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노회찬의 기록이야기 제목은 <기록으로 찾아가는, 노회찬의 '나라 밖 인물' 산책: 칼 마르크스에서 브라질의 룰라까지>이다. 칼 마르크스부터 브라질의 룰라에 이르기까지 '나라 밖 인물' 20여 명과의 직·간접적인 만남과 인연을 주제로 노회찬의 여정과 활동을 재구성한 것이다.
<노회찬의 나라 밖 인물 산책>은 11월 1일부터 매주 월·수·금 3번 씩 연재된다. '평등하고 공정한나라 노회찬재단'(노회찬재단)과 <프레시안>이 함께한다. 편집자.
영화 <올로프 팔메>(감독: 크리스티나 린드스트룀)는 1986년 2월의 어느 날 밤, 스톡홀름의 거리에서 암살당한 정치인 올로프 팔메의 생애를 조명한 다큐멘터리다. '2013년 스웨덴영화제'는 이렇게 홍보했다.
"상류층으로 태어나 사회민주주의자가 되었고, 가장 평등한 사회를 만들고자 했으며, 사회의 정의를 추구했던 그의 일생과 때로는 열정적인 연설가였으며, 때로는 뛰어난 책략가였던 그의 다양한 면모를 담아내었다. 당 대표와 수상을 역임하며 스웨덴뿐 아니라 세계 역사를 변화시킨 인물에 대한 초상."
네티즌 영화평에는 이런 글이 올라와 있었다.
"정치의 좌우 이념에 상관없이 진실되고 바른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은 쉽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팔메는 그런 사람이었다. 스웨덴의 정치에 관심이 있다면 꼭 봐야 할 다큐!"
"20세기 동서 냉전 시대, 미국의 절정기였던 때 구소련, 중국을 제외한 서방권이 미국의 힘과 자본을 바탕으로 한 베트남 폭격, 남미 군사독재 배후조종에 대해 침묵할 때 외로운 늑대처럼 부당함을 질타하였던 올로프 팔메...그의 차별(인종, 종교, 남녀) 반대 운동, 전쟁 반대 열정은 결국 극우파, 국수주의자, 무기산업체의 심기를 자극하고야 만다."
주한스웨덴대사관과 스웨덴 대외홍보처가 주최하는 '2013 스웨덴 영화제'는 11월 21~29일 서울과 부산에서 열렸다. 21~27일 서울 이화여자대학교 <아트하우스 모모>, 23~29일에는 부산 <영화의전당>에서 개최됐다. 스웨덴 영화제는 스웨덴의 혁신을 한 자리에 소개하는 프로젝트 '이노베이티브 스웨덴'의 문화 부문 핵심 기획이다. 2010년부터 2012년 사이 제작된 최신 스웨덴 화제작 7편을 선보였다. <올로프 팔메>, <파일럿>, <스톡홀름 이스트>, <소중한 유산>, <해피 엔드>, <포모어 이어즈: 어느 총리 후보의 조금 특별한 선거전략>, <아이 미스 유> 등 장르·세대·주제별 다양성을 고려해 선정됐다.
둘째 날인 22일 아트하우스 모모에서는 <올로프 팔메> 상영 및 삼성X파일 사건으로 국회의원직을 상실한 노회찬, 라르스 다니엘손 주한스웨덴대사, 크리스티나 린드스트룀 감독, <올로프 팔메>의 저자 하수정 작가 등이 참여하는 <토크쇼: 응답하라 팔메>가 열렸다. 투표 연령에 대한 질문이 나오자 노회찬은 이렇게 대답했다.
"지금 우리나라는 20살이었다가 19살로 낮아졌는데, 군대 입대는 18살 이상, 운전면허도 18살, 무엇보다도 공무원이 되는데 조건이 18살 이상, 중앙선관위 불법선거 행위를 감시하는 자원봉사 모집 기준이 18살 이상.
