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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빨갱이 켄', 지금의 런던을 만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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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빨갱이 켄', 지금의 런던을 만들다

[노회찬의 나라 밖 인물 산책 ⑲] part 2 유럽 사민당 리더와의 조우 : 켄 리빙스턴 上

이번 노회찬의 기록이야기 제목은 <기록으로 찾아가는, 노회찬의 '나라 밖 인물' 산책: 칼 마르크스에서 브라질의 룰라까지>이다. 칼 마르크스부터 브라질의 룰라에 이르기까지 '나라 밖 인물' 20여 명과의 직·간접적인 만남과 인연을 주제로 노회찬의 여정과 활동을 재구성한 것이다.

<노회찬의 나라 밖 인물 산책>은 11월 1일부터 매주 월·수·금 3번 씩 연재된다. '평등하고 공정한나라 노회찬재단'(노회찬재단)과 <프레시안>이 함께한다.편집자.

part 1 혁명 그리고 정치 (☞시리즈모아보기)

part 2 유럽 사민당 리더와의 조우

⑯ 들어가는 글 유럽의 사회민주당으로부터, 한국의 진보정당에게 (☞바로가기)

⑰ 키어 하디 上 민주노동당에서 영국 노동당을 봤다 (☞바로가기)

⑱ 키어 하디 下 민주노동당의 첫걸음...“50년 후엔 진보가 집권할 것” (☞바로가기)

노회찬, '붉은 켄' 영국의 켄 리빙스턴과 만나다 : "'국가 안에서 국가에 대항'하고 '시장 안에서 시장에 대항'하다"

ⓒ연합뉴스

켄 리빙스턴의 '런던 맛집'과 노회찬의 '음식천국'

「8인의 논객들 '노회찬'을 켜다」. 노회찬의 길동무 장석준 진보신당 상상연구소 연구기획실장은 2012년 <레디앙> 기고글(2.13.)을 통해 '음식점 비평가' 켄 리빙스턴이라는 인물과 노회찬을 동시에 불러냈다.

"몇 차례인가 런던시장을 지낸 켄 리빙스턴은 타블로이드판 런던지역 일간지 <이브닝 스탠더드>(Evening Standard)에 런던 맛집 평을 연재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켄 리빙스턴은 '붉은 켄'(좀 더 한국적인 표현으로는 '빨갱이 켄')이라는 별칭이 따라붙을 정도로 영국의 대표적인 '강경' 좌파 정치인이다. 하지만 그는 입맛과 런던 사랑이라는 공감대를 통해 런던의 보통 시민들에게 말을 걸고 그들과 어울리려 한 것이다.

나는 나의 고용주 격인 노회찬 진보신당 대표와 간혹 회식 자리를 가질 때마다 이 사실을 떠올리곤 한다. 우선은 서울 이곳저곳의 숨은 맛집에 대한 그의 안목과 정보가 예사롭지 않아서다. 또한 켄 리빙스턴과 노회찬의 이미지가 비슷해서이기도 하다. 외모 이야기를 해서 좀 뭣하기는 하지만, 둘 다 이마가 훤한 진보 정치인이다.

게다가 최근 노 대표는 런던만큼이나 거대한 메트로폴리스인 서울의 시장 후보로 나섰다. 이 역시 전 런던 시장 켄 리빙스턴을 연상케 하는 요소다. 그래서 나는 노 대표가 서울 시장 후보로 나서면서 '서울의 맛집 기행' 류의 책으로 사람들을 놀라게 하지 않을까 은근히 기대해보기도 했다."

2010년 서울시장 출마에 앞서 노회찬 선본은 이미지전략기획가인 권영신에게 공약집을 만들어달라고 했다. 선본 요청 사항은 △기존 공약집과 완전히 다를 것 △많이 팔릴 수 있게 만들 것, 두 가지였다. 권영신이 주도해서 만든, 청바지 입은 노회찬이 표지를 장식한 공약집 <노회찬의 약속>은 내용과 함께 눈에 띄는 디자인으로 사람들의 눈길을 끌었다.

