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노회찬의 기록이야기 제목은 <기록으로 찾아가는, 노회찬의 '나라 밖 인물' 산책: 칼 마르크스에서 브라질의 룰라까지>이다. 칼 마르크스부터 브라질의 룰라에 이르기까지 '나라 밖 인물' 20여 명과의 직·간접적인 만남과 인연을 주제로 노회찬의 여정과 활동을 재구성한 것이다.
<노회찬의 나라 밖 인물 산책>은 11월 1일부터 매주 월·수·금 3번 씩 연재된다. '평등하고 공정한나라 노회찬재단'(노회찬재단)과 <프레시안>이 함께한다. 편집자.
<정치가 우선한다>의 모범 사례 스웨덴, 그리고 노회찬 : "정치를 통해서만 사회를 변화할 수 있다"
'사회민주주의와 20세기 유럽의 형성'을 부제로 한 셰리 버먼의 2006년 책 <The Primacy of Politics>(김유진 역, <정치가 우선한다>, 후마니타스, 2010)는 사민주의와 함께 특히 스웨덴 사례에 대해 주목하면서 이렇게 밝히고 있다.
"사회민주주의의 주된 특징은 민주주의에 대한 헌신과 더불어 정치적 가능성에 대한 확고한 믿음에 있다. 버먼에게 있어서 사회민주주의란, 국가와 정치를 통해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다는 신념 위에서 탄생한 적극적인 민주주의자들의 비전이다."
"제7장은 모범 사례로 스웨덴을 심층적으로 들여다볼 것이다. 이를 통해 스웨덴에서 사회민주주의적 헤게모니가 힘을 발휘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곳의 사회주의 정당(스웨덴 사민당)이 사회민주주의적 원리들로 일찍이 전향했다는 점, 그리고 그에 상응해 민족주의적 우파의 의제와 표현들을 선별해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 낼 줄 아는 능력을 지녔다는 점에 있음을 보여줄 것이다."
박찬수 <한겨레> 논설위원은 "노회찬의 생각은 <정치가 우선한다>를 쓴 미국 정치학자 셰리 버먼의 사민주의론과 흡사하다"며 이렇게 쓰기도 했다.
"버먼은 20세기 자유주의가 정치적으론 전체주의(파시즘, 스탈린주의)와 싸우고 경제적으론 사회주의(공산주의)와 싸워 이긴 승리자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 과정에서 시장과 국가, 사회의 관계를 완전히 바꿔버린 사민주의가 '진정한 승리자'라고 주장했다. 사민주의는 '정치 우선'과 '공동체에 대한 믿음'을 바탕으로, 공존할 수 없을 것처럼 보였던 자본주의 체제와 민주주의, 그리고 사회적 안정을 잘 융화시킴으로써 유럽 역사상 가장 번성하고 조화로운 시기를 열었다고 버먼은 말했다."
"가치의 실현을 위해 정치(선거)를 최우선에 두는 것, 이것이 사회주의와 사민주의를 가르는 핵심 요소 중 하나였고, 노회찬은 이 점에서 '사회주의 이상을 말하며 현실 정치에 복무하는 걸 꺼리는' 진보 내부의 태도를 강하게 비판했다.
국회미래연구원 박상훈 박사(전 후마니타스 대표)는 "개량주의란 '혁명과 체제의 변혁'을 추구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개량'이지, 그게 타협이나 원칙의 훼손은 아니다. 오히려 민주주의라는 현실 속에서 원칙을 지키며 목표를 이루려는 노력은 사민주의가 더 했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진보정당은 왜 '사회민주주의'를 내걸지 못할까」, <한겨레>, 2020.10.20.)
2018년 2월 '창비 지혜의 시대 연속특강'에서 노회찬은 정치와 권력의 중요성, 진보정당의 중요성에 대해 이렇게 밝힌 바 있다.
"촛불 이후 시대인 오늘날의 중요한 과제는 공정, 평등, 평화를 우리 사회에 정착시키는 것입니다. 무엇 하나 쉽지 않고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고 했지요.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 과제를 풀 수 있을까요?
