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노회찬의 기록이야기 제목은 <기록으로 찾아가는, 노회찬의 '나라 밖 인물' 산책: 칼 마르크스에서 브라질의 룰라까지>이다. 칼 마르크스부터 브라질의 룰라에 이르기까지 '나라 밖 인물' 20여 명과의 직·간접적인 만남과 인연을 주제로 노회찬의 여정과 활동을 재구성한 것이다.
<노회찬의 나라 밖 인물 산책>은 11월 1일부터 매주 월·수·금 3번 씩 연재된다. '평등하고 공정한나라 노회찬재단'(노회찬재단)과 <프레시안>이 함께한다.편집자.
part 1 혁명 그리고 정치 (☞시리즈모아보기)
part 2 유럽 사민당 리더와의 조우
⑯ 들어가는 글 유럽의 사회민주당으로부터, 한국의 진보정당에게 (☞바로가기)
⑰ 키어 하디 上 민주노동당에서 영국 노동당을 봤다 (☞바로가기)
⑱ 키어 하디 下 민주노동당의 첫걸음...“50년 후엔 진보가 집권할 것” (☞바로가기)
노회찬, '붉은 켄' 영국의 켄 리빙스턴과 만나다 : "'국가 안에서 국가에 대항'하고 '시장 안에서 시장에 대항'하다"
켄 리빙스턴의 '런던 맛집'과 노회찬의 '음식천국'
「8인의 논객들 '노회찬'을 켜다」. 노회찬의 길동무 장석준 진보신당 상상연구소 연구기획실장은 2012년 <레디앙> 기고글(2.13.)을 통해 '음식점 비평가' 켄 리빙스턴이라는 인물과 노회찬을 동시에 불러냈다.
2010년 서울시장 출마에 앞서 노회찬 선본은 이미지전략기획가인 권영신에게 공약집을 만들어달라고 했다. 선본 요청 사항은 △기존 공약집과 완전히 다를 것 △많이 팔릴 수 있게 만들 것, 두 가지였다. 권영신이 주도해서 만든, 청바지 입은 노회찬이 표지를 장식한 공약집 <노회찬의 약속>은 내용과 함께 눈에 띄는 디자인으로 사람들의 눈길을 끌었다.
노회찬과 선본 사람들은 크게 만족했다. 노회찬은 감사의 뜻을 전하기 위해 함께 인사동 식당에서 함께 식사를 하면서, 자신이 좋아하는 음식과 사람 얘기가 담긴 책을 함께 만들자고 제안했고 권영신은 흔쾌히 수락했다. 하지만 계획은 이뤄지지는 못했다.
그러나 책 제목은 미리 정해놓았다. <먹어야 산다>. "며칠 전 곰치국 조리법을 올린 뒤 요리책을 한 권 내라는 시민의 제안이 들어오자 자신의 오랜 로망이라면서 공개"한 노회찬의 책 제목이다. (<노회찬의 공감로그>, 2010.2.22.)
"내가 좋아하는 음식과 사람 얘기가 담긴 책을 함께 만들자"는 제안은 그의 사후 노회찬재단과 이인우 <한겨레> 기자에 의해 이루어졌다. <음식천국 노회찬: 맛집에서 나눈 '노회찬의 삶과 꿈'>(일빛, 2021.3)이 그것이다. 이인우는 「필자 후기」에 이렇게 적었다.
켄 리빙스턴, 그는 누구?
켄 리빙스턴(Kenneth Robert "Ken" Livingstone, 1945.6.17.~ )은 영국 노동당 소속의 정치인으로 1973년에 그레이터런던(Greater London) 의회 의원으로 당선됐다. 35살이던 1981년, 젊은 나이에 런던 의회 의장이 돼 사실상 런던시정을 이끌었다. 1981년 지방선거에서 영국 노동당은 49석을 얻어 보수당(41석), 자유당(1석)을 꺾고 런던시 의회를 장악한 것이다.