그런데 18살이 투표권을 행사할 수 없습니다. 그 배경에는 선거연령을 낮출 경우 보수정당 새누리당에 불리할 거라고 판단해서 그러는데, 저는 사실 연령을 낮출 경우 과거와는 달리 어느 정당에 유리할지는 알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특정 정당에 유불리를 이유로 해서 선거연령 문제를 봐서는 안 됩니다. 이것은 인권의 문제이고 국민의 기본권, 참정권 문제입니다.
무엇보다도 정치가 많은 사람들을 대변할 수 있으려면 선거에 참여한 사람들의 연령 폭을 확대할 필요가 있습니다. 사실 전 세계적으로 보면 18살은 그렇게 낮은 편은 아닙니다."
"그리고 우린 선거권만 볼 게 아닙니다. 올로프 팔메가 처음 국회의원이 된 게 1956년입니다. 서른 살 때 국회의원이 됐습니다. 우리나라와 같은 조건 속에서는 대단히 쉽지 않은 일입니다. 그만큼 10대 때부터 정치에 참여하고 그리고 18살 정도부터는 무조건 투표권 행사가 가능해야 되는 일입니다.
스페인에서 총리를 지냈던 곤잘레스, 독일의 슈뢰더 총리, 영국의 토니 블레어(이 사람은 굉장히 늦게 정치를 시작한 사람이지만), 이런 사람들은 전부 다 고등학교 때 아까 이야기 한 청소년 정치캠프를 다녔던 사람들입니다.
지금 영국 외무부 장관인 윌리엄 헤이그 같은 경우에는 대처 이후로 보수당이 망했을 때 36살에 보수당 당 대표가 된 사람입니다. 우리나라 같은 경우 36살 정도면 그냥 청년 대표, 특채해 가지고 최고위원 맡는 정도의 그런 나이입니다.
그러니까 일찍 시작했기 때문에 젊은 정치가 가능한 겁니다. 그런 점에서 저는 기득권의 횡포다, 정치를 19금으로 묶어놓은 건 나쁜 정치를 청소년들에게 보여주지 않기 위함이 아니냐, 오히려 그런 명분으로 나이든 사람들의 횡포이고 거의 뭐 폭력이 아닌가 그렇게 생각됩니다."
참고로 우리나라의 선거연령은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 당시 논란 끝에 만21세로 시작하여, 1960년 4·19혁명 후 만20세로 낮춰진 이후 40여 년이 지나는 동안 만20세를 유지하다가, 2005년 노무현정부에 와서야 만19세로 변경됐다. '만18세 선거권'이 마침내 도입된 것은 문재인정부 때인 2019년이었다.
만18세 선거권 도입에 노회찬은 누구보다도 앞장서왔다. 관련된 그의 말글 가운데 몇 가지를 추려봤다.
"이미 다양한 사회적 권리와 의무, 그리고 자격을 부여받고 있는 이들에게 40년 전의 기준을 적용해 선거권 행사를 제한하는 것은 이들의 정치참여가 가져올 결과를 두려워해 180여만 명에 이르는 18~19세의 정치적 권리를 제한하는 정치세력의 담합에 다름 아니다. 따라서 이들의 정당한 참정권을 제한하고 있는 공직선거 및 선거부정방지법 15조는 위헌적 법조항임에 분명하며 조속한 법 개정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진보정당추진위원회(약칭 진정추, 대표: 노회찬)의 위헌심판 청구 소송 (1995.6.)
"이미 병역법, 고용직 공무원 규정 등 국내법 대부분이 성인 연령을 18세로 간주하고 있음에도, 정작 중요한 민법과 선거법에서는 이를 부인하고 있다.
한마디로 현행법 체계는 '의무'를 요구할 때는 18세를 성인으로 규정하고, 그에 상응하는 '권리'가 요구되는 부분에서는 18세를 미성년으로 취급하는 이중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다. 보수정치권의 이해득실이 그동안 18세의 선거권을 침해해 왔다." '성인의 날' 맞이 '제1회 18세 정치적 성년 선포식' 인사말 (2003.5.19.)