우선, 정치를 바꿔야 합니다. 불공정한 불법 채용도,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불평등함도, 한반도의 평화도, 정치가 움직이면 바꿔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민주주의입니다. 민주주의 체제가 아니라면 쿠데타 등 폭력적인 방식으로 자기주장을 관철할 수 있겠지만, 민주주의 체제에서는 정치를 통해서만 사회가 변화할 수 있습니다." (노회찬, '창비 지혜의 시대 특강', 2018.2.; <우리가 꿈꾸는 나라>, 창비, 2018.9.)
"정치는 권력의지를 실현하는 길입니다. 그리고 세상을 바꾸는 강력한 길이지요. 이상을 현실로 바꾸는 것은 이론과 실천의 총화에 의해 가능하지만 이를 실현시키는 것은 결국 권력입니다." (정운영, <우리 시대 진보의 파수꾼 노회찬>, 랜덤하우스중앙, 2004)
"이제까지 적지 않은 꿈이 현실로 나타나는 것을 경험했다고 해서 모든 꿈이 현실로 될 것이라 말할 순 없다.
진보정당의 꿈을 놓지 못하는 것은 현실가능성이 크기 때문도 아니고, 그 꿈이 너무 아름다워 포기하기가 어렵기 때문도 아니다. 그 꿈 이외에는 대안이 없기 때문이다. 그 꿈이 실현되지 않고서는 정치가 사람의 희망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노회찬, 「(여는글) 우리들의 겨울은 따뜻했다-다시, 꿈꾸기 위하여」, <진보의 재탄생>, 꾸리에, 2010)
2019년 <제3회 노회찬포럼>에서 다시 조우한 노회찬과 팔메 : "정치에 대한 신뢰"
2019년 7월 29일 노회찬재단은 '평등하고 공정한 나라 스웨덴'을 주제로 '제3회 노회찬포럼'을 개최했다. 발표는 조돈문 노회찬재단 이사장(가톨릭대 교수, 사회학), 지정토론은 박용석 민주노총 정책연구원장, 이창곤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장, 장선화 한국외대 글로벌연구소 초빙연구위원, 하수정 북유럽연구소장, 그리고 사회는 김진석 서울여대 사회복지학 교수가 맡았다.
'지금 왜 다시 스웨덴 이야기인가?'
조돈문 이사장은 "노회찬재단은 노회찬 의원의 꿈을 잇기 위해 평등하고 공정한 나라를 지향하는데, 그럼 평등하고 공정한 나라는 어떤 나라냐? 그런 나라가 가능한가 하는 의문도 있다. 그래서 그 구체적인 사례를 다시 살펴보고 노회찬재단은 이런 나라로 가기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 함께 생각해보자는 의미다"라면서, "스웨덴은 자본주의 사회 중 가장 평등한 나라이고, 비정규직 노동자, 여성 등 사회적 약자들이 살만하다고 평가하는 공정한 사회이다"라고 밝혔다.
토론자인 하수정 소장은 "스웨덴 내무부 장관을 지냈던 라스 다니엘손 EU대사는 좌우에 관계없이 스웨덴 전체가 동의하고 있는 네 가지 가치가 있는데 복지국가, 지속가능발전, 남녀평등, 빈부격차를 줄이는 것이라고 말했다"고 소개하며, "스웨덴에서는 조세 저항이 적은 것은 물론 오히려 친구들은 세금 내는 것을 기쁘게 생각할 정도였다. 재분배 이후 소득 상위와 하위 차이가 크지 않고 부를 과시하는 것을 천박하게 여기고 또 '라곰과 얀테의 법칙'이 사회 기저에 있다 보니 자연스레 사회 전체가 비슷한 수준으로 수렴된다. 중산층이 두터워 대부분 자신이 내는 것보다 더 많은 혜택을 받는다고 느낀다"면서 올로프 팔메를 불러냈다.
"또 하나 중요한 것은 정치에 대한 신뢰다. 과거 스웨덴의 수상이었던 올로프 팔메는 사람들은 자신이 내는 세금이 허투로 쓰이지 않는다는 믿음이 있어야 세금을 낸다고 했다."