노회찬과 선본 사람들은 크게 만족했다. 노회찬은 감사의 뜻을 전하기 위해 함께 인사동 식당에서 함께 식사를 하면서, 자신이 좋아하는 음식과 사람 얘기가 담긴 책을 함께 만들자고 제안했고 권영신은 흔쾌히 수락했다. 하지만 계획은 이뤄지지는 못했다.

그러나 책 제목은 미리 정해놓았다. <먹어야 산다>. "며칠 전 곰치국 조리법을 올린 뒤 요리책을 한 권 내라는 시민의 제안이 들어오자 자신의 오랜 로망이라면서 공개"한 노회찬의 책 제목이다. (<노회찬의 공감로그>, 2010.2.22.)

▲노회찬후원회 회장이었던 조국 교수가 트위터에 사진과 함께 올린 글(2021.3.24.). "<음식천국 노회찬> 책이 왔다. 책 안에 사진 2장이 들어있다. 그는 웃고 있지만 나는 슬프다. 그를 존경하지만 동시에 원망한다. 저승에서 맛난 것 즐기고 계시길." (사진 출처: 조국 트위터 갈무리)

"내가 좋아하는 음식과 사람 얘기가 담긴 책을 함께 만들자"는 제안은 그의 사후 노회찬재단과 이인우 <한겨레> 기자에 의해 이루어졌다. <음식천국 노회찬: 맛집에서 나눈 '노회찬의 삶과 꿈'>(일빛, 2021.3)이 그것이다. 이인우는 「필자 후기」에 이렇게 적었다.

"이 책은 음식 애호가 노회찬이 진보정치인으로 꾸었던 개혁의 꿈들을 가능한 무겁지 않은 방식으로 더 많은 사람들과 공유해 보자는 목적을 가진 책이다. 

(…) 책 속에는 100여 명에 가까운 인물과 27곳의 식당·주점이 등장한다. 맛집은 맛집대로, 등장인물은 인물대로 각자가 경험하고, 알고 있는 '노회찬 이야기'를 들려준다. 이 진심어린 토로와 증언이 책의 진실성을 오롯이 담보하고 있다."

(…)

"노회찬은 생전에 지인들로부터 음식 책을 내보라는 권유를 받을 만큼 음식에 조예가 깊었지만, 일반 대중들에게는 그런 사실이 널리 알려져 있지 않았다. 필자 역시 집필 부탁을 받으면서 처음 알게 됐다. 음악을 사랑한 문화인 노회찬이 미식가이기도 했다는 사실은 그에 대한 인간적 호감을 오히려 증폭시켜 주었다.

노회찬에 대한 진정한 발견은 글을 쓰면서부터였다. 발견은 회를 거듭할수록 넓고 깊어졌다. 2018년 7월 27일 그의 영결식 날, 국회 청소노동자들이 그의 마지막 가는 길을 전송하던 모습이야말로 한국 현대정치사에서 보기 드문 민중의 송가였다는 사실을 이성으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됐다."

켄 리빙스턴, 그는 누구?

▲켄 리빙스턴 (출처: <나무위키>)

켄 리빙스턴(Kenneth Robert "Ken" Livingstone, 1945.6.17.~ )은 영국 노동당 소속의 정치인으로 1973년에 그레이터런던(Greater London) 의회 의원으로 당선됐다. 35살이던 1981년, 젊은 나이에 런던 의회 의장이 돼 사실상 런던시정을 이끌었다. 1981년 지방선거에서 영국 노동당은 49석을 얻어 보수당(41석), 자유당(1석)을 꺾고 런던시 의회를 장악한 것이다.

헨드릭스라는 이름의 블로거는 <PD저널>에 기고한 글에서 이를 "이명박 정부에서 서울시장으로 노회찬이 된 것과 마찬가지 일이 벌어진 것"이라고 비유하면서 "'국가 안에서 국가에 대항'하고 '시장 안에서 시장에 대항'하는 지방정부가 생긴 것"이라고 썼다. (「켄 리빙스턴의 런던, 대처의 악몽」, 2009.5.12.)