"선거연령 18세 하향조치는 OECD국가들 중에서 우리나라만 없는 것으로써 정치개혁에 반드시 포함돼야 할 내용이다. 날이 갈수록 청년들의 미래가 불투명해지고 있는 상황에서 젊은 청년들이 정치에 참여해 자신의 의견을 내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새누리당(현 국민의힘)의 전향적 태도 변화를 강력히 요구한다." 정의당 상무위 모두발언(2017.1.5.)
"유관순 열사가 대한독립만세 외친 게 만 16세입니다. 고등학생이었습니다. 그것이 잘못됐습니까. 대한독립만세를 외치기에는 미성숙한 나이였습니까. 학제가 변경될 때까지 대한독립만세 외치는 걸 참았어야 합니까.
새누리당 인명진 비대위원장의 이야기는 '유관순 열사도 한 3년 정도 참았어야 했다', '대한독립만세를 1919년에 외칠 게 아니라 1922년에 만 19세 넘긴 다음에 외쳤어야 한다' 이 얘기와 다를 바 없는 것 아닙니까." '18세 선거권 국민연대 출범식' 축사 (2017.1.19.)
"우리나라 민주주의를 끌어올리는 원동력이 됐던 4·19혁명, 4·19혁명의 도화선이 됐던 3·15 마산의거, 다 고등학생들이 했습니다. 3·15의거 당시 경찰의 무차별 발포로 열두 명이 숨졌습니다. 그 열두 명 중에서 여덟 명이 고등학생입니다. 고등학생이 만든 민주주의, 우리가 지금 누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왜 고등학생들에게 투표권 안 줍니까? 자유한국당에 불리해서입니까? 그러면 자유한국당이 한국을 떠나세요. 그러면 해결될 문제 아니에요. 왜 한국에 남아서 우리 고등학생들, 청소년들에게 투표권을 안 주려고 합니까? 학제변경은 이유가 될 수 없습니다. 공무원이 될 수 있는 사람에게 왜 투표권을 안 줍니까. (…)
18세 선거권에 반대한다면 정말이지 국회를 떠나십시오. 한국을 떠나십시오. 강력히 촉구합니다." '만18세 이하 선거연령 하향 촉구 기자회견' 인사말 (2018.3.22.)
올로프 팔메, 누구? : 약자의 편에 선 비타협적 사민주의자, '누가 팔메를 죽였는가?'
이케아(IKEA)와 H&M 등 세계적인 브랜드, 안전한 차의 대명사 볼보, 전설적 팝그룹 아바(ABBA)의 나라 스웨덴. 1,2차 세계대전의 참화를 겪지 않은 유일한 유럽국가 스웨덴. 아빠가 육아하는 게 당연한 나라, 유모차도 당연하게 모두의 배려를 받으며 버스에 오르는 나라, 다양한 가족의 형태를 인정하는 나라 스웨덴.
'44년 스웨덴 사회민주당 장기집권의 마지막 10년의 총리' 올로프 팔메(Olof Palme, 1927.1.30.~1986.3.1.) 우리에게는 다소 생소한 이름이지만, 그러나 스웨덴 사람들에게는 큰 사랑을 받았던 정치인이었다. 사회민주노동당(약칭 사회민주당) 소속인 팔메는 1953년 타게 에를란데르(23년간 총리로 재임)의 보좌관으로 정치에 입문한 이래, 그의 뒤를 이어 당 대표가 되고 총리가 된 뒤 두 번에 걸쳐 모두 11년 동안 총리(1969-1976; 1982-1986)를 지냈다.
<역사비평> 편집위원회가 엮은 <지도자들 : 성공과 실패의 역사에서 찾는 리더의 조건>(역사비평사, 2013)은 팔메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정치가 우선한다', '삶에 대한 고민이 정치의 시작이다'는 것을 강조한 "약자의 편에 선 비타협적 사민주의자."
팔메가 총리가 된 이후 사민당은 그동안 묵혀왔던 과제를 빠르게 처리해 나갔다. 팔메가 총리로 재임하던 시기 추진된 일은 아래와 같다. (하수정, 「스웨덴 젊은 총리가 이끈 개혁의 교훈」, <경향신문>, 2020.6.27.)
