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 윤석열 대선후보의 일성은 역시 '반문(反문재인)'이었다. 윤 후보는 5일 국민의힘 대선후보로 선출된 직후 한 수락연설과 기자 간담회를 통해 문재인 정부와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를 강하게 비판했다.
윤 후보는 이날 서울 용산구 백범기념관에서 열린 국민의힘 대선후보 지명 전당대회에서 경쟁자인 홍준표 의원을 꺾고 최종 후보가 됐다. 이로써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이라는 여야 거대 양당의 대선후보 대진표가 완성됐다.
윤 후보는 후보 수락연설에서부터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에 대해 강하게 날을 세웠다. 그는 "이번 대선은 '상식의 윤석열'과 '비상식의 이재명'과의 싸움이고 합리주의자와 포퓰리스트의 싸움"이라며 "또다시 편가르기와 포퓰리즘으로 대표되는 사람을 후보로 내세워 원칙 없는 승리를 추구하고자 하는 이 무도함을 심판해 달라"고 했다.
문재인 정부와의 악연도 언급했다. 그는 "저는 '사람에 충성하지 않고 국민에만 충성한다'는 신념으로 살아왔다"며 자신의 과거 발언을 부각시킨 후 "저의 경선 승리를 이 정권은 매우 두려워하고 뼈아파할 것이다. (나는) 조국의 위선, 추미애의 오만을 무너뜨린 공정의 상징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문재인 대통령을 겨냥한 비판도 연설문에 담겼다. 윤 후보는 "이념에 사로잡혀 전문가를 무시하는 지도자는 더이상 필요없다"거나 "권한을 과감하게 위임하되, 그 결과에 대해서는 분명히 책임지는 대통령이 되겠다. 윤석열의 사전엔 내로남불은 없을 것"이라고 했다.
그는 "문재인 정권의 소득주도성장과 부동산 폭등은 재산 약탈, 악성 포퓰리즘은 세금 약탈, 1000조 넘는 국가채무는 미래 약탈"이라며 "국민을 약탈하는 이권 카르텔을 두고 나라 경제 살릴 수 있겠느냐. 국민 편가르기 하면서 이익 보는 세력을 두고 나라가 제대로 돌아가겠느냐"고 비판했다.
윤 후보는 스스로를 "문재인 정권의 정당성을 무너뜨리는 치명적인 아픔"으로 표현하며 "이 정권은 집요할 정도로 저를 주저앉히고자 했다. 저 하나만 무너뜨리면 정권이 자동 연장된다고 생각하고 2년 전부터 탈탈 털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이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미련을 버리지 않을 것"이라면서도 "어떤 정치공작도 저 윤석열을 무너뜨릴 수 없다"고 했다.
윤 후보는 지난 6월 29일 정치 참여 선언으로 정치에 정식 입문한 지는 반 년도 되지 않았지만, 각종 대선 여론조사에서 여권 후보와 선두를 다투며 일찌감치 '잠룡'으로 지목받았다. 2013년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을 수사하며 박근혜 정부와 대립각을 세웠을 때는 진보진영의, 2019년 '조국 사태'를 수사하면서는 보수진영의 각광을 받았다.
2013년 국정원 사건 수사팀장을 맡은 후 그해 가을 국회 국정감사에 출석해 "사람에 충성하지 않는다"는 말로 대중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고, 2017년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에는 서울중앙지검장·검찰총장을 역임하는 등 승승장구했다.
그러나 2년 뒤 검찰총장으로 있을 때 조국 당시 법무부장관 후보자 임명에 반대하며 그에 대한 수사를 지휘하면서 문재인 정부 내에서 고립됐고, 추미애 법무장관 시절에는 인사 문제로 인한 대립에 이어 징계(정직 3개월)까지 받았다. 결국 '윤석열 총장'은 올해 3월 4일 사표를 냈다.
이런 윤 후보의 생애 이력은 향후 선거 전략에서의 강점·약점과도 연관돼 있다. '조국 사태' 이후 현 정부와 각을 세우면서 그는 이른바 반문(反문재인) 정서의 구심점이 됐고 이는 현재 윤 후보의 가장 큰 정치 자산이다. 그러나 동시에, 이는 한계이기도 하다.