※ 참고로 '얀테와 라곰의 법칙'과 관련해 'http://www.nordikhus.com/북유럽 문화의 하나인 얀테의 법칙'에서는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The Law of Jante, 얀테의 법칙은 북유럽 모든 문화가 공감하는 사고로, 평등을 바탕으로 한 10가지 룰로 이루어진다.
①당신이 특별하다고 생각하지 말 것.
②당신이 우리들만큼 좋다고 생각하지 말 것.
③당신이 우리보다 더 똑똑하다고 생각하지 말 것.
④당신이 우리보다 더 훌륭하다고 상상하지 말 것.
⑤당신이 우리보다 더 많이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 말 것.
⑥당신이 우리들보다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말 것.
⑦당신이 모든 것을 잘한다고 생각하지 말 것.
⑧우리를 비웃지 말 것.
⑨당신을 누가 도와줄 거라고 생각하지 말 것.
⑩당신이 우리를 가르칠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말 것.
10가지의 룰은 모두 평등에 관한 것으로 누구나 같으며, 서로 존중해야 함을 말한다. 숨은 나머지 하나의 룰은 ⑪설마 우리들이 당신에 관해 아주 조금만 안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이다.
한편 얀테의 법칙은 라곰(Lagom)의 특징과 사실 다름이 없다. '덜해서도 안 되고 더해서도 안 되는 딱 알맞은 적당함'의 뜻을 갖고 있는 라곰은 소박하고 균형 잡힌 생활과 공동체와의 조화를 중시하는 삶의 경향을 얘기한다. 전해오는 일설에 의하면 오래전 바이킹 시대에 길고 뾰족한 뿔에 벌꿀술을 가득 담아 동료들과 서로 돌아가며 한 모금씩 나눠 마실 때 모두가 적당한 양만큼 모자라지도 남지도 않게 마신 것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너무 넘치지 않는 나 자신은 지나친 욕심과 의지를 조절하는 것을 말하고, 다른 사람들에 비해서 너무 앞서가는 나 자신은 다시 지나침에 해당하는 것으로 이해된다.
하수정이 말한 라스 다니엘손(Lars Danielsson)은 주한스웨덴대사 시절 진보정의당 부설 진보정의연구소(소장: 조현연)가 주관한 '진보정의당의 유럽대사 초청 연속강연회: <유럽을 통해 본 한국 복지사회의 미래>'의 첫 번째 강연자로 출연한 인물이다. (2013.5.22.) 강연 주제는 '사회민주주의, 스웨덴 보편적 복지의 근간'이었다.
강연에 앞서 노회찬 진보정의당 공동대표는 "스웨덴이 가장 부자의 나라는 아니지만 가장 문명화된 나라"라며 "진보정의당과 스웨덴 사이에 다양하고 유익한 교류가 활발해질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는 다짐을 전했다. 그리곤 트위터에 한 장의 사진과 함께 글을 올렸다.
"'빈부 차이가 작을수록 더 건강하고 더 강한 사회가 된다.' 진보정의당이 주최한 '유럽 복지국가 대사초청 연속강연회'에 온 다니엘손 주한 스웨덴 대사의 말씀입니다."
사민당 출신의 다니엘손은 "오늘날 스웨덴 복지시스템의 근간은 사회민주당이 만든 것"으로, "지난 6년 반 동안 중도 우파가 정권을 잡고 있지만 그들은 우리가 시스템을 바꿀 것이라고 말하지 않고, 우리가 이 시스템을 더 잘 운영하겠다고 공약을 내세워 당선된 것"이라며 스웨덴 사민당이 만든 복지 시스템의 우수성을 강조했다.
다니엘손이 꼽은 스웨덴 복지의 네 가지 특징 가운데 첫 번째는 '사회적 연대와 신뢰'였다. "스웨덴의 정부와 공공기관이 부패가 없고, 국민에게 높은 신뢰를 얻고 있다"며 그 이유로 정부 행정이 "매우 투명하고 공공에게 공개"되어 있다는 것이었다.
다니엘손은 한국에 스웨덴식 제도의 도입이 가능할 것이냐는 물음에 "스웨덴의 제도가 가진 가치는 범용적이기 때문에 얼마든지 적용가능하다. 이 가치를 마음에 담고 있다면 한국만의 독특한 복지시스템을 만들 수 있을 것으로 믿는다"며 초청강연을 마무리했다.
