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동의하지 않는 사람에게도 쉽고 일상적이고, 감동적으로 전달되도록 노력하는 편이다."
- 토론의 달인으로도 불린다.
"보통 토론에서 상대방을 논리적으로 꺾으려 하는데 확실한 자기 생각을 가진 사람들은 논리에 밀린다고 설복되지 않는다. 그래서 저는 토론할 때 시청자를 의식하면서 말한다. 토론은 국민들을 설득하는 과정이지, 상대방을 말로 이기는 과정이 아니다."
2018년 7월 23일 노회찬이 갑자기 떠난 뒤, 사람들은 '소통과 공감의 정치인'으로 노회찬을 떠올렸다. <디트NEWS24>의 류재민 기자는 「노회찬 어록과 정치인의 언어: 품격 있는 언어로 국민과 소통해야」(2018.7.27.)라는 글에서 이렇게 밝혔다.
한편 '상생', '상생의 정치'와 관련해서 노회찬이 마지막 몸을 담은 정의당의 강령에는 이런 글귀가 적혀 있다.
에를란데르의 '만찬정치'와 '목요클럽'(Thursday Club)과 '하프순드(Harpsund) 회의' : "난 목요일이 좀 한가한데 일단 만나서 얘기합시다"
스웨덴 쇠데르퇴른대에서 정치학을 가르치는 최연혁 교수가 쓴 칼럼의 일부 내용이다. (「[동아광장/최연혁]스웨덴 에를란데르 총리의 만찬 정치」, <동아일보>, 2013.12.21.)
1946년 에를란데르가 총리로 선출됐을 때만 해도 왕과 보수파들은 많은 걱정을 했고 특히 노사분규로 힘들어 하던 경영자들의 거부감은 대단했다. 당시 스웨덴은 한국처럼 대기업 중심의 수출 위주 경제체제로 인해 노사가 첨예하게 대립하던 시기였다. 에를란데르 총리는 각종 기념행사와 포럼, 회의 등에서 여러 단체의 대표를 만나 대화를 시도했지만 단지 그때뿐이었다. 1년에 한두 차례 기업총수와 노동조합 대표를 만나기도 했지만 성과는 없었다. 단체마다 정부가 수용할 수 없는 정책을 요구할 때가 많았고,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정권을 흔들어 좌초시키려고도 했다. 그렇게 첫 임기를 마쳤다.
1948년 선거에서 승리한 에를란데르는 자신을 공격했던 50% 국민의 마음을 얻지 못하고는 국가가 바로 설 수 없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갈등과 분열을 해소하고 정책에 대한 결실을 맺는 본격적인 대화의 장을 위한 '목요클럽'(Thursday Club)을 조직했다. 목요클럽의 공식 명칭은 '수출과 생산 증대를 위한 협력기구'로 스웨덴식 노사정 모임이라고 할 수 있다.
"난 목요일이 좀 한가한데 일단 만나서 식사를 같이 하면서 얘기를 나눕시다." 에를란데르의 초대장에 적힌 글귀였다. 1948년 타게 에를란데르 총리 재임 시절 시작된 스웨덴 협치 모델 '목요클럽'이 태동한 배경은 소박했다. 나라가 어렵고 사회가 혼란스러우니 노사정이 저녁 식사를 같이 하며 허심탄회한 대화를 해보자는 구상이었다. 대화 목적은 자신과 입장이 다른 사람을 알아가는 것에 두었다. 설득하지 말기, 경청하기, 끼어들지 않기 등을 기본 원칙으로 삼았다. (「목요대화」, <한국일보>, 2020.4.25.)
