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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 다시 2030의 마음을 얻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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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 다시 2030의 마음을 얻을 수 있을까?

[복지국가SOCIETY] 청년의 고뇌와 좌절, 지금이라도 제대로 읽어야

내년 20대 대통령 선거의 향방은 2030세대가 가를 것이다. 이른바 스윙보터(swing voters) 역할이다. 이런 전망은 다수 선거 전문가들의 공통적 분석이다. 그러한 판단의 근거는 최근 치러진 총선과 보궐선거를 통해 확연하게 드러났다. 2020년 총선에서는 2030세대의 전폭적 지지를 받은 더불어민주당이 대승을 거두었다. 반면 1년 뒤 보궐선거에서는 역시 2030의 절대 지지를 얻은 국민의힘이 서울과 부산 모두 승리했다.

그렇다면 하나의 의문이 생긴다. 전통적으로 진보성향을 지닌 2030세대가 이전의 총선 때와 다르게 보궐선거에서는 왜 민주당에 등을 돌렸는가? 이 질문에 대한 명확한 답을 찾아내지 못한다면 이재명 후보의 민주당은 그들의 마음을 되돌리기 어려울 것이고, 국민의힘의 윤석열 후보에게 기회가 돌아갈 것이다.

어떤 정치평론가나 학자도 2030세대의 표심 전환에 관해 명쾌한 진단과 대안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다만 그들이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에 실망했다는 점과 국민의힘의 인물이나 정책이 좋아서 지지한 것이 아니라는 점에는 대체적으로 동의하고 있다. 민주당이 지난 보궐선거 참패 후 긴급히 컨설팅 기관에 의뢰해 실시한 초점집단 면접조사(focus group interview)에서 얻은 결론도 유사하다.

청년들이 민주당에서 마음이 떠난 이유는?

지나치게 오른 부동산 가격에 따른 좌절,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과정의 불공정성, 대통령 주변의 내로남불 태도 등이 원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2030의 세대 반란으로까지 표현되는 급격한 표심 이동 현상을 정확히 진단하고 진지하게 대처하는 것이야 말로 대한민국의 정당 정치를 정상화하고, 국민의 삶을 개선하기 위한 결정적 계기가 될 것이다. 필자는 두 가지 측면에서 원인을 살펴보았다.

먼저, 여러 가지 구체적인 이유보다 앞서야 할 것은 집권여당의 태도에 관한 평가다. 민주당 당직자들과 국회의원들이 그들의 열성 지지자였던 2030세대의 아픔에 동참하고 그들의 목소리를 진심으로 경청하였는지에 대한 문제다. 정당은 지지자는 물론 반대자들의 의사에도 예민하게 귀를 기울여야 한다. 특히 자신들의 목소리를 조직적으로 내기 어려운 젊은 연령층의 지지자와 그들의 언어로 소통하고 진심으로 그들의 아픔에 동참해야 하는데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은 과연 그렇게 했는지 스스로에게 물어보아야 한다.

두 번째는 정책 과정과 공약의 집행 방법에 대한 문제다. 정부와 여당이 중대한 개혁정책이나 공약사항을 집행할 때 개인의 삶과 사회에 미치는 막대한 영향, 그리고 이해관계 집단의 수용성까지 고려했느냐는 것이다. 정책의 전환에는 항상 이득을 보는 집단과 손해를 보는 집단이 있다. 특히 이미 관행으로 굳어진 정책이나 제도를 바꿀 때는 내용의 타당성과 필요성도 중요하지만, 현실 적합성과 수용성을 세밀하게 검토해야 한다.

선택받은 공약이니 밀어붙여도 된다고 생각하는 것은 과거에는 용인되었을지 몰라도 이미 상당한 민주 의식이 형성되어 있는 지금 한국 사회에서는 쉽게 수용되지 않는다. 아무리 좋은 공약과 정책이라도 개개의 정책과 추진방안까지 국민들로부터 구체적으로 승인 받지는 못한다. 지금까지의 정책 기조 하에서 오늘을 살면서 동시에 내일을 준비해온 서민들에게는 비록 장기적으로는 필요한 개혁정책이라도 당장은 부당한 기회 박탈과 권익 침해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더구나 정책의 변경이나 개혁으로 인해 타격을 입는 서민 중에는 그 정부나 집권여당의 지지자들이 다수 포함되어 있을 수 있다. 이 경우 특히 그 지지자들의 지지정당에 대한 신뢰가 무너지고, 배신감도 커진다. 선거 시 국민의 지지를 받아 채택된 정책이라도, 구체적인 집행 방식과 속도까지 모두 지지받을 수 있다는 보장은 없다. 특히나 정책의 목적과 취지를 제대로 전달받지 못하는 국민이 무조건 정부를 믿고 따라와 줄 것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민주국가에서 다수 국민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정책이라면 그 수용성의 확보는 필수조건이다.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은 부동산 정책이나 최저임금 정책, 그리고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등에서 과연 그렇게 세밀하게 조율하고, 설득하고, 대안을 준비했는지 의문이다. 정책의 정당성과 필요성을 문제 삼는 것이 아니다. 집행과정에서의 국민 동의와 여론 형성 등의 과정을 지적하고자 하는 것이다.