복지의 시대, '복지감별사'가 필요한 대한민국 : "제일 나쁜 의사는 병 주고 약 주는 의사"
우리 시대 복지가 필요하고, 복지국가가 되어야 한다는 말에는 보수든 진보든, 여든 야든 모두 동의를 한다. 그러나 "복지국가를 입에 올린다고 모두 복지주의자는 아니다"라면서 이태수 꽃동네대 사회복지대학원장은 스웨덴의 팔메를 불러냈다.
"박근혜 대통령을 포함하여 지난 대선과 수많은 정치의 계절에서 복지를 외쳤던 그 많은 이들이 지금 어디에 있는지를 물어보면 자명하다. 그렇다면 누가 복지주의자이며 누가 복지국가를 이데올로기 차원에서 실현할 사람인가, 그 감별법이 있다면?
먼저, 복지주의자라면 결단코 복지가 시민의 권리이지 빈곤층 및 일부 낙오된 국민의 안전망이 아니라는 인식이 기반이 되어야 한다. 그런 면에서 보편주의에 동의는 필수다. 다음으로 복지주의자라면, 궁극적으로 재원을 독립변수가 아니라 종속변수로 생각해야 한다. 예산은 정치적 결단의 대상이지, 경제관료나 주류 경제학자들이 속삭이듯 예산의 틀 내에 복지가 예속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
정책을 잘 모르니 공부시켜달라며 때만 되면 손을 내밀던 수많은 정치인치고 성공한 경우를 본 적이 없다. 전후 두 차례에 걸쳐 10년간 스웨덴 총리를 지낸 올로프 팔메. 복지국가의 이념은 안전과 평등, 연대와 민주주의임을 역설하며 스웨덴 복지제도를 한차례 더 업그레이드시킨, 뼈 속까지 사민주의자이며 복지주의자인 그런 정치인이 우리에게도 그리운 시절이다." (「복지정치인 감별법」, <한국일보>, 2016.2.22.)
이태수가 말한 '올로프 팔메…그런 정치인'에 속하는 노회찬도 '가짜 복지 감별법'에 대해 여러 차례 강조했다.
"정치가 밥을 먹여주는 것이어야 한다고 여전히 믿지만 그런 정치에 대한 신뢰는 계속 떨어지고 있다. 그 이유는 개혁정당, 진보정당이 제구실을 못하기 때문이다. 역시 문제는 민주주의다. 정치적 민주주의는 반쪽 민주주의일 뿐이다.
사회경제적 민주주의가 절실하게 요구되는 계절이다. 그래서 대통령선거가 다가올수록 누구든 나서서 더 많은 복지, 경제민주화라는 약을 주겠노라고 경쟁하는 양상이다. 누굴 믿어야 하나? 병 주고 약준다는 말처럼 일단 병은 고칠 생각 않고 약만 많이 주겠다는 의사는 다 가짜다. 약 조차 안주는 지금 의사보다는 낫지 않느냐는 생각도 위험하다.
도대체 자영업자의 80% 이상이 적자를 못 면하고 취업자의 절반 이상이 차별받는 비정규직인 현실을 바꾸지 않고 무슨 병을 고치겠다는 것인가? 좋은 노동과 함께 하지 않는 복지는 다 가짜라고 봐도 된다." (노회찬, 「"좋은 노동과 함께 하지 않는 복지는 다 가짜"-노회찬 국회의원 편」, <'2012년 우리가 뽑아야 할 12번째 인물' 대담회>, 2012.7.13.)
"제일 나쁜 의사는 병주고 약주는 의사예요. 병 자체를 줄인 뒤에 필요한 환자에게 약을 공짜로 주든 두 배로 주든 해야죠. 한 손으로는 고용 정책을 엉망으로 만들어놓고, 다른 한 손으로 복지를 늘리겠다고 하니까 이 약속은 지켜질 수 없어요.