리빙스턴은 동서로 갈라진 런던의 극심한 소득불균형과 양극화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사회주의 도시 행정을 통해 시의 공공성을 확대하는 길밖에 없다고 판단했다. 그리고 대중교통 개혁 등에 착수했다. 런던시민들은 '켄' 하면 편리하고 값싼 대중교통을 생각한다고 하는데, 그는 공공요금의 대폭 인하, 공공교통체계의 확충 등을 통하여 자가용 없이도 편하고 쾌적하게 생활할 수 있는 런던시를 만들어낸 것이다.

이런 일들을 통해 리빙스턴은 '붉은 켄', 또는 '빨갱이 켄(Red Ken)'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리빙스턴은 대기업의 부당한 노동조건을 바로잡고 노동조합의 힘도 강화하려 애썼다.

리빙스턴이 이끈 런던 시는 '런던 코뮌'이라 불리며 마가렛 대처 총리의 보수당 정권과 사사건건 충돌하면서 갈등을 빚었다. 이에 맞서 대처는 1986년 지방세 상한제를 도입하고, 런던과 6개 대도시 해체해버리는 초강수를 뒀다. 결국 '붉은 켄'과 영국 노동당 사회주의자들의 런던 사회주의 실험은 5년 천하로 끝나고 런던은 다시 보수적인 정부가 통치하는 사회가 됐다.

▲서영표, <런던코뮌>(이매진, 2009) 책 표지 갈무리

민주노동당 전신인 국민승리21 시절 잠깐 당직자로 일했던 서영표는 노동당 좌파가 이끌었던 런던광역시정부(Greater London Council, GLC)의 경험(1981∼1986)을 "신자유주의가 득세하기 시작한 1980년대 초반에 현실적인 것을 넘어 실재하는, 다를 수 있는 가능성들을 상상력을 통해 발전시키려 한 사례"로 제시했다. (서영표, <런던코뮌> 이매진, 2009)

이후 2000년 토니 블레어 신노동당 정부가 런던 광역시를 복원하고 시장 직선제를 도입하자 리빙스턴은 무소속으로 시장에 출마했다. 이라크 침공에 반대하다 블레어로부터 제명당한 상태였기 때문이다.

4월 리빙스턴은 보수당과 노동당의 후보와 경쟁하면서도 그레이터 런던의 초대 민선 시장으로 선출됐다. 12세기 이후 실권 없는 임명직에 불과했던 런던시장의 직선제 선출 이후 첫 민선시장에 오른 것이다. 무소속 민선시장. 그것은 그만큼 런던시민들 사이에서는 리빙스턴 개인에 대한 지지가 확고했음을 말한다. 런던시장은 700만 시민의 복지·교통·교육 정책과 연간 35억파운드(6조 1600억원)에 이르는 시예산을 좌지우지하는 영국 정계의 제2인자 자리다. 취임 후 그의 첫 업무는 런던 지하철을 민영화하려는 노동당 정부와 대립하는 것이었다.

리빙스턴은 2004년 런던시장에 노동당 후보로 출마해 재선됐다. 원활한 개혁을 위해서는 런던의회의 지지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리빙스턴은 런던시장을 8년간(2000.5.4.~2008.5.4.) 역임했다. 리빙스턴은 런던시장 재임 시절, 영국과 미국의 이라크전쟁을 강하게 비판하면서, "부시는 인간 중 가장 위험한 존재가 아니라, 지구상의 모든 생물체 가운데 가장 위험한 존재"라고 독설을 날리기도 했다.

그리고 한 차례 연임을 거친 후, 2008년과 2012년 보수당 소속 보리스 존슨(Boris Johnson)에 패배했다. 높은 대중적 지지를 받던 그가 2008년 3선에 실패한 이유는 이라크전 이후 노동당의 추락 때문이었다는 것이 당시 언론의 분석이었다.

노회찬, 켄 리빙스턴과 조우하다 : 켄 리빙스턴의 <런던플랜>과 노회찬의 <노회찬의 약속>

2004년 17대 총선을 앞두고 민주노동당 중앙선대본부장을 맡은 사무총장 노회찬은 <선대본 일기>를 썼다. 2월 20일 일기 「민주노동당은 도처에 진주(眞珠)다」에서, 노회찬은 당 중앙위원회에서 가장 관심을 크게 모았던 비례대표후보 선출방식이 의외로 긴 토론없이 통과되자 영국의 리빙스턴을 언급하며 이렇게 적었다.