디테일이 부족했던 문재인 정부의 정책들

이전 정부가 추진해왔던 정책과 대치되거나 상반된 정책을 시행할 경우에는 좀 더 신중하고 치밀하게 살펴야 한다. 선의(善意)의 정책 전환이라도 과거의 정책 기준으로 삶을 준비해온 국민에게는 부담이 될 수 있다. 특히 민생 정책이라면 다양한 파급효과를 검토해야 하고, 단일 정책뿐 아니라 다양한 대안을 준비하고, 정책 간의 상호 보완성도 고려해야 하는데, 과연 그렇게 세밀하게 준비하고 집행했는지 의문이다.

예를 들어, 이재명 후보가 실패를 인정하고 사과한 부동산 정책의 경우 무엇이 문제인지에 대해 민주당 차원의 공식적인 분석이나 반성 입장 발표가 있는가? 강남 3구의 급등한 집값을 잡기 위해 정부가 스물네 차례가 넘는 다양한 규제정책을 반복해서 발표할 때, 애초에 국민에게 약속한 매년 공공임대 주택 10만 호 건설을 왜 초기부터 포기했는지를 국민에게 설명하고 양해를 구한 적이 있는지 묻고 싶다. 재산 축적을 위해 집을 사고 싶은 것이 아니라, 당장 직장이 있는 곳에 살 곳이 필요한 2030세대 같은 저소득, 무주택자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는 어떤 대안을 준비하고 추진했는지에 대해서 정권이 끝나가는 지금까지도 답이 없다. 도심지역 초고밀도 개발은 정부가 예산을 직접 투자하지 않아도 준공공개발의 방식으로 2030세대에게 살고 싶은 지역에 주택을 공급할 수 있고, 간접적으로 강남의 집값도 잡을 수 있는 정책이었다. 그런데 왜 집권 후반기인 이제 와서야 추진되는지 의문이다.

여기서 '자산계급정치' 또는 '부동산 계급정치'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최근 선거에서 확인되듯이 자산이 없는 가난한 자들은 투표를 포기해도 자산가는 투표를 포기하지 않는다. 투표 결과 여하에 크게 잃을 것이 없는 무산자들과 달리 자산가는 투표 결과에 따라 잃을 것이 많기 때문이다. 진보 정권의 부동산 정책 실패로 정부의 약속을 믿고 근로에만 전념한 사람을 어느 순간 '부동산 거지'로 만들고, 정부의 정책을 불신하고 부동산에 투자한 사람을 순식간에 부동산 부자로 만들었다면 다음 선거에서 이해관계자들이 어떻게 행동할지는 분명하다.

먼저, 자신이 지지한 집권 여당의 정책을 믿었다가 부동산 빈곤자가 된 사람은 가장 먼저 정부 여당의 지지자에서 반대자로 돌아설 것이다. 다음으로 이미 부동산 자산가가 된 자들은 부동산 가격을 낮추려는 정부를 부동산 투기유도 정부로 바꾸고 싶어 할 것이다. 특히 '영끌'이나 '패닉투자'로 집을 산 2030들은 부동산 가격을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결사적으로 부동산 친화 정당을 지지할 수밖에 없다. 마지막으로, 늦게나마 집을 장만하려고 준비한 사람들은 이미 오를 대로 오른 주택가격 하락 불안에 시달리면서, 주택자금 대출 제한 등 자산 마련의 기회를 막는 정부를 원망하게 될 것이다.

문재인 정부의 많은 성과와 노력에도 불구하고 부동산 정책 실패는 2030세대로부터 지지를 철회하게 만든 중요한 요인 중 하나가 되었다. 안정된 주거에 대한 꿈을 잃어버리고 자산 격차에 좌절하게 만들었다. 막연한 기대가 무산된데 대해서까지 정부의 책임을 묻는 것은 과도한 주장일 수 있다. 하지만 정부의 확고한 약속을 믿고, 자신의 삶을 성실히 준비한 분들의 합리적인 기대는 보호받을 가치가 있다. '기대권'을 존중하는 것은 우리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 꼭 필요하다. 기대권을 고려하지 않는 정책 집행은 그 자체로 정부의 오만으로 비춰질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문재인 정부에서 추진해온 비정규직 정규직화 정책과 최저임금 정책도 같은 오류를 반복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우리나라는 공공부문 일자리가 OECD 평균의 30% 수준에 불과하다, 인천국제공항의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화하는 정책과 더불어, 각 분야의 공공부문 일자리를 적극적으로 늘리는 정책을 동시에 발표했다면 그러한 박탈감과 배신감을 주지 않았을 것이다. 과연 문재인 정부가 다른 대안을 준비하는 세심한 노력을 했는지 의문이다.