저는 여기서 교훈을 하나 얻었어요. 앞으로 여야 어느 당이든 더 많은 복지를 약속할 거예요. 그래서 어느 게 진짜이고 가짜인지 정확하게 감별해야 한다는 거죠. 일단 더 많은 복지만 약속하면 가짜일 가능성이 매우 높아요. 좋은 노동, 제대로 된 고용과 함께 복지를 이야기할 때 건강한 해법이 나올 수 있습니다." (<노유진의 정치카페 6편-"박근혜, 약속을 바꾸는 세상">, 2014.7.1.)
"먹고 살게 만드는 게 가장 중요한 복지이다. 제일 나쁜 의사가 병 주고 약 주는 의사다. 그런 의사는 여의도에 제일 많다. 실업자가 많아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으니 먹고 살기 위한 방법을 주는 게 아니라, 실업수당만 늘려주는 처방. 그러니까 약만 주는 것이다. 어
떤 후보가 센 복지만 얘기한다면 그것은 가짜다. 복지감별사가 필요하다. 센 복지는 세금으로 하는 것인데 세금이 없다. 이게 전형적인 병 주고 약 주는 의사다. 일자리 문제에 대한 합리적인 해결방법이 있어야 한다.
(…)
정의로운 복지국가는 온 국민의 합의사항이다. 복지 늘리는 것도 중요하다. 하지만 그 안에 있는 현실, 1차 분배, 노동시장뿐만 아니라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공존. 공존의 지혜, 노력, 제도화를 통해 격차가 덜 벌어지게 해야 나중에 나누기도 쉽다. 이것을 한껏 벌려놓고 복지로 해결해준다는 공약은 거짓말에 가깝다." (노회찬, '내가 생각하는 정의로운 복지국가', <동국대 상생과통일포럼 리더십 최고위과정 6기' 강의>에서, 2015.11.7.)
팔메의 '정치'관과 '알메달렌 정치박람회' : "정치의 기쁨을 알게 해 모든 사람을 정치인으로 만든 인물"
"누군가는 이렇게 말할지 모른다. '우리는 그저 청소년일 뿐이야. 우리가 정치인도 아닌데 무슨 영향력이 있으며, 세계에 대한 무슨 책임이 있단 말이야?'
그렇지 않다. 우리는 모두 정치인이다. 우리가 어디서 왔든, 무슨 일을 하든 우리는 정치인이다. 왜냐하면 우리의 생각을 사람들에게 전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우리가 바라는 대로 사회를 바꾸고 세계를 바꿀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말은 1958년 8월 사민당 청년회의 연설에서 올로프 팔메가 한 말이다. 팔메는 정치를 정당 사이의 아젠다 싸움이 아닌 일상 활동으로 만들었다. 팔메는 스스로 정치인이라는 점을 자랑스러워했다. 그는 정치의 즐거움을 알았다. 또한 대중에게 그 즐거움을 맛보게 했다. 대중이 정치에 관심을 갖게 만들었으며, 참여하게 만들었다. 대중에게 정치의 기쁨을 알게 해 모든 사람을 정치인으로 만들었다는 점이야말로 팔메가 스웨덴에 남긴 가장 큰 유산이라 할 만하다.
"모든 사람이 정치인"인 스웨덴의 '정치하는 시민들.' 아마도 그것을 대표하는 상징은 '정치인들을 위한 락 축제(Rock Festival)'란 별칭을 갖고 있는 '알메달렌 정치박람회'이 아닐까 싶다.
매년 7월 첫째 주 스웨덴 동남부 고틀란드 섬의 해변 휴양도시인 뷔스비시에서 열리는 이 정치박람회는 우연하게 시작됐다. 1968년 7월 당시 교육부 장관이자 차기 총리로 내정된 올로프 팔메가 가족과 이 섬으로 여름휴가를 왔다. 주민들은 총리 내정자이기도 한 팔메 장관을 만나고 싶어 했다.
팔메 장관은 알메달렌 공원에 주차된 덤프트럭에 올라가 영수증에 끄적거린 메모를 보며 주민들 앞에서 즉석연설을 했다. 이 연설은 전국적으로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다음해 총리에 오른 팔메는 다시 같은 장소를 찾아 주민들을 만났고, 이렇게 스웨덴 판 아고라, 알메달렌이 탄생하게 된다. (송문석 편집주간, 「알메달렌, 폴케뫼데, 그리고 한국 정치」, <CIVIC뉴스>, 2019.3.13.)