헨드릭스라는 이름의 블로거는 <PD저널>에 기고한 글에서 이를 "이명박 정부에서 서울시장으로 노회찬이 된 것과 마찬가지 일이 벌어진 것"이라고 비유하면서 "'국가 안에서 국가에 대항'하고 '시장 안에서 시장에 대항'하는 지방정부가 생긴 것"이라고 썼다. (「켄 리빙스턴의 런던, 대처의 악몽」, 2009.5.12.)
리빙스턴은 동서로 갈라진 런던의 극심한 소득불균형과 양극화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사회주의 도시 행정을 통해 시의 공공성을 확대하는 길밖에 없다고 판단했다. 그리고 대중교통 개혁 등에 착수했다. 런던시민들은 '켄' 하면 편리하고 값싼 대중교통을 생각한다고 하는데, 그는 공공요금의 대폭 인하, 공공교통체계의 확충 등을 통하여 자가용 없이도 편하고 쾌적하게 생활할 수 있는 런던시를 만들어낸 것이다.
이런 일들을 통해 리빙스턴은 '붉은 켄', 또는 '빨갱이 켄(Red Ken)'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리빙스턴은 대기업의 부당한 노동조건을 바로잡고 노동조합의 힘도 강화하려 애썼다.
리빙스턴이 이끈 런던 시는 '런던 코뮌'이라 불리며 마가렛 대처 총리의 보수당 정권과 사사건건 충돌하면서 갈등을 빚었다. 이에 맞서 대처는 1986년 지방세 상한제를 도입하고, 런던과 6개 대도시 해체해버리는 초강수를 뒀다. 결국 '붉은 켄'과 영국 노동당 사회주의자들의 런던 사회주의 실험은 5년 천하로 끝나고 런던은 다시 보수적인 정부가 통치하는 사회가 됐다.
민주노동당 전신인 국민승리21 시절 잠깐 당직자로 일했던 서영표는 노동당 좌파가 이끌었던 런던광역시정부(Greater London Council, GLC)의 경험(1981∼1986)을 "신자유주의가 득세하기 시작한 1980년대 초반에 현실적인 것을 넘어 실재하는, 다를 수 있는 가능성들을 상상력을 통해 발전시키려 한 사례"로 제시했다. (서영표, <런던코뮌> 이매진, 2009)
이후 2000년 토니 블레어 신노동당 정부가 런던 광역시를 복원하고 시장 직선제를 도입하자 리빙스턴은 무소속으로 시장에 출마했다. 이라크 침공에 반대하다 블레어로부터 제명당한 상태였기 때문이다.
4월 리빙스턴은 보수당과 노동당의 후보와 경쟁하면서도 그레이터 런던의 초대 민선 시장으로 선출됐다. 12세기 이후 실권 없는 임명직에 불과했던 런던시장의 직선제 선출 이후 첫 민선시장에 오른 것이다. 무소속 민선시장. 그것은 그만큼 런던시민들 사이에서는 리빙스턴 개인에 대한 지지가 확고했음을 말한다. 런던시장은 700만 시민의 복지·교통·교육 정책과 연간 35억파운드(6조 1600억원)에 이르는 시예산을 좌지우지하는 영국 정계의 제2인자 자리다. 취임 후 그의 첫 업무는 런던 지하철을 민영화하려는 노동당 정부와 대립하는 것이었다.
리빙스턴은 2004년 런던시장에 노동당 후보로 출마해 재선됐다. 원활한 개혁을 위해서는 런던의회의 지지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리빙스턴은 런던시장을 8년간(2000.5.4.~2008.5.4.) 역임했다. 리빙스턴은 런던시장 재임 시절, 영국과 미국의 이라크전쟁을 강하게 비판하면서, "부시는 인간 중 가장 위험한 존재가 아니라, 지구상의 모든 생물체 가운데 가장 위험한 존재"라고 독설을 날리기도 했다.