△ 왕정국가에서 의회민주주의 국가로 헌법을 개정했다. 형식으로나마 남아있던 왕정의 잔재를 없애고 의회의 권한을 강화했다.
△ 부부별산제를 도입해 가족단위 과세에서 개인 과세로 전환했다. △ 복지 단위를 가족에서 개인으로 수정했다.
△ 공공주택 100만 호를 공급했다.
△ 노동시장 참여율을 높이기 위해 유급 부모휴가제를 도입했다. △ 공공어린이집을 확대했다. △ 아동수당을 확대했다. △ 지자체 보육시설을 지원했다. △ 아동학대 방지를 위해 아동권리위원회를 조직해 대책 마련에 나섰고 1979년 체벌금지법으로 이어졌다.
△ 여성 장관 비중을 30%로 늘렸다. 공약은 아니었으나 구성하고 보니 30%였다.
△ 대학 등록금을 폐지하고 교육제도를 정비했다. △ 평생교육과 노동자 교육 지원을 늘렸다. 시민 역량 강화는 팔메가 큰 애착을 둔 분야로 팔메는 스웨덴 민주주의를 스터디서클 민주주의라고 불렀다.
△ 공공의료를 강화하고 공공치과보험을 도입했다.
△ 장애인 복지를 강화했다. △ 노인 복지를 강화했다.
△ 상속세와 금융소득세를 높였다.
△ 기업의 이익 일부를 노동조합의 주식으로 적립하는 임노동자기금을 부분적으로 실험했다.
△ 화석에너지 비중을 줄였다.
△ 정치적 망명과 분쟁지역 이민을 적극 수용했다. △ 흡수 동화주의 대신 다문화주의를 채택했다.
△ 나이나 지위에 상관없이 '너'라고 부르는 호칭 개혁을 주도했다. 그 결과 현재 스웨덴에서는 상대를 지칭할 때 직위가 아닌 이름 또는 '너'라고 부른다.
그 결과 팔메는 스웨덴 국민이 가장 존경하는 정치인 3위에 올랐다.
"2012년 스웨덴 예테보리대학교의 여론조사 연구기관이 스웨덴 국민을 대상으로 조사를 실시했는데요. 그 결과 가장 존경하는 정치인 3위에 올로프 팔메(7.9%)가 올랐습니다.
또한 같은 해에 그의 생애를 다룬 영화가 제작되어 상영되기도 했습니다. 그는 '스웨덴의 케네디'로 불리기도 하는데요.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나 젊은 나이에 총리가 된 일생과 열정적인 연설가였다는 점, 비슷한 시기를 살다가 비극적으로 암살을 당해 생을 마감했다는 점이 미국의 대통령 케네디와 비슷합니다. 그가 세상을 떠난 지 30년 가까이 흘렀지만 스웨덴 국민들의 가슴 속에 여전히 잊지 못할 정치인으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김초롱 기자, 「스웨덴 국민이 사랑한 정치인, 올로프 팔메」, 중앙선거관리위원회 공식블로그 <정정당당스토리>, 2014.12.15.)
1986년 2월 28일 스톡홀름의 스베아베겐 거리에서 팔메는 암살을 당했다. 그의 나이 59세. 목격자도 있었고 이후 총탄과 총기도 발견됐지만, 암살범은 끝내 잡히지 않았다. 사건이 장기 미제에 빠지며 살해 배후에 대한 갖가지 추측과 설들이 제기됐다. 팔메 암살은 인류 진보에 애쓰는 사람들에게 보내는 일종의 경고장과도 같았다. 아프리카 출신으로는 가장 먼저 노벨상을 받은 월레 소잉카는 1986년 노벨문학상 수상 연설에서 팔메 죽음으로 "우리 모두를 잃었다"고 했다. (변택주, 「정치인, 모든 일에 책임져야」, <불교닷컴>, 2013.6.17.)