그 뒤 매년 여름 고틀란드 섬에서 열리는 정책간담회는 스웨덴 사민당의 상징이 되었다. 이에 대한 국민들의 반응과 호응이 뜨거워지자 1983년부터 모든 정당이 참여하는 정치행사로 확대되었다. 정당들은 정책 설명회, 당대표와의 만남, 정책 세미나, 국민과의 질의 및 대화 시간, 정당주관 문화행사 등을 통해 국민과 하나가 되는 친숙한 프로그램으로 진행됐다.
알메달렌 정치박람회가 정당의 중요한 소통 통로로 부상되면서 국민들도 휴가기간 동안 자유로운 복장과 휴식 분위기에서 격의 없이 정치인을 만나는 자리로 거듭났다. 눈길을 끄는 것은 정치박람회의 주체가 각 정당들이라는 점과, 각 정당들이 정치박람회를 자신들의 선전도구로 활용하지 않을 것을 합의했다는 점이다.
한마디로 알메달렌 정치박람회는 스웨덴 민주주의의 상징이자 정당 간 합의정치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 소통과 참여를 통해 민주주의를 배우고 정치와 사회적 이슈에 대한 지식을 얻는 소중한 공간으로 자리매김됐다.
2011년부터 매년 알메달렌을 찾아 현장을 기록한 정치학자 최연혁 스웨덴 린네 대학 정치학과 교수는 스웨덴 사람들에게 정치는 사회의 모든 구성원이 참여해야 하는 의무이자 권리라고 말한다. 최연혁 교수의 책 <알메달렌, 축제의 정치를 만나다>(스리체어스, 2018)를 보면 이런 대목이 나온다.
"알메달렌은 정치도 축제로 승화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 주는 행사다. 모두가 즐기면서 정치를 배우고, 정치인과 격의 없이 만날 수 있는 곳, 그리고 정치인들이 권위를 내려놓고 오로지 정책과 비전으로만 대결하는 신선한 정책 경쟁의 장이다. 그곳에서 국민은 정책을 배우고 정치를 배운다."
"알메달렌에서 정치인은 인사만 하고 사라지는 특별 손님이 아니라, 토론의 주인공이자 시민의 동료이다. 전문적인 정책으로 무장한 정치인들은 국민이 정책을 보는 눈을 한 단계 높여 준다. 이러한 정책에 대한 감각은 선거에서 한 표로 행사된다. 이렇게 능력 있는 정치인, 수준 높은 시민, 훌륭한 정치 문화로 이어지는 선순환 구조가 만들어진다."
"정치인의 연설과 정책 토론도 내용과 재미가 적절하게 섞이면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 예술이 될 수 있다. 스웨덴의 정치인들이 사용하는 정제된 수사법은 언어의 감칠맛을 돋우는 양념과도 같다. 함께 웃고 박수를 보내다 보면 정치는 더 이상 어렵거나 무미건조한 메시지가 아니다. 거리에서 쉽게 카페에 들어가 커피 한 잔 마시듯, 쉽게 정치인들의 이야기를 찾아보게 되고 귀담아듣게 된다."
최연혁 교수가 말한 "정치인의 연설과 정책 토론도 내용과 재미가 적절하게 섞이면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 예술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대표하는 한국의 정치인을 꼽으라면, 노회찬이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히지 않을까 싶다.
2013년 4월 4일 진보정의당 중앙당 회의실. 진보정의연구소(소장: 조현연) 주최로 최연혁 스웨덴 쉐데르턴대학 정치학과 교수 특강이 열렸다. 주제는 '한국에서 사민당이란?-스웨덴 사민당 성공과 부침의 함의'였다. 특강에 앞서 노회찬 진보정의당 공동대표는 인사말을 했다.
"제가 오늘 공부하러 온 사람 중에 한사람입니다. 먼저 이렇게 귀한 자리에 귀한 걸음을 해 주셔서, 좋은 말씀을 들려주시기로 해주신 최연혁 교수님께 당을 대표해서 감사 인사를 드리구요. 또 오늘 이 자리에 근래 보기 드물게 이렇게 많은 분들이 모여주셨습니다.