"선거제도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민의가 왜곡 없이 최대한 반영되는가 하는 점이다. 민주노동당이 다수대표제를 반대하고 독일식 등 완전비례대표제를 주장하는 것도 마찬가지 이유에서이다.

각국 선거제도의 변천사 역시 이 문제의식을 중심으로 이뤄져왔다. 그래서 선거제도의 제정이나 개정에는 정치가보다 수학자 등 자연과학자들이 주도적 역할을 해왔다.

민의를 반영하는 것보다 정치적 목적이나 의도가 더 크게 작용하는 나쁜 사례는 최근까지도 발견된다. 영국 노동당의 주류가 좌파정치인 켄 리빙스턴을 노동당의 런던시장 후보로 선출되지 못하게 하기 위해 당내 선출규정을 고친 것도 대표적인 사례이다.

비례대표 선출규정에 관한 최근의 논의는 전체 당원들의 의사를 어떻게, 과학적으로 잘 반영시킬 것인가 하는 점보다 비례대표 명부를 어떤 내용으로 채울 것인가 하는 목적의식이 지배적으로 작용했다. 중앙위원들이 토론 없는 표결을 선호했던 배경이다."

2009년 11월 한 토론회에서 노회찬 진보신당 대표은 선거에 출마하는 이유를 밝히며 리빙스턴을 예로 들었다.

"영국 런던 시장으로 켄 리빙스턴이라는 사람이 있다. 부자들이 벌벌 떨었다. 그래서, 대처 수상이 런던광역시를 없애 버렸을 정도다. 켄 리빙스턴은 런던 교통문제, 일자리 문제, 부당해고 문제 등 많은 문제를 해결했다.

이명박 정권 극복을 2012년까지 기다리는 것은 너무 힘들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제 출마의 주요 배경이라고 생각한다. 저의 강점을 굳이 얘기하려면, 저는 서울시민이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를 아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 어떤 후보보다 그렇다고 생각한다.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세상에 관심과 열정이 많다는 점을 말씀드리고자 한다."

▲2010년 서울시장 선거 출마 선언(2009.11.29.) (Ⓒ 노회찬재단)

2010년 서울시장 선거에 진보신당 후보로 출마한 노회찬은 다시 리빙스턴을 꺼냈다. '화병'(hwa-byung, 火病)에 대한 소개로 맛을 더했다.

"오늘날 일자리의 문제는 심각합니다. 특히, 여성과 청년의 일자리는 더 심각한 상태입니다. 열악하고 불안한 일자리는 사회양극화의 주범입니다. 좋은 일자리를 만들어내는 데에는 정부의 역할이 가장 중요하지만, 노동유연화를 추구하는 이 정부 아래서 그것을 기대하기는 힘듭니다. 서울시장이 나서야 합니다. 저와 같은 진보정치인으로서 영국 런던시장을 지낸바 있는 켄 리빙스턴은 시장으로 재직하면서 공공부문에 일자리를 창출하는 것은 물론, 일반 사기업들에 대해서도 '이윤이 아닌 사회적 기준'을 만족시키는 기업들에게 다양한 혜택을 주는 정책을 펼친 바 있습니다.

(…)

시민 여러분, 미국 정신의학회에서 발간하는 정신질병 목록에 화병(hwa-byung)이라는 게 있습니다. 이들은 화병을 소개하면서 '한국인들의 토속증후군으로서 화를 억눌러서 생기는 병이며, 증상으로는 불면, 피로감, 불쾌한 기분, 소화불량, 호흡곤란, 가슴 두근거림, 오목가슴에 혹이 들어찬 것 같은 갑갑함 등이 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외국인들이 오히려 우리를 정확하게 보고 있는 것입니다. 천만 서울시민들 역시 알 수 없는 불안과 스트레스, 우울증을 앓고 있습니다. 더욱이 청소년 자살율 1위의 서울을 보면 이 화병이 우리 자녀들에게까지 옮아감을 알 수 있습니다.