2주에 한 번씩 모이는 목요클럽은 재무장관 주재로 경제인연합회, 농업인연합회, 도매인연합회, 무역협회, 중소기업연합회, 노동조합총연맹, 사무직노동조합총연맹 대표가 참석했다. 주요 경제정책과 현안을 두고 논의를 이어갔으며 참가자는 물론 총리 자신도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1950년대 중반, 정부와 대기업의 관계가 악화되자 목요클럽도 시들해졌다. 하지만 에를란데르는 움츠러들지 않았다. 그는 총리의 하프순드 별장으로 경제계 대표를 초대해 자신이 직접 주재하는 '하프순드(Harpsund) 회의'를 시작했다. 1955년부터 1964년까지 이어진 하프순드 회의는 목요클럽보다 참가자의 폭이 넓었다. 개별 기업 대표, 금융인, 이익단체 대표, 각 부처의 고위 관리자, 노동조합 관계자 등을 회의 이후에도 수시로 만났다.
목요클럽과 하프순드 회의를 거치며 에를란데르에 대한 평가는 합리적이고 말이 통하는 정치인으로 변했고 노사정은 최악의 상황에서도 대화의 끈을 이어갔다. 처음 모임을 시작했을 때 "오페라와 샴페인 이야기를 하는 경제인들과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던 에를란데르의 솔직한 고백이 "효과적이고 유쾌한 토론"으로 변하기까지, 23년이라는 시간 안에 얼마나 많은 고뇌와 노력이 녹아 있을지 정치의 무게를 되새긴다. (하수정, 「정세균 총리 후보자가 언급한 '목요클럽'」, <경향비즈>, 2020.1.9.)
그의 노력에는 보여주기식 대화가 아닌 상대의 의견을 경청하고 문제해결을 위해 노력하는 진정성이 자리잡고 있었고, 그것이 성공의 비결이었다.
※에를란데르는 총리로 재임하는 동안 매일의 다짐을 일기로 남기기도 했다. 몇 대목을 소개하면 이렇다.
2004년 17대 총선 과정에서 민주노동당 중앙선대본부장 노회찬도 매일의 상황을 <선대본 일기>로 작성해 중앙당 게시판에 연재했다.
노회찬의 <선대본 일기>는 <힘내라 진달래>(사회평론, 2004)로 묶여 출간되었고, '전태일문학상 특별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노회찬의 일기쓰기는 그 뒤에도 <난중일기>라는 제목으로 틈틈이 올라왔다.
노회찬과 '음식천국' : "서민들이 잘 살 수 있는 민生(생) 정책을 펴 주시기 바랍니다."
'이 책'의 제목은 이인우 기자의 <음식천국: 맛집에서 나눈 '노회찬의 삶과 꿈'>(일빛, 2021)이다. 이인우는 "노회찬이라는 사람의 인간미 속에 음식의 세계가 있다는 건 그 자신에게나, 주변의 지인들에게나 다 같이 축복"이라고 말한다.
<음식천국 노회찬>을 통해 이인우는 「노회찬과 이낙연의 '인생의 맛: 여의도 남도 한정식 '고흥맛집'」의 사연을 이렇게 전했다.
"인생의 맛을 알 때쯤엔… 2007. 4. 28. 국회의원 이낙연. "이낙연이 국무총리가 된 다음 날인 2017년 6월 1일, 정의당 원내대표실로 노회찬을 예방한 자리에서 이낙연은 기자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그리고 노회찬에게 총리 공관에서 다시 막걸리 회동을 하자고 제안하자, 노회찬도 화답했다.
그로부터 두 달여 뒤인 8월 16일, 당시 정의당 지도부(이정미 대표 및 심상정, 노회찬, 윤소하, 김종대, 추혜선 등 소속 의원 6명 전원)가 모두 참석한 만찬이 총리 공관에서 열렸다. 노회찬은 이 자리에서 이낙연에게 노회찬 의원실의 박규님 보좌관이 국내산 찹쌀로 직접 빚은 막걸리라며 두 병을 선물했다. 막걸리 이름은 '낙연주(洛淵酒)'. 그리고 이런 당부를 했다.
2018년 4월부터 2018년 7월 노회찬이 떠날 때까지 존재한 '평화와 정의의 의원 모임', 그것은 노회찬이 고흥맛집에서 도모한 생애 마지막 사업이었다. 이인우의 글을 따라가 보자.