특히 조준호 대표님을 위시해서 김영훈 전 위원장님과, 또 권영길 전 대표님… 이 세 분 다 민주노총 위원장 출신이죠. 민주노총 위원장 출신을 이렇게 많이 모아낼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사민주의의 힘이다, 이런 해석도 가능할 것 같습니다.
하여튼 오늘 이 자리가 우리가 안고 있는 한국의 진보정당이 더 나은 길을 찾아가는 데 어떤 몸부림의 일환으로 마련됐다고 생각하구요. 교수님께 많이 배우는 자리가 되겠습니다. 앞으로도 오늘 이후에도 저희에게 좋은 가르침과 지도를 해주시기를 부탁드리면서 다시 한 번 감사인사 드립니다. 고맙습니다."
진지하고 집중도 높은 분위기 속에서 2시간 10여분에 걸친 강의와 질의응답이 있었다. '스웨덴 사민당의 경험', '유럽 사민주의, 현재의 도전', '한국에서 사민당은 어떤 의미인가?', '사민주의가 한국에서 뿌리를 내리기 위한 몇 가지 조건', '한국 사민주의의 과제' 등이 다뤄졌다. 특강은 최연혁 교수의 마지막 답변으로 마무리됐다.
"'socialism in democracy.' '사회주의를 통한 민주주의의 완성'으로 한국 유권자들을 설득시킬 수 있다면, 그런 설득의 프로그램과 비전이 있다면, (개념에 대한) 정의를 명확히 한 뒤에 사회주의를 주장하십시오. 그럴 수 없다면 사회주의가 아니라 사회민주주의('social democracism')를 말하는 게 더 낫다고 봅니다."
닫는 글 : "아름다운 날이 우리 앞에 있다"
"인간이라는 불안한 존재에 대해 지치지 않는 존중을 보냈던 사람"
팔메는 역대 스웨덴의 어떤 총리보다도 국제 문제에 적극 개입했다. 1970년 10월 유엔25주년 기념 총회의 연설을 통해 그는 미소 열강을 날카롭게 비판해 동유럽과 아시아, 아프리카 등 약소국의 지지를 받았다.
팔메는 평화가 위협받고, 정의가 거부되고, 자유가 위기를 겪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찾아가서 중재를 이끌었다. 교육부장관이던 1968년 2월 21일 팔메는 '스웨덴 베트남위원회'가 주최하는 반전집회에서 베트남전쟁에 반대하는 연설을 하고 반미·반전 시위에 뛰어들었다.
또한 총리로 있던 1972년 12월 국영 라디오에 나와 미국 하노이 폭격을 독일 나치의 게르니카 폭격이나 집단수용소 학살과 다를 바 없는 대량 살상이라고 거침없는 비판을 퍼부었다. 이로 말미암아 미국은 스웨덴과 외교관계를 두 차례나 끊었다.
그때 미 국무장관이었던 헨리 키신저는 "나는 나와 뜻을 같이하는 많은 사람을 싫어했고 나와 뜻을 달리하는 많은 사람을 좋아했는데 그 가운데 으뜸이 팔메 총리다"라고 말할 만큼 팔메는 남미와 아프리카에서 민족해방운동을 지지했고, 칠레 피노체트 정권과 같은 우익 군사정권을 서슴없이 비판했으며, 넬슨 만델라 투쟁을 적극 감쌌다. (변택주, 「정치인, 모든 일에 책임져야」, <불교닷컴>, 2013.6.17.)
"스웨덴의 인구가 500만 정도밖에 안 되는데 그렇게 작은 인구의 스웨덴이 그런 일을 한다고 누가 눈이나 깜짝하겠느냐"는 비웃음에 대해 팔메는 이렇게 답했다고 한다.
"아니다. 정치는 한 사람의 힘이다. 한 사람이 내 아이디어를 다른 사람에게 전달하고 그 사람이 동조해 세상을 조금씩 바꿀 수 있으면 그게 정치다. 모든 사람이 정치인이고 나는 그렇게 정치한다." (하수정 작가 강연 자료, <후마니타스 출판사 저자와의 만남-「스웨덴이 사랑한 정치인, 올로프 팔메를 만나다」>, 2013.12.8.)