서울시민들에게서 화병을 걷어내려면, 시민들의 삶에서 걱정과 불안의 요소를 걷어내야 합니다. 그런 점에서, 서울시민들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더 많은 분수가 아니라, 더 많은 공공주택, 더 많은 교육기회, 더 안정적인 보육시설, 더 따뜻한 노후, 더 좋은 일자리입니다." (출마선언문, <사람 사는 서울, 2010년 서울에서부터 정권교체합시다>, 2009.11.29.)

2004년 10월 리빙스턴의 <런던플랜>

▲켄 리빙스턴, <The London Plan>(2004) 앞표지 갈무리

<런던플랜>(The London Plan)은 리빙스턴이 런던의 공공성을 복원하면서 동시에 시의 발전을 꾀하는 장기적 전략을 담아 2004년 10월 발표한 보고서의 제목이다.

리빙스턴은 재임 중에 런던 지하철 민영화 계획에 맞섰고, 혼잡통행량 징수제도 등을 통해 대중교통 체계개선에 앞장섰다. 민간투자 주거개발의 경우 전체비율의 50%를 공공임대주택으로 내놓는 등의 주택 정책을 펼쳤다. 이뿐만 아니라, 런던을 세계적인 금융허브로 만들기 위한 도심 개발전략 등 기업환경 개선에도 많은 관심을 기울였다. 그는 런던이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세밀히 검토하고 예측하며, 이에 대한 철학을 분명히 내세울 줄 알았다. 향후 15~20년 뒤의 미래런던을 위한 전략적 계획을 담고 있는 「런던플랜」이 그 증거이며, 이 역시 그가 거둔 중요한 시정(市政) 성과 중 하나다. (허남설, 「런던광역시: 런던플랜」, <이글루스>, 2012.10.30.)

리빙스턴이 꿈꾸고 추진해 나갔던 런던은 영국의 세계적인 건축가 리차드 로저스(Richard Rogers)와의 협력관계에 의해서 현실화됐다. 8년간의 리빙스턴 재임 동안 리차드 로저스는 런던시장의 건축 및 도시자문 위원장으로서, '도시 르네상스를 향해서'를 바탕으로 도시영역의 무분별한 확산을 방지하기 위한 그린벨트 유지, 구 도심지역의 고층화 유도, 혁신적 디자인의 건축물 추진, 다양한 문화의 활성화, 런던 중심지 혼잡 통행량 징수제도 시행, 지역 공동체 활성화 정책 등을 추진했다.

이와 같은 리빙스턴과 리차드 로저스의 노력은 런던을 기존의 '오래된 도시' 런던에서 현대적 건축과 디자인이 더해진 도시환경으로 변모시켰고, 침체되어 있던 런던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 넣었다. (joeyboy, 「켄 리빙스턴 그리고 리차드 로저스: 글로벌 도시 런던의 창조자들」, <이글루스>, 2013.9.4.)

▲정의당 광주광역시장 나경채 후보 산거사무소 개소식에서 축사하는 노회찬(2018.4.21.) Ⓒ노회찬재단

2018년 6월 13일 제7회 지방선거 당시 노회찬 정의당 20대국회 원내대표는 광주를 지원 방문(4.21.)해 광주광역시장 후보 나경채와 만나 켄 리빙스턴의 대안적 경제정책을 참고해보라는 조언을 했다. 나경채의 회상이다. 

"정의당 광주시장 후보로 지방선거를 치르던 얼마 전 광주를 방문한 노회찬 의원은 광주시민들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현안이 뭐냐고 물어왔었다. 지역경제와 일자리가 최대 현안이고 회피하지 않을 생각이라고 하자 그는 이렇게 말했었다. '켄 리빙스턴이 영국 런던의 시장이었을 때 대처 총리에 맞서서 대안적 경제정책을 편 적이 있어요. 그때 정책을 한 번 참고해 보세요. 나 후보에게 도움이 될 거에요.'

나는 이 말이 매우 반가웠다. 대안적 경제정책이 꼭 필요하다는 갈급이 있었고 마침 2006년에 민주노동당 서울시당이 펴낸 '런던플랜'이라는 책을 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전화나 문자가 아니라 직접 대면해서 나눈 마지막 대화가 이것이었으니 나에겐 그에게 들은 마지막 격려이자 조언인 셈이다." (「[노회찬을 추모하며-6] 그를 보낸다」, <레디앙>, 2018.7.28.)