당내 경선 과정에서만 봐도, 여론조사에서 중도·진보층, 민주당 지지층은 윤 후보에게 매우 낮은 지지세를 보였다. 이들 계층은 단순히 '대선에서 윤 후보에게 투표하지 않는' 차원을 넘어, 주변에 적극적으로 부정적 의견을 전파하고 다닐 정도의 강력한 거부감·적대감마저 갖고 있다.
이들의 비토(veto) 정서를 단기간에 극복하는 것은 쉽지 않은 과제겠지만, 중도적 정책 스탠스를 유지하는 등의 전략으로 조금이라도 적개심을 누그러뜨리려는 노력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윤 후보는 앞서 당내 경선 과정에서 경쟁 후보들에 비해 외교·노동 분야에서 상대적으로 중도적인 면모를 보여, '핵무장·핵공유'나 '강성 귀족노조' 비판 등 강성 보수의 언어를 불편하게 여기는 온건 중도층에게 소구하는 면모를 보인 바 있다.
이와 관련, 이날 후보 수락 연설에는 "복지는 국가의 책임"이라며 "모두가 경쟁의 승리자가 될 수는 없다. 사회적 취약계층에 대한 복지를 강화하겠다"는 약속이 담겼다. 또 "경청하고 소통하는 대통령이 되겠다", "국민의 마음을 읽지 못하면 저에 대한 지지와 성원이 언제든지 비판과 분노로 바뀔 수 있다는 겸손한 자세로 임하겠다"며 자세를 낮추는 태도를 보이기도 했다.
대선 본선 국면에서는 2030 청년 세대와 호남 등 지난 정치 과정에서 윤 후보가 적으로 돌린 연령·지역별 집단을 포용할 필요성이 제기된다. 윤 후보는 앞서 나온 '전두환 옹호' 발언 논란으로 광주 5월단체로부터 격렬한 항의를 받았다.
윤 후보는 경선이 끝나면 직접 광주를 찾아 사과 입장을 밝힐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후보 지명 직후 가진 기자 간담회에서 그는 "지금 광주에 계신 당 관계자들과 얘기하고 있고 곧 일정이 발표될 것"이라며 "당일이 아니라 1박2일 정도로 (방문할) 그런 계획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청년 세대의 경우는, 윤 전 총장 스스로도 인정하듯 "정치를 시작하기 전에는 청년 세대들한테 기대를 많이 받았던 것 같은데 정치를 시작하면서"(10.29 '선후포럼' 간담회) 그 기대가 사라진 경우다. 다만 그 이유는 윤 후보 자신의 분석처럼 "소통 방식이 너무 진지하고 신중해서"(같은 자리)가 아니라, 국민의힘 입당 과정에서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와 대립했던 영향이 컸다. 향후 이 대표와의 관계 설정이 단순한 '당내 통합'의 차원 이상으로 윤 후보에게 중요한 이유다.
윤 후보가 이날 수락연설에서 "국민의힘이 다시 살아나고 있다. 당의 변화와 혁신을 바라는 민심은 헌정사상 처음으로 30대의 청년을 당 대표로 세워주셨다"며 이 대표에게 찬사를 보낸 것은 이런 부분을 고려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어진 기자회견에서는 "청년 세대 지지는 홍준표 후보가 많이 받았는데, 어떤 후보든 우리 당에 대해 청년 세대가 지지해 준다는 것 자체가 고무적인 일"이라며 "이를 계속 유지하고 더 많은 지지를 받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한편 윤 후보는 선대위 구성과 관련, 김종인 전 비대위원장 영입설이 있는 데 대해 "일단 선대위 구성은 좀 더 여러 분들, 당 관계자들과 깊이 논의해서 구성하겠다"면서도 "경선 과정에서도 유익한 조언도 해 주시고 그래서 도와주실 것으로 생각한다"고 긍정적 사인을 보냈다.
본선에서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 김동연 무소속 후보 등과의 단일화 전망에 대한 질문이 나오자 그는 "원론적 말씀만 드리겠다"며 "이 무도한 정권 연장을 끝내고 정권 교체한다는 것에 대해 같은 열망을 갖고 계신 분들이기 때문에 우리가 큰 틀에서 야권 통합을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지금 당장 여기에 대해 드릴 말씀은 없다"고 답했다. '야권 통합'이라는 표현이 눈길을 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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