스웨덴 최고의 미스터리 사건인 팔메 암살 사건은 스웨덴의 국가적 트라우마로 남아 있다. 현직 총리가 수도 한복판 최대 번화가에서 숨졌지만, 사건의 진실을 제대로 밝혀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수사 당국이 목격자를 포함해 1만 명 이상을 조사했고, 축적된 관련 조사 서류철이 250m에 이르지만 성과를 내지 못했다. 공소 시효를 연장하면서까지 수사를 계속했지만, 용의자 가운데 한 명을 다시 특정하는 데 그쳤고, 그마저 당사자가 오래전에 사망해 직접 조사하지도 못했다. (「34년 수사에도 영구미제…스웨덴 최고 미스터리 '총리 암살 사건'」, KBS 뉴스, 2020.6.11.)
누가 팔메를 죽였는가?
<올로프 팔메: 스웨덴이 사랑한 정치인>(폴리테이아, 2012)을 쓴 하수정 작가는 후마나타스 출판사 저자 강연에서 이렇게 말했다.
"스웨덴에서 가장 존경받는 사람이 누구일까요? 넬슨 만델라예요. 신기하죠. 스웨덴에서 가장 존경받는 사람이 남아프리카공화국 지도자라는 사실이요. 그렇게 된 이유도 팔메와 관계가 있어요. (…) 두 번째로 존경받는 사람은 누구일까요? 네, 엄마예요. 세 번째는? 올로프 팔메예요. 15위까지 뽑힌 사람들의 직업을 분석해 보면, 스웨덴에서 존경받는 사람 중 가장 많은 직업이 정치인이에요.
그런데 우리 사회에서 정치인이 존경을 받는가. 우리 사회에서 '너 정치적이야'라고 말하면 '고마워'라고 하진 않잖아요. 정치적이라고 하면 뭔가 술수를 쓰고 음흉한 느낌이 있잖아요. 그런데 스웨덴은 정치인이 존경받는 직업이고 실제로도 정치인에 대해 존경스럽게 생각해요.
제가 (스웨덴) 친구들에게 '너네는 국회의원에 대해, 정치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 라고 물으면 하는 말이 있어요. 거의 대부분 비슷하게 '되게 불쌍한 사람들이야' 그래서, '왜 불쌍해 국회의원이?' 그랬더니 국회의원의 별명이 스웨덴에서는 '3D 임시직'이라는 거예요." (「[저자와의 만남] 스웨덴이 사랑한 정치인, 올로프 팔메를 만나다」, 2013.12.8.)
※ 참고로 하수정 작가는 팔메에 대한 책을 쓰게 된 이유를 이렇게 밝혔다. (후마니타스 출판사 저자와의 만남-하수정 작가 강연 자료, 2013.12.8.) 뭐랄까, 하나의 역설이었다.
"한국에서 스웨덴에 대해 쓴 책을 많이 봤거든요. 대부분 스웨덴이 유토피아처럼 그려져요. 좋은 제도에 대한 소개는 굉장히 많았지만 그 제도를 갖기까지 얼마나 많은 피와 투쟁과 노력이 있었는지에 대한 건 별로 없었어요.
스웨덴도 어두운 면이 분명 많은 나라거든요. 겨울에 햇빛이 없어서 어두운 게 아니라 사회 자체에 어두운 면이 있어요. 그런데 그 부분에 대해 소개한 책은 별로 없었어요. 팔메는 스웨덴의 어두운 면을 적나라하게 보여 줄 수 있는 인물이기 때문에 팔메에 대해 소개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길을 안내하는 반짝이는 북극성' 스웨덴 복지국가: 팔메, 그리고 노회찬 : "일류 정치가 일류 경제, 일류 사회의 기본"
노회찬의 '마음의 스승' 신영복 선생은 1997년 한 해 동안 '새로운 세기를 찾아서'라는 화두를 지니고 22개국을 여행한 기록을 두 권의 책으로 엮었다. <더불어숲 1, 2: 새로운 세기의 길목에서 띄우는 신영복의 해외엽서>(중앙M&B, 1998)가 그것이다.