2010년 6월 노회찬의 '진짜 불온서적' <노회찬의 약속>

▲노회찬 진보신당 서울시장 후보 공약집 <노회찬의 약속> 앞표지, 뒷표지

2008년 10월 29일, 75살의 거장 리처드 로저스와 47세의 젊은 서울시장 오세훈이 만났다. 두 사람이 나눈 대화를 보면 도시 발전의 기본철학이 다르다는 것을 엿볼 수 있다. 그래서였을까, 오세훈의 '디자인 서울'의 핵심 계획인 '한강 르네상스 프로젝트'는, 2009년의 1월의 '용산참사'가 드러냈듯이 리빙스턴-로저스의 '런던 프로젝트'와는 상반된 결과를 나타냈다.

오세훈 : 도시는 아무래도 효율을 중시하기 때문에 인구 밀도가 높은 도시의 경우 개발이 불가피하다. 서울 종로 피맛골의 향수를 간직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지만 현재의 시스템 안에서는 (보존을 위한) 뾰족한 수가 없다.

로저스 : 여러 가지 스타일의 건물이 공존하는 도시가 조화롭다. 유럽에서는 이질적으로 보이는 르네상스와 중세 시기의 건물이 조화하는 도시들을 잘 찾아볼 수 있다. (<한겨레>, 2008.10.31.)

※ 2006년 서울시장 선거에서 '뉴타운 50곳' 추가 지정을 공약하고 당선된 오세훈은 2007년 7월, '한강 르네상스 마스터플랜'을 발표했다. 애초에 '한강 르네상스'는 한강 생태계를 복원하는 환경 공약의 하나로 포장됐다. 그러나 발표된 한강 르네상스 마스터플랜 조감도에는 뾰족이 솟은 665m(150층)의 랜드마크 빌딩과 함께, 단군 이래 최대의 개발사업이라는 '용산 국제업무지구 개발'이 포함되어 있었다. 그 중심에 용산이 있었다. 수십명의 사상자를 낸 2009년 1월 20일의 '용산참사'는 그 과정에서 발생했다.

오세훈의 대권 프로젝트이기도 했던 한강르네상스와 용산의 대규모 개발 개발프로젝트의 폭주가 용산참사의 본질이기에, 당시 용산참사 유가족들은 오세훈 시장을, 이명박, 김석기(당시 서울경찰청장, 현 국민의힘 의원)와 함께, '용산참사 5대 주범'으로 꼽고,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촉구했다. (이원호, 「오세훈씨, 72세 이상림씨를 아십니까?」, <오마이뉴스>, 2021.4.5.)

2010년 서울시장 후보 TV토론에서 노회찬과 오세훈 사이에는 이런 대화가 오고갔다.

노회찬 : 이상림 씨를 아십니까? 아십니까?

오세훈 : 말씀하시죠.

노회찬 : 양회성 씨를 아십니까? 한대성 씨를 아십니까? 윤용현 씨를 아십니까? 김남훈 경사를 아십니까? 이제 아시겠죠. 작년 1월 20일이죠. 용산에서 숨진 분들입니다. 저는 오세훈 후보께 묻고 싶습니다. 이들이 테러리스트입니까? 서울 시장으로서 서울 시민에게 사과할 용의는 없습니까?

오세훈 : 세입자에 많은 이득을 주는 법안을 만들었습니다.

202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출마해서도 오세훈은 "임차인들의 폭력 저항이 용산참사의 본질"이라며 희생자들에게 책임을 떠넘긴 채 끝내 사과하지 않았다. 유족들은 이렇게 울분을 토했다.

"살고자 올랐던 망루에서 주검이 되어 내려왔습니다. 어떻게 피해자들에게 참사의 책임을 돌릴 수 있습니까? 희생자들과 유가족들을 모독하고, 피해자들에 대한 사과조차 없이 책임을 뒤집어씌우는 오세훈 후보는 서울시장 자격이 없습니다." (<한겨레>, 2021.4.2.)