소수 정당이 국회에서 캐스팅보트를 쥐려면 반드시 확보해야 할 고지가 교섭단체 지위(20석)다. 그러나 정의당은 6석. 노회찬은 이 벽을 넘기 위해 마침 민주당에서 떨어져 나와 있던 민주평화당(14석)과 공동 교섭단체를 꾸리는 일에 적극 나섰다. 이 '모의'의 주된 장소가 고흥맛집이었다. 노회찬은 두 당이 공동 교섭단체 구성에 합의하기에 이르자, 당시 민평당 원내대표인 장병완 의원과 함께 춤을 출 정도로 기뻐했다고 한다.
그해 4월 2일, 두 당이 국회에 공동 교섭단체로 등록하면서 노회찬이 첫 원내 사령탑을 맡게 됐다. 2004년 17대 총선에서 민주노동당 소속으로 처음 국회에 입성한 뒤 14년간 비교섭단체 소속이었던 소수 정당 국회의원 노회찬에게 이 일은 매우 의미 있는 사건이었다.
그는 "14년 전 첫 등원 때만큼 떨린다"라고 말하면서 국회의장과 다른 당 원내대표, 두 당 소속 의원 모두에게 봄꽃 야생화를 직접 심은 화분을 보냈다. '봄이 옵니다. 노회찬'이라는 문구를 화분 하나하나에 꽂으며 여의도에도 봄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고 했던 그의 염원은 너무도 빨리 끝났다.
<음식천국 노회찬>의 이인우 작가가 노회찬을 마지막 본 것은 2018년 4월 27일 문재인 대통령이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판문점 도보다리에서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을 하던 그날, 염리동 평양냉면집 '을밀대'에서였다. 이인우는 동료들과 점심을 하러 을밀대에 왔다가 마침 이정미 당시 정의당 대표 등과 회식을 마치고 나오던 노회찬과 마주쳐 반갑게 악수를 나누었다. 노회찬 정의당 20대 국회 원내대표도 이날 "시작이 반이다. 나머지 반을 채우기 위한 노력은 우리 모두의 몫"이라는 논평을 내고, 정의당 당직자들에게 평양냉면으로 '점심을 쏘기 위해' 을밀대에 들렀던 것이다. 남북정상회담을 기념하기 위한 이 자리의 성격은 '평화, 새로운 시작'이었다. 점심 대접을 받은 이정미 정의당 대표는 페이스북에 글을 올렸다.
이정미의 약속은 지켜질 수 없었다. 남북 평화의 조짐이 나타나지 않은 건 차치하고, 세 달 뒤 노회찬이 우리 곁을 황망히 떠났기 때문이다.
<집·밥·왔·썹>으로 이어진 노회찬과 에를란데르 : "집밥"으로 "연대"합니다
2020년 2월 노회찬정치학교 1기 기본과정(2019.10.26.~2020.2.8)을 수료한 학생들은 후속작업으로 4개의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오재영추모사업회'(대표: 김진석)는 프로젝트의 원활한 진행을 위해 장학지원금을 출연했다. 4개의 프로젝트 가운데 하나인 <집·밥·왔·썹>은 총 4회로 기획됐는데 안타깝게도 코로나19 상황으로 2회에 그쳤다.
<집·밥·왔·썹> 프로젝트 제안자인 윤선주 님은 스웨덴 타게 에를란데르 총리의 '목요 만찬'에서 힌트를 얻었다고 하면서 (가칭)'타게의 식탁'이라는 제목의 제안서를 제출했다. 제안서에 적힌 기대효과를 보면 이렇게 적혀 있었다.
'현장'을 방문해, 집에서 정성껏 준비한 한 끼 식사('집밥')를 대접함으로써 그들의 진솔한 목소리를 듣고 나누며 지속적인 소통의 장을 마련한다는 취지로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함께 공부한 1기 수료생들도 관심과 지원을 아끼지 않았고 시간을 쪼개 함께 현장을 방문하기도 했다.
닫는 글
오늘의 이야기 <스웨덴의 에를란데르>편은 노회찬재단 소식지 <민들레> 15호에 실린 윤선주 님의 글을 소개하며 닫는다. 글의 제목은 「"집밥"으로 "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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