최저임금 인상 정책도 마찬가지다. 최저임금 인상을 반대하는 자영업자나 영세 중소기업을 운영하는 분들은 남이 잘되는 것에 배 아파하는 소인배들이 아니다. 당장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부담을 덜어주는 대안 제시도 없이, 최저임금 인상이 필요하고 옳으니 수용하고 받아들이라고 강요하는 것은 이들에게는 정부의 간접적인 폭력으로 느껴질 수밖에 없다.

최저임금 인상을 상쇄할 수 있는 상가 임대료 인상 억제 정책이나, 국민연금과 건강보험 부담을 경감해주는 정책, 또는 신입 사원이 아니라도, 기존 직원들의 임금을 한시적으로 보전해 주는 정책을 동시에 추진했더라면 이렇게 부담스럽게 느껴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최근 코로나 19를 극복하기 위해 발표되고 있는 착한 임대인 정책이나, 각종 지역 상품권 지급정책과 1+1 근로자 임금 지원정책 등 다양한 자영업자와 소상공인 지원정책을 보면, 이들 정책을 최저임금 인상 시기에 같이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든다. 정권 초기 대통령 공약 추진을 총괄하던 청와대 책임자들이 그러한 고민을 해 왔는지 안타깝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후보가 3일 전북 전주시 '가맥집(슈퍼마켓 형식의 맥주집)'에서 열린 2030 청년들과의 쓴소리 경청시간'에서 대화 도중 밝게 웃고 있다. ⓒ연합뉴스

정치, 청년들의 고뇌와 좌절을 진심으로 읽어라

정책의 방향이나 내용이 아무리 옳다 할지라도 절차의 공정성과 투명성, 정책 전환에 적응할 시간의 보장 등이 충분했는지 반추해 보아야 한다. 검찰이나 언론, 의사들과 같은 힘 있는 집단들이 자신들의 불공정하고 과도한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제도개혁을 막는 행위와는 차원이 다르다. 최근 2030세대의 반발은 정부의 정책 대안 자체에 문제가 있거나, 정책의 수용성을 높이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 한 결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사회적 약자들은 자신의 목소리를 낼 통로와 힘이 없다. 그들의 고통과 좌절은 그들의 목소리를 들을 기회를 마련하지 않은 정부와 집권 여당의 책임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선거는 결국 집권 여당의 정책 성과와 유권자를 대하는 태도를 평가받는 준엄한 과정이다. 그래서 선거를 민주주의의 꽃이라 부른다. 지금이라도 집권 민주당에 대한 반성과 문재인 정부 정책에 대해 평가하고 복기(復棋)를 해 보는 것은 선거가 주는 긍정적인 효과가 될 것이다.

그렇다면 2030세대의 젊은이들은 사회적으로 어떤 위치에 있고, 정치적으로 어떤 경향성을 띤 집단인가? 그들은 기성세대의 아들딸들이며 현재의 세상을 살아내어야 하는 생활인이다. 동시에 미래를 만들어가야 할 우리의 희망이기도 하다. 그들은 현 세상의 답습자일뿐 아니라, 동시에 창조적 파괴자가 되어야 할 젊은이들이다. 그들은 부모 세대의 성공담을 듣고 보고 자랐으며, 부모들의 헌신적 노력으로 교육을 잘 받았고 일할 준비도 누구보다 많이 한 자들이다. 하지만 그들이 사회진출을 준비하는 사이에 사회가 더 빨리 변화하여 그들의 준비는 쓸모가 없어졌고 그들을 반기는 일자리도 대폭 줄었다.

보수가 좋고 고용이 안정적이며, 기업복지가 잘 되어 있는 대기업은 급속히 자동화가 진행되어 신규채용을 점점 줄이고 있다. 일자리의 대부분을 제공하는 중소기업은 보수와 복지 수준이 열악하다. 1980년대에 대기업의 80%~90% 수준에 이르던 중소기업의 근로자 임금은 이제 50% 수준으로 떨어졌다. 일과 생활을 병행하면서, 동시에 미래를 준비기에는 중소기업의 근무조건이 너무 열악하다. 주택가격은 천정부지로 오르고, 대학 입학에서 그치지 않은 입시 준비는 취업과 승진까지 끝없이 이어졌다. 집 장만을 하고 아이를 낳아 경쟁력 있게 제대로 기르기에는 너무 큰 비용이 든다. 그들은 그 동안 열심히 준비해왔고, 여전히 의욕도 넘치는데 자신의 준비와 역량에 걸맞은 사회적 위치는 차지하지 못했다.

그렇다면 2030세대들은 국가와 정부에 대해, 자신들의 열악한 상황에 대한 개선을 요구하고 준비할 만큼의 목소리를 전달할 수 있는 정치적 위상을 확보하고, 소통의 통로를 보장받고 있는가? 여전히 2030세대는 우리 사회의 가장 취약한 계층이고, 자신들을 위한 목소리를 낼 창구가 없는 집단이다. 예전에는 심지어 학생운동으로 감옥에 가더라도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었고, 일정한 사회적 역할을 수행할 수 있었던 시대가 있었다.

하지만 민주화 이후 시민사회의 역할이 커지고 세계화와 신자유주의의 체제가 공고화 되면서 그들은 더욱 치열해지는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시험공부에 전념하고 틈틈이 아르바이트를 하며 등록금이나 생활비를 벌어야 하게 되었다. 목소리를 낼 시간도 없고, 통로도 없으니 정치인들은 그들에게 적당히 관심을 표하는 시늉만 해도 되었다. 선거철이 되면 진보 개혁 진영은 그들을 투표장에 얼마나 모으느냐에 최대 관심을 가졌고, 보수진영은 날씨가 맑아 젊은이들이 야외로 나가 투표를 하지 않기를 은근히 바랐다.

이제 그들이 유일하게 정치에 참여하고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길은 선거에서 투표하는 길 밖에 없다. 그것이 그들의 목소리를 듣지 않고 그들의 어려움에 눈을 감는 정당에 복수하는 유일한 길이다. 그런데 이제는 그들이 집권 정당을 교체하거나 대통령을 바꿀 힘을 가지게 되었다. 보수와 진보의 지지자들이 각각 40% 수준으로 고정되면서, 이른바 젊은이들이 스윙보터(swing voter) 역할을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런데 정치권에선 그들이 감정에 휘둘리거나 생각 없이 지지 대상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아직 모른다. 자신들의 삶에 깊은 영향을 줄 개혁정책에 무관심하지도 않고, 민생 정책의 결과에 책임지지 않는 정부나 정당을 평가하고 심판할 준비가 되어 있다는 것을 모르는 것이다.

이제 민주당은 지난 보궐선거에서 왜 2030이 지지를 철회하게 되었는지 분석하고, 구체적인 대안과 로드맵을 내놓아야 한다. 막연하고 추상적 공약만으로는 2030의 표심이 돌아오지 않는다. 그것은 그들에게 생존과 자존심이 관련된 문제이기 때문이다. 국민의힘도 지난 선거에서 왜 젊은이들이 자신을 지지했는지 알아야 한다. 국민의힘이 좋아서나 후보가 잘 할 것 같아서가 아니라, 민주당을 심판하기 위해서였음을 냉정하게 인정해야 한다.

과거 젊은이들의 지지에 힘입어 집권한 노무현 정부는 집권 후에 정치, 경제, 외교, 국방 등 거시적 국가지표에서 괄목할만한 성취를 이루었다. 그러나 권력기관 개혁과 부동산 개혁에 실패하여 그들의 충성스러운 지지자들, 특히 2030세대 젊은이들에게 고통과 좌절을 안겨주고 그들의 지지를 잃어 정권을 잃었던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이런 충고는 민주당과 이재명 후보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국민의힘과 윤석열 후보에게도 똑같이 적용된다. 다만 그들은 지금 집권 여당이 아니어서 2030의 표심 이반에 직접적인 책임이 없다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지금 2030세대의 표를 다시 얻어 집권하려는 정당은 정치 공학적 표 계산보다, 그 이면에 있는 젊은이들의 말 못하는 고뇌와 좌절을 읽어내어야 한다. 대권을 위해 일정을 이어가는 양당의 후보들은 이들에게 와 닿을 수 있는 구체적이고 체감되는 공약을 준비해야 한다. 그것만이 2030의 마음을 얻는 길이고, 선거를 통해 정치가 발전하는 길이다.

* 이재섭은 영국 켄트대학에서 ‘국민연금개혁의 정치’를 주제로 사회정책 박사학위를 받은 복지정치 학자이며 공무원연금연구소장을 지낸 공적연금전문가다. 현재 서울신학대학교 사회복지대학원 교수로 재직하고 있고 공적연금유니온을 창립해 노인빈곤 해소를 위한 정책 및 칼럼니스트 활동을 꾸준히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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