신영복은 <더불어숲>의 「여는글」에서 "여행이란 떠남과 만남의 낭만이 아니라 자기 자신에 대한 끊임없는 재발견이었습니다. 여행은 떠나는 것이 아니라 돌아오는 것이었습니다. 자기의 정직한 모습으로 돌아오는 것이며 우리의 아픈 상처로 돌아오는 것이었습니다. (…) 여행은 돌아옴(歸)입니다"라고 말한 뒤, 본문에서 '복지국가 스웨덴'에 대한 생각을 "일류 정치가 일류 경제, 일류 사회의 기본임을 실감"한다면서 이렇게 밝히고 있다.
"(…) 그런 점에서 볼 때 경제성장과 경제적 잉여의 축적보다 더 중요한 것이 이러한 물적 부의 사회적 관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스웨덴은 이 물질적 부의 사회적 관리에서, 특히 사회적 합의에서 성공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합의 과정은 노동연합(LO)을 중심으로 한 노동 부문의 강력한 정치력에 뒷받침되어 있고 이러한 정치력이 1930년대부터 근 반 세기에 걸친 사회민주당 정권의 기반이 되어온 것은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이 사회민주당의 복지정책이 오늘날의 복지국가 스웨덴의 골격을 만들어내었음은 자타가 공인하는 바입니다.
일류 정치가 일류 경제, 일류 사회의 기본임을 실감하게 됩니다."
노회찬재단 조돈문 이사장은 <함께 잘사는 나라 스웨덴>(사회평론아카데미, 2019)의 「책을 펴내며: 스웨덴에서는 자본주의도 아름다울 수 있다」에서 이렇게 적었다.
"2018년 7월 23일, 노회찬이 우리 곁을 떠나던 날 필자는 스웨덴에 머물고 있었다. 노회찬을 보내고, 믿고 싶지 않던 사실을 마주하며 필자가 느꼈던 감정은 상실과 슬픔이 아니었다. 세상은 끄떡 않고 변화를 거부하고 있는데, 세상의 변화를 위해 분투하는 사람들, 그 맑은 영혼들을 빼앗아간 세상에 대한 분노였다.
언젠가 노회찬은 '진보정당이 꿈꾸는 건 희한한 세상이 아니에요. (…) 스웨덴, 핀란드, 노르웨이 같은 나라입니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지독히도 변하지 않는 우리 사회를 보면, 스웨덴은 북극성처럼 멀고도 아득한 나라처럼 느껴질지도 모른다.
오늘의 스웨덴을 만든 사람들도, 멀고도 아득한 북극성을 좇아 기나긴 항해를 해왔다. 그들이 막막함에도 항해를 시작했기에, 점멸하는 북극성을 좇는 항해를 포기하지 않았기에 오늘의 스웨덴을 만들 수 있었다.
(…)
평등하고 공정한 나라, 노동과 자본이 상생하는, 모두가 함께 잘 사는 나라. 그 꿈을 함께 키우며, 함께 꿈꾸는 사람들의 소중한 마음을 모으고, 우리의 분노, 우리의 염원을 놓지 않는다면, 북극성은 또렷하게 빛나며 우리에게 다가올 것이다. (…) 북극성을 향한 항해를 포기하지 않는, 노회찬과 노회찬을 사랑하는 모든 분께 이 책을 바친다. 스웨덴의 경험이, 노동과 자본이 찾은 상생의 길이 북극성을 좇는 항해에 길벗이 될 수 있으면 좋겠다."
'스웨덴 복지국가 시스템의 완성자' 올로프 팔메 : "인간은 상품이 아니다!"
흔히 스웨덴의 민주주의 정치를 얘기할 때 가장 먼저 거론되는 인물이 올로프 팔메다. 스웨덴의 사회복지 시스템을 완성한 사람이자, 스웨덴 민주주의의 완성자로 존경받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팔메를 이야기 할 때 항상 그의 이름 앞에 등장하는 인물이 있다. 바로 타게 에를란데르다. '에를란데르 없이 팔메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팔메가 스웨덴의 사회복지 시스템과 민주주의를 완성할 수 있었던 것은 에를란데르가 그에 앞서 이뤄놓은 협치와 개혁이 있었기 때문이다. (※ 에를란데르에 대해서는 팔메에 이어 다룰 예정이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공식블로그 <정정당당스토리>에 올라 있는 김초롱 기자의 글 「스웨덴 국민이 사랑한 정치인, 올로프 팔메」(2014.12.15.)는 팔메에 대해 이렇게 소개하고 있다.