<서울, 2010년 6월 노회찬의 약속>(약칭 <노회찬의 약속>, 레디앙, 2010)은 2010년 서울시장선거에 출사표를 던진 진보신당 서울시장 예비후보 노회찬의 '책' 형식의 정책 공약집이다. 정책이란 '정치적 목적을 실현하기 위한 방책'이고, 공약이란 '정부, 정당, 입후보자 등이 어떤 일에 대하여 국민에게 실행할 것을 약속함, 혹은 그러한 약속'이라는 의미라는 점에서 이 책은 정책 공약집이 맞다. 노회찬이 꿈꾸는 서울은 어떤 서울인지, 그러한 서울을 만들기 위한 노회찬의 약속이 무엇인지 묶어낸 책이 바로 이 책이기 때문이다.

리빙스턴이 <런던플랜>을 통해 런던시의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면서 약속했던 것처럼, 노회찬도 <노회찬의 약속>을 통해 서울 시민에게 약속을 했다. 장벽 없는 소통과 공존의 서울, 역사와 문화가 살아 숨쉬는 서울, 아이와 엄마가 행복한 서울, 미래로 진보하는 서울, 일과 여가가 조화되는 서울, 태양과 바람의 도시 서울, 일자리·집·건강 걱정 없는 서울을 약속한 것이다. 

노회찬의 이 일곱 가지 약속은 허울 좋은 말뿐인 것은 아니었다. <노회찬의 약속>은 서울의 지금을 낱낱이 들여다보았기에 할 수 있는 약속이었다. 때문에 이 책에는 '불편한 진실'이 적나라한 자료를 통해 드러나 있다. 하지만 이 책에는 또한 더 나은 서울을 만들 수 있다는 노회찬의 '희망'과 진보신당의 '꿈'이 담겨있다.

"대학서열과 학력차별이 없고 누구나 원하는 만큼 교육받을 수 있는 나라, 비정규직이라는 이유로 차별을 받지 않는 나라, 인터넷 접속이 국민의 기본권으로 보장되는 나라, 그리고 무엇보다 모든 시민이 악기 하나쯤은 연주할 수 있는 나라.

토머스 모어는 고작 하루 노동시간을 여섯 시간으로 줄여놓고 그 섬을 존재하지 않는 섬, 유토피아라 불렀지만 나는 그보다 더 거창한 꿈을 꾸지만 꿈이라 여기지 않고 있습니다. 이 꿈을 놓지 못하는 것은 현실 가능성이 크기 때문도 아니고, 그 꿈이 너무 아름다워 포기하기가 어렵기 때문도 아닙니다. 그 꿈 이외에는 대안이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행복해지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미 그 꿈은 나의 곁에, 우리 모두의 곁에 와 있습니다. 그 아름다운 미래의 선택은 우리의 몫입니다. 이 책은 진보의 봄을 기다리는 모든 사람들이 가야할 곳을 가리키는 나침반이자, 우리 곁에 다가올 새로운 사회에 대한 사용설명서입니다.

꼼꼼히 읽으시고, 까칠하게 따져 보다보면, 우리들의 꿈은 어느덧 곁에 다가와 있을 것입니다. 모자란 것은 서로의 지혜로 채워 넣고, 힘이 부족하면 서로 어깨를 걸어야만 합니다. 그렇게 지혜와 의지를 나누어야 합니다." (「나는 꿈을 꿉니다」, <노회찬의 약속>)

책을 펴낸 레디앙 출판사의 이광호 대표는 '불온서적' 운운하며 이렇게 덧붙였다.

"어쩌면 이 책은 우리 시대의 진짜 '불온서적'일지도 모릅니다. 힘 있는 사람들이 그토록 배제하려고 노력(?)했던 서민들이 잘 살 수 있는 '비법'과 방책이 조목조목 들어있으니 말입니다. 꼴찌도 행복한 학교를 만들겠다질 않나, 의료비 걱정 없는 서울을 만들겠다질 않나, 교통비를 반값으로 줄이겠다질 않나, 무상 무선 인터넷을 제공하겠다질 않나. 

게다가 어떻게 하겠다는 건지 조목조목 잘도 말합니다. 요새는 힘없는 사람들에게 힘을 주는 책, 잘못을 잘못이라고 말하는 책을 '불온서적'이라 부르니 이 책, 불온서적일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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