암살당하기 일주일 전인 1986년 2월 21일 팔메의 마지막 연설은 아파르트헤이트(Apartheid)에 관한 것이었다. 스웨덴 시민의 모임에 참석한 그는 남아공 정부의 인종 분리 정책은 '개혁이 대상이 아닌 제거의 대상'이라며 비판의 강도를 높였다.
"만약 세계가 아파르트헤이트를 철폐하기로 결심하면, 아파르트헤이트는 사라질 것이다.
(…)
아파르트헤이트는 인류를 좀먹는 제도다. 우리는 남아공 흑인 민중을 지지한다고 선언함으로써 아파르트헤이트 체제를 고립시켜야 한다. 우리는 이 역겨운 제도를 뿌리 뽑아야 할 책임을 완수해야 한다. 아파르트헤이트는 개혁의 대상이 아닌 제거의 대상이다."
일주일 뒤인 3월 1일 "아름다운 날이 우리 앞에 있다"고 외치던 팔메가 걷던 평화, 자유, 연대로 가는 길이 멈춰 섰다. 1969년 어느 날 올로프 팔메는 한 인터뷰에서 "사람들이 당신을 어떤 사람으로 기억했으면 좋겠는가?"라고 물었을 때 이렇게 답했다고 한다. 정치인의 신념에 대해 담담히 밝힌 이 발언은 그의 느닷없는 죽음을 한층 비극적으로 보이게 한다.
"나는 내 마지막 숨이 다할 때까지 그 생각을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자신의 부고에 뭐라 쓰일지를 신경 쓰기 시작하는 순간부터, 사람의 마음속에 두려움이 생긴다. 용기가 사라진다. 생명력을 잃는다. 그 생각이 내 마음속에 떠오르지 않도록 당신도 나를 도와주길 바란다." (하수정, <스웨덴이 사랑한 정치인, 올로프 팔메>, 폴리테이아, 2012)
'사람들이 당신을 어떤 사람으로 기억했으면 좋겠는가?'라는 질문을 받았다면, 노회찬은 과연 어떻게 답했을까? 팔메와 비슷한 맥락이었을까, 아니면 전혀 다른 맥락의 답을 했을까?
그가 떠났으니 직접 답을 들을 수는 없다. 대신에 "우리가 미처 몰랐던, '인간 노회찬'의 고단했던 생이 담긴" <노회찬 6411>을 만든 민환기 감독의 말과, 인민노련 시절부터 같은 길을 함께 걸어온 조승수 전 국회의원의 말을 소개한다. 민환기는 '민 감독에게는 노회찬 의원이 어떻게 기억될까요?'라는 물음에 이렇게 밝혔다.
"노회찬 의원은 사람들이 '먹는 걱정' 많이 하지 않으면서 인생을 즐길 수 있길 원하셨던 것 같아요. '모든 시민이 악기 하나쯤 연주하는 세상' 얘기도 그래서 하신 것 같고요. 경제 규모를 생각하면 그 목표가 아주 멀리 있지는 않다고 판단하셨던 것 같고, 진보정당이 좀 더 노력하면 노회찬 의원 당대에는 그런 방향으로 가지 않을까 생각하셨던 것 같아요.
그리고 노회찬 의원은 '사람을 사람으로' 본 분이셨던 것 같습니다. 못 배웠다고 해서 가르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존중하며 들으셨다고 해요. 그리고 다들 노회찬 의원을 만나면 그렇게 즐거우셨대요. 저에게 노회찬 의원은 인간이라는 불안한 존재에 대해 지치지 않는 존중을 보냈던 사람, 인간에 대한 믿음을 거두지 않았던 사람으로 기억될 것 같습니다." (「'노회찬 6411' 민환기 감독 "노회찬은 사람을 사람으로 본 정치인"」, 경향신문, 2021.10.10.)
노회찬의 길동무 조승수는 '나에게 노회찬이란?' 물음에 이렇게 답했다.
"진보보다 예술을, 예술보다 인간의 아름다움을, 인간보다 가난한 사람들의 고단한 삶을 더 사랑했던 사람." (「함께 꿈을 일구며」, <노회찬, 함께 꾸는 꿈>, 후마니타스,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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