"그는 상류층 출신의 정치인으로 풍요로운 집안에서 자랐습니다. 그러나 그는 경제적 어려움을 겪어본 적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사회적 약자를 보살피며 가난한 자들을 위한 도움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특히 노약자, 학생, 장애인, 노숙자를 보호하는 데 주력했습니다.
그는 공직생활을 하면서 늘 청렴했고, 경호원도 없이 다니는 소탈한 모습을 보였습니다.
또한 그는 양성평등을 실현하는 데도 노력했는데요. 인재등용 당시 여성을 대거 선택하기도 했고 멕시코에서 열린 세계여성대회에 참여하여 여성의 권익을 옹호하기도 하였습니다."
"올로프 팔메는 무엇보다 교육을 중요시하였습니다. 그는 교육을 받아야 폭넓은 직업을 선택할 수 있고 그래야 더 멋진 인생을 설계할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교육부장관 시절에는 교육비에 대한 장기대출 지원정책을 실시하여 교육의 기회를 확대하고 급기야 노동자의 자녀도 부담 없이 대학에 진학할 수 있도록 대학등록금을 아예 없애기도 했습니다."
20세기 초까지 유럽 최빈국으로 '북유럽의 병자' 취급을 받던 스웨덴이 '복지강국 스웨덴'이 되기까지 팔메가 복지 분야에서 남긴 업적은 셀 수 없을 정도로 많다. 그는 스웨덴식 혼합경제를 완전히 정착시켰고 노동연금과 의료보험을 개혁해 스웨덴 복지국가를 완성했다. 대학 등록금을 전면 무료화한 것도, 스웨덴 특유의 연대임금제도를 안착시킨 것도 팔메였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을 뛰어넘는 팔메의 위대함은 그가 "인간은 상품이다"라는 자본주의의 기본명제를 단호히 거부했다는 점에 있다. (이완배 기자, 「"인간은 상품이 아니다!"라는 장엄한 선언_올로프 팔메」, <민중의 소리>, 2019.2.6)
1984년 팔메는 "인간은 상품이 아니다!"라고 선언했다. 인간을 어떤 경우에도 시장에서 거래되는 상품으로 봐서는 안 된다는 것이고, 모든 인간은 시장에서 퇴출되지 않고 인간답게 살 권리가 있다는 뜻이었다. 이미 강력했던 스웨덴의 복지정책을 팔메가 더 강력하게 설계했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었다.
경제의 중심에 인간이 있기에 팔메는 인간 사회에서 정의를 무엇보다도 중시했다. 왜냐하면 정의란 인간이 살아나가는 방식이고 규칙이기 때문이었다. 돈을 위해 정의를 버리면, 인간은 경제에 종속되고 시장이 인간을 지배하기 때문이었다. 2011년 <이코노미스트> 지는 스웨덴을 일컬어 "길을 안내하는 반짝이는 북극성"이라고 불렀다.
'스웨덴을 보자' 이재영과 노회찬
: "노동계급이 만든 최선의 자본주의 나라", "사회주의적 이상과 원칙이 가장 잘 실현되고 있는 것이 사민주의"
2002년 1월 어느 날 노회찬의 오랜 길동무였던 '진보정당의 영원한 정책실장' 이재영 민주노동당 정책국장은 올로프 팔메국제협력재단 초청 UNI-KLC(UNION NETWORK INTERNATIONAL-KOREAN LIAISON COUNCIL) 프로그램 참가로 스웨덴발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한국 방문단에게 스웨덴 경총의 국제담당 간부는 이렇게 말했다.