그리고 한 차례 연임을 거친 후, 2008년과 2012년 보수당 소속 보리스 존슨(Boris Johnson)에 패배했다. 높은 대중적 지지를 받던 그가 2008년 3선에 실패한 이유는 이라크전 이후 노동당의 추락 때문이었다는 것이 당시 언론의 분석이었다.
노회찬, 켄 리빙스턴과 조우하다 : 켄 리빙스턴의 <런던플랜>과 노회찬의 <노회찬의 약속>
2004년 17대 총선을 앞두고 민주노동당 중앙선대본부장을 맡은 사무총장 노회찬은 <선대본 일기>를 썼다. 2월 20일 일기 「민주노동당은 도처에 진주(眞珠)다」에서, 노회찬은 당 중앙위원회에서 가장 관심을 크게 모았던 비례대표후보 선출방식이 의외로 긴 토론없이 통과되자 영국의 리빙스턴을 언급하며 이렇게 적었다.
2009년 11월 한 토론회에서 노회찬 진보신당 대표은 선거에 출마하는 이유를 밝히며 리빙스턴을 예로 들었다.
2010년 서울시장 선거에 진보신당 후보로 출마한 노회찬은 다시 리빙스턴을 꺼냈다. '화병'(hwa-byung, 火病)에 대한 소개로 맛을 더했다.
2004년 10월 리빙스턴의 <런던플랜>
<런던플랜>(The London Plan)은 리빙스턴이 런던의 공공성을 복원하면서 동시에 시의 발전을 꾀하는 장기적 전략을 담아 2004년 10월 발표한 보고서의 제목이다.
리빙스턴은 재임 중에 런던 지하철 민영화 계획에 맞섰고, 혼잡통행량 징수제도 등을 통해 대중교통 체계개선에 앞장섰다. 민간투자 주거개발의 경우 전체비율의 50%를 공공임대주택으로 내놓는 등의 주택 정책을 펼쳤다. 이뿐만 아니라, 런던을 세계적인 금융허브로 만들기 위한 도심 개발전략 등 기업환경 개선에도 많은 관심을 기울였다. 그는 런던이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세밀히 검토하고 예측하며, 이에 대한 철학을 분명히 내세울 줄 알았다. 향후 15~20년 뒤의 미래런던을 위한 전략적 계획을 담고 있는 「런던플랜」이 그 증거이며, 이 역시 그가 거둔 중요한 시정(市政) 성과 중 하나다. (허남설, 「런던광역시: 런던플랜」, <이글루스>, 2012.10.30.)
리빙스턴이 꿈꾸고 추진해 나갔던 런던은 영국의 세계적인 건축가 리차드 로저스(Richard Rogers)와의 협력관계에 의해서 현실화됐다. 8년간의 리빙스턴 재임 동안 리차드 로저스는 런던시장의 건축 및 도시자문 위원장으로서, '도시 르네상스를 향해서'를 바탕으로 도시영역의 무분별한 확산을 방지하기 위한 그린벨트 유지, 구 도심지역의 고층화 유도, 혁신적 디자인의 건축물 추진, 다양한 문화의 활성화, 런던 중심지 혼잡 통행량 징수제도 시행, 지역 공동체 활성화 정책 등을 추진했다.
이와 같은 리빙스턴과 리차드 로저스의 노력은 런던을 기존의 '오래된 도시' 런던에서 현대적 건축과 디자인이 더해진 도시환경으로 변모시켰고, 침체되어 있던 런던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 넣었다. (joeyboy, 「켄 리빙스턴 그리고 리차드 로저스: 글로벌 도시 런던의 창조자들」, <이글루스>, 2013.9.4.)
2018년 6월 13일 제7회 지방선거 당시 노회찬 정의당 20대국회 원내대표는 광주를 지원 방문(4.21.)해 광주광역시장 후보 나경채와 만나 켄 리빙스턴의 대안적 경제정책을 참고해보라는 조언을 했다. 나경채의 회상이다.