"스웨덴 자본가들은 '말에 채찍질을 가하지 않고 달리게 한다'는 원칙을 갖고 있다. 스웨덴 자본가들은 남아공 노동자들과 대화하기 위해 스웨덴 노조의 힘을 빌린다. 스웨덴 노조는 남아공 노동자들에게 노동자의 권리를 교육하고, 스웨덴 자본은 그를 통해 생산성을 향상시킬 수 있었다. 스웨덴 자본은 전 세계 어딜 가든지 노조를 만들라고 권한다. 그래야 파업 때 대화상대를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스웨덴은 사회주의 국가이다. 그리고 스웨덴 자본가들은 사민당을 선호한다. 왜냐하면 현재의 국가 시스템을 운영할 수 있는 능력을 사민당만이 가지고 있기 때문이고, 사회복지 축소에도 사민당이 가장 적극적이기 때문이다." (이재영, 「스웨덴, 노동계급이 만든 최선의 자본주의 나라」, <이론과 실천>, 2002)
방문 당시 이재영에게 비친 스웨덴은 이런 모습이었다.
"스웨덴 자본가들은 자기네 나라가 '사회주의'라 주장하고, 노동자들은 '자본주의'라 주장한다. 스웨덴을 '자본주의'로 분류하는 것을 보니, 나도 노동계급에 속하는 모양이다. 그런데 이 나라를 만든 것은 노동계급과 사회민주당이다. 그래서 나는 스웨덴을 '노동계급이 만든 최선의 자본주의 나라' 정도로 정의했다."
이재영이 스웨덴에서 누군가와 나눈 대화를 옮겨본다.
"민주노동당은 어떤 사회모델을 지향합니까?"
"개인적으로는 소비에트 모델, 유고슬라비아 모델, 스웨덴 모델에 관심을 가지고 공부하고 있지만, 민주노동당은 특정한 모델을 추종치 않고 한국 사회에 맞는 사회모델을 스스로 만들어 나갈 것입니다."
"당신들은 언제쯤 집권할 것 같습니까?"
"아마도 20∼30년 정도."
"당신은 언제쯤 장관이 됩니까?"
"……."
2014년 노회찬은 <대한민국 진보, 어디로 가는가?>(비아북)에서 <오마이뉴스> 구영식 기자와 한국의 노동운동에 대해 인터뷰를 하면서, 스웨덴과 사민주의에 대해 이런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구영식 : 노 대표가 활동했던 80년대에 노동운동이 본격화됐다. 하지만 지금은 노동운동 자체가 쇠퇴했고, 전체 노조세력도 힘이 급격히 약화됐다.
노회찬 : 독일, 스웨덴 등에서는 정당이 나서서 산별노조를 만들었다.
하지만 우리는 종업원들은 있지만 노동자는 존재하지 않는다. 연대의식도 없고, 종업원의식만 있다. 전투적 노조에 기반 한 실리주의다. 실리만 챙기고, 전체적이고 보편적인 이익은 안중에 없다. 실리만 쫓으면 실리는커녕 노동운동이 협소해지고 대중과 유리되는 결과를 낳는다. 선거 때만 되면 표를 얻어주는 기계로까지 타락했다.
한국노총이 실리적 조합주의인데, 민주노총도 그렇게 가고 있다. 최근 사민주의 논쟁을 하는데 '사민주의는 개량이다'라고 비판한다. 막상 그들의 실천은 사민주의의 발가락에도 못 미친다. 머릿속에만 혁명이 있다. 그럼 그들이 실천하는 것은 무엇인가? 종업원들 임금 올리는 것밖에 더 있나? 이렇게 의식과 존재가 전도돼 있다.
구영식 : 거기('민주적 사회주의', '사회주의적 가치')에서 이제 사민주의로 이동한 셈인데, 그러한 이동도 노회찬식 (진보의) 세속화 전략의 한 부분인가?
노회찬 : 사회주의적 이상과 원칙이 가장 잘 실현되고 있는 것이 사민주의라고 본다. 이 이상으로 진도나간 체제가 있는가? 현실 사회주의국가보다 노동권이 더 많이 보장되고 있는 곳이 사민주의국가다. 사민주의가 사회주의적 이상이 실현될 수 있는 완결태는 아니겠지만 현실적으로는 이것이 가장 앞서있는 체제이기 때문에 지향점으로 삼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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