2010년 6월 노회찬의 '진짜 불온서적' <노회찬의 약속>
2008년 10월 29일, 75살의 거장 리처드 로저스와 47세의 젊은 서울시장 오세훈이 만났다. 두 사람이 나눈 대화를 보면 도시 발전의 기본철학이 다르다는 것을 엿볼 수 있다. 그래서였을까, 오세훈의 '디자인 서울'의 핵심 계획인 '한강 르네상스 프로젝트'는, 2009년의 1월의 '용산참사'가 드러냈듯이 리빙스턴-로저스의 '런던 프로젝트'와는 상반된 결과를 나타냈다.
※ 2006년 서울시장 선거에서 '뉴타운 50곳' 추가 지정을 공약하고 당선된 오세훈은 2007년 7월, '한강 르네상스 마스터플랜'을 발표했다. 애초에 '한강 르네상스'는 한강 생태계를 복원하는 환경 공약의 하나로 포장됐다. 그러나 발표된 한강 르네상스 마스터플랜 조감도에는 뾰족이 솟은 665m(150층)의 랜드마크 빌딩과 함께, 단군 이래 최대의 개발사업이라는 '용산 국제업무지구 개발'이 포함되어 있었다. 그 중심에 용산이 있었다. 수십명의 사상자를 낸 2009년 1월 20일의 '용산참사'는 그 과정에서 발생했다.
오세훈의 대권 프로젝트이기도 했던 한강르네상스와 용산의 대규모 개발 개발프로젝트의 폭주가 용산참사의 본질이기에, 당시 용산참사 유가족들은 오세훈 시장을, 이명박, 김석기(당시 서울경찰청장, 현 국민의힘 의원)와 함께, '용산참사 5대 주범'으로 꼽고,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촉구했다. (이원호, 「오세훈씨, 72세 이상림씨를 아십니까?」, <오마이뉴스>, 2021.4.5.)
2010년 서울시장 후보 TV토론에서 노회찬과 오세훈 사이에는 이런 대화가 오고갔다.
202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출마해서도 오세훈은 "임차인들의 폭력 저항이 용산참사의 본질"이라며 희생자들에게 책임을 떠넘긴 채 끝내 사과하지 않았다. 유족들은 이렇게 울분을 토했다.
<서울, 2010년 6월 노회찬의 약속>(약칭 <노회찬의 약속>, 레디앙, 2010)은 2010년 서울시장선거에 출사표를 던진 진보신당 서울시장 예비후보 노회찬의 '책' 형식의 정책 공약집이다. 정책이란 '정치적 목적을 실현하기 위한 방책'이고, 공약이란 '정부, 정당, 입후보자 등이 어떤 일에 대하여 국민에게 실행할 것을 약속함, 혹은 그러한 약속'이라는 의미라는 점에서 이 책은 정책 공약집이 맞다. 노회찬이 꿈꾸는 서울은 어떤 서울인지, 그러한 서울을 만들기 위한 노회찬의 약속이 무엇인지 묶어낸 책이 바로 이 책이기 때문이다.
리빙스턴이 <런던플랜>을 통해 런던시의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면서 약속했던 것처럼, 노회찬도 <노회찬의 약속>을 통해 서울 시민에게 약속을 했다. 장벽 없는 소통과 공존의 서울, 역사와 문화가 살아 숨쉬는 서울, 아이와 엄마가 행복한 서울, 미래로 진보하는 서울, 일과 여가가 조화되는 서울, 태양과 바람의 도시 서울, 일자리·집·건강 걱정 없는 서울을 약속한 것이다.
노회찬의 이 일곱 가지 약속은 허울 좋은 말뿐인 것은 아니었다. <노회찬의 약속>은 서울의 지금을 낱낱이 들여다보았기에 할 수 있는 약속이었다. 때문에 이 책에는 '불편한 진실'이 적나라한 자료를 통해 드러나 있다. 하지만 이 책에는 또한 더 나은 서울을 만들 수 있다는 노회찬의 '희망'과 진보신당의 '꿈'이 담겨있다.
책을 펴낸 레디앙 출판사의 이광호 대표는 '불온서적' 운운하며 이렇게 